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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21일 목요일

역대급 경제민주화? 재벌회장이 웃는다


16.01.22 07:24l최종 업데이트 16.01.22 10:52l






"박근혜 정부 경제민주화 성적 100점 만점에 80점은 된다."(유일호 경제부총리)
"박근혜 경제민주화 공약 18개 가운데 실천한 건 1~2개에 불과하다."(참여연대·경제민주화전국네트워크 공약 평가)

과연 어느 쪽 이야기가 사실일까? 아직 박근혜 대통령 임기가 2년 가까이 남았기 때문에 섣불리 단정하기 어렵지만, 정부여당과 야당·시민단체의 시각 차가 크다. 정부 말대로 '합격점'이라면 지난 3년 동안 경제민주화는 상당 부분 실현됐을 테고, 시민단체 평가대로 '낙제점'이라면 아직 갈 길이 멀뿐 아니라 현 정부에선 경제민주화 실천 의지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오마이팩트>는 참여연대와 경제민주화전국네트워크에서 지난 12일 발표한 '경제민주화·노동 관련 대표 공약 23개 평가'와 청와대에서 18일 발표한 '경제민주화 성과 관련 참고자료'를 비교·분석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18대 대선 공약을 기준으로 정량적 평가를 했더니, 정부 주장을 그대로 반영하더라도 57.6%에 그쳤고, 시민단체 평가는 26.5%로 그 절반에도 못 미쳤다.

시민단체는 '대선 공약', 정부는 '입법과제'... 잣대부터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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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2년 11월 16일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경제민주화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 조재현

우선 경제민주화 실현 여부를 평가하는 잣대부터 서로 달랐다. 지난 2012년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내놓은 경제민주화 관련 공약은 모두 18개였다. 크게 ▲ 경제적 약자의 권익 보호 ▲ 공정거래 관련법의 집행체계 개선 ▲ 대기업 집단 총수일가의 불법 및 사익편취 행위 근절 ▲ 기업지배구조 개선 ▲ 금산 분리 강화 등 다섯 가지로 분류했는데, 참여연대는 이 대선 공약을 기준으로 실행 여부를 따졌다.

반면 정부의 잣대는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3년 5월 28일 발표한 '140대 국정과제'에 따라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 과제 20개를 정했다. 청와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20대 입법 과제 가운데 13개는 이미 입법을 마쳤고 6개는 국회 계류 중, 1개는 입법 준비 중이라고 주장했다. 정부 말대로라면 최소 65%는 달성한 셈이고, 국회에 제출한 법안까지 포함하면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지난 11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말한 80점에 가깝다.

사법부는 재벌 총수에 실형, 정부는 '면죄부' 

하지만 대선 공약에는 있지만 20개 입법 과제에서 슬그머니 사라진 내용이 적지 않다. ▲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에 대한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형량을 강화 ▲ 대기업 지배주주·경영자의 중대 범죄에 대해서는 사면권 행사 엄격히 제한 등이 대표적이다. 한마디로 재벌 총수 일가를 옥죄는 내용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지난 18일 "재벌총수 범죄에 대한 실형 선고, 원칙에 입각한 사면 원칙을 확립하여 과거 정부의 유전무죄식 솜방망이 처벌과 반복된 사면이라는 구태를 청산"했다고 주장했다. 사실일까?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8월 13일 광복절을 앞두고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한 기업인 14명을 특별 사면했다(관련기사: 결국 비리 기업인 사면, 박 대통령 또 대선공약 어겼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2014년 2월 대법원에서 횡령 등 혐의로 징역 4년 실형이 확정됐다. 최 회장은 이미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에도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형이 확정된 뒤 같은 해 8.15 특사를 받은 전력이 있다. 사법부는 실형 선고로 경제민주화 약속을 지킨 셈이지만, 정작 재벌총수 중대범죄에 대해 사면권을 엄격히 제한하겠다던 박근혜 대통령 공약은 '경제 살리기' 구호에 다시 묻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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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1월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16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참석자들과 건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여기에 지난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 롯데그룹 총수 일가 경영권 다툼까지 맞물리면서 현 정부의 재벌 개혁 의지를 불신하는 국민은 오히려 늘어났다. 경제개혁연구소(소장 김우찬)에선 분기마다 경제정책 설문조사를 진행하는데, 2014년 6월 조사에선 정부 기업 정책이 대기업 중심이란 의견이 62.6%였지만 이후 증가 추세를 보이다 2016년 1월 현재 73.2%로 10%포인트 이상 늘어났다. 

또 정부 경제 정책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이 '재벌·대기업'이란 응답도 1년 반 사이 37.8%에서 45%로 크게 늘었다. 그만큼 국민들이 경제민주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고 여전히 정부 경제 정책이 재벌 대기업 영향권에 있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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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정부 경제정책은 대기업 중심인가? 중소기업 중심인가?(자료: 경제개혁연구소 설문조사)
ⓒ 김시연

이밖에 ▲ 대기업 유통업체의 골목상권 침해를 막으려고 중소도시에서 대형마트 신규 입점시 지역협의체와 합의하도록 하겠다는 내용과 ▲ 독립성 강화를 전제로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를 강화하겠다는 공약도 입법 과제에는 빠졌다. 

그 사이 복합쇼핑몰 입점을 둘러싼 대기업과 지역상권 충돌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고, 국민연금은 지난해 8월 주주 이익보다 국익을 앞세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해 큰 비판에 직면했다(관련기사: 경실련 "국민연금,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반대해야").

경제민주화 공약 실행, 정부 57.6%-시민단체 26.5% 두 배 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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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연대, 경제민주화네트워크 등 시민단체들이 21일 오후 청와대와 가까운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이행 발표에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참여연대

그렇다면 정부가 약속한 입법 과제는 충실히 지켰을까? 정부와 시민단체 사이에 큰 이견이 없는 건 ▲ 신규 순환출자 금지와 ▲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 한도 축소 두 가지 정도다. 순환출자는 재벌총수가 적은 지분으로도 수많은 계열사를 지배하는 수단으로 악용돼왔다. 특히 롯데그룹은 순환출자고리가 무려 416개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 지난해 연말까지 스스로 80% 이상 정리하기도 했다. 

나머지 공약들은 양쪽 평가가 크게 엇갈린다. 우선 참여연대는 ▲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기업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하거나 ▲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해당 행위 금지를 청구하는 제도 ▲ 소액주주 등이 대주주를 견제할 수 있는 독립적인 사외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제도 ▲ 이를 위한 집중투표제와 전자투표제, 다중대표소송제도 도입 ▲ 소비자보호기금 설립과 소비자피해구제 명령제도 도입 ▲ 금융·보험회사 보유 비금융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상한을 단독금융회사 기준으로 향후 5년간 단계적으로 5%까지 강화 등 여섯 가지는 입법 과제에 포함되긴 했지만 정부가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정부가 이행했다고 밝힌 ▲ 중소기업 적합업종 실효성 제고 ▲ 대형유통업체와 가맹본부의 불공정행위 근절 ▲ 공정위 전속 고발권 폐지 ▲ 대기업 총수일가 일감몰아주기 근절 ▲ 금융권 대주주 적격성 심사 강화 등은 공약 내용 일부를 반영하긴 했지만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특히 정부가 '소비자 피해구제 명령제'라고 주장하는 '표시·광고법상의 동의 의결제(기업이 스스로 피해구제를 약속하면 공정위가 위법성 여부를 판단하지 않는 제도) 등 다섯 가지는 애초 경제민주화 공약이 아니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중점 법안이 아닌데도 끼어 넣어 '숫자 부풀리기'를 했다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 소비자권익증진기금 설치 ▲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 ▲ 금융보험사 주식 의결권 제한 ▲ 집단소송제 도입 ▲ 사인의 금지청구제 등 일곱 가지는 국회에 계류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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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정부 경제민주화 공약 잘 지켰나? O는 실행, △는 부분 실행, X는 미실행 (자료: 2016년 1월 21일 참여연대-경제민주화전국네트워크 경제민주화 및 노동시장정책 23개 공약 평가, 2016년 1월 18일 청와대 '경제민주화 성과 관련 참고자료')
ⓒ 김시연

결과적으로 18대 대선 경제민주화 공약 18개를 기준으로, 정부는 57.6% 정도 실행했다고 보고 있는 반면, 시민단체에선 26.5%로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오히려 "과거 정부가 엄두도 내지 못하던 신규순환출자 및 총수일가의 일감 몰아주기를 금지해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 및 편법승계 차단의 기반을 마련했다"라고 자화자찬했다. 한 발 더 나아가 "급히 통과돼야 할 구조개혁과 일자리 창출 법안들이 야당의 발목잡기로 통과되지 못하고 있어 어렵게 거둔 경제민주화 성과마저 위협"하고 있다고 야당 쪽에 책임을 돌렸다.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 평가도... "상법, 금융관련법도 고쳐야"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는 아직 국민의 피부에는 와 닿지 않고 있다. 경제개혁연구소에서 지난 6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 19대 국회에서 경제민주화가 진전되지 못했다는 의견이 78.4%에 이른 반면, 진전됐다는 의견은 13.7%에 그쳤다. 그 책임이 정부와 여당에 있다는 의견이 각각 43.2%, 15.1%로 60%에 육박했고 야당 책임은 21.9%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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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대 국회에서 경제민주화는 진전되었나?(자료: 경제개혁연구소 설문조사, 2015.1.6 발표)
ⓒ 김시연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은 완전히 실패한 걸까? 김상조(한성대 교수)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고 평가했다. 김 소장은 "대선 공약 기준으로 신규 순환출자 금지, 일감 몰아주기 규제, 불공정 하도급거래 규제 등 공정거래법을 바꿔서 할 수 있는 건 대부분 마쳤다"라면서 "하루아침에 해결되진 않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효과를 볼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김 소장은 "남은 건 주주, 채권자, 노동자, 소비자 같은 경제 주체들이 재벌, 대기업에 맞서 스스로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면서 "그러려면 상법, 금융 관련 법도 바꿔야 하는데 큰 진전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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