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법·근기법 개정 두고 “개악 기조 유지” 비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전태일 3법’ 입법 촉구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지 않는다’ 노조법 개정안,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그렇다.”
지난 8~9일 새벽까지 이어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탄력근로제를 단위 기간을 6개월로 확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과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3법(노동조합법·공무원노조법·교원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민주노총은 이를 두고 “정부여당이 현행법을 후퇴시키면서까지 ILO 협약을 위배하는 개정안을 단독 처리했다”,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 중 일부 독소조항은 덜어냈지만 여전히 노동현장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독소조항들이 살아남아 개악 기조가 유지됐다”고 규탄성명을 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9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했다. 민주노총은 다음날인 10일 오전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ILO 핵심협약 비준을 핑계로 노조법 개정에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ILO 핵심협약 비준은 온데간데없고 여전히 일부 독소조항을 남긴 노조법 개악”, “재계의 요구가 그대로 반영해 장시간 저임금 노동을 고착화시키고,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탄력근로제 확대와 선택근로제를 담은 근로기준법 개악”이 본회의에서 통과됐고, 반대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아직 국회 법사위의 문턱도 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맞서 민주노총은 “투쟁은 끝나지 않았고 계속 이어갈 것”임을 밝혔다.
민주노총은 “개악된 노조법과 근로기준법을 되돌리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할 것”,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ILO 핵심협약 비준과 함께 모든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위해 노조법 2조 개정에 나설 것”, “사업장의 규모에 상관없이 일하는 사람 모두가 근로기준법에 적용을 받도록 근로기준법 11조 개정에 나설 것”을 선포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회견문에서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노조법과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두고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지 않는다’는 속담에 비유했다. “정부가 제출한 역대급 개악안에서 핵심적 개악요소는 덜어냈다고 하지만 여전히 개악이라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면서 개악 요소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냈다.
‘개악’ 말고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
먼저, 개정안이 “‘해고자, 실업자가 기업별 노조의 조합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지만, 해고자와 실업자는 해당 노조의 임원, 대의원이 될 수 없고, 근로시간면제한도를 산정하거나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서 조합원 수를 산정할 때에도 제외시켰다”면서 “조합비 납부 등 조합원으로서의 의무만 지어질 뿐 권리는 행사할 수 없는 서류상의 조합원”으로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ILO나 EU가 문제로 제기했던 부분은 조합원 자격, 노조의 운영 등을 해당 노조가 자주적으로 정하여야 하고 국가나 사용자가 이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이 부분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현행 2년이던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3년으로 연장한 것에 대해선 “교섭창구단일화 제도와 맞물려 단체교섭권 등 노동3권 행사에 제약을 가져오게 됐다”고 제기했다. “교섭대표노조가 되지 못한 노동조합은 교섭대표노조가 체결한 단체협약 유효기간 동안 교섭도 할 수 없고, 근로시간면제를 인정받아 조합활동을 하는 것도 공정하게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개악안이 시행되면 사용자와 어용노조가 담합하여 최소 4년간 교섭대표노조가 아닌 노조의 단결권, 단체교섭권을 ‘법’을 근거로 제약할 수도 있다”는 것. 이 역시 소수노조의 노동3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ILO 기준 및 유엔 인권감시기구의 권고와 상충되는 부분이다.
개정안엔 노동계의 반발은 산 독소조항 중 하나인 ‘사업장 내 점거 전면 금지’ 문구는 삭제됐지만 “사용자의 점유를 배제하여 조업을 방해하는 형태의 쟁의행위 금지” 규정이 신설됐고, 사업장 내 점거 제한, 사업장에 종사하지 않는 조합원의 사업장 내 노동조합 활동 제한은 유지됐다. 민주노총은 “개악안에 새로 삽입된 이 규정들은 ILO 협약 비준과는 무관하며, 경영계의 요구를 수용한 청부입법에 다름 아니”라고 규탄했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ILO의 권고와 국제기준에 위배되는 방향으로 개악됐다”면서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기도 전에 이를 선제적으로 막아서는 결과를 초래한 꼴”이라고 일갈했다.
탄력근로제와 선택근로제를 확대한 근로기준법 개정도 ‘개악’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탄력근로제 6개월 확대에 이어, 경영계 요구를 추가로 수용해 ‘선택근로를 3개월까지 확대(연구개발분야)’한 것은 명백한 개악”이라는 것.
올해 1월엔 특별연장근로제 도입을 ‘경영상의 사유’로까지 확대한 바 있다. 특별연장근로제를 도입할 경우 ‘사용자의 건강권 보호조치’를 신설했지만 사용자가 이를 위반했을 때 부과할 처벌조항이 없다. “특별연장근로제 사유 확대를 한시적 조치가 아니라 상시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1일 노동시간제한, 과로방지 대책, 사용자의 임금보전, 건강권 보호조치 의무 강화 등 노동자의 임금과 건강권 보장 강화 요구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면서 민주노총은 “이게 개악이 아니면 달리 무엇이라 표현할 수 있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다시 투쟁의 맨 앞자리에 설 것”
개악 추진과는 반대로 특수고용 노동자를 포함해 ‘모든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라’는 ILO 권고는 이번 국회 논의에서 제외됐다. 10만 명의 노동자, 시민이 발의한 노조법 2조 개정안은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정기국회가 마무리 될 때까지 법제사법위 안건에 오르지도 못했다.
민주노총은 “정부의 의지를 반영해 공수처법 등을 밀어붙이는 힘, 노조법과 근로기준법의 개악을 밀어붙이는 힘” 등을 빗대며 “이번 국회에서 180여 석을 가진 거대 여당의 힘과 실체를 목격했다”면서 “의지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다. 180여 석의 힘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노동자, 시민이 입법발의한 전태일3법 입법에 제대로 사용하라”고 촉구했다. 또, “이제 ILO 핵심협약 비준을 미룰 이유가 없다”면서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고 국제기준에 맞도록 다시 하나하나 꼼꼼하게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끝으로 ▲개악된 노조법과 근로기준법을 되돌리는 투쟁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ILO 핵심협약 비준 ▲노조법 2조 개정 ▲근로기준법 11조 개정 투쟁의 맨 앞자리에 서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민주노총 산하 지역본부도 더불어민주당 광역시도당사를 찾아 항의행동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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