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의 정세토크] 미국, 북한 핵실험 모른 척 한 이유는…
북한의 '수소탄' 실험 이후 미국 핵 전력의 한반도 투입이 가시화되고 있다. 핵무기를 탑재한 잠수함, B-52 폭격기, 항공모함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발 빠른 대응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마치 북한이 사건을 일으켜주길 기다린"듯한 움직임이라며, "미국이 북핵 문제의 '해결'이 아닌, '활용'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증거"라고 진단했다.
정 전 장관은 미국이 북한의 '수소탄' 시험을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한국에는 알려주지 않은 것 역시 북핵을 '반(反) 중국, 한-미-일 공동전선' 구축에 활용하려는 미국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이 사전에 북한의 핵실험 시행 여부를 알고 이에 대비하는 모양새를 취하게 되면 강경한 방식을 쓰기가 머쓱해질 수 있다"며 "아무것도 모르다가 완전히 기습을 당한 것 같이, 북한은 미국마저도 감지하지 못하는 수준에서 핵실험을 실행할 수 있는 집단이라는 인식을 국제사회에 심어줘야 보통 대책으로는 안 되겠다는 여론을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 전 장관은 "이렇게 돼야만 미국이 한반도에 전략자산을 투입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기고, 북핵 문제를 계기로 중국을 견제하는 한-미-일 공동전선을 강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북한의 '수소탄' 시험 목적으로 △대외 협상용 △대내 결속용 △기술적인 필요 등이 거론되는 가운데, 정 전 장관은 '협상용'에 무게를 실었다.
그는 "북한이 버락 오바마 현 정부를 상대로 협상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은 아니"라면서 "다음 정부를 보고 장기적인 시각에서 이 문제를 건드린 것 같다"고 진단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은 국무장관 시절 평화협정과 비핵화 문제를 거론했던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당선 가능성에서 평화협정 협의 가능성을 발견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강하게 나가면 미국이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는 '성공의 추억' 때문에 북한이 이번 실험을 진행한 측면도 있다"며 "그래서 이번에도 수소폭탄까지 치고 나가면 지난해 10월부터 이야기했던 평화협정과 관련해 미국이 고민할 것이고, 내년 새롭게 출범할 정부와 이 이야기를 해보겠다는 포석으로 일을 저질러 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뷰는 지난 7일 오후에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이러한 미국의 발 빠른 대응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마치 북한이 사건을 일으켜주길 기다린"듯한 움직임이라며, "미국이 북핵 문제의 '해결'이 아닌, '활용'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증거"라고 진단했다.
정 전 장관은 미국이 북한의 '수소탄' 시험을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한국에는 알려주지 않은 것 역시 북핵을 '반(反) 중국, 한-미-일 공동전선' 구축에 활용하려는 미국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이 사전에 북한의 핵실험 시행 여부를 알고 이에 대비하는 모양새를 취하게 되면 강경한 방식을 쓰기가 머쓱해질 수 있다"며 "아무것도 모르다가 완전히 기습을 당한 것 같이, 북한은 미국마저도 감지하지 못하는 수준에서 핵실험을 실행할 수 있는 집단이라는 인식을 국제사회에 심어줘야 보통 대책으로는 안 되겠다는 여론을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 전 장관은 "이렇게 돼야만 미국이 한반도에 전략자산을 투입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기고, 북핵 문제를 계기로 중국을 견제하는 한-미-일 공동전선을 강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북한의 '수소탄' 시험 목적으로 △대외 협상용 △대내 결속용 △기술적인 필요 등이 거론되는 가운데, 정 전 장관은 '협상용'에 무게를 실었다.
그는 "북한이 버락 오바마 현 정부를 상대로 협상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은 아니"라면서 "다음 정부를 보고 장기적인 시각에서 이 문제를 건드린 것 같다"고 진단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은 국무장관 시절 평화협정과 비핵화 문제를 거론했던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당선 가능성에서 평화협정 협의 가능성을 발견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강하게 나가면 미국이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는 '성공의 추억' 때문에 북한이 이번 실험을 진행한 측면도 있다"며 "그래서 이번에도 수소폭탄까지 치고 나가면 지난해 10월부터 이야기했던 평화협정과 관련해 미국이 고민할 것이고, 내년 새롭게 출범할 정부와 이 이야기를 해보겠다는 포석으로 일을 저질러 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뷰는 지난 7일 오후에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프레시안 : 북한의 '수소탄' 시험 이후 한-미 양국은 미국의 전략자산인 핵 잠수함, 핵 무기를 탑재한 B-52 폭격기, 항공모함 등의 한반도 전개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에 대응해야 한다는 명분인데 이전보다 강력하고 발 빠른 대응으로 보입니다.
정세현 :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해 박근혜 정부는 사전에 핵실험 여부를 알지 못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북한을 실시간으로 관찰하고 있어서 핵실험 한 달 전부터 알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설명입니다. 그런데 사실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가 알려주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독자적인 정보 수집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미국도 몰랐을까요? 미국은 미리 알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미국 NBC 방송은 북한의 핵실험 2주 전부터 미국 정부가 이미 알고 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았을까요?
미국이 사전에 북한의 핵실험 시행 여부를 알고 이에 대비하는 모양새를 취하게 되면 북한에 대해 강경한 방식을 쓰기가 머쓱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다가 완전히 기습을 당한 것같이 보이게 해야 하고, 이를 통해 국제사회가 흥분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북한은 미국마저도 감지하지 못하는 수준에서 핵실험을 실행할 수 있는 집단이라는 인식을 국제사회에 심어줘야 보통 대책으로는 안되겠다는 여론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돼야만 전략자산을 투입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기고, 북핵 문제를 계기로 중국을 견제하는 한-미-일 공동전선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한-미-일 공동전선의 타격 목표는 중국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한 마지막 장애물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였습니다. 미국이 서둘러서 위안부 문제를 타결하라고 주선하는 바람에 무리해서 협상하다가 결국 뒤탈이 난 것 아닙니까?
아무튼 미국은 위안부 문제가 정리됐다고 보고 반(反)중국 한-미-일 동맹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이번 사건을 활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를 추진하면서 서서히 전략자산을 들여와도 늦지 않으련만, 사건 이튿날부터 공개적으로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마치 북한이 사건을 일으켜주길 기다렸다는 듯이 말입니다.
예전에 북핵 문제가 발생하면 미국은 유엔을 통해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국방부가 나서서 한-미 동맹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면서 전략자산을 들여오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북핵 문제의 '해결'이 아닌, '활용'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미국이 북핵 문제를 중국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사용해야 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일단 미국은 남중국해 문제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기 위해 중국의 전력을 분산시켜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을 활용해 중국을 압박하면, 남중국해 쪽에서 중국의 대응 능력이 떨어집니다. 중국이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전력을 배치하는 과정에서, 전선이 확장되면 상대적으로 남중국해에서 미국이 주도권을 행사하기가 쉬워집니다. 중국의 전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내부의 국방 예산 때문에라도 빠른 대응이 필요했을 겁니다. 미국은 국방예산을 편성할 때 3~4월부터 군불을 떼서 7월에 심의하고 10월에 결정합니다. 10월에 예산 회계 연도가 시작되는데 이런 북새통을 벌여 놓아야 국방 예산이 삭감되지 않습니다. 또 이렇게 해야 무기 시장도 확장될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실제 미국의 전략자산이 들어오면 중국의 반발이 상당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중국이 무작정 반대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요.
정세현 : 밑도 끝도 없이 전략 자산이 들어오면 중국이 반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4차 핵실험 때문에 한국이 불안해한다, 동맹의 핵 억지 능력을 보장해주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도리"라고 미국이 이야기하면 중국이 덮어 놓고 반대할 수만도 없을 겁니다.
중국은 북한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대북관계에 있어서 조금 불편한 시간을 상당히 오랫동안 끌고 갈 것으로 보입니다. 전 세계가 비분강개 하는데 중국만 전략자산 들어온다고 미국에 뭐라 하는 것이 좀 어설퍼 보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중국은 오는 16일에 있을 대만 총통 선거도 신경 써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선거에서 양안 관계에 적극적인 국민당 후보가 아닌, 양안 관계에 소극적이고 중국에 우호적이지 않은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면 대만 문제가 중국의 대외관계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수 있고, 이렇게 되면 북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여력도 그만큼 줄어들게 됩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중국이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프레시안 : 북한은 사전에 중국에 '수소탄'시험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이렇게까지 중국을 무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정세현 : 지난해 10월 10일 북한 조선 노동당 70주년 기념식 때 류윈산(劉雲山)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방문하면서 북한에 뭔가를 지원할 것처럼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북한은 '핵-경제 병진노선'도 거론하지 않고 중국의 체면을 살려줬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중국에서 별다른 지원이 없었기 때문에 섭섭한 감정이 담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 수소폭탄 발언과도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지난해 12월 10일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평천혁명사적지 시찰에 나선 자리에서 수소폭탄을 언급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비난했습니다. 이에 대한 반발 심리도 작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중국에게 "너희가 미국에 대응하느라고 정신없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도와달라고 해도 도와주지도 않고 그러는데, 어디 한번 그래봐, 너 바보 만드는 거 간단해, 우리한테 영향력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면 너희들의 국제정치 위상은 내려가는 거야" 이런식의 중국에 대한 반발, 경고성으로 중국에 알리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에 이야기하지 않고 얼마든지 핵실험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준 것이라고 봅니다.
프레시안 : 북한이 중국에 상당히 비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건데, 그럼에도 중국이 북한의 손을 완전히 놓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정세현 : 중국은 안보리에서 북핵 문제가 상정되고, 이전보다 강화된 내용의 제재 결의안이 올라오면 찬성표를 던질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북한이 반발할 가능성이 커지기 시작하면 민간 차원에서 인도적 차원이니, 교류니 하는 명분으로 어느 정도 제재를 풀어 버릴 겁니다.
결국 중국은 자기들이 취한 조치에 대한 북한의 반응, 반발 강도 등을 측정해 나가면서 관리를 해나가리라고 봅니다. 북한이 중국을 불편하게 하고 기분 나쁘게 한다고 해서, 그 이유로 중국이 북한을 완전히 버리면, 결과적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중 대결 또는 갈등 상황 속에서 완충지대가 없어지게 됩니다. 이는 미국의 대중 압박 강화를 중국이 자초하는 결과가 돼버립니다. 그러니까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는 말처럼, 엉거주춤한 상태로 북한을 끌어안고 가는 선택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북-중 관계가 불편해지면 미국은 대북 압박을 하면서도 물밑 접촉이나 이면 접촉을 통해 북한을 자기편으로 조금씩 끌어들이면서 그거 가지고 중국을 압박해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은 북한을 쉽게 버리지 못합니다.
북한, 오바마 정부 바라보고 핵실험 한 것 아냐
프레시안 : 북한이 이번 시험을 강행한 배경을 두고 협상용이다, 기술적인 필요 때문이다, 대내 결속용이다 등등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목적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정세현 : 협상을 위한 핵실험이었다고 봅니다. 물론 기술적인 측면에서 어느 정도 기술력이 향상됐다는 것이 확인되면 실험을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북한은 '새롭게 개발된 시험용 수소탄'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는 완전한 군사적 목적으로 실험한 것이 아니라, 핵 융합 기술을 써서 이것이 폭파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시험이었다고 봅니다.
또 북한은 '소형화된 수소탄' 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탄두에 실을 정도로 소형화가 됐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연구해서 정리해 놓은 원리가 작동하느냐 여부를 시험해보는 것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핵 탄두의 소형화·경량화와 같은, 기술적인 발전을 알아보는 것이 이번 실험의 일차적인 목표는 아니었을 겁니다.
북한은 이번 실험 성공 발표에서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자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밝혔습니다. 이건 협상하자는 이야기입니다. 반대급부만 주면 얼마든지 핵 포기하겠다는 겁니다. 물론 시간이 가면 갈수록 북한이 요구하는 조건은 높아집니다.
북한이 버락 오바마 현 정부를 상대로 협상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이 문제를 건드린 것 같습니다. 지난해 10월 1일 북한 리수용 외무상은 유엔총회 기조연설에 나서 한반도의 정전협정을 대신할 평화협정 체결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 뒤에 북한은 평화협정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꺼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수소폭탄을 가졌다는 것이 확인되면 미국 내에서 북한과 협상해야 한다는 여론이 나올 수 있습니다. 또 대선의 선거 이슈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협상 자체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만약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당선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북한이 이 지점에서 평화협정 협의의 가능성을 발견했을 수 있습니다.
실제 지난 2009년 힐러리 클린턴은 미-북 수교와 평화협정을 묶어서 북한과 비핵화 협상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세 차례나 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에 부딪혀서 이를 실현하지 못했습니다.
최근 사망한 스티븐 보즈워스 당시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실제 그해 12월, 2박 3일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6자회담의 필요성과 역할, 그리고 2005년 9월 9.19공동성명 이행의 중요성에 대해 "공통의 이해에 도달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강하게 나가면 미국이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는 '성공의 추억' 때문에 북한이 이번 실험을 진행한 측면도 있습니다. 지난 2006년 1차 핵실험 뒤에 부시 행정부는 평화협정 문제의 우선순위를 높이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그해 11월 하노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김정일 당시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서 한반도 전쟁의 공식적인 종료를 선언하는 문제를 협의하자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는 곧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되는 출발점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그냥 나온 건 아닙니다. 핵실험이 벌어지고 나서 따라온 겁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초강수를 두니 미국이 돌아섰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수소폭탄까지 치고 나가면 지난해 10월부터 이야기했던 평화협정과 관련해 미국이 고민할 것이고, 내년 새롭게 출범할 정부와 이 이야기를 해보겠다는 포석으로 일을 저질러 놓은 겁니다.
박근혜 정부, 북핵 해결 의지 없다
프레시안 : 2006년에 시작된 북한의 핵 실험이 벌써 네 번이나 됐습니다. 특히 이 중에 세 번은 2008년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에 벌어진 일입니다. 북한이 핵 실험을 한 것은 일차적으로 북한의 책임이긴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까지 전개되도록 방관한 한국 정부에도 일정한 책임이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정세현 :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당시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장관 직을 내려 놓았습니다. 핵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을 했는데 잘 안되니까 국민들에 대한 도리로써 개각을 한 것입니다. 이 문제가 이렇게 될 때까지 막지 못한 것은 정부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정부는 이런 책임을 아예 물을 수가 없을 정도로 북핵 해결에 대한 의지가 별로 없습니다. 일단 담당 장관이나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 등 담당 관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을 정도로 박근혜 대통령이 '만기친람'을 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의 책임이라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박 대통령은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대신, 기본적으로 북한의 붕괴를 어느 정도 믿으면서 통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남북관계를 풀어서 북핵 문제를 풀어나가고, 이를 통해 우리가 상황을 주도하는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을 실행해 나가겠다고 말로는 공언했지만 본심은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한-미 공조 테두리 내에서 북한을 압박하면 북한이 손을 들든지 아니면 붕괴하든지 둘 중의 하나로 결론 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실제 박 대통령은 평화적 통일이 이뤄지면 북핵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고 했습니다. 대통령이 이런 마음을 먹고 북핵 문제 해결 방향을 설정해놨으니,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고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겠습니까.
박근혜 정부는 북한과 화해, 협력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협상 방식으로 해결할 필요가 없고 압박을 통해 북한이 손 들고나올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는 식입니다. 다만 겉으로는 통일 문제에 대해 굉장히 노력하는 모양새를 보여주는데, 이게 바로 통일 외교입니다. 남북 간 협력할 생각은 하지 않고 외국과 협력하면서 통일을 외치고 있는데, 순서가 잘못됐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이 하자는 대로 강력한 제제에 따라가는 수준이 아니라 오히려 더 앞장설 수도 있습니다. 국내정치 때문입니다. 북한이 사고를 좀 더 쳐줘야 자신들에게 유리합니다. 어쩌면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와 같은 카드를 쓰면서 북한이 사고를 치도록 유도하는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인터뷰 종료 이후 정부는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편집자) 이렇게 북한의 위협이 커지는 것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면 오는 4월에 있을 총선에서 여당에게 상당히 유리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북핵을 방치하면 핵 실험의 기간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나쁜 보상은 없다는 식으로 제재만 가속화하면 정말 북한의 핵이 소형화·경량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박근혜 대통령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했던 '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상황이 현실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임기 중에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도 있습니다.
프레시안 : 정부가 북핵 문제를 풀 의향이 없다면, 현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나가야 할까요? 야당이라도 문제 해결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세현 : 야당은 대화로 해결한다는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다음번에 정권을 가져오고 싶다면 대화 이야기를 계속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북한의 행동에 대해 비판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국가정책을 입안하고 수행해 나가는 사람은 수평선 너머까지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보이는 수평선이 시간이 지나면 자기 발 아래에 놓이게 됩니다. 이런 부분을 생각해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정책을 구상해야 합니다.
야당이 정말 수권정당으로서의 면모를 보이고 싶다면 이러한 식의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합니다. 우선 당면해서는 북한의 핵실험을 규탄하고 국회의 대북 결의안에 적극 동참해야 합니다.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제재 가지고는 해결이 안 된다, 제재는 결과적으로 북핵의 능력을 키워줬다는 부분도 지적해야 합니다.
그리고 최종 해결 국면에서 북한의 5차 핵실험을 막기 위해 대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합니다. 북한 핵실험에 대해 규탄하고 그 원인을 규명한 다음, 더 이상 북한 핵이 악화되지 않도록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정책을 제안할 때 대화 이야기를 꺼내야 합니다.
북한이 핵 문제를 일으키면서 어떤 논리로, 어떤 요구를 하는가를 면밀히 분석해서 그걸 일정 정도 들어주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국민들한테도 이런 방안을 설득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기반을 구축해놓는 것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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