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 환자 중증도별·질환군별 적정인력 기준 마련 및 파견인력 사전교육 실시 등 촉구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 확산으로 중증환자가 폭증하면서 정부가 병상·인력 확보 등과 관련된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요양기관 집단감염 증가로 식사·용변까지 도움이 필요한 중증환자가 늘면서 간호 인력의 업무가 폭증하고 있다. 이에 병원 인력을 모두 코로나19 대응에 전념해도 부족한 판국인데, 일부 전담병원은 추후 충분한 손실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등을 우려해 일반병실 운영을 포기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또 기존 감염병 전담병원에서 코로나19 환자들의 치료를 담당하던 의료 인력의 임금과 파견의료 인력의 임금 차이가 3~4배까지 벌어지면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낀 기존 의료 인력들이 퇴사하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은 23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보건의료노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현장 상황을 전했다.
일반 코로나19 중증환자도 버거운데
물밀 듯 들어오는 치매·정신질환·와상 환자
부족한 인력…임금격차로 인한 박탈감
현재 국립중앙의료원과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공공병원의 경우 중증환자가 급증하면서 전쟁터를 방불케 하고 있다. 그런데 환자 상태 분류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현장에서는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안수경 국립중앙의료원 지부장은 “경증환자라고 전달받고 준비했는데, 막상 환자가 도착했을 때는 숨도 많이 차고 걸을 수도 없는 경우가 있다”며 “그럼 그때서야 의료진들이 부랴부랴 산소 투입과 휠체어를 준비하고, 그러는 사이에 환자들은 불만을 터뜨리며 힘들어한다”라고 말했다. 또 “더 심한 경우 구급차에서 내리자마자 병원입구에서 심폐소생술을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라며 “일반 환자 심폐소생술을 할 때도 의료 인력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상황에 코로나 확진환자 경우엔 보호구까지 갖추어서 투입되어야 하고 예상치 못한 여러 문제로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된다”라고 상황을 전했다.
상황이 이런데, 치매·정신질환·와상 환자까지 전담병원으로 쏟아지고, 이에 따른 충분한 인력 배치가 이루어지지 않아 기존 병원 인력이 탈진 상태가 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현섭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지부장은 “현재 급격하게 늘어나는 환자 중에서는 간병 등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이 많다”라며 “간호 인력들은 한 번 (격리 병동에) 들어가면 환자의 전반적인 상태 파악, 증상 조절을 위한 투약, 호흡곤란 해소하기 위한 산소 처치, 욕창 처치, 식사 보조, 기저귀 갈기 등에 이어 화장실 가는 것도 보조하고 있고, 택배 물품 전달, 혈액검사 등 전반적인 일도 맡아서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 지부장은 “급격하게 증상이 악화되는 경우도 많다”라며 “격리병동 안에서 레벨D 복장으로 심폐소생술(CPR)을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매일 레벨D 방호복을 입은 채 한 번 들어갈 때마다 2~3시간씩 물에 빠진 것처럼 홀딱 젖은 채로 나오는 우리 전담병원 직원들은 지칠 대로 지쳐서 악으로 버티고 있다”라고 전했다.
김정은 서울시서남병원 지부장 또한 “중증 환자가 많아지다 보니, 환자에게 처치하는 절차도 더욱 많아졌다”라며 “업무가 끊이지 않아 숨쉬기조차 힘들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어 “치매 환자는 주삿바늘을 뽑아버리고 (의료진을) 발로 차고 도망가면 붙잡으러 가야하고, 기저귀 갈아드리고 밥도 먹여드려야 하는 등 끊이지 않는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며 “어제 한 동료는 과도한 업무로 흉통까지 겪었다”라고 전했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에선 급하게 파견 인력을 투입하고 있지만, 충분한 훈련을 거칠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지부장은 “2월부터 진행된 코로나로 열심히 일하던 경력 간호사들을 사직하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병원은 신규 인력으로 채워졌으며, 정부에서는 파견 인력을 보내줬다”라며 “하지만 병원마다 시스템은 천차만별이니 그 병원 시스템에 적응시키기 위해 이때까지 감염병 환자 치료에 매진하던 경력 간호사들에게 이들의 트레이닝까지 맡겨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두의 안전과 직결된 부분이니 허투루 할 수 없고, 단시간 트레이닝으로 시스템에 적응할 수 없는 실정이니, 신규 인력이나 파견 인력에게 중요업무는 맡기지 못하게 되고, 지금 일하고 있는 간호사들은 점점 과로하다 사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이러다간 간호사들이 공공병원에 남아있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파견 인력과 기존 공공병원 인력 간 임금 차이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전담병원에서 일하는 기존 간호사의 월 수령액은 257만8000원인 반면, 민간의료인 모집 인건비에 기초한 파견 간호사의 한 달 근무 기준 수령액은 총 930만원(23일 근무수당+위험수당+전문직 수당 기준, 숙소지원·야간근무수당 미포함)에 이른다고 한다. 이영석 지부장은 “이런 현실이 사기 저하, 박탈감으로 (이어지면서) 현장에서는 갈등으로 작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거의 1년 가까운 기간 동안 코로나19 최전선에서 버티던 직원들의 퇴사로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 현장 상황 반영한 대책 마련 촉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긴급면담 요구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가 기존의 대책을 세심하게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정부가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하고, 중환자 간호사를 양성하는 등 일부 조치를 취하긴 했지만, 현장에서는 실효성 있는 조치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대책을 보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보건의료노조는 ▲ 환자 중증도별·질환군별 적정인력 기준 마련 ▲ 치매·정신질환·와상 환자 등 별도 관리가 필요한 환자들에 대한 추가적인 인력운영대책 마련 ▲ 보조인력 및 방역인력 지원 확대 ▲ 파견인력 사전교육훈련 실시 ▲ 코로나19 기간 동안 공공의료기관 인력 한시적 확대 및 인건비 지원 ▲ 기존 인력과 파견 인력 간 위험수당 격차로 인한 박탈감 문제 해소 ▲ 코로나19 환자에게만 집중할 수 있도록 충분하고 신속한 손실보상 조치 ▲ 공공병원 전담병원 전환에 따른 의료취약계층 의료공백 발생하지 않도록 전원 가능한 지정병원 마련 등을 촉구했다.
기자회견문에서, 보건의료노조는 “감염병 진료체계가 붕괴되지 않도록 시급히 보건의료인력을 중심으로 감염병 진료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라며 “코로나19 환자 상태별 적정인력 기준을 만들면서, 공공병원의 정원을 확충하고, 파견인력 교육·훈련 방안을 마련하는 등 인력문제를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의료노조는 “무엇보다 보건의료노동자의 소진 및 이탈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한편, 신속하고도 적절한 손실 보상을 통해 정부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병상수·인원수 꿰맞추기로는 안 된다”라며 “코로나19와 맞서 싸우는 의료 인력이 어떤 상태인지 제대로 파악하여 특단의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의료인력 대란과 진료체계 붕괴를 피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현장에 기반한 의료인력 운영체계와 진료체계의 정비를 위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긴급면담과 의료현장방문 간담회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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