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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4일 수요일

가수 이승환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공연... 500명 관객 운집

"역사 교과서 국정화, 공주님과 몇몇의 뜻"

15.11.05 00:13l최종 업데이트 15.11.05 00:25l




▲ 국정화반대 콘서트장 에워싼 관객들 4일 오후 홍대앞 롤링홀에서 열린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콘서트 '한쪽 눈을 가리지 마세요'를 보기 위해 수백명의 관객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이날 콘서트에는 이승환, 피아, 십센치, 데이브레이크, 가리온, 로큰롤라디오, 타틀즈 등 뮤지션과 웹툰작가 강풀, 주진우 기자가 출연한다.
ⓒ 권우성

▲  열창하는 이승환, 열광하는 관객들.
ⓒ 권우성

공연은 4일 오후 7시에 시작한다고 했다. 하지만 오후 6시, 이미 길게 늘어선 줄은 골목을 끼고 늘어서 있었다. 약 200m를 가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이 느림보 걸음에도 불평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라도 해야지"라며 걱정스럽다는 듯 대화를 나누는 두 여학생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어떤 커플은 이어폰을 한 쪽씩 나눠 끼고 휴대폰으로 교과서 국정화 찬반 논란을 다뤘던 토론 프로그램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줄 곳곳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모습도 있었다. 대학교 이름이 새겨진 점퍼를 입은 학생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모두 가수 이승환의 '긴급 공지'에 달려온 15세부터 29세 사이의 청년들이었다. 이승환은 지난 2일 자신의 SNS에 "국정화 역사 교과서 반대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고, 같은 날 오후 그의 소속사 드림팩토리는 "우리의 한쪽 눈을 가리려고 하는 모든 어른들에게 '역사를 바로 배우고, 현재를 두 눈 똑바로 뜨고 보고 있다'는 우리의 목소리를 들려줄 때"라며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공연 '한쪽 눈을 가리지 마세요' 개최를 알렸다. 약속된 시간 공연이 열리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 롤링홀에는 약 500명의 관객이 몰렸다. 

"이렇게 모인 우리들이 애국자인 것 같다"

먼저 무대에 선 이승환 밴드는 시작부터 장내를 뜨겁게 달궜다. 이내 마이크를 잡은 이승환은 "어린 학생들이 아주 나지막하지만 굉장히 마음을 울리는 그런 문구들을 쓴 피켓을 들고 거리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어른으로서 부끄럽고 미안했다"며 "여러분들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확정 고시한 정부에 쓴 소리를 쏟아냈다. "99.9%가 편향된 교과서로 공부하고 있다고 하는데, 어느 쪽이 더 편향된 것일까"라고 운을 뗀 이승환은 "대다수인 99.9%가 쓰는 교과서가 편향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듣도 보도 못한 궤변"이라며 "오히려 0.1%의 억지 때문에 (교과서가) 바뀌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말해 커다란 박수를 받았다. 또 그는 "0.1%의 권력자들을 위한 그런 사회, 교과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 포효하는 이승환 "0.1%의 권력자들을 위한 그런 사회, 교과서가 되어서는 안 된다"
ⓒ 권우성

▲  4일 오후 홍대앞 롤링홀에서 열린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콘서트 '한쪽 눈을 가리지 마세요'에서 가수 이승환이 열창을 하고 있다.
ⓒ 권우성

피아, 십센치, 데이브레이크, 가리온, 로큰롤라디오, 타틀즈까지 총 6팀도 '선배' 이승환의 부름에 흔쾌히 응했다. 이들을 두고 이승환은 미리 "선뜻 나서지 못하는 자리일 수도 있는데, 이렇게 응해 준 후배 뮤지션들에게 특히 감사하다, 그 정도로 사안의 심각성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며 재차 고마움을 전했다. 

이들 또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에 목소리를 보탰다. 힙합 듀오 가리온은 공연 중간 무반주로 선보인 "내 한 쪽 눈을 가리지 마, 한 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지 마"라는 랩으로 자신들의 뜻을 대신했다. 밴드 로큰롤라디오는 관객들을 향해 "이렇게 모인 우리들이 애국자인 것 같다"는 말을 남겼고, 비틀즈의 노래만을 부르는 밴드 타틀즈는 "옛날 노래는 시간이 지나도 좋듯, 역사는 시간이 지나도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말해 환호를 받았다. 

'들었다 놨다' '좋다' 등의 히트곡을 선보인 데이브레이크도 한 마음이었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은데 밖으로는 얘길 다 못한다, 하지만 이 자리로 조금 해소되는 것 같다"고 입을 연 데이브레이크는 "우리들이 의외로 나이가 많다, 아이가 있는 멤버도 있다"며 "그 아이들이 편협한 시각으로 (세상을)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건 단순하지만 아주 상식적인 생각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른 십센치도 짧지만 뼈 있는 한 마디를 남겼다. 관객의 요청에 '스토커'라는 곡을 즉석으로 연주한 이들은 "(노래를 부르다) 우리가 스토커 같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며 "이렇게까지 하는데, 이렇게까지 공연하고 목소리를 내는데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이들에게는) 우리가 스토커처럼 보이는 건가 싶다"고 말했다.

"자기는 옷도 몇 벌씩 갈아입으면서, 왜 교과서는 하나만 보라 하냐"

한편 이날 콘서트에는 이승환의 친구이자 그와 함께 자선재단 <차카게살자>를 설립한 주진우 <시사인> 기자, 웹툰 작가 강풀도 함께 했다. 먼저 마이크를 잡은 주 기자는 "여러분들이 어른 몇 명 때문에 고생이 많다"라며 "(다른 것들은)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하는데 왜 교과서는 북한과 비교하는지 모르겠다, 그럴 거면 북한으로 가든가"라고 일갈해 큰 박수를 받았다. 

이어 주 기자는 박근혜 대통령과 정치권을 향해 직접적으로 날을 세웠다. 주 기자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공주님과 몇몇의 뜻이다"라며 "자기는 옷도 몇 벌씩 갈아입으면서, 왜 교과서는 하나만 보라고 하는 거냐"고 꼬집었다. 또 "권력을 가진 어른들은 여러분에게 바른 길을 알려주지 않는다"며 "몇몇 어른들의 잘못으로 나라가 잘못되고 있다, 아주 구리다"고 성토했다. 

이어 주 기자는 정치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눈을 부릅뜨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잘 보고 있으라"고 말한 그는 "여러분들은 (정치에) 관심 없을 거라고 무시하는 그런 사람들은 나중에 꼭 심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주 기자는 "화를 내야 한다, 투표할 때 놀러가지 말고 잘 찍어야 한다"며 "평소에 즐겁게 지내다가 때가 되면, 4월이 되면, 2년 후가 되면 여러분을 무시했던 이들을 꼭 밟아야 한다"는 말도 남겼다. 

주 기자에 이어 마이크를 잡은 만화가 강풀은 "나는 이 사람을 모른다"는 농담으로 웃음을 불러 일으켰다. 이내 표정을 바로 한 그는 "어느 순간 보니 어린 친구들 중에 5.18과 8.15를 헷갈리는 친구들도 있더라, 그런데 그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전달을 제대로 못 해준 우리의 잘못이라 생각한다"며 "역사라는 건 참 중요하다, 과거의 실수를 다시 저지르지 않고 현재를 바로 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이 중요한 시기다, 모두 힘내자"고 덧붙였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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