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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보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책임연구원)한국성폭력상담소 25주년 기념 허핑턴포스트코리아 공동기획 | 우리가 성폭력에 대해 알아야 할 8가지3) 성폭력가해자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
최근 유명연예인에 의한 성폭력이 연일 터져 나오고 있다. 사랑 받았던 만큼, 실망과 관심도 대단하다. 대중들은 친숙하게 느끼던 연예인이 성폭력가해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운 마음과 함께, 고소인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닌지에 촉각이 곤두서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정말 성폭력가해자일까'가 아니라 '누가, 왜, 어떻게, 가해자가 되는가'이다.
성폭력가해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성폭력 가해 원인에 대한 연구들을 보면 대개 성폭력 강력범일수록 불우한 가정환경에, 학대 경험, 저소득계층, 저학력, 높은 알콜의존도가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뇌호르몬의 영향이라든가, 골상학적 문제, 칼슘의 결핍, 조현병 등의 '질병'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에 적용되는 가해자는 매우 드물 뿐 아니라, 가해자나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강화하고, 형사고소 되지 않았거나, 법적으로 승소한 가해자들의 경우는 설명하지 못한다. 성폭력은 특수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중심적 성문화와 왜곡된 남성성에서 기인하며, 남성성은 스스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위계적 남성성을 추구하도록 독려하는 구조 속에서 순환되기 때문이다.
사실 거의 대부분의 가해자는 잘 교육받고, '정상가족'에서 자란 지극히 평범한 남성들이다. 물론 자신의 가해행위를 인정하지 않는 가해자도 있지만, 죄책감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가해자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폭력가해자들에게서 보이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이들의 정당화나 항변은 사회의 남성중심성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술에 취해서 실수를 했다'거나 '상대가 먼저 유혹했다'고 말하는 가해자의 언어는 개인의 언어가 아니라 이 사회의 언어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세계에서 마땅히 통용되는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된다.
성폭력은 사실 동의의 문제가 아니다
성폭력은 사실 동의의 문제가 아니다. 상대의 의사를 어떠한 방식으로 들으려 했는가의 문제이다. 때로는 동의하지 않았으나 짜릿한 섹스가 될 수도 있고, 동의했으나 심각한 강간이 될 수도 있는 역설적인 상황은 성폭력이 관계와 맥락, 사회의 주류 가치들이 경합하는 지점에서 유동적으로 상호구성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남성성과 강간의 문제를 연구해 온 여성학자 캐서린 맥키넌에 따르면, 남성/가해자들은 여성들이 성행위에 동의하고서도 나중에 강간 혐의를 날조해서 뒤집어씌운다고 믿는데, 그 이유는 그 사건을 '조금 격렬한 성행위'로 기억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1) 그렇기에 여성들이 악의적으로 사건을 조작했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반면 '잠시 모텔에서 쉬어가고 싶었을 뿐'이라거나 '두렵고 당황스러운 마음에 강하게 저항하지 못했다', '성관계를 할 생각이 있었으나 도중에 마음이 바뀌었다'는 피해자의 언어는 이 사회에 없는 언어, 감추어지고 드러난 적이 없는 언어이기 때문에, 법과 사회, 공동체는 그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우연한 단 한 번의 가해는 매우 드물다
남성중심적 성문화에서 여성은 쉽게 성애화, 타자화 된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그녀들은 동료이기 이전에 연애대상이고, 또래이기 이전에 타자이고, 평등한 구성원이기 이전에 '꽃'으로 존재한다. 이때 우연한 단 한 번의 가해는 매우 드물다. 성폭력가해자는 외딴 섬에서 만들어진 괴물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강고한 남성다움 신화가 만들어낸 구조물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성폭력 상황은 여성에 대한 평소의 행동, 생각, 태도 등이 우연찮게 드러나게 되는 사소한 순간일 뿐이다. 그렇기에 한 명의 가해자가 '발견'되면, 피해자는 수십 명에 이르게 되기도 한다. 남성성의 수행은 친밀한 관계에서의 정서적 폭력에서부터 가정폭력으로, 때로는 살인에 이르기까지 연속선에 있으며, 이는 사적 공간에서 자신의 지배적 위치를 점하고자 하는 남성성의 수행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회의 구조를 보지 않고 성폭력을 판단하는 것은 그래서 언제나 위험하다. 중요한 것은 이 사회가 무엇을 성폭력으로 호명하고, 어떠한 경우에 가해자로 인정하는가의 기준에 있다.
당신이 마주한 저항은 당신에 대한 억압의 척도다
1970년대 초, 미국의 페미니스트들은 남성들이 가사나 육아 등 '여성들의 일'을 왜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저항하는지를 해명하기 위해 이렇게 외쳤다. "당신이 마주한 저항은 당신에 대한 억압의 척도다!"2) 오늘날 많은 가해자들이 자신의 가해를 인정하지 않거나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기어코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이유는 그만큼 이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과 억압이 강고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여성에 대한 편견이 어떻게 혐오가 되고,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지는가. 그것을 알고 싶다면, 남성들에 주목하자. 기어코 '페미니즘'조차 자신들이 허락한 것이어야 하는 그들의 언어에 해답이 있다. 그들의 세계를 손바닥 위에 놓고, 분석적으로 바라보자. 가해자의 언어는 괴물의 언어가 아니라 이 사회의 아주 평범한 언어일 뿐이다.
참고자료1) Mackinnon, Catharine A. (1989), "Rape: on coercion and consent" in Toward a Feminist of the State, Harvard University Press.
2) 산드라 하딩 저, 조주현 역(2009), 『누구의 과학이며 누구의 지식인가』, 나남출판사.
* [우리가 성폭력에 대해 알아야 할 8가지] 연재의 다른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블로그 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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