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바다에서 건져올린 기억의 빛
‘세월호 참사’ 음반 낸 노성호·중호 형제 신부
주검으로 돌아온 단원고 학생이주임신부로 있던 성당 신도 인연둘 다 기타 연주 등 음악 재능형의 노랫말 동생이 음률에 실어보컬팀 이름은 ‘노비스 꿈’‘우리와 함께’라는 뜻유명 드러머와 기타리스트도 도움“…저 햇살이 비치는 곳에너도 그렇게 빛나고 있길…”고통 앞에 중립 없다는 교황 말 새겨서로 치켜세우며 사제의 길 동행
» 세월호 참사의 아픔은 형제 신부가 함께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게 만들었다. 형 노성호 신부(왼쪽)가 동생 노중호 신부(오른쪽)와 함께 포즈를 잡았다.
아버지는 장남이 사제의 길을 간다고 했을 때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겼다. 할아버지 때부터 3대째 이어오는 뿌리 깊은 천주교 신앙이었다. 아들이 또 하나 있었다. 장손의 집이었지만, 장남이 신부가 되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이번엔 둘째이자 막내인 아들도 신부의 길을 간다고 했다. 아버지는 반대했다. 아들 둘이 모두 신부가 되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끝까지 막지는 않았다. 그리고 성경을 필사하기 시작했다. 구약과 신약을 꼼꼼히 직접 쓰는 작업이다. 두 아들이 신부의 길을 잘 가도록 기도를 하면서 필사를 했다. 첫번째 필사본은 장남인 노성호 요한보스코(38) 신부가 사제 서품을 받은 2004년 9월, 선물로 주었다. 두번째 필사본은 4년 뒤인 2008년 8월, 둘째 아들인 노중호 프란시스코(36) 신부가 서품을 받을 때 기념으로 선물했다. 세번째 필사본은 둘째 아들이 처음 주임 신부로 부임하는 것을 기념해 선물했다. 아버지 노태원(67)씨는 지금도 필사를 계속한다.
성경 필사해 사제 서품 땐 선물로
그런 아버지를 둔 덕인지 두 신부는 사제의 길이 거침없고 즐겁다. 형은 수원 가톨릭대에 입학한 뒤에 기타를 배웠다. 편곡을 할 정도로 음악에 재능이 있었다. 같은 신학대에 입학한 동생도 일찍부터 기타를 배워 미사 때 반주할 정도였다. 지난해 처음 형제는 같이 기타를 잡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형은 2007년부터 평택의 효명고등학교에서 교목을 담당하고 있다. 동생은 2년 전 하남 서부성당에 부임했다. 형제인 두 신부가 함께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은 세월호 참사 때문이다.
“당시 사무엘(장준형)은 성당 학생회 밴드에서 베이스 기타를 담당했어요. 아주 바르고 착한 학생이었어요. 미사 때는 사제에게 도움을 주는 복사 대장이기도 했어요. 제주도로 수학여행 간다고 전날까지 자랑했어요.” 세월호 침몰 당시 안산시 원곡성당 주임신부였던 동생 노중호 프란시스코 신부는 그때를 되새기기조차 힘들어했다.
“준형이의 주검을 일주일 만에 찾았어요. 7일장을 하려고 장례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6일째 되는 날 그 주검이 준형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다른 아이의 주검이었어요. 결국 보름이 지나서 진짜 준형이 주검을 찾았어요. 지옥과도 같은 시간들이었어요.”
형 노성호 요한보스코 신부도 사무엘을 잘 기억한다. 동생 성당에 방문했다가 사무엘과 떡볶이를 같이 사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아주 건강한 아이였어요. 정말 뚜렷이 기억해요. 그런 아이가 바다에서….”
» 노성호·중호 형제 신부가 만든 앨범 ‘노비스 꿈’의 표지.
“천주교스러운 것 벗고 대중 정서에”
형제는 작업을 시작했다. 사무엘을 비롯해 세월호 희생자들을 영원히 잊지 않을 수 있게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로 했다. 작사는 동생이, 작곡은 형이 했다.
“바람이 부는구나. 또 배가 오려나 보다/ 이 바람이 데려간 너도 배와 함께 왔으면/ 잘 살고 있나 아프진 않나 거기서도 행복하니/ 그리워하던 엄마도 만났겠구나 이젠 편히 쉬렴”
동생이 만든 간절한 가사는 형이 만든 가슴 울리는 곡조에 올라타 허공을 채운다. 노래 ‘사무엘’은 계속된다.
“너는 주님께 청을 드려 얻은 한나의 귀한 아들 같은 아이/ 너는 주님께 선물로 받은 주님 집에 바쳐진 귀한 아이/ 구름이 걷히는구나 곧 해가 나려나 보다/ 저 햇살이 비치는 곳에/ 너도 그렇게 빛나고 있길”
형제는 보컬팀의 이름을 ‘노비스 꿈’(Nobis Cum)이라고 붙였다. “노비스 꿈은 라틴어로 ‘우리와 함께’라는 뜻으로,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고,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어요.” 형제 신부 듀엣의 첫 번째 앨범 제목도 ‘노비스 꿈’이다. 형제 신부가 음반을 발매한 것은 한국 교회에서 처음이다.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마음으로 이번 앨범을 준비했어요.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기도하고 빛으로 향했으면 합니다.”
형 신부는 “‘천주교스럽다’는 것을 벗어나고 싶었어요. 일반 대중의 정서에 다가서려고 노력했어요”라고 말한다. 이 앨범에 있는 ‘별’은 우리 모두의 기도를, ‘문득 마주치다’는 세월호 희생자의 부모님들에게, ‘사춘기 소년의 바람’은 모든 청소년들에게 향한 형제 신부의 마음을 담고 있다. 형제 신부가 만드는 음반의 취지에 공감한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음반 작업에는 드러머 강수호씨와 기타리스트 함춘호씨도 함께했다.
“앨범을 만들었을 때 아버지가 제일 기뻐했어요. 자식들이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가면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너무 보기 좋다고 하시면서요.” 형 신부는 형제를 적극 지원하시는 아버지가 고맙기만 하다.
»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를 기리는 노래를 부르는 노성호·중호 형제 신부는 세월호의 진실이 꼭 밝혀질 것이라고 믿는다. 어둠이 빛을 이긴 적이 없듯이.
지난달 이어 이달 말 두번째 공연
3년을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보낸 동생 신부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세월호 참사는 슬픈 이야기로 끝나면 안 돼요. 지금은 어둠이 진실 앞에 짙어지고 있는 시간입니다. 무엇이 그리 떳떳하지 못한지, 힘과 권력이 진실을 감추고 숨기면서 시간이 지나서 망각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어요. 세월호 유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거액의 보상금이 아닙니다. 도대체 내 자식이 왜, 어떻게 죽었는지, 무엇이 거짓인지를 밝히는 것입니다. 결국 밝혀질 것입니다.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으니까요. 빛이 이긴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야 합니다.” 동생 신부의 눈에서 빛이 난다.
형 신부도 입을 연다. “애잔해요. 무엇도 그들을 위로해줄 수 없어요. 같이 곁에서 그들을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을 계속 부를 겁니다.” 형 신부는 프란시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에 비행기에서 했다는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는 말을 좋아한다고 한다. 당시 광화문에 나가 멀리서 교황을 본 적이 있는 형 신부는 “기성세대가 세월호 아픔 앞에서 침묵과 타성의 굴레를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형 신부는 동생 신부가 앞으로도 어렵고 소외된 우리의 이웃을 잘 보살피는 신부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동생은 어릴 때부터 몸이 불편하고 불쌍한 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어요. 앞으로도 버림받은 이들을 위해 자신의 소임을 다할 것이라고 믿어요”라며 동생을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본다. “형님은 흔들리지 않고 사제의 길을 갈 것입니다. 형님의 서품성구는 ‘내가 보내니’입니다. 든든한 형님입니다.” 형제 신부는 서로를 치켜세운다.
형제 신부는 지난달 22일 안산 성요셉성당에서 첫 공연을 했다. 오는 26일 저녁 8시 수원교구 갈곶동성당에서 두번째 공연을 한다. <노비스 꿈>은 온라인 음원 사이트와 하남 서부본당을 통해 살 수 있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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