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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27일 토요일

“‘친일청산’ 제대로 됐더라면 박근혜, 대통령 못됐을 것”


[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83] 심인보 뉴스타파 기자이영광 기자  |  kwang3830@hanmail.net
지난해 독립언론 <뉴스타파>에서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친일파 후손들의 삶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4부작 ‘친일과 망각’을 방송했다. 당시 유튜브 조회 수 13만 회를 넘길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이에 부응해서일까? 1년이 지난 8월 7일 이 다큐멘터리가 책으로 출간되었다.
책에는 방송에서 담지 못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 다큐멘터리가 평면적이었다면 책은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출간 뒷이야기가 궁금하여 지난 22일 서울 정동에 위치한 뉴스타파 사무실에서 심인보 기자를 만났다.
심 기자는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기대 이상으로 책이 잘 팔리고 있다”면서 “지난해 방송을 했을 때 상당히 많은 분이 보셨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못 보신 분이 많은 것 같고 방송을 보셨던 분이라도 책과 다큐멘터리는 다르다고 생각하셔서 책을 사시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고 반응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다큐멘터리가 책으로 출간되는 건 이례적이다. 이에 심 기자는 “뉴스타파는 초창기부터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취재나 작업을 여러 번 해왔는데 그것들을 제대로 기록으로 남겨두지 못했다는 생각이 있었다. ‘친일과 망각’을 할 때는 처음부터 출판을 염두에 두고 기록을 충실히 하자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출간 배경을 설명했다.
더불어 심 기자는 “과거 70년 전에 역사가 뒤틀렸고 그로 인해 우리 사회에 셀 수 없이 많은 부정적인 효과가 누적되고, 그게 누적되어 만들어진 구조 때문에 지금 우리가 고통 받고 있다”면서 “타임머신을 타고 70년 전으로 돌아가 그걸 바로잡을 수는 물론 없지만 적어도 잊지는 말자”는 메시지를 책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다음은 심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 <뉴스타파> 심인보 기자 ⓒ 이영광
- 지난해 방송된 다큐멘터리 ‘친일과 망각’을 1년이 지난 8월에 책으로 출간하셨어요. 열흘 정도 지났는데 반응은 어때요?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기대 이상으로 책이 잘 팔리고 있어요. 대형 온라인 서점에서 정치 사회 분야 5위권에 들어가는 정도입니다. 지난해 방송을 했을 때 상당히 많은 분이 보셨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못 보신 분이 많은가 봐요. 그리고 방송을 보셨던 분이라도 책과 다큐멘터리는 다르다고 생각하셔서 책을 사시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친일’은 일부 엘리트가.. ‘망각’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 주위에서는 뭐라고 하나요?
“자영업 하는 제 중학교 동창이 책을 사서 읽고 하는 말이 이래요. ‘제목의 뜻을 생각해 봤는데 친일은 그걸 할 기회조차 엘리트들만 가져서 일부 엘리트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망각은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 같다.’고 해요. 제목을 지을 때 그런 의미까지 담은 것은 아니었는데 어쩌면 저 자신보다 더 의미심장한 해석을 하더라고요.
그리고 책을 읽고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는지 물어요. 그래서 민족문제연구소에 후원하라고 했어요. 다음 날 물어보니 후원을 시작했다고 하더라고요. 저희가 지난해에도 방송을 통해 그런 메시지를 내보내긴 했지만, 친일파가 청산되지 않아 역사가 비뚤어지고 가치가 전도된 것에 대한 분노나 울분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남아 있고 그런 부분 때문에 저희 책에 반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책은 처음부터 생각한 건가요?
“뉴스타파는 초창기부터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취재나 작업을 여러 번 해왔는데 그것들을 제대로 기록으로 남겨두지 못했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 2013년과 올해 보도했던 조세도피처 연속 보도나 2014년에 했던 원전 마피아 같은 보도요. 이런 것들을 책으로 남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동안은 취재할 때 너무 힘들기도 하고 취재가 끝나면 곧이어 다른 프로젝트를 해야 하니까 못했어요. 그래서 ‘친일과 망각’을 할 때는 처음부터 출판을 염두에 두고 기록을 충실히 하자는 공감대가 저희 사이에 있었어요. 사실 책은 지난해 말까지 출간하는 게 목표였어요. 그러나 1년이 지나 나오게 됐는데 그건 김용진 대표의 책임이 큽니다(웃음),”
- 그냥 취재하는 것과 출간을 염두에 두고 취재하는 건 다를 것 같아요.
“많이 다르더라고요. 저는 처음부터 방송기자였고 그렇기 때문에 취재를 할 때 항상 화면을 먼저 생각하거든요. 방송에서는 아무리 팩트가 의미 있어도 그림이 약한 부분은 비중이 줄어들고 팩트는 덜 중요해도 그림이 좋으면 늘어날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책은 그림에 구애받음이 없잖아요.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충분히 쓸 수 있고 제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부분은 그에 맞춰 쓸 수 있죠. 책을 쓴다는 게 훨씬 제약이 적고 자유롭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겠더라고요. 처음이라 아쉬움이 있는데 다음에 한 번 더 책을 쓰면 더 잘 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다큐멘터리와 책의 차이점 중 하나는 책엔 배경까지 설명할 수 있다는 것 같아요.
“맞아요. 다큐멘터리는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림과 소리를 먼저 생각하거든요. 책은 그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게 하나 있죠. 또 하나 다큐멘터리, 동영상을 만들 때는 시청자를 상당히 수동적인 존재로 가정해서 쉽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요. 저는 KBS 출신인데, KBS 같은 경우는 공영방송인 만큼 더더욱 그래요. 처음 입사해서 교육받을 때 ‘네 리포트를 중학교 2학년이 봐서 이해할 수 있겠냐 없겠냐? 만약에 이해를 못 한다면 네가 리포트를 잘못 쓴 거다.’라고 얘기할 정도거든요. 물론 뉴스타파에 온 뒤에는 그런 부분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졌지만 그래도 다큐멘터리는 수동적인 시청자를 전제로 만들기 때문에 제약이 많아요.
그러나 책은 그보다는 훨씬 더 능동적이고 배경지식이 많은 독자를 전제로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정도 이야기를 해도 책의 독자들은 더 잘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책이라는 장르가 훨씬 더 표현의 범위가 넓고 제약이 적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 <친일과 망각> 표지
“‘친일청산’ 제대로 됐더라면 박근혜, 대통령 못됐을 것”
“재벌위주 경제구조‧보수일색 정치 구도.. 친일 미청산 산물”
- 들어가기를 보니 ‘만약’이란 가정에 대한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친일 청산이 안 된 나비효과가 지금까지도 있다는 것 다시금 느낄 수 있는 대목 같아요.
“그렇죠. 책에도 그 얘기가 나오지만, 친일 청산이 제대로 되었더라면 당장 현재 대통령은 박근혜 씨가 아니겠죠. 박정희 전 대통령은 만주군 경력이 있기 때문에 합당한 정도의 친일청산이 이뤄졌다면 사형까지는 아니겠지만, 공민권이 박탈되었든지 아니면 최소한 해방된 한국의 군대에서 고위 장교를 지낼 수는 없었겠죠.
그런데 이런 건 오히려 지엽 말단적인 얘기일 수 있어요. 가장 중요한 건 저희가 지난 프로그램에서도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가치가 전도된 것이죠. 민족과 사회 공동체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한 사람들, 이분들은 물론 당대에는 보상받기 어렵겠다는 걸 상당 부분 알고 감수했을 거라고 봐요, 하지만 해방된 조국에서 자기 후손들이 제대로 못 배우고 못 먹고 못 입으며 어렵게 살리라고는 그분들도 생각 못 했을 거예요. 거꾸로 민족을 배신하고 외세에 빌 빌붙었던 사람들과 그 후손들은 계속해서 잘 나가고 권력을 차지하고 있죠. 이런 현실에서 만약 우리 공동체가 미래에 다시 위기에 처한다면 누가 선뜻 희생하려고 나설까요.
현실적인 문제도 있어요. 지금 이 나라의 현실에서 누가 과연 권력을 가지고 있고 사회자원을 차지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 이것 역시 친일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고 봅니다. 지금 형성돼있는 재벌 위주의 경제구조라든지 보수 일색의 정치 구조라든지 이 모든 것들이 친일 청산이라는 첫 단추가 잘 못 끼워지면서 여기까지 온 것으로 생각합니다.”
“친일청산 열망.. 반민특위 습격‧프락치 사건 일으켜 좌절시켜”
- 제헌 의회에서 제정되었던 ‘반민족 행위 처벌’의 과정과 그로 인한 반민특위 구성에서 해체까지가 책에 나오잖아요. 그걸 조사하시면서 느끼는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저희 책에 1948년 당시 의회 속기록에서 발췌한 의원들의 발언이 나옵니다.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었을 당시에야 친일파 청산에 대한 민중적인 의지가 매우 높았습니다. 그러나 미군정 때문에 친일 청산이 되지 않았고 그 상태로 3년이 그냥 흘러가 버렸어요. 48년 의회 속기록을 보면 그 3년이라는 간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일 청산에 대한 열망이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또 한 가지 그 당시에 의회를 수립하기 위한 총선거가 있었는데 그 총선거에 지금으로 봤을 때 왼쪽에 있거나 중도에 있는 사람들이 대거 불참해서 보수 일색의 의회가 꾸려졌습니다. 그런데 그 보수 일색의 의회에서조차 친일청산이라는 대의에 대해서 그 누구도 딴지를 걸 수 없는 분위기가 있었던 거예요. 이건 우리 민족이 갖고 있던 친일파 청산에 대한 열망이 엄청 높았다는 걸 입증하는 거로 생각해요.
그런데 그렇게 높았던 친일청산에 대한 열망을 반민특위를 습격하고 프락치 사건을 일으키는 등 정치적으로 공격하면서 완전히 좌절시킨 것이잖아요, 정말로 저는 이 장면이, 이승만 대통령의 여러 가지 과오 가운데서도 민족사적으로 보면 한두 손가락에 안에 드는 과오가 아닐까 생각해요, 피눈물 나는 장면인 것 같아요.”
  
“친일파 청산, 역사적 책무 완수 못해.. 왜곡된 역사의식 키워”
- 후손들에게 편지를 보내셨잖아요. 물론 어느 정도 예상은 했겠지만 실제로 답장을 받으셨을 땐 착잡하셨을 것 같아요.
“‘그렇게 오래된 일을 나에게 왜 묻느냐?’는 반응이 가장 많았어요. 그 정도는 당연히 있을 수 있는 반응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서 ‘우리 할아버지 정말 훌륭한 분이다. 당신이 몰라서 그런 거고 우리 할아버지를 친일파라고 하는 것은 이른바 진보정권의 정치적인 의도에 따른 공격일 뿐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앞서 하셨던 질문과 이어지는 건데 우리가 친일 청산을 해야 했던 시점에 못했기 때문에 이들이 왜곡된 역사의식을 가지고도 그동안 아무 문제없이 살아올 수 있었던 거죠. 아무도 그 사람에게 ‘너희 할아버지가 친일파로 민족을 배신한 사람이었어’라고 얘기를 안 해준 거예요. 제대로 된 사회였다면 그들에게 사회나 학교 혹은 정부가 공식적인 작업을 통해서라도 얘기를 해줬어야 해요. 그래서 그들도 그 사실을 깊이 알고 자기의 정체성에 대해서, 물론 본인이 죄를 지은 건 아니지만, 자신의 개인사와 정체성에 대해 깊이 고민했어야 해요.
그런데 그런 고민 전혀 없이 ‘우리 조상은 훌륭한 분이고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여기까지 왔고 모두 나와 내 집안이 잘나서 그런 거다’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너무 부끄러운 일이고 비극적인 일인 거죠. 우리 사회가 주어진 역사적인 책무를 완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해서 씁쓸했어요.”
- 방송이 나간 후 연락이 온 경우도 있나요?
“네. 저희 책 에필로그에도 나오는데 의외로 취재 과정에서는 저희 취재에 반감을 표시했던 분들이 방송 전체를 보시고는 우호적인 반응으로 바뀐 분도 계세요. 자기들도 잘 몰랐고 우리 사회에서 친일파 청산이 갖는 역사적인 의미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방송을 보니 자기들도 그런 부분을 의식하고 역사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는 반응도 있었어요. 화를 낸 분은 없었어요. 왜냐면 화나신 분들은 아예 방송을 안 봤거나 봤어도 연락을 아예 안 하지 않았을까요. 어쨌든 여러 피드백을 받았는데 피드백만 놓고 보면 저희 방송의 의도를 어느 정도는 이해해 주지 않았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친일과 망각’으로 수상도 많이 하셨잖아요.
“네 감사하게도 여러 상을 받았습니다. 하나하나 모두 소중한 상이지만 특히 민족문제 연구소에서 주는 임종국 상을 받은 게 정말 기뻤어요. 임종국 선생은 아무도 감히 친일에 대해 얘기하지 못하고 있을 때 그 깊은 망각의 어둠을 깨뜨린 분이에요. 혼자서 촛불 하나 들고서. 어찌 보면 우리 민족 전체가 해야 했을 일을 혼자서 감당하신 분이죠.
정부가 친일·반민족 행위 진상규명을 하거나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임종국 선생의 선구적인 작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고요, 비교하기는 민망하지만 저희가 지난해 했던 작업 같은 것 역시 임종국 선생님께 전적으로 빚지고 있죠. 그런 분의 이름을 걸고 주는 상을 받게 돼서 정말 기뻤습니다. 평생의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 얼마 전 문인협회가 친일파인 춘원 이광수와 육당 최남선 문학상을 제정하기도 했다가 철회하는 일이 있었잖아요. 문인협회 이사장은 선대의 친일을 사죄한 문효치 씨잖아요, 심경이 복잡했을 것 같은데.
“문효치 이사장 같은 경우에 저희가 찾아가 인터뷰를 했을 때도 뭔가 내면세계가 복잡한 것 같더라고요, 시인이라서 그런지. 조상의 친일에 대해 그냥 심플하게 사죄하는 게 아니고 사죄가 나오기까지 이 분의 내면에서 굉장히 많은 고민과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쨌든 지난해 저희 카메라 앞에서 사죄했는데 이 분이 갑자기 공인된 친일파인 춘원과 육당의 문학상을 제정한다고 해서 저희도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이걸 가지고 따로 문 이사장에게 연락을 해보거나 하진 않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분의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알 수는 없어요.
다만 문인협회 입장을 보면 ‘공과 과는 따로 얘기해야 하고 문학적인 공이 있기 때문에 상을 제정하는 것은 온당하다’인 것 같은데 그런 입장은 이미 이쪽 연구를 하시는 분들 사이에서 오래전에 논박된 입장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 10대 궤변 가운데 두 번째가 바로 ‘공과론’이에요. 저는 당연히 문인협회의 결정이 원칙적으로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 이사장이 사죄 이후 왜 그 같은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해서는 취재 보지 않아서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친일 미청산으로 인한 전도된 역사…취재 이어갈 것”
- ‘친일과 망각’에 대한 후속 보도를 계획하는 게 있나요?
“올해는 저희가 ‘훈장과 권력’이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했잖아요. 거기에 제가 참여한 건 아니지만, 박중석 선배는 참여했거든요. 박 선배 말로는 작년에 친일파 후손을 추적했던 작업과 이번에 훈장을 받은 친일파를 찾아내는 작업에서 겹치는 것도 상당히 많았고 새롭게 발견한 것도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취재 결과들이 모두 친일파와 그 후손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로 뉴스타파 안에 쌓이고 있는 것이거든요. 그것을 바탕으로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해 전도된 역사, 뒤집힌 가치 등에 대한 취재는 앞으로도 계속해나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친일과 망각’이 전하는 메시지.. 뒤틀린 역사 잊지 말자는 것”
- 독자들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잊지 말자는 거죠. 과거 70년 전에 역사가 뒤틀렸고 그로 인해 우리 사회에 셀 수 없이 많은 부정적인 효과가 누적되고, 그게 누적되어 만들어진 구조 때문에 지금 우리가 고통받고 있잖아요. 물론 타임머신을 타고 70년 전으로 돌아가 그걸 바로잡을 수는 물론 없어요. 그러나 적어도 잊지는 말아야죠. 기억하고 있어야만 바로 잡을 기회가 생기니까요.”
-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주세요.
“저희 뉴스타파가 ‘친일과 망각’, ‘훈장과 권력’ 등의 프로젝트를 계속 해왔잖아요. 그 이유는 우선 저희가 왜곡된 근현대사에 대한 문제의식을 다른 언론보다 조금 더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일 거예요,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겠죠.
그런 환경과 여건을 만들어 주신 것은 역시 후원회원들이세요. 진실의 수호자들이신 뉴스타파의 3만 9천 후원 회원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 앞으로도 뉴스타파가 근현대사를 바로잡기 위한 작업을 계속해 나갈 텐데 거기에 대해 많은 관심을 두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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