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송년특집] 제재·코로나·수해에 맞선 북한
- 김치관 기자
- 입력 2020.12.23 09:24
- 수정 2020.12.23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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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민들에게 2020년은 혹독한 시련과 맞서 ‘정면돌파전’을 벌여온 투쟁의 해였다. 코로나19와 대규모 수해피해로 큰 타격을 받았지만 국제적 제재와 코로나19 방역으로 인해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모든 난관을 자력갱생으로 헤쳐나가야만 했던 것.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0월 10일 당창건 75돌 경축 열병식 연설에서 “지금 이 행성에 가혹하고 장기적인 제재 때문에 모든 것이 부족한 속에서 비상방역도 해야 하고 혹심한 자연피해도 복구해야 하는 엄청난 도전과 난관에 직면한 나라는 우리 나라뿐”이며 “이 모든 시련은 두말할 것 없이 우리의 매 가정, 매 공민들에게 무거운 짐으로, 아픔으로 되고 있다”고 솔직히 토로했다.
김 위원장은 “진정 우리 인민들에게 터놓고 싶은 마음속 고백, 마음속 진정은 ‘고맙습니다!’ 이 한마디뿐”이라며 연설에서 40여 차례 ‘인민’을 호명하며 감사를 표했다.
군사적 ‘담보’와 ‘조건부 핵무기 보유국’
지난해 2월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예상과 달리 빈손(no deal)으로 끝난 뒤 10월 스톨혹름 북미 실무협상마저 결렬된 상태에서 지난해 연말 나흘간에 걸쳐 진행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5차 전원회의’에서 결정한 ‘정면돌파전’이 올 한해를 규정지었다.
전원회의 결정은 정면돌파전의 기본전선을 ‘경제전선’으로 삼고 자력부강·자력번영을 이루자는 것이며, “강력한 정치외교적‧군사적 공세로 정면돌파전의 승리를 담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김 위원장은 “전략무기개발을 중단없이 계속 줄기차게 진행해나갈 것”이라면서 “이제 세상은 곧 멀지 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것”이라고 언명했고, “충격적인 실제행동에로 넘어갈 것”이라고 예고하기도 했다.
실제로 3,4월 포병부대의 포사격 훈련을 비롯한 집중적인 군사훈련이 실시됐고 종심이 짧은 한반도에서 재래식 전력만으로도 ‘불바다’를 만들 수 있음을 시위했다. 여기에는 주한미군과 유엔사를 매개로 한반도 유사시 후방기지 역할을 맡고 있는 주일미군까지 사정권에 들어있다는 경고도 내포됐을 것이다.
10월 10일 열병식에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등 새로운 전략무기들이 선보이기도 했지만 ‘충격적인 실제행동’에는 나서지 않았다. 군사적 억제력을 ‘담보’하는 수준에 그치고 겹쌓인 난관을 헤쳐나가는데 힘을 집중해야 하는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열병식 연설에서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정책을 끝까지 추구한다면 조선반도 비핵화는 영원히 없을것”이라는 선언은 ‘조건부(가역적) 핵무기 보유국’ 지위를 유지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주목된다. 김 위원장은 7.27 전승절에 열린 제6차 전쟁노병대회에서도 “우리의 믿음직하고 효과적인 자위적 핵억제력으로 하여 이 땅에 더는 전쟁이라는 말은 없을 것이며 우리 국가의 안전과 미래는 영원히 굳건하게 담보될 것”이라고 재확인했다.
삼중고에 맞선 정면돌파전
올해 북한의 ‘정면돌파전’은 대외적 제재와 코로나19, 대규모 수해라는 삼중고 속에서 치러졌고, 10월 10일 당창건 75돌 기념일까지 총력 동원에 이어 연말 80일 전투로 이어져 내년 1월로 예고된 제8차 당대회로 귀결시키고 있다.
먼저, 북한은 대외적 제재를 당분간 상수로 놓고 ‘정면돌파전’을 채택했다. 지난해 연말 당 전원회의에서 “조미 간의 교착상태는 불가피하게 장기성을 띠게 되어 있다”고 전제했다. 제재를 완화시키는데 주력하기보다는 자력갱생에 입각한 자력부강·자력번영하는 길을 걷겠다는 선언이다. 이같은 기조는 “세기를 이어온 조미 대결은 오늘에 와서 자력갱생과 제재와의 대결로 압축되어 명백한 대결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문구로 압축된다.
올해 북한의 내부 시계는 모두 10월 10일로 맞춰졌다. 지난해 연말 당 전원회의에서 ‘조선로동당창건 75돐을 성대히 기념할데 대하여’가 다뤄졌고 평양종합병원 완공일도 이날로 맞춰졌다.
세계적인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3월 17일 열린 평양종합병원 착공식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평양종합병원 건설을 당창건 75돐까지 무조건 끝내기 위하여 한사람같이 떨쳐나서야 하겠다”고 제시했지만 제재로 인한 장비 수입의 어려움과 코로나19 방역과 수해 복구에 힘을 쏟으면서 평양종합병원 건설 시한은 지켜지지 못 했다.
인도적 지원품목에 해당하는 의약품까지 제재로 인해 외부에서 거의 조달받지 못한 가운데 코로나19 방역에 사활을 건 북한 당국은 철저한 ‘봉쇄’ 정책을 고수했고, 외부와의 교역로인 북중 국경지대를 사실상 차단했다.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의 지역 간 이동도 엄격히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의 동맥이랄 수 있는 물류가 현격히 제한된 셈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당창건 75돌 경축 연설에서 “한명의 악성비루스 피해자도 없이 모두가 건강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라며 “세상이 놀라지 않을수 없는 오늘의 이 승리는 우리 인민들스스로가 이루어낸 위대한 승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없다는 것이 북한의 공식 입장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태풍 ‘마이삭’ 등 지난 8월 북한 전역이 집중호우로 큰 수해를 입었고, 김정은 위원장도 여러 차례 현지지도에 나섰다. 특히 9월 5일 당 중앙위 정무국 확대회의를 함경남도 현지에서 개최하고 ‘'수도 평양의 전체당원들에게 보낸 공개서한’을 통해 “수도의 우수한 핵심당원 1만2,000명으로 함경남북도에 각각 급파할 최정예 수도당원사단들을 조직”하겠다고 제시했다.
이에 호응해 평양시 당원 30여만명이 탄원해 그 중 1만2,000명의 평양 수도당원사단이 꾸려져 9월 9일부터 11월 20일까지 수해복구 현장을 누볐다. 이들은 당초 10월 10일 당창건 기념일까지 수해복구를 완료할 예정이었지만 기간을 연장해 활동했다. 인민군에 이어 당원들이 국난극복에 앞장선 것.
북한 언론은 수마가 휩쓸고 간 허허벌판에 새로운 주택단지가 들어선 모습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아름다운 사회주의 국풍’에 따른 ‘기적’으로 평가했고, 김 위원장은 80일 전투가 끝나는 연말까지 피해복구를 마무리할 것을 지시했다.
평양종합병원이나 원산갈마관광지구 등 중점 건설대상들이 기한 내에 완공되지 못할 정도로 내부 사정은 어려웠지만 코로나19 방역과 수해피해 복구 과정에서 당과 군을 내세워 내부 결속력을 다지며 ‘정면돌파전’을 추진했고, 그래도 미흡한 부분은 연말 80일 전투를 통해 극복함으로써 내년 1월 8차 당대회를 맞이하려는 흐름이다.
앞서 8월 19일 개최된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6차 전원회의에서 내년 1월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제시하는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를 소집한다고 공포했고, “혹독한 대내외 정세가 지속되고 예상치 않았던 도전들이 겹쳐드는데 맞게 경제사업을 개선하지 못하여 계획되었던 국가경제의 장성목표들이 심히 미진되고 인민생활이 뚜렷하게 향상되지 못하는 결과도 빚어졌다“는 자체 평가를 담은 결정서를 채택했다.
경제활동 과정에서 자력갱생, 증산과 속도전, 과학화 등 기존 지표 외에도 질제고와 에너지 절약, 환경보호 등도 강조되는 추세이며, 국가경제사업체계의 내각책임제, 내각중심제를 추진해 온 점도 주목된다.
백두의 혁명정신과 8차 당대회
올 한 해 북한은 당과 내각, 최고인민회의 등 권력기구의 공식회의가 활발하게 열려 수해복구나 코로나19 방역 등 주요 의정들이 공식적으로 다뤄졌고, 인사문제도 빠지지 않고 다뤄졌다. 특히 당 정치국(확대)회의를 비롯해 당 군사위(확대)회의, 당 정무국(확대)회의 등이 수시로 열렸다.
회의에서 다뤄진 비판적 내용들도 가감없이 보도됐고, 책임자가 ‘소환’되는 경우도 공개됐다. 11월 15일 개최된 제7기 제20차 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엄중한 형태의 범죄행위를 감행한 평양의학대학 당위원회와 이에 대한 당적지도와 신소처리, 법적감시와 통제를 강화하지 않아 범죄를 비호, 묵인, 조장시킨 당중앙위원회 해당 부서들, 사법검찰, 안전보위기관들의 무책임성과 극심한 직무태만행위에 대하여 신랄히 비판되었다”는 보도가 나와 눈길을 끌기도 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7월 평양종합병원 현지지도에서 “건설연합상무가 아직까지 건설예산도 바로 세우지 않고 마구잡이식으로 경제조직사업을 진행... 의도와는 배치되게 설비, 자재보장사업에서 정책적으로 심히 탈선하고 있으며 각종 ‘지원사업’을 장려함으로 해서 인민들에게 오히려 부담을 들씌우고 있다”고 호되게 질책하고 “책임 있는 일꾼들을 전부 교체하고 단단히 문제를 세”우라고 지시했다.
기존의 주체사상을 ‘김일성-김정일주의’로 정식화 한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연말 전원회의를 앞두고 두 차례 백두산에 올라 ‘백두의 혁명정신’을 강조했고, 북한의 각 단위들은 백두산 혁명유적지를 답사하는 ‘백두산 대학’을 체험하며 사상적 담금질을 했다.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은 “북한은 올해 외부와 단절된 가운데 정면돌파전을 진행하면서 사상투쟁을 계속해왔다”며 “김일성-김정일주의의 요체가 인민 제일주의이며, 관료주의와 부정부패를 척결하면서 김정은 시대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나아가 “내부를 철저하게 다진다는 것은 밖으로 뛰쳐나올 준비일 수도 있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북한 언론은 ‘수입병’과 ‘의존심’에 대한 경고음을 계속 발신했고, 12월 4일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제14기 제12차 전원회의에서는 “반사회주의사상문화의 류입, 류포행위를 철저히 막”을 목적으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 채택되기도 했다.
또한 여러 차례의 공식 회의를 거쳐 간부들의 인사가 꾸준히 이뤄졌고,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박봉주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김재룡에 이은 김덕훈 내각 총리가 ‘현지 요해’를 분담하는 체제가 가동되고 있다. 군에서는 리병철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과 박정천 인민군 총참모장이 원수 칭호를 받아 김 위원장을 지근에서 수행하고 있다.
이에 비해 외부로 통하는 문은 철저히 닫아 둔 채로 당 정치국 후보위원에 오른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대미·대남 부문의 스피커 역할을 도맡고 있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인 리선권이 외무상으로 옮겼지만 후임 조평통 위원장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내년은 연초부터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와 1월 8차 당대회, 그리고 당대회의 결정을 국가적 차원에서 뒷받침할 1월말 최고인민회의 제14기 4차회의가 예정돼 있다.
특히 8차 당대회에서는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이 제시될 예정이며, 대외정책에서 어떤 메시지를 발신할지 주목되고 있다. 노년당원과 휴면당원 등을 물갈이하고 상당폭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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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관 기자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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