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孫)태공’, ‘물갈이’ 그리고 ‘필사즉생’….
‘국정교과서 정국’이 한 고비를 넘어서는 요즘 야권을 달구는 열쇳말들이다. 여야 대결 국면이 새로운 장으로 넘어가는 물밑에서 야권 리더들의 각축전도 막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국정화 저지’에 한목소리를 내던 그들이지만, 5개월 앞으로 다가온 20대 총선이 그들을 ‘3각 쟁패’의 무대로 불러내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62)와 안철수 전 대표(53)는 주류·비주류의 운명을 쥔 채 혁신의 외나무다리에 마주섰다. 이런 구도에 초연한 듯 은거한 손학규 전 상임고문(68)도 최근 자의반, 타의반 얼굴을 내밀고 있다. 대선으로 가는 길목에 총선이 있기 때문이다.
■손사래 치는 ‘손(孫)태공’
-흙집서 때를 기다리는 손학규“강진의 산이 나가라 하면…”
손 전 고문은 8일간의 외출을 마치고 지난 4일 다시 흙집으로 들어갔다. 전남 강진 백련사 인근 산 중턱 토담집은 월동 채비를 마친 상태다. 올겨울에도 ‘여의도’에 얼굴을 내밀지 않겠다는 것이다.
손 전 고문이 정치에 거리를 두지만 “당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계신 것 같다”(한 측근)고 한다. 카자흐스탄 키멥대 초청강연에선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을 비판하고, 귀국해선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정치가 국민을 분열시켜선 안된다”고 일갈했다. 그가 정치 현안에 대해 언급한 것은 토담집에 은거한 후 처음이었다. 그동안 하고픈 말을 꾹꾹 눌러놨다가 꺼낸 듯했다.
하지만 자신의 얘기로 돌아가면 아직은 ‘허허’ 웃고 만다. ‘소이부답’(笑而不答·웃기만 할 뿐 답하지 않는다)이다. 정계 복귀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하고, 하산(下山) 시기는 “강진의 산이 나에게 ‘나가버려라’하면…”이라고 했다. 주변에선 “자나 깨나 손학규”라고 그의 이름을 불러내지만 대꾸하지 않는다. 세상(강진의 산)이 그를 불러내길 기다리는 ‘강태공’처럼 말이다. 그의 정계은퇴 선언이 끝까지 지켜질 것이라고 보는 이는 많지 않다. 다만 이번 ‘총선 무대’에는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은 편이다.
■‘물갈이론’ 들고나온 안철수
-‘비주류’ 보폭 넓히는 안철수“물갈이 하라는데, 고기만 갈아”
안 전 대표의 키워드는 여전히 ‘혁신’이다. 당 안팎에서 보폭도 넓히고 있다. 당내 비주류 그룹인 ‘정치혁신을 위한 2020모임’, 박영선 의원, 김부겸 전 의원이 참여한 ‘통합 행동’ 등을 두루 만났다. 그렇다고 ‘문재인 축출’을 우선하지도 않고, 통합을 지상과제라고 여기지도 않는다는 게 안 전 대표 측근의 설명이다. 혁신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게 그의 판단 기준이라고 한다. 그래서 비주류와의 교류가 잦지만 ‘비주류의 수장’이라는 표현에는 불편해 한다.
당 ‘혁신 2라운드’ 상황에서 그의 뜻과 무관하게 비주류의 구심이 될 수도 있다. 당 일각에서 제기되는 탈당·신당 가능성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며 일축했다.
안 전 대표 움직임의 다른 축은 ‘청년 속으로’다. 2012년 ‘청년 멘토’로 ‘안철수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그다. 지난 5일 전남대 학생들과의 간담회에서 “국민은 ‘물갈이’를 요구하는데 정치권은 ‘고기갈이’만 한다”고 비판했다. ‘물’은 제도·문화·관행, ‘고기’는 사람이다. 7일 산업기술대, 10일 명지대, 11일 국민대 등 줄줄이 예정된 대학 강연에서도 혁신론을 설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 번 죽을 고비’라던 문재인
-‘마지막 고비’ 배수진 친 문재인 “총선 패하면 내가 있겠나 ”
“저에게는 세 번의 죽을 고비가 있습니다.” 지난 2·8 전당대회에서 문 대표가 스스로에게 한 ‘예언’이다. 9개월 동안 첫 번째(전당대회 승리)와 두 번째(혁신안 통과) 고비는 넘겼다. 이제 가장 힘든 마지막 고비가 임박했다.
문 대표는 최근 인터뷰에서 “내년 총선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면 제가 할 수 있는 정치적 역할이 거기까지라고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총선에서 패배한다면 대선은커녕 정치적 장래는 없다는 배수진이다.
‘고비 넘기’는 당장 당내에서 시작되고 있다. 9일부터 국회를 정상화하기로 하면서 비주류의 ‘역습’은 예고된 것과 마찬가지다. 교과서 국정화 국면이 잠시 비주류 목소리를 잠잠하게 만들었지만, 혁신과 총선 공천 등을 둘러싼 비주류의 도전과 응전은 이제 불가피하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