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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6일 목요일

작은거인, 미백악관앞 34년 반전평화농성중 ... 콘셉시온 파시오트 [평화미국원정단]

평화미국원정단은 11월 둘째주 미국원정활동을 끝마치기 전 오랫동안 반전평화활동을 벌여온 인사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워싱턴DC 곳곳을 둘러보는 기회를 가졌다.

2 차대전후 세계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수백차례의 전쟁과 테러를 일삼고 평화를 유린해온 미국정부에 대항해 수십년동안 반전평화운동을 벌여온 이들과의 소중한 인터뷰를 갖고 반전평화기원순례를 진행한 것은 원정단에게 90일간의 평화미국원정단활동을 정리하는데 커다란 교훈을 남겼다.

이에 대해 3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아래는 그 두번째다.


작은거인, 미백악관앞 34년 반전평화농성중 ... 콘셉시온 파시오트


콘셉시온 파시오트(72)는 스페인계 미국여성으로 백악관맞은편 라파예트공원에서 34년동안 매일같이 반전평화천막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1981년부터 시작된 파시오트의 반전평화시위는 미제국주의심장에서 미정부를 향해 벌이는 완강한 저항이며 백악관을 찾은 관광객들에겐 작은거인, 반전평화의 상징으로 알려지고 있다.

파 시오트의 천막농성장양쪽에는 <폭탄에 따라 살고 폭탄에 의해 죽는다(Live by the Bomb. Die by the Bomb)> <문명인은 핵무기로 인간을 죽이지않는다 (Civilized People do not Nuke Fellow Humans)> 등의 선전판과 각종반전평화선전물,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연도별영토변화, 언론매체에 소개된 반전평화내용의 유인물 등이 비치돼 있다.

비 가 오나 눈이 오나 그는 빠짐없이 수십년동안 한자리를 지키며 세계평화를 위해 대량파괴무기확산반대, 전쟁반대, 평화실현을 외치며 지속적으로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파시오트는 여러 차례의 체포와 고문을 당해야 했으며 화학적 고문에 의한 발가락 기형과 후유증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파 시오트의 생활과 활동을 다룬 책 <말로 다 할 수 없는 이야기 (THE UNTOLD STORY)>에서 그는 <백악관반핵철야시위를 하면서 미국에서 언론의 자유가 제대로 보장되는지, 심지어 워싱턴DC에 언론의 자유가 있는지조차 끊임없이 의구심이 생긴다>고 밝혔다.

스페인출생의 파시오트는 18살에 스페인영사관의 비서로 일했으며 함께 살던 할머니가 돌아가신이후 미국으로 이민을 와 뉴욕에 가정을 꾸리고 살았다.

그 는 백악관앞에서 먼저 시위를 벌여오던 토마스(당시 40세)와 1981년에 합류했다. 영국에서 추방당한 토마스는 미국여권을 버리고 자신은 국적이 없다고 주장하며 미정부에 맞서 반전평화시위를 전개했다. 백악관맞은편의 라파예트공원에서 반전평화를 주장하던 초기부터 두사람은 한마음한뜻으로 시간제한에 상관없이 평화시위를 벌여왔다. 

그 러나 1985년부터 공원관리소측은 두사람을 비롯한 평화활동가들의 시위를 규제하는 법제정을 촉구하기 시작했다. 국립공원관리청은 파시오트와 동료들의 농성장을 관광객들과 백악관으로부터 멀리 떨어뜨리기위해 그들의 활동을 규제하기를 원했다. 그들은 교묘하게 미국헌법제1조(언론・종교・집회 등의 자유를 정한 전문조항)를 수정하려고 끊임없이 압력을 가했다.

시위대는 부당한 압력과 탄압에 맞서 지속적으로 평화적인 피켓시위를 벌이면서 적극 대응했으며 대중의 큰 관심을 받게 되었다. 한때 합판선전물이 18개나 되었고 가장 큰 것은 3m가 넘었다. 

대중의 관심이 더 커지자 이에 당황한 미정부는 2년뒤 보다 강력한 규제를 가하기 시작했다. 현재 백악관앞에서는 2개이상의 합판선전물을 설치할 수 없고 크기도 1.8m를 초과할 수 없다. 

파 시오트와 토마스는 <핵무기생산을 멈추고 가난을 없애는데 돈을 사용하라>며 미정부를 향해서 더욱 비판의 강도를 높여나갔다. 안타깝게도 토마스는 경찰의 갖은 고문과 탄압으로 세상을 일찍 떠났고 콘셉시온은 그를 기려 그의 사진을 농성장 한가운데 걸어두고 홀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한 편 평화미국원정단은 90여일동안 백악관앞 반전평화시위기간 파시오트와 가장 가까이서 투쟁을 벌이며 동지애를 느낄 수 있었다. 시위를 시작하기 전과 끝날 즈음 두차례 인사를 나누면서 각종 정보와 소식을 공유하고 코리아통일, 반전평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침략행위 중단, 이라크・아프가니스탄・시리아침략전쟁 반대, 전쟁무기판매중단 등 한목소리를 내며 충실히 국제연대를 실현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평소 몸상태가 좋지 않았던 파시오트는 원정단이 미국을 떠나기 며칠전 갑작스럽게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원정단은 그를 만나지 못하고 미국을 떠났다.

아래는 활동기간 콘셉시온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1. 34년동안 외부의 압력이나 탄압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백악관앞 반전평화시위를 진행해올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있는가.

희생정신이다. 희생정신 없이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그리고 원칙과 양심이다.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실현하고자 하는 마음은 다 같다. 반전평화를 위한 나의 원칙과 양심을 잊어본 적이 없다.

가 끔 남코리아사람들이 농성장을 방문해 나를 알아보고 반가워한다. 예전엔 농성장에 남코리아 깃발과 신문기사를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투쟁하고 탄압받는 과정에서 거의 다 없어져 버렸다. 경찰들은 집도 파괴하고 가방 등 모조리 압수해갔다. 백악관앞 반전평화농성을 원하지않기 때문이다. 

이 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불법으로 침략하여 핵과 전쟁무기로 위협한다. 팔레스타인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빼앗겨버렸다. 남코리아도 팔레스타인과 같은 처지다. 미국은 모든 것을 지배하며 통제하려고 한다. 우리는 이에 맞서 진실을 말하고 투쟁을 멈추지말아야 한다. 다함께 힘을 모으자.

2. 파시오트가 바라는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

평화로운 사회다. 모든 사람들은 평화를 공감하고 지지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모두가 전쟁과 무기 없는 세상에 살기를 바라지만 실천없이는 평화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TV와 인터넷에 조금만 찾으면 무엇이 문제이고 진실인지 알 수 있지만 사람들은 정작 행동으로 나서는 걸 꺼린다. 대부분 언론들은 진실을 말하지않고 왜곡보도한다. 이게 문제다.

우리가 무엇을 외치고 요구하는지 사람들에게 정확히 알려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실현시키기 위해 적극 실천하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3. 몸이 좋지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건강과 생활은 어떤가.

다리가 너무 불편하고 움직이기 힘들어서 씻지도 못하고 몸을 구부리지 못하는 상태다. 젊은 시절 공안기관에서 고문과 탄압을 받았는데 후유증이 크게 나타나고 있다. 불편할 정도로 건강이 많이 쇠약해진 걸 느낀다. 

최근에 인근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고 있다. 발과 다리의 상태가 오랫동안 많이 악화돼 입원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농성은 다른 반전평화운동가들이 번갈아 맡으며 철야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얼마전 경찰들이 라파예트공원의 화장실문을 잠궈 이용할 수 없게 만들었다. 가끔씩 있는 일이긴 하다. 1980년대 초중반 이곳에서 농성을 할 때는 이보다 훨씬 더했다. 그러나 벌써 수십년이 지났고 탄압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이대로 투쟁을 멈출 수 없다. 계속 싸워나갈 것이다.

4. 코리아의 통일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코리아가 분단을 끝장내고 통일을 이루는 것은 당연하다. 코리아는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며 하나의 민족임에도 70년동안 분단돼 살아가고 있다. 남북간의 오랜 긴장관계를 풀고 평화적으로 통일하길 바란다.

그럴려면 남코리아에 주둔한 미군이 당장 나가야한다. 미국은 남북코리아가 스스로 통일할 수 있게 내버려두어야 한다. 

내가 만약 코리아인이었다면 원정단과 함께 불굴의 투지로 통일을 위해 앞장섰을 것이다. 곧 통일이 될 거라는 확신을 갖고 힘내서 싸워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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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민족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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