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철(45)씨는 지난 1999년 함경북도 청진의과대학을 졸업했다. 2년 동안 북한에서 소화기 내과 의사로 일하다 2002년 5월 탈북했다. 중국과 베트남, 캄보디아를 거쳐 한국으로 왔다. 한국에서는 5년간 머물렀고 2008년 영국으로 넘어갔다. 지금은 영국에 있는 양대 탈북 주민 협회 중 하나인 '재영한민족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런던 남서쪽에 위치한 뉴몰든은 영국의 대표적인 한인 타운이다. 1000여명의 탈북 주민도 뉴몰든에 살고 있다. 지난 1일 오후 최씨를 뉴몰든의 한 가게에서 만났다. 큰 키에 마른 몸을 가진 그가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검정색 정장 차림이었다. 북한 말씨보다는 서울 말씨에 가까웠고 대화 중간 중간 영어단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했다. 그는 ‘스텔라’ 맥주를 주문했다. 탈북자라는 인상은 전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뷰 내내 그는 자신이 ‘북한 사람’ 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한국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북한 사람이다. 그걸 부끄러워하거나 감추려고 하면 안된다. 저는 북한이라는 표현보다는 조선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건 저의 정체성”이라고 말했다. 약 2시간 30분 남짓한 시간 동안 탈북의 이유, 그가 본 한국사회, 그리고 ‘탈남’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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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에 있는 양대 탈북자 협회 중 하나인 '재영한민족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최승철씨를 지난 1일 런던 뉴몰든에서 만났다. 사진=금준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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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집안, 나는 자유주의자였다”
“그럼 왜 탈북했나?” 과거 한국에서나 지금 영국에서나 많이 받는 질문이다. 그는 자신을 '자유주의자'라고 표현했다. “저는 북측에서 괜찮게 살았다. 형제들은 지금도 잘 살고 있다. 북측에서는 매주 생활총화랑 간부회의를 해야 했다. 구속되는 게 굉장히 싫었다. 제 생각을 바꿔놓으려고 아내와 어머니가 엄청나게 노력했다.”
하지만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1999년 그는 첫 번째 탈북을 한다. 당시 목적지는 한국이 아니었다. 중국이었다. 탈북이라기보다는 말로만 듣던 세상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다고 했다. “북에 있다가 중국에 가니 이렇게 황홀한 동네가 어디있나. 내가 사는 삶과 비교해보니 우리가 사는 삶은 삶이 아니구나. 우리 삶은 짐승의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석 달 후에 그는 북한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2002년 5월 진짜 탈북을 한다.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를 거쳐 1년만인 2003년 5월 한국에 들어왔다. 이후 북에 있던 아내도 데려왔다. 부부는 어렵지 않게 한국 사회에 정착했다. 그는 외환 중개사무소를 설립해 해외 투자 상담과 외환 중개 관련 일을 했다. 돈 버는 게 체질에 맞았다. 최씨는 “아마 탈북자 중에 저만큼 돈을 많이 번 사람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에는 ‘성공한 탈북자’로 보도됐다.
한국사회의 탈북자는 ‘전쟁포로’
하지만 그 뿐이었다. 그는 정체성을 잃어갔다. 남한에서 허용하는 탈북자 유형은 하나뿐이다. 북한 자체를 부정하고 남한 사회를 찬양하는 것. 그래야 정부도, 언론도, 탈북자 인권단체도 좋아했다. 하지만 그는 이 기준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대입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정은 정권을 옹호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우리다. 우리는 한국 사람이 아니고 한국 사람이 될 수도 없다. 그런데 한국에서 ‘저는 조선사람입니다’ 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인공기를 들면 어떻게 될까. 잡혀간다.”
그가 남한에서 체감한 탈북자의 위치는 ‘전쟁포로’였다. “한국에서 탈북자는 체제 경쟁의 승전물이다. 그러니까 사회에 속할 수도 없고 인권 개념이 작용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큰 거 바라는 거 아니다. 남한 국민과 똑같이 대해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늘 색안경을 끼고 보고 우리는 늘 영세민일 수밖에 없다. 남한은 통일은 물론이고 아직 탈북자를 받아들일 준비도 되지 않았다.”
실제 지난 달 심재권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통일부와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탈북자 73.2%가 자신이 ‘하류층’라 답했다. 북한에서의 생활에 대해서는 50.5%이 하류층이라 답했다. 남한에서의 생활을 더 나쁘게 느끼고 있다는 이야기다. 또 남북하나재단 조사에 따르면 탈북자 20.5%가 ‘최근 1년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고 답했다. 이는 일반 국민(6.8%)의 3배가 넘는 수준이다. 한국에는 3만명의 탈북자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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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에 있는 양대 탈북자 협회 중 하나인 '재영한민족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최승철씨를 지난 1일 런던 뉴몰든에서 만났다. 사진=금준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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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 뭘 알고나 쓰나”
한국은 그가 기대했던 사회가 아니었다. 탈북자로서 받는 차별이 힘들었던 것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최씨는 “한국은 도덕, 윤리, 국가, 민족 등 아무것도 없는 나라”라며 “자본이 모든 걸 좌우하고 있으며 개인의 이익과 권력을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 방법을 취하는 사회다. 나쁜 자본주의의 극단에 있다. 탈북자들은 남한에서 자본주의의 황홀함만 보는데 전혀 황홀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까지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친일파 논란에 대해 “어떻게 친일파의 후손같은 사람들이 뻔뻔하게도 사회 기득권을 잡나. 그런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는 게 너무나도 신기하다”며 “물론 남한이 북한보다 경제적, 정치적으로 앞선 것은 맞지만 우리는 최소한 저 정도는 아니지. 어디서 저런 되먹지 못한 사람들이 인민들을 괴롭히고…”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맥주를 들이켰다.
언론도 그의 눈에는 다를 바 없었다. 특히 북한과 관련해 한국 언론에는 잘못된 정보가 넘쳐났다고 그는 지적했다. 탈북자가 생기면 일가족이 처형을 당한다는 등의 이야기가 하나의 사례다. 그의 가족은 그가 탈북한 이후에도 북한에서 잘 지내고 있다. 영국에 온 이후에도 누나와 통화를 했다. 누나는 “어떻게 영국까지 갔냐”며 “너 참 대단하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합법적으로’ 가족을 만나기도 했다.
그는 한국이 북한의 미래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최씨는 “북한의 현재 정권이 오래 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후가 남한이라면 나는 달려가서 막을 거다. 북한 사회가 잘못하는 것도 많지만 잘하고 있는 것도 많다. 보건이나 교육, 사회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한다. 그런 점에서는 자부심을 가진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한국에는 권리가 없다. 정권과 자본 입맛에 맞는 인권과 권리다. 어떻게 보면 북과 비슷하다.”
“영국정부, 알면서도 다 속아준다”
정체성 혼란과 남한에 대한 실망, 2등 국민으로 취급받는 현실 등은 그의 등을 떠밀었다. 그는 지난 2008년 영국으로 갔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난민 신청을 한 다음 비자를 받기까지 5년이 걸렸다. 그 기간 동안은 일을 할 수 없다. 북한 혹은 남한으로 돌아갈까 라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그럼에도 영국에 남을 수 있었던 건 난민 심사 과정 중에도 주택을 제공받고 아이들 교육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영국은 매년 2만명 가량의 난민을 받아들인다.
최씨는 “영국 정부가 바보라서 2만명이나 되는 난민을 받아들일까?”라며 “사실은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속아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너(난민 신청자)한테서 내가 사기 당하는 거 같아도 너희 자식들에게 다 받아낸다는 거다. 영국은 세율이 아주 높다. 영국은 최소한 10년, 20년, 100년을 내다본다. 한국은 지금 당장 이익을 바란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면 훨씬 이익이다. 아주 우수한 장사꾼이다.” 한국은 자본주의를 좋아하면서도 장사를 못한다는 이야기다.
그런 식으로 정착한 탈북자들은 영국 사회 구성원으로 일하고 세금도 낸다. 영국에서도 사업을 하는 최씨도 한 달에 400파운드가 넘는 세금을 낸다고 했다. 한화로 계산하면 70만원 수준이다. 그는 “탈북자들이 한국을 떠나는 건 경제적인 측면으로만 따져도 한국이 손해”라며 “사람들이 한국을 떠나는 걸 막고 싶다면 복지 정책을 빨리 시행해야 한다. 복지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가장 저렴하고도 효과적인 정책”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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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에 있는 양대 탈북자 협회 중 하나인 '재영한민족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최승철씨를 지난 1일 런던 뉴몰든에서 만났다. 사진=금준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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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남한? 언젠가 북으로 돌아갈 것”
“그러면 계속 영국에 사실건가요?” 영국 사회의 복지제도와 시민의식에 대한 이야기가 한참 오간 다음 최씨에게 물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나는 지금 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행의 마지막은 집에 돌아가는 것이다. 북한 정권과는 별개로 우리는 북한 사람이다. 그걸 부끄러워 하거나 감추려고 하면 안된다. 그래야 나중에 통일이 되거나 북한 사회에 변화가 생겼을 때 우리 힘으로 개혁할 수 있다.”
그래서 그가 탈북자 협회에서 하는 주된 일도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자신이 어디에서 온 줄 알아야 제대로 설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남한에서 태어나 영국에 살고 있는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너는 북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나중에 북한에 가서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하면 자만일 수 있지만, 우리는 우리 힘으로 북을 변화시켜야 한다. 북이 정치 시스템만 바꾸면 잘 발전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남한은 어떨까? 마지막으로 남한의 탈북자 정책에 대해 물었다. 그는 “아무런 기대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탈북자 정책이라는 건 이용해 먹으려고 하는 것 밖에 없다. 실질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게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기대도 없고 요구하고 싶은 것도 없다. 한국은 지금 자기 국민들 인권도 못 챙기는데 어떻게 우리한테 해주겠나. 기대도 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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