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노동개악’을 한 마디로 하면 ‘살생부의 무한 연장’입니다. 수익 창출과 원가 절감 압박을 받는 기업은 노동자를 상시적으로 평가해 하위 몇 %를 잘라내는 식으로 ‘일반해고’를 수시로 가하겠죠. 박근혜 정부가 ‘정년 60세 상향’ 공약을 내걸어 실행시켰지만 글쎄요, 한 직장에서 정년을 채우는 노동자가 나올 수 있을까 의문입니다.”
총파업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전국 지·본부 순회를 막 마친 김환균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1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언론노조 위원장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단호하게 말했다.
김 위원장은 “노동개악법이 통과되면 1987년 이전 상황으로 돌아간다”는 경고를 부정했다. 오히려 “1987년보다 못한 상황이 될 것”이라는 게 김 위원장의 진단이다. 김 위원장은 “정권을 바꿔야한다”는 말에도 단연코 반대했다. “한번 시작된 노동개악에 적응돼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이유다. 다음은 김환균 위원장과 나눈 1문1답이다.
- 최근 전국을 돌면서 조합원을 만나면서 총파업 투표를 독려하고 있다. 총파업을 결단하게 된 이유는?
“언론노조는 그동안 ‘노동운동 차원의 역할’과 ‘한국 언론의 자유 신장을 위한 사회적 책무’라는 두 바퀴로 굴렀다. 솔직히는 후자 쪽에 무게를 뒀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을 들여다보니 이건 노동의 토대를 완전히 무너뜨릴 ‘개악’ 수준인 거다. ‘이게 아니구나’ 싶었다. 지금은 노동조합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싸워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정권과 자본이 목을 치겠다며 달려드는 데 도끼를 갖다 바치면서 고분고분 목을 내줘서는 안 된다. 우리도 벨 수 있든 없든 칼 한 자루는 준비해야한다. 중앙집행위원 간에는 그런 공감대가 형성됐고 결국 파업 찬반 투표를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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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환균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전국언론노조동조합 이기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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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에서 만난 조합원들과 어떤 이야기를 했나.
“언론노조의 역사는 2012년을 기점으로 나뉜다. 언론 탄압에 맞서 격렬하고 끈질기게 싸웠던 때가 2012년이다. 승리할만한 결과에 이르지 못했다. 솔직히는 패배감이 크다. 경기에 졌을 때 히딩크 감독이 그런 말을 했다. ‘이럴 때일수록 더 많이 대화해야 한다.’ 주변 동료들과 의견을 나누다보면 똑같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 역설적이게도 힘을 얻는다. 그런 마음으로 총파업 투표를 간곡히 부탁했다. 11월14일 민중총궐기에도 꼭 참여하자고 했다. 많은 사람이 분노를 공유하는 현장은 각자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대화를 마칠 때 쯤 조합원 표정을 보면 모두 결연해져있다. 제겐 피곤을 잊게 만드는 ‘사이다’(속이 시원하다는 뜻의 인터넷 언어)였다.”
- 이번 슬로건을 ‘노동이 무너지면 언론도 무너진다’고 잡았다. 무슨 뜻인가.
“이번 정부의 노동개악, 언론 장악,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 세가지 사안을 하나로 바라봐야 한다는게 언론노조 인식이다. 노동개악은 기본적으로 노조를 무력화해 노동자를 파편화시키고 일반 해고를 통해 사람을 마구 잘라내게 된다. 사회의 버팀목인 노조나 개인이 파편화된 사회에서 공정언론·언론자유 이런 구호는 사상누각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비판적인 언론과 건전한 민주주의 공론장을 무너뜨리는 언론 장악 후 진행 되는 게 역사교과서 국정화다. 국민 의식·가치관 개조를 겨냥하는 것. 이걸 통틀어서 ‘최후의 기획’이라고 부른다.”
- 정부가 ‘최후의 기획’을 하는 이유는?
“일본과 같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거 아닐까. 일본은 현재 자민당 일당의 장기집권 혹은 영구집권으로 가고 있다. 한국은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을 앞둔 상황이다. 노동자를 가르고 언론을 장악하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로 가치관을 획일화하는 상황 모두 장기 집권의 토대를 갖추기 위한 일관된 목적을 가진 움직임이라고 본다.”
- 한편으로는 언론이 무너져서 노동이 무너진 것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든다.
“현재 슬로건 앞에 ‘언론이 먼저 무너져서’라는 말이 생략됐다고 보면 된다. 뉴스에서 노동 관련 뉴스, 노동 개악 관련 심도 있게 문제점을 진단하는 뉴스가 있나. 실상과 본질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역할을 언론이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이 지경까지 왔다. 그래서 노동이 무너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곳은 노동조합이다. 되살아날 불씨를 간직하고 있다. 노동개악으로 노동조합이 무력화되면 언론이 또 다시 무너지게 된다.”
- 노동개악의 핵심 문제는 뭐라고 보나.
“비정규직화와 일반해고다. 해고 절차를 쉽게 했고 55세 이상 고령자·전문직으로 파견 대상을 확대했다. 언론사를 기준으로 말하면 노조 활동하고 비판적인 견제세력을 저성과자로 낙인찍어서 손쉽게 해고 하겠다는 거다. 이 자리에 말 잘 듣고 고분고분한 55세 이상 된 사람들을 무한 파견해 일자리를 채운다는 게 노동개악의 핵심이다. 이걸 보면 언론이 어떻게 무너질지가 딱 보인다. 이런 상황을 극단으로 밀어붙이면 결국 언론사 간판이 붙은 곳에 정규직은 정권에 고분고분한 사장 한 명만 남는 거다. 나머지는 모두 사장 말을 잘 듣는 비정규직 기자·PD가 채워진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일할 수 있겠나. 극단적이라고 할 수 없다. 이미 지역 언론사 대부분의 현실이다.”
- 언론사만의 문제 아닌가?
“이런 작업이 사회 전반에 적용되면 직업의 질이 떨어지는 거다. 정부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과보호 받는 정규직이 양보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규직이 양보하면 정규직이 늘겠나, 비정규직이 늘겠나. 그건 답이 정해진 질문이다. 어떤 사람은 이번 노동개악을 막지 못하면 1987년 체제 이전으로 돌아간다고 하는데 사실 1987년보다 더 후퇴할 거라고 본다. 그 당시에는 대부분이 정규직이었고 어쩌다 해고돼 다른 직장을 구해도 정규직은 기본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정규직에서 잘려서 다른 정규직으로 갈 수 있나. 당시 상황과 지금은 확실히 다르다.”
-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다른가.
“우리의 인식 자체가 달라졌다. 1987년에는 평생직장·연공서열 기준의 호봉제 등이 당연했는데 이제는 임금피크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프랑스의 92세 레지스탕스인 스테판 에셀은 ‘분노하라’라는 책을 썼다. 그들이 나치 독일과 싸우면서 ‘자유 프랑스’는 안정적인 교육과 일자리, 노후 보장을 해 줄 것이라는 상식이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만들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들어선 후에는 ‘노오오력’(노력을 강조한 신조어)하지 않은 개인을 탓한다. 이런 현재가 정당하냐는 의문이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분노하라’고 했다. 우리에겐 지금이다.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분노해야 한다.”
- 박근혜 정부는 정년을 60세까지 연장하지 않았나. 그런데 문제가 되나.
“이 땅에서 노동하는 사람치고 그 공약 이행을 안 반긴 사람이 없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2017년 이전에 정년 60세까지 그 직장에 머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바로 일반해고 때문이다. 내가 CEO라도 ‘올해 저성과자 몇% 자르고 내년에도 자르고 모자라는 일자리는 파견 받자’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될 거다. 왜냐, 가능하니까. 이제 한 번 작성한 살생부는 파기되지 않고 계속 갱신될 거다. 한쪽에서는 정년 60세를 만들어 놓고 다른 쪽에선 이걸 일거에 무너뜨리는 일반 해고를 도입하는 거다. 이건 대단한 배신이다. 이런 상황에서 분노하지 않는다면 말이 안 되지 않겠나.”
- 언론노조는 노동법 개악이라고 하는데 언론사는 ‘노동개혁’이라고 한다. 독자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수 있을 것 같다.
“언론매체에서 이런 상황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않음으로써 빚어지는 일이다. 오죽하면 조합원을 언론인으로 둔 언론노조 위원장이 ‘언론이 보도하지 않는 감춰진 노동개악 디테일은 이런 거다’ 하고 있겠나. 스스로도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물론 우리 조합원에게 그런 논조를 결정할 권한이 없다는 게 한계다. 시민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탐욕스러운 정규직 노동자 이런 프레임을 다양한 방법으로 반박해 나갈 필요가 있다.”
- 뉴스 논조를 결정하진 못하지만 최근에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대해 언론인 시국선언도 했다. 그런데 이례적으로 연합뉴스가 강경 대응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나.
“연합뉴스와 KBS, YTN, EBS 사측이 시국선언에 대해 ‘경고장’을 보냈다. 그런데 누가 불러준 걸 받아썼나 싶을 정도로 내용이 비슷하다. 사측은 언론인으로서 객관·중립적이어야 한다고 하는 데 역사 교과서 국정화 이슈가 정치적 사안인지 모르겠다. 언론인은 매일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이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어떤 정파가 역사 해석을 한가지로 정해놓겠다는 건데 그게 말이 안된다는 거다. 설령 백번 양보해서 언론인이 중립을 지켜야할 문제라고 하더라도 이 사람들이 자기 프로에서 그런 주장을 한 것도 아니다. 이건 억지로 언론인의 입을 막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거다. 정부가 점점 더 자기 무덤을 파는 거다. 수렁으로 빠져는 상황이다.”
- 최근에는 언론의 국정화 주장도 나오는데 이유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대두되면서 수사학으로 가져다 붙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본질이 같다. 국정화. 정부가 정하는 의견을 추종하게 만드는 게 본질이고 이건 역사 뿐 아니라 언론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민주사회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경쟁하는 오픈 마켓이다. 그런데 현재 대부분 언론은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정부 의견을 일방적으로 전달한다. 반대 의견은 ‘종북·좌파’ 등으로 매도하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원리인 여론시장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 언론 국정화의 핵심이다.”
- 14일 민중총궐기 참가자에게 한마디 한다면.
“노동개악·언론장악·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세트로 준비된 현 정권의 ‘최후의 기획’이다. 노동자들이 뭘 할 수 있나, 정권을 바꿔야 한다고 하는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노동개악은 한번 진행되면 되돌릴 수 없다. 아담과 하와가 실낙원 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들이 아무리 뉘우쳐도 복낙원되지 않는다. 노동개악을 되돌린다는 것은 비정규직을 다시 정규직으로 되돌리는 일인데, 일개 기업에서도 쉽지 않다. 기업은 이미 그 상황에 최적화돼 있기 때문에 과거로 돌리는 데는 굉장한 비용이 들 거다. 아마 폐허가 된 전 국토를 복원하는 비용이 더 적게 들거다. 개별 회사에 바뀐 정권의 힘이 다 못 미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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