[현장스케치] 단원고 기억교실 임시 이전 : 교실이 비었다
2016.08.22 14:27
2014년 4월 16일 참사 이후 세월호 희생 학생들의 교실은 추모의 공간으로 남아있었다.
2016년 8월 20일, 학생들의 물품과 교실의 모든 것이 임시 거처로 옮겨진다.
19일 안산 단원고 기억교실 이전 전야제 '기억과 약속의 밤'
마임과, 영상과, 추모의 말. 끊임없이 호명되는 학생들의 이름들.
뒤 이어 가수 이상은씨의 노래가 이어졌다. 첫 곡인 "사랑해 사랑해"는 목이 메인 듯 가사가 뜨문뜨문 끊어졌다.
그리고 "삶은 여행"과 "언젠가는"이 이어졌다.
사회는 가수 홍순관씨였다.
시낭송
자전거탄 풍경
자전거탄 풍경의 강인봉씨가 짧게 공연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미안합니다. 이 자리에 오신 분들, 유가족들. 모두에게 미안합니다"
전명근 유가족협의회 위원장의 말이 이어졌다.
오늘 전달 받은 회의록을 왼손에 들고서, 처음 15분간 마이크를 잡은 손은 억누른 감정으로 떨렸다.
"임시이전 공간과 향후 계획이 제대로 합의되고 있지 않다.
다음날 9시 20분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과의 일정한 협의가 완성되지 않으면 이전을 할 수 없다"
말은 담담하고 무겁게 천천히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내일도 많이 무더울 겁니다. 함께 해주십시요."
행사가 끝나고도
한참을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기억교실은 10개 교실로 2층 7~10반, 3층 1~6반이다.
기억 속 모습에서 달라진 생소한 교실
개인 비품과 책걸상이 이전을 위해 포장되어 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자리들
미수습자이거나
혹은
마지막까지 이전을 원하지 않는 유가족일 수도
전야 행사가 종료되고 단원고를 나섰다.
다음 날 8월 20일
전야제를 했던 운동장에 이송 차량이 늘어섰다.
고개를 갸웃한다.
저 현수막에 짧은 글귀 하나 적어주는 게 그리 힘들었던가.
9시 30분에 예정되었던 이송 행사는 12시가 되어서도 시작하지 못했다.
어제 예정되었던 "합의"의 문제로.
이송식이 시작되고, 고수들이 북을 울린다.
하얀 모자를 쓴 이송 진행단이 움직였다.
학생들의 개인 비품들이 밖으로 옮겨진다. 북은 계속 울린다.
학교 앞으로 차곡차곡 쌓인다. 북은 계속 울린다.
진행진의 오른쪽 팔목에 금속편에서
짤랑짤랑 소리가 들린다.
북은 계속 울린다.
7대 종단에서 진행 예정이었던 천도제는 개신교, 천도교, 대한불교, 원불교로 압축되었다.
마지막 원불교의 비구니는 반야심경이 울리는 가운데 눈물을 참지 못했다.
오전의 소요로 시간이 수정되었다.
학생들의 개인 비품이 학교 앞으로 나온 뒤,
책걸상이 먼저 차량으로 옮겨졌다.
한 할머니가 아이처럼 울었다.
갑자기 한 유가족의 고성이 울렸다.
악에 바친 듯
이게 뭐냐고
왜 좀더 신경을 써주지 않느냐고
우리 애들이 짐이냐고
이송은 다시 두 시간여 지연되었다.
유가족들끼리의 생각 차이로 인해 언쟁도 발생했다.
모두가 땡볕 아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교실이 비었다.
교실이 비었다.
이날 교실 뒤편과 칠판도 모두 같이 포장 이송되었다.
눈길을 끄는, 어제 보았던 책상
희생학생 250명 가운데 유품 정리가 안된 고 한고운(1반), 김도언(3반), 허재강(7반)과 미수습된 고 조은화(1반), 허다윤(2반), 남현철(6반), 박영인(6반)을 제외한 모두가 교실을 떠났다.
이 자리는 다윤이의 자리다. 일전 노란리본당에서 방문한 팽목항에서의 미수습자 유가족의 자녀이다.
추모 메시지 등 모든 것들이 포장되었다.
교무실
지원봉사단과 유가족들이 이송을 준비하고 있다.
단원고에서 안산교육청은 2km가 채 안 되는 거리다.
행진은 천천히 나아갔다.
빌라 안에서 이송을 바라보는 꼬마 아이
동네 주민들
안산교육청 별관으로 물품들이 이송된다.
이후 21일. 나머지 모든 짐이 학교를 빠져나왔다.
단원고는 돌아오는 주말부터 도색 및 정비를 하고 11월부터 해당 교실을 다시 사용한다는 입장이다. 안산교육청으로 옮겨진 물품들은 45일 일정으로 재현작업이 진행되어 오는 10월 중순 이후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Ted.
편집 : 딴지일보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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