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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17일 일요일

‘중국역할론’의 파산, 한국과 미국의 다음 선택은?


<연재> 정창현의 ‘색다른 북한이야기’ (3)
정창현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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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1.18  08: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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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4차 핵실험 후 한.미.일은 유엔에서 대북 제재안 마련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이번 4차 핵실험이 북핵문제 대응의 전체 판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 구도가 바뀌는 근본적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수소탄 실험 이후 국제 공조를 통한 대북 압박을 주장하면서 특별히 ‘중국 역할론’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월 13일 대국민 담화에서도 “중국은 그동안 누차에 걸쳐 북핵 불용 의지를 공언해왔다”면서 “그런 강력한 의지가 실제 필요한 조치로 연결되지 않으면 앞으로 5번째, 6번째 추가 핵실험을 막을 수 없고,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안정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을 중국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가장 강력한 대북제재 결의안” 도출을 위해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공개적으로 중국이 공언해온 ‘북핵 불용’을 행동으로 보일 것을 압박한 셈이다.
중국, “한반도 핵 문제의 주요 모순 당사자가 아니다”
그러나 북핵문제와 북한문제를 분리한다는 중국의 기본 대북정책이 바뀔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중국은 북한의 수소탄 실험 이후 초기에 비교적 강력한 비판을 내놓은 후 곧바로 ‘냉정’과 ‘합당한 대응’, ‘대화를 통한 해결’을 거론하며 기존의 대북 입장으로 되돌아갔다. 오히려 중국은 “한반도 핵 문제의 주요 모순 당사자가 아니다”라며 미국의 대북정책이 변해야 한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실제로 이번 북한의 4차 핵실험은 미국과 한국이 강조해온 ‘중국 역할론’의 파산이라는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 필자는 2009년 북한이 2차 핵실험을 한 후 1, 2차 때와는 다른 ‘3차 북핵위기’가 조성됐다고 분석한 바 있다.
첫째로 1, 2차 북핵위기는 미국이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제기하면서 불거졌지만 3차 북핵위기는 북한이 핵 자위력 강화를 내세우며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 성격이 변화됐다.
둘째는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를 담보하고 있던 기존의 협정과 합의가 모두 무력화 돼 사실상 북한의 핵 개발을 통제할 수 있는 틀이 없어졌다는 점에서 이전과 달라졌다. 당시 북한은 한국 정부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를 선언하자 “더 이상 정전협정의 구속을 받지 않을 것”이라며 “정전협정이 구속력을 잃는다면 법적 견지에서 조선반도는 곧 전쟁상태로 되돌아가기 마련이며 우리 혁명무력은 그에 따르는 군사적 행동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유엔안보리의 제재, 6자회담 합의, 남북합의에 대해 북한이 모두 거부 또는 무효화를 선언함으로 자신들의 행동을 규제할 수 있는 규제 틀에서 벗어나 버린 것이다.
대북 제재 국면과 북.미 간의 공방은 결국 대화로 이어졌다. 오바마 행정부는 2009년 12월 스티븐 보즈워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평양에 보내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고 9.19 공동성명을 이행해 비핵화를 추진할 경우 북미 관계 정상화, 체제 안전보장 등을 통해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친서를 보냈다. 북한도 미국이 항구적인 평화 조약 체결을 확약하면 핵 폐기를 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합의는 있었지만 한 번도 논의되지 않은 평화협정(조약)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첫 북.미 대화에서 미국이 북한의 요구인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수용하고, 북한이 미국의 요구인 6자회담 재개 및 9.19공동성명의 이행을 수용하는 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북한은 2010년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오늘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는데서 나서는 근본문제는 조미사이의 적대관계를 종식시키는 것”이라며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조선반도의 공고한 평화체제를 마련하고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우리의 립장은 일관하다”라고 밝혔다. 한반도 및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 보장의 근본문제로 북미 적대관계의 종식을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1월 11일 북한 외무성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기 위한 회담을 공식 제의했다. 이날 성명에서 북한은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회담은 9·19공동성명에 지적된 대로 별도로 진행될 수도 있고 그 성격과 의의로 보아 현재 진행 중에 있는 조미회담처럼 조선(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의 테두리 내에서 진행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6자회담의 틀 내에서 평화협정 논의라는 미국의 입장을 수용하는 대신 평화협정 체결에 속도를 내자고 미국에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북한 붕괴론’에 기울어 독자적인 북.미대화에 반대했고, 미국도 ‘전략적 인내’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북한이 요구하는 평화협정 체결 논의는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힘을 얻게 된 것이 이른바 ‘중국역할론’이다. ‘중국 역할론’의 핵심은 북한과 경제적으로 밀접히 연결돼 있는 중국이 북한을 더욱 압박해 북핵 포기를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도 2013년 한.중 정상회담 때 중국에 ‘북핵 불용'의 명문화를 요구했지만 중국은 ’한반도 3원칙'(평화.안정 수호.한반도의 비핵화 실현,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견지하며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통해 북핵 문제를 관리하고자 하는 기존의 입장을 더욱 확고하고 적극적으로 표출했다.
오바마 행정부도 북한의 핵 개발을 막을 수 있는 실효적인 대북 지렛대가 없는 상황에서 ‘전략적 인내’를 내세우며 인권문제를 통해 우회적으로 북한을 압박하고, 대북 경제재재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중국의 대북지원 중단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미국이 중국에 북한 비핵화를 이끌어내도록 요구하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불가능한 임무)’이라고 맞받았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할 경우 중국의 적극적 개입으로 북한에 대한 실질적 제재가 가능해지고, 결과적으로 비핵화로 가는 길이 빨리질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있었다. 2014년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할 경우 “상상하지 못할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북한이 현재의 길을 고집한다면, 그 길의 끝이 무엇인지 역사가 가르쳐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부 국내외 전문가들도 중국의 대북인식과 인내심이 3차 핵실험을 계기로 임계점에 도달했다고 분석했다. 시진핑체제에서 중국의 대북정책은 과거와 다를 것이라는 주장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이번 4차 핵실험을 통해 중국이 현실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대북 영향력은 대단히 제한적이고, ‘한반도 3원칙’의 변화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 드러났다. 중국은 북핵 실험에 대해 강도 높은 비난 성명을 냈지만 크게 당황한 것 같지는 않다. 공식 통로로 핵실험 날짜를 통고 받지는 못했지만, 비공식 통로로 알고 있었거나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미국의 기대와는 달리 중국은 기존의 양비론에서 한 치도 나가지 않았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안정,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 등 이른바 중국의 ‘북핵 3원칙’ 가운데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현재의 복잡한 정세에 대응해 핵 문제 협상 궤도로의 복귀를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습니다.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한 유엔 안보리 중심의 대북 추가제재에 일정한 선을 그은 것이다.
중국은 지난 2013년 3차 핵실험 직후에도 안보리의 대북 제재를 이행하는 수준에서 중국 내 북한 은행의 대북 송금 규제, 사치품.기계류의 통관 강화 등의 조치를 발표했지만 이 조치들은 사실상 몇 달만에 흐지부지 됐다.
현재 중국의 입장은 명확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차원의 신규 대북제재 자체는 찬성하지만 한.미.일이 주도하는 ‘초강경’ 제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안보리의 새로운 결의 문제에 대해 각 국의 생각과 각도(시각)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이해하지만, 국제사회의 노력과 방향은 반드시 명확하고 일치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립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비핵화 목표를 확고히 추진해야 하고, 이를 위해 각 국의 6자회담 복귀를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한반도 핵 문제의 적절한 처리를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지속적으로 할 의지를 갖고 있지만, 북핵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북한의 안보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국역할론’의 파산은 미국과 한국의 업보
결국 북핵 실험에도 북.중관계를 적대관계로 만들지 않겠다는 중국의 정책은 확고한 것으로 보이며, 이런 측면에서 북한의 4차 핵실험은 한국과 미국이 기대하는 ‘중국역할론’의 파산을 의미한다.
2009년 5월 북한의 2차 핵실험(‘3차 북핵위기’의 시작)은 오바마 행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전략적 인내’, ‘북한 관리론’의 파산을 의미했다. 오바마 행정부와 한국의 보수정권이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이다. ‘북핵 불용’이라는 전략적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중국이 북한의 핵 개발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관적 희망’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6자회담의 의장국으로서 중국이 한반도문제에 발언권이 커진 것은 분명하다. 1990년대 초 이른바 ‘제1차 북핵위기’가 발생했을 때만 해도 회담의 주체는 북한과 미국이었고, 중국의 자리는 없었다.
그러나 2002년 ‘제2차 북핵위기’가 발생했을 때 중국은 다자회담을 제의하고, 2003년 8월부터 2008년까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을 주도하며 ‘조정자’ 역할을 맡았다. 북한도 일정 정도 중국의 중재 역할을 인정했고, 여러 차례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시진핑 정부 등장이후 북.중관계를 재조정하는 한편, 북한과 미국을 설득해 6자회담을 재개하고자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미국은 ‘중국역할론’을 강조했지만 중국이 한반도비핵화에 역할을 할 수 있는 협상카드를 중국에 주지 않은 채 대북 압박만을 주문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북핵문제 해결만 강조할 뿐 북한이 요구하는 평화협정 체결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북한이 지난해 1월 한미 연합군사연습을 임시중지하면 핵실험도 임시중단하겠다는 제안을 한.미 당국은 거부했다. 지난해 10월 평화협정에 동의한다면 미국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북한의 제안도 미국은 즉각 거부했다. 미국과 한국은 중국에 대북 압박만 요구하고 북한과 협상할 수 있는 공간은 열어주지 않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역할론’의 파산은 역설적으로 미국과 한국이 그 빌미를 제공했고, 북한의 4차 핵실험은 그것을 확증시켜 준 것에 불과하다.
대화국면으로의 전환, 4월이 분수령
미국은 토니 블링큰 미국 국무부 부장관의 중국 방문에 이어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직접 방중해 중국의 고강도 대북제재 참가를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독자적인 대북제재 자체를 미국의 북.중 간 이간책으로 보는 중국이 한.미.일 3국 간 안보공조 속에서 지정학적 완충지대인 북한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도 핵실험을 앞두고 이러한 상황을 충분히 고려했을 것이다.
당분간 오바마 행정부는 유엔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자와 양자 제재를 강화함으로써 북한이 ‘이란식(式) 모델’을 따르도록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유엔 결의안이 나온 이후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보수와 진보 양쪽으로부터 ‘북핵 실패론’에 직면해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다. 올해 하반기에 치러질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북핵문제가 쟁점화 되는 것을 피하고 싶을 것이다.
특히 2월 말부터 시작되는 ‘키 리졸브 연습’과 ‘독수리 연습’ 때 미국의 전략무기들이 전개돼 ‘무력시위’에 나설 경우 한반도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긴장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4월 총선을 앞둔 박근혜 정부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역설적으로 과거의 사례가 보여주듯 한반도의 긴장고조는 대화국면으로의 전환을 잉태하고 있다. 4월을 기점으로 긴장국면이 대화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는 요인들이다.
북한 역시 5월 초에 36년 만에 노동당대회를 개최한다. 북한은 핵실험이후 한미 합동군사훈련과 자신의 핵실험을 함께 중단하고 북.미 평화협정을 맺자는 기존 제안을 다시 내놓았다.
외무성 대변인은 “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우리가 내놓은 미국의 합동군사연습 중지 대 우리의 핵시험 중지 제안과 평화협정체결 제안을 포함한 모든 제안들은 아직 유효하다”고 밝혔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대해서는 강경대응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도 서서히 평화 공세로 나가겠다는 북한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이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오바마와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미 파산한 ‘북한관리론’, ‘북한붕괴론’, ‘중국역할론’을 마냥 붙들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반도비핵화를 위해서는 우선 북한의 핵 개발을 동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일부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보수정권 8년 동안 북한의 핵 개발을 사실상 방치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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