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송년특집] 남북관계
- 이승현 기자
- 입력 2020.12.2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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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의 한반도 정세는 2018년 격변했던 한반도 정세에 비한다면, 소박하다 못해 초라한 느낌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한반도 정세의 두 축인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에서 의미 있는 움직임은커녕 사소한 미동조차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2019년 2월말 ‘하노이 노딜’의 후과를 톡톡히 받아야 했습니다.
그나마 한반도 정세가 악화하지 않고 상황이 관리된 이유는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의 브로맨스 덕택도 있습니다. ‘김정은-트럼프’, ‘문재인-김정은’ 사이의 친서가 중요한 고비마다 교환되었으나 양국의 관계개선으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2020년 북미관계는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이 부산히 움직였지만 ‘공수래공수거’, 남북관계는 개성 소재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상징될 정도로 별무소득인 한해였습니다. 내년 1월 북한의 8차 당대회 개최, 조 바이든 새 행정부의 출범 그리고 1년 남은 문재인 정부의 뒷심에 기대를 걸면서 통일뉴스는 <2020년 송년특집>으로 ①북미관계 ②남북관계 ③북한 내부 순으로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신뢰가 무너지면 폐허가 된다
신뢰가 무너진 땅에서 요행으로 평화가 싹트길 바라는 것은 이치에 닿지 않는 일이다.
2020년 한반도는 70년이 넘는 분단의 세월을 살아 온 남과 북이 다시 만나 하나가 되는 일에 얼마나 많은 진실한 정성과 용기있는 실천이 있어야 하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지난 6월 16일 오후 2시 50분, 파편이 날리는 가운데 자욱한 연기에 휩싸인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장면은 현재의 한반도를 상징한다.
폭파 3일전 담화에서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은 "멀지 않아 쓸모없는 북남 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고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폭파 이튿날 다시 발표한 담화에서는 "신의를 배신한 것이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인가를 남조선 당국자들은 흐르는 시간속에 뼈아프게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전단 살포를 빌미로 연락사무소를 폭파했지만 진짜 이유는 "뿌리깊은 사대주의 근성에 시달리며 오욕과 자멸에로 줄달음치고 있는 이토록 비굴하고 굴종적인 상대와 더 이상 북남관계를 논할수 없다는 것이 굳어질대로 굳어진 우리의 판단"이라고 한 언급에서 찾아볼 수 있다.
2년전 4.27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합의한 당사자이지만 철저히 외세와 공조를 앞세우는 남측을 신뢰할 수 없다며, 단절을 선언한 것이다.
4.27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물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그렇게 한 순간에 폐허가 되었다.
김 제1부부장은 "지난 2년간 남조선당국은 민족자주가 아니라 북남관계와 조미관계의 '선순환'이라는 엉뚱한 정책에 매진해왔고 뒤늦게나마 '운신의 폭을 넓히겠다'고 흰목을 뽑아들(거만하게 뽐내다) 때에 조차 '제재의 틀안에서'라는 전제조건을 절대적으로 덧붙여왔다"고 남측을 비난했다. 또 "오늘 북남관계가 미국의 농락물로 전락된 것은 전적으로 남조선당국의 집요하고 고질적인 친미사대와 굴종주의가 낳은 비극"이라고 그동안 쌓인 불만을 터뜨렸다.
돌이켜보면 신뢰의 위기가 남북관계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징후는 연초부터 있었다.
북은 연초 신년사를 대신한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의 '보도'에서 제재봉쇄를 파탄시키기 위한 정면돌파전'과 ' '핵억제력의 경상적 동원태세 항시적 유지'를 2020년 전략적 방향으로 제시하면서 이례적으로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월 7일 신년사를 통해 '남북 철도·도로 연결 사업'과 '비무장지대의 국제평화지대화'를 비롯한 여러 남북협력사업을 언급한 것을 시작으로 남측에서 개별관광으로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겠다는 계획도 내놓았지만 북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1월 20일 국내 첫 신종코로나바이러스 환자가 발생하고 1월 30일 북측이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금강산 시설 철거를 당분간 연기하자는 통보를 하면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남측 근무자 전원이 복귀하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정부는 다른 맥락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남북방역협력의 기회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기대를 가졌을 뿐 다소 느긋하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북은 2월 29일(보도일자) 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국가적인 비상방역에 관한 법률 보완과 위기관리 규정 재정비를 통해 봉쇄에 가까운 철통방역 체제로 돌입하고 4월 중순까지는 각종 화력타격훈련과 포사격 훈련에 전념하는 등 철저히 문을 닫아 걸었다.
북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3월 17일 평양종합병원 착공식을 열어 당창건 75주년 기념일(10.10)까지 완공할 것을 공표했고, 남측은 북이 의료장비 등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며 남북 보건협력에 기대를 버리지 않았지만, 북은 완공 일정을 지키지 못한 상황에서도 남측에 끝내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제재극복을 위한 '정면돌파전'을 선택한 북의 전략방향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어쨌든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전후한 20여일간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지만 남북 양측의 위기관리 노력으로 상황이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북측은 연락사무소 폭파 후 군 총참모부가 발표한△금강산과 개성공단에 부대 배치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철수했던 GP 재배치 △대규모 대남전단살포에 필요한 군사행동 보장 등 대남군사행동 계획을 김정은 위원장이 나서서 보류했고, 남측에서는 김연철 통일부장관이 남북관계 악화의 책임을 지고 사임함으로써 경색된 분위기가 누그러지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정면돌파전은 계속된다...필요한 건 평화를 향한 용기
새로운 남북관계를 기대하는 여론에 힘입어 7월 27일 취임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출신의 이인영 장관은 처음부터 '대담한 변화로 통일부가 중심이 되어 남북의 시간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한해가 다가도록 결실이 없다.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강조했던 '작은 교역'은 사실 '대북제재의 저촉되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추진하겠다'는 타협적 수준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마저도 변변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남북합의 이행', '한미워킹그룹 해체',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과 같은 남북관계 근본현안에 대해 정부 당국은 해명에 급급하고 시민사회단체들은 거리에서 목터져라 외치는 광경도 낯설지 않다.
이래서는 '어떤 최악의 상황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품고 있어서 남북간에 숨결을 열고, 잇는 우리 겨레 최후의 보루'인 통일부(정부)는 바라기 어렵다.
김 위원장은 7월 하순부터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최대비상체제로 바꾸어 지금까지 오고 있다.
8월 초부터 태풍 피해가 겹치는 2중·3중고를 겪으면서도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홍수 피해와 관련한 어떤 외부적 지원도 받지 말라'고 지시(8.13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6차 정치국회의)하고는 내년초 새로운 국가발전5개년계획을 발표할 당 제8차대회 소집을 결정하고 연말까지 80일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연초에 결정한 '정면돌파전'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어떤 외부지원도 받지말라는 김 위원장의 지시가 보도된 이튿날(8.15) 문 대통령은 북측에 '남북 방역·공유하천 협력'을 제안했다.
10월 중순까지 김 위원장은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정치국 확대회의, 정무국회의를 수차례 열고 전국의 수해복구지역을 현지지도하며 내부에 집중했고, 문 대통령은 9월 23일과 10월 7일 유엔총회를 비롯한 국제회의 연설을 통해 '한반도 종전선언'을 호소했으나 반응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분위기이다.
남측은 한미동맹과 대북제재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내에서 북측에 계속 제안하고, 북은 이런 남의 제안을 계속 무시하는 패턴이 반복되는 상황은 무엇을 말하는가.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최근 열린 토론회에서 현재 남북관계 위기의 핵심을 "그렇게 갈구했지만 한쪽은 평화를 향한 용기를 잃었고 다른 한쪽은 상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것"이라고 짚은 바 있다.
처방은, 제대로 된 평화를 설계하되 먼저 무너진 신뢰와 사라진 용기를 회복하는 것.
북의 '정면돌파전'은 미국의 제재를 자력갱생으로 이겨내고, 미국의 '선비핵화' 해법에는 핵억제력 고도화로 대응해 체제안전을 스스로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문하는 바는 군사적 접근에 기초한 상호주의를 탈피해 일방적으로 조정하고 선제적으로 양보하는 탈상호주의를 취하라는 것.
더불어 평화를 협의하여 원하는 평화를 얻으려는, 평화를 향한 용기를 잃지 말고 견지하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주적 정책전환이 필요하다.
당연히 쉬운 일은 아니다.
당장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의 직접적 이유가 되었던 대북전단 살포금지법이 6개월이 지난 12월 14일 국회 문턱을 간신히 넘었지만, 법안 공포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 미국 일각에서는 '표현의 자유' 침해와 '북한인권'악화 우려를 들어 의회 청문회를 예정하는 등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다만 지난 9월말 서해 어업지도원 피격사건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통지문을 보내온 일과 그 일을 계기로 뒤늦게 공개된 9월 남북 정상간의 친서 교환, 그리고 당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발표한 김 위원장의 대남메시지는 최소한 남북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을 준다.
쉽지 않은 문제를 풀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이다. 필요한 건 다시 평화를 향한 용기를 회복하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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