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3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열린 대국민 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
ⓒ 연합뉴스 |
교육자치의 위기일까요, 아니면 좀 더 성숙한 '교육자치'를 하기 위한 몸살일까요. 가벼운 몸살이었으면 좋겠는데, 요즘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5일 누리과정(만 3~5세) 논란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듯 센 발언을 했습니다. 청와대 수석 비서관 회의에서 "교육부가 돈(교육 교부금)을 다 주었는데도 서울시와 경기 교육청 등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한 푼도 세우지 않았다"며 "법을 고쳐서라도 교육청이 받을 돈 다 받고 쓸 돈 안 쓰는 일을 제도적으로 차단하는 방안을 검토하길 바란다"라고 말했습니다. "누리과정 예산을 놓고 무조건 정부 탓을 하는 시·도 교육감들의 행동은 매우 무책임하다"라고 몰아붙이기도 했습니다.
이 말대로라면 교육부는 이미 누리과정 지원비를 시·도 교육청에 다 주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기획재정부, 교육부 등 정부 부처는 모두 '그렇다'고 합니다. 누리과정 지원비가 교부금에 이미 포함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도 교육감들 주장은 다릅니다. '돈은 주지 않고 대통령 공약을 강제로 시·도 교육청에 떠넘겼다' 주장하고 있습니다. 과연 누구 말이 맞을까요.
시·도 교육청, 누리과정 지원하면서 부채 5배 증가
▲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 | |
ⓒ 황명래 |
▲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는 누리과정 어린이들 | |
ⓒ 이민선 |
아무래도 시·도 교육감 주장이 사실에 가까워 보입니다. 누리과정 지원이 단계적으로 시작된 지난 2012년부터 올해까지 교부금 액수에 거의 변동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전년도보다 1조 8000억 원 늘었다는 올해 예산도 41조 3000억 원으로 2013년 41조 1000억 원과 거의 같은 액수입니다. 매년 3조~4조 원이 드는 누리과정 지원 업무를 떠맡기면서 주는 돈은 그대로였던 것입니다. (관련기사: 누리과정, 천 원 주고 치킨, 과자 다 사오라는 꼴)
그렇다면 교육청은 그동안 누리과정을 어떻게 지원한 것일까요. 빚을 내서 지원했습니다. 2015년 기준 전국 시·도 교육청 지방채는 10조 7164억 원으로, 누리과정을 최초 지원한 2012년보다 5배 증가했습니다.
가장 심각한 곳은 경기도 교육청입니다. 2015년 기준 경기도 교육청 지방채는 2조 7722억 원으로 2012년보다 7배나 증가했습니다.
BTL(Build Transfer Lease, 민간이 공공시설을 짓고 공공이 이를 임대해서 쓰는 사업 방식)원금과 이자를 포함한 총부채는 2015년 기준 6조 5000억 원(50.7%)입니다. 여기에 올해 누리과정 예산 1조 559억 원을 지원하면 부채비율이 58%가 되어 사실상 '파산'입니다.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이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누리과정은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입니다. (관련 기사: 경기도 보육대란, 남경필 지사 발언에 갈등 심화)
그렇다면 정부는 교육청 재정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정말 모르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교육부는 지난해 10월 올해 시도교육청에 필요한 재원 부족분 3조 9144억 7300만 원(교부금보전 지방채 8000억 원 포함)을 지방교육채로 충당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냈습니다. 돈이 부족한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관련 기사: 대통령 "누리 예산여력 충분"-교육부 "빚내라"... 뭐지?)
쿠데타로 정권 잡은 박정희, 독재 위해 지방자치 폐지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지난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갖고 정국 현안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 |
ⓒ 남소연 |
▲ 지난 26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종로구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열린 '보육대란 책임 회피 박근혜 정권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서있다. | |
ⓒ 윤근혁 |
사실이 이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어째서 교육감들을 무책임하다고 몰아치는 걸까요.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은 그 원인을 대통령이 거짓 보고를 받기 때문이라 추측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하기 위한 일련의 계획 중 하나라는 생각도 든다"라고 말했습니다. (관련 기사 :이재정 "대통령, '누리과정' 거짓 보고 받고 있다")
두 가지 다 가능한 추측입니다만, 저는 후자에 더 무게를 두고 싶습니다. 그동안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비롯한 이른바 보수진영에서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였기 때문입니다.
김무성 대표는 각종 토론회 등에서 교육감 직선제를 '문제가 많은 제도, 반드시 고쳐야 할 제도'라고 비판했습니다. 원유철 새누리당 대표도 지난해 4월 누리과정 문제가 불거졌을 때 그 원인을 '교육감 직선제'라 지적하며 '직선제 폐지가 필요하다'라고 한 방송사와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보수 교원단체인 교총(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은 지난해 8월 '교육감 직선제가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한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교총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보수언론이 누리과정 문제를 거론하며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거론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보수 언론의 대표격인 <조선일보>는 지난 26일 자 신문에 '누리 과정 대란 초래한 교육감 직선제'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습니다. 누리과정 논란 주범이 '교육감 직선제'라는 내용의 칼럼입니다.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비롯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담겨 있습니다.
<동아일보>는 26일 자 사설에서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하기 위한 일련의 계획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라는 이재정 교육감 발언을 '전형적인 이념공세, 궤변'이라 매몰차게 몰아붙였습니다. '과잉반응'이라는 점에서 역시 눈여겨볼 만합니다.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진영, '지방자치'도 억압
▲ 이재명 성남시장은 지난 4일 오전, 연두 기자회견을 열고 성남시가 추진하는 ‘3대 무상복지’를 전면 시행한다고 밝혔다. | |
ⓒ 성남시 |
정부와 새누리당을 비롯한 이른바 보수진영은 교육자치와 함께 지방자치도 억압하고 있습니다. 지방정부인 성남시가 자체 예산으로 시행하는 '3대 무상 복지(청년 배당, 무상교복, 무상공공산후조리원)'와 서울시가 시행하는 '청년수당'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특히 성남시에 대한 공격은 심각합니다. 정부는 성남시 3대 무상복지에 반대 견해를 밝힌 데 이어 경기도를 통해 성남시의회를 상대로 예산집행정지신청을 대법원에 제출했습니다. 김무성 대표 발언은 섬뜩합니다. 김 대표는 '인기 영합주의, 악마의 속삭임'이라고 서울시와 성남시의 복지정책을 싸잡아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진영 주장처럼 교육감 직선제가 정말로 문제가 많은 제도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방자치제도의 연장선에 있는 교육감 직선제는 국민이 직접 아이들 교육을 책임질 교육감을 뽑는 방식으로 주민 의견을 더 많이 반영하자는 좋은 취지로 도입한 제도입니다. 지방자치제도와 함께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한 제도입니다.
5·16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지방자치제를 과감하게 폐지했습니다. 독재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30년간 지방자치 부활을 위해 싸웠고 13일간 단식 끝에 지난 1990년대 초 이 땅에 지방자치 제도를 다시 도입했습니다.
그런데 지방자치제도를 폐지한 박정희 전 대통령 딸인 박근혜 대통령이 교육자치와 지방자치를 억압하고 있습니다. 누리과정 논란이 좀 더 성숙한 '교육자치'를 하기 위한 몸살이 아닌 교육자치의 위기로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