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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생략한 사유리 씨의 이번 선택은 출산 혹은 가족을 구성하는 데 결혼이 단지 ‘옵션’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를 보며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의 최지은 작가는 아이를 낳기 위한 결혼은 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린 게 인상적이었다고 말한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 사람이 동시대에 존재하는 걸 보는 게 강렬한 경험인 것 같다. 익명의 누군가가 아니고 유명인인 데다가 스스로 원해서 했고 그 결과가 좋다고 실시간으로 말하고 있다.”</ins>
그의 말대로 여성들의 폭발적인 반응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생애 과업으로 여겨졌던 결혼을 기피하는 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비혼과 1인 가구 위주의 미래’는 이미 예정되어 있다. 현재 서울시 전체 가구의 3분의 1이 1인 가구다. 만 13세 이상 3만8000명을 대상으로 한 통계청의 ‘2020년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전체의 51.2%에 그쳤다. 나머지 절반가량은 ‘결혼을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미혼 남녀 중에서는 ‘결혼을 해야 한다’는 비율이 더 떨어진다. 남자는 40.8%, 여자는 22.4%만이 결혼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여자는 훨씬 적다. 전체 응답자의 10명 중 3명꼴로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좀 더 적극적으로 결혼을 꺼리는 사람들로 좁히면 또 다른 게 보인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올해 6월 30대 미혼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여성의 30%, 남성의 18.8%가 결혼에 부정적이었다. 여성의 경우 결혼을 꺼리는 이유로 ‘혼자 사는 게 더 행복할 거라고 생각해서(25.3%)’와 ‘가부장제, 양성 불평등 등의 문화 때문(24.7%)’이라는 응답이 비슷했다. 남성이 ‘현실적으로 결혼 조건을 맞추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되어서(51.1%)’ ‘혼자 사는 게 더 행복할 거라고 생각해서(29.8%)’의 순서인 것과 결이 좀 다르다. 특히 ‘성공하거나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을 선택할 것이다’라는 질문에 여성의 67.4%가 ‘비혼’을 선택했고 남성은 76.8%가 ‘결혼’을 선택했다.
이처럼 결혼을 원하지 않는 여성이 늘고 있는데 이들에게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더욱더 비혼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홍재희씨는 비혼이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던 어린 시절부터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외가 친척의 이혼과 재혼 전력 때문에 친정 이야기만 나오면 기를 못 펴던 어머니는 대역죄를 지은 사람처럼 당신 탓을 했다. 그가 청소년기를 보낸 1980년대나 20대를 보낸 1990년대만 해도 결혼하지 않은 중년 여성이 흔치 않았다. ‘여자가 서른 넘어서 결혼하는 건 벼락 맞기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이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그는 비혼 1세대다. 30대까지 느긋하던 친구들도 마흔 언저리를 앞두고 쫓기듯 결혼식을 올렸다. 가임기를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일부 작용한 결과였다.
그가 쓴 〈비혼 1세대의 탄생〉에 따르면 비혼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데에는 사회적 맥락이 있다. 1990년대,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고 국가와 집단이 우선시되었던 1970~80년대와 달리 개인의 자유가 가장 앞 순위에 놓였다. ‘한국 사회에서 우리라는 집단이 아니라 나라는 개인에 대해 자각한 첫 세대’가 출현했다. 외환위기가 닥치고 경제적 불안감이 커지자 ‘일하는 아빠, 살림하는 엄마, 토끼 같은 자식들로 구성된 중산층이 몰락했다’. 여자 인생에서 당연하던 결혼과 가정도 위기를 맞았다. 개인의 자유와 남녀평등 사상에 익숙해진 여성들은 제도 바깥을 상상하게 되었다. 2000년대 초반에 이르면서 ‘독신’이란 용어가 널리 사용되었다. 2010년대 초부터는 ‘비혼’이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상태(미혼)에 머무는 게 아니라 결혼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비혼)는 의미다.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가부장제의 핵심인 결혼제도를 비판하고 비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여성들이 생겨났다. ‘비혼이 폭넓게 대중성을 획득하는 시대’로 진입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결혼제도를 대하는 요즘 20·30의 시각을 분석한 흥미로운 보고서가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2월, 20∼39세 6350명을 대상으로 생애 전망 인식조사를 벌였다. 이를 바탕으로 작성한 보고서 ‘저출산 대응정책 패러다임 전환 연구(Ⅰ):청년층의 젠더화된 생애 전망과 정책정합도 분석’에 따르면, 여성들에게 결혼과 출산은 노동자로서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한 사건’이다. 여성들은 파트너가 그 위험을 적극적으로 나눌 때(양육 참여, 가사 분담, 파트너의 출산휴가·육아휴직 등)에만 자녀를 갖는 게 가능하다고 인식한다. 남녀 모두 결혼이 아니라 일이 생의 중심이다. 과거 ‘남성의 노동 중심 생애과정과 여성의 가족 중심 생애과정’이 해체되고 ‘노동 중심 생애과정’이 성 구별 없이 보편화되었기 때문이다.
조사를 진행한 김은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요즘 세대를 삼포 세대, 오포 세대 같은 포기 담론으로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남성과 여성은 같은 생애 전망을 가졌지만 사회적 조건과 환경이 다르다. 특히 결혼제도로 형성되는 불평등한 관계가 비혼과 저출산의 공통적인 원인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결혼을 안 해서 출산율도 낮아지니 결혼을 장려해야 한다는 게 지금까지의 정책 방향이었다. 문제는 결혼이 아니라 이로 인해 진입하게 되는 불평등한 관계 자체였다.
생물학적 아버지가 정말 필요한가
사유리 씨의 선택을 지지하는 흐름과 김 연구위원이 만난 청년들의 목소리에는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다. “흔히 성평등을 주장하며 혼자 살기를 원한다고 하면 관계 맺는 걸 싫어한다고 여기기 쉬운데 실제로 내가 만난 청년 여성들은 그렇지 않았다. 누군가와 함께 사는 삶에 대해 희구와 기대가 있었는데, 그게 기존의 결혼제도를 통해서는 아니다. 우리 사회는 그에 대한 대안을 갖고 있지 않다. 사유리 씨가 결혼 말고 다른 형태의 친밀한 관계를 갖는 게 가능하다는 걸 삶으로 보여주어 열광하는 것 같다. 이번 사건을 청년 세대의 생애 전망이 바뀌는 흐름 안에서 봐야 한다. 큰 사회변동이 일고 있다.”
낙태죄 등의 이슈로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배경도 있다. 아이 낳을 권리와 아이 낳지 않을 권리는 닿아 있을 수밖에 없다. 최근 임신 주수에 따라 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여성계는 낙태죄의 전면 폐지를 요구했다. SNS상에서 공유된 한 컷의 이미지가 있다. 간단한 도식이다. ‘왜 낙태가 죄야?→생명이 소중하니까!→그래서 혼자라도 키운다는데 왜 정자 기증 못 받아?→비혼 여성이 어케(어떻게) 애를 키워?→그래서 낙태한다는데→왜 낙태가 죄야?’ 질문은 계속해서 돌고 돈다.
국가는 출산을 장려하고 난임 부부를 지원해왔다. 그에 반해 ‘임신중지(낙태)’는 오랫동안 불법이었다. 모두 여성의 ‘인구 재생산’ 기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리 사회가 비혼 인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도 출산과 관련이 있다. 결혼을 늦게 하거나 기피해 출산율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자 인구통계 안에서 비혼의 숫자가 유의미해졌다. 김소형 가족구성권연구소 연구위원은 “여성에게 출산을 강조하면서도 정자은행을 통해 비혼이 출산하는 건 인정해주지 않는다. 여성의 신체를 줄곧 재생산의 관점에서 봐온 국가의 이중적 잣대를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성애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정상 가족’의 신화가 허물어지고 있다. 사유리 씨의 선택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비혼 출산 그 자체보다 다른 형태의 가족 구성을 스스로 설계한 용기에 환호한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가족을 이룰 수 있는 가족구성권에 대한 논의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비혼 공동체 ‘에미프’의 구성원들이 쓴 책 〈비혼수업〉을 보면 “비혼은 말 그대로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이지, 결코 사회로부터 등을 돌리고 고독을 즐기며 혼자서 살아가는 인생을 택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이들은 “인간관계의 품앗이는 꼭 ‘결혼’의 형태로 묶이지 않은 관계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라고 말한다.
사유리 씨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추가로 임신 과정을 공개했다. 임신 사실을 확인하기 직전엔, 임신을 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무섭다며 복잡한 심경을 밝혔다. 일각에선 아빠 없이 태어날 아이 생각은 안 하느냐며 이기적이라고 말한다. 12년 전 방송인 허수경씨가 같은 선택을 했을 때와 비슷한 패턴이다.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꽤 많아졌다는 게 큰 차이다. 최지은 작가는 한편으로 사유리 씨가 한국인 여성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일본인이라 가능한 선택이기도 하지만 대중에게 알려진 한국 여성이었다면 가해질 억압이 지금보다 훨씬 가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혼한 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인터넷 사이트 ‘배드파더스’가 만들어졌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애비규환〉은 재혼 가정의 딸이자 미혼모인 주인공이 아빠 노릇을 외면했던 친부를 찾아나서는 이야기다.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에는 처음부터 모유가 아니라 분유 수유를 선택하고 ‘누구 엄마’보다 자기 이름으로 불리길 원하는 비혼모가 등장한다. 마침 우연히, 동시에 생물학적 아버지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그게 정말 여성과 아이에게 필요한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왜 결혼을 안 하느냐’는 질문도 곧 이렇게 바뀌지 않을까. ‘왜 결혼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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