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하는 목사님, ‘낮은 자리 높은 뜻’을 배달하다
찾는이 사랑교회 구교형 목사
“아저씨, 거기 놓고 가요”처음엔 무척 생소했다심하면 “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가난한 개척교회라 생활비 때문이기도 하지만서민들의 아픔과 애환을 경험해야올바른 목회자가 될 것 같았다아버지는 병마에 시달리다 돌아가시고어머니는 파출부 일로 목에 풀칠만 했다철학과를 다녔지만 세상 고민은 그대로이 세상이 하느님 작품이라면 그 작품을 알고 싶었다실천적인 신앙운동을 하고 싶어 시민단체 일도 했고보수적이고 안정적인 교회의 담임목사도 했다어느 날 문득 너무 많은 혜택을 누렸다는 자책감이 들었다교회개혁 위한 운동도 하다가 교회를 개척하기로 했다목사가 겸직하는 것을 금하는 교단 헌법은 바뀌어야전체 개신교회의 70%가 자립하지 못해건물 청소, 과외 교사, 공공근로 등의 일 하는 목회자들이 많다사모 역시 식당 종업원이나 파출부 일을 하는 경우도목회자들도 이제는 떳떳하게 세금을 내야 한다
그는 택배기사이다. 물건을 갖고 초인종을 누르면 흔히 “아저씨, 거기 놓고 가요”라는 말을 듣는다. 처음엔 ‘아저씨’라는 호칭이 무척이나 생소했다. 왜냐하면 그는 목사이기 때문이다. 교회에서는 ‘목사님’ 소리를 들으며 설교를 하고, 축복을 내리는 존경받는 직업을 갖고 있으나. 택배를 하면 그냥 ‘아저씨’이다. 심하면 ‘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의 배달 지역은 서울 가리봉동. 다닥다닥 붙은 조그만 벌집촌이 주요 배달지역이다. 한 번지에 가구가 서너 개 있는 경우가 많다. 골목길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하루종일 물건을 나른다. 배달 한 건에 800원, 하루 평균 100개의 물건을 전달한다. 아침 7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한다. 일ㅍ주일에 3일만 일하는 이유는 설교 준비와 심방 등 교회 일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한 달에 택배 일을 해서 그는 60만 원 정도의 수입을 올린다. 물론 가난한 개척교회(찾는이 광명교회) 목사이기 때문에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 하지만 구교형(50)목사가 택배기사를 6달 전부터 하는 큰 이유는 “예수를 믿는 자로서 낮고 천한 자리를 마다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그에겐 택배 일이 보배스럽다.
그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그의 아버지는 병마에 시달렸다. 금은방을 하다가 망해서 가난에 허덕였다. 어머니가 파출부 일을 해서 생계를 이어갔다. 마침 성탄절이었다. 집안에 끼니 거리도 없었다. 셋집 주인 아주머니가 방문 앞 마루에 쌀을 놓고 갔다. 기독교인인 그 아주머니는 자신의 집에 세를 사는 가난한 이에게 교회에서 준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달한 것이다. 그의 부모는 통곡을 하며 고마워했다. 이전엔 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던 가족들은 하느님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하고 모두 교회에 다니기로 했다. 아버지는 1년 뒤 저세상으로 가셨다. 교회는 꾸준히 다녔다. 아버지의 유언이기도 했다. 철학과를 졸업했으나 세상에 대한 고민은 풀리지 않았다.
“만약에 이 세상이 하느님의 작품이라면, 그 작품을 잘 알고 싶었어요.” 그래서 신학대에 다시 입학했다. 실천적인 신앙운동을 하고 싶었다. 사회 변혁에 힘을 보태고 싶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종교부문 간사를 맡기도 했고, 종교계의 남북한 나눔운동에도 참여했다.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교회의 담임목사도 했다. 하지만 교회는 힘없고 약한 자들의 이웃이 되지 못했다. 교회개혁을 위한 운동도 했다. 스스로 교회를 개척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 많은 혜택을 받으며 살아왔다는 자책감이 들었어요. 일반인들의 아픔과 애환을 경험해야 올바른 목회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어요.”
마침 자신의 교회에 다니는 택배 일을 하는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은 택배 일 가운데 ‘까데기’일을 했다. 까데기는 대형 화물트럭에 싣고 온 택배 물건을 내리는 일. 하지만 힘이 들어서 구 목사는 배달하는 일을 하기로 했다. 자신이 담당한 지역에 배당된 택배 물건의 주소를 확인하고 분류하는데만 오전이 다 간다. 한국에 돈을 벌기 위해 온 조선족 동포들과 한족들이 많이 사는 가리봉동이기에 소통에 어려움도 많다. ‘진상 고객’들도 있다. 이것저것 트집 잡으며 ‘갑질’을 한다. 참아야 했다. 중소기업 사장을 하다가 실패해 20년 동안 택배 일을 하는 동료 60대 남자는 이빨이 다 삭았다고 한다. 참기 위해 이를 악무는 것이 버릇이 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처음엔 목사라고 밝히지 않았는데 우연히 알려졌어요. 다들 거리감을 둘 줄 알았는데 의외로 가까이들 다가왔어요.” 한 나이 먹은 동료 택배 기사는 아침마다 구 목사를 포옹하며 “힘을 주세요. 기도 부탁합니다”라면서 즐거워한다. 결혼을 앞둔 30대 택배 기사는 그에게 결혼 주례를 부탁하기도 했다.
“교회를 멋있게 꾸며야 신도가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서민들과 함께하는 경험과 가슴 깊이 우러나는 설교가 교인들을 부를 것입니다.”
그는 현재 목사가 겸직을 금하는 교단 헌법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체 개신교회의 70%가 자립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교단이 이중 직업을 가진 목사들을 손가락질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건물 청소하는 목사도 있어요. 과외 교사, 공공근로, 퀵 서비스, 우유나 녹즙 배달하는 목회자들이 많아요. 목사 사모 역시 식당 종업원이나 파출부 일을 하는 경우도 많아요.”
구 목사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본받아야 합니다. 하느님은 모든 직업은 거룩하다고 했습니다. 목회자들도 이제는 떳떳하게 세금을 내야합니다”고 말한다.
매서운 겨울바람을 이기며 소형화물차에서 택배할 물건을 내린다. 칼바람이 옷깃을 비집고 들어온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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