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소재 기업 심팩주물
3월 배당 이후 5개월 만에
노동자들에 희망퇴직 권고
현장 인력 30% 넘게 떠나
“해고 회피 노력 없어” 논란
지난 8월 코로나19 때문에 경영상황이 어렵다며 노동자를 구조조정한 기업이 코로나19가 이미 확산된 시점인 3월 말 주주들에게 100억원가량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영난을 노동자에게만 전가하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심팩주물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지난 8월18일 경영난을 이유로 희망퇴직을 요구받았다. 경영진은 노동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올해 누적 적자가 2억원이라 공장 인원 3분의 1을 감축해야 한다”며 인원 감축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팩주물의 인천 남동공장과 가좌공장 두 곳에서 현장 인력 3분의 1가량이 희망퇴직과 권고사직으로 회사를 떠났다.
노동자들은 형식은 희망퇴직이지만 사실상 정리해고라고 주장했다. 희망퇴직을 권고받은 노동자 A씨는 “지난 8월25일 오후부터 (노동자들을) 개별적으로 불러 면담을 하더니 그 자리에서 권고사직서를 쓰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경영진 중 한 명이 희망퇴직을 하지 않으면 기본급 2개월치에 해당하는 위로금을 받지 못한다며 노동자들이 희망퇴직서를 쓰게끔 종용했다고 말했다.
심팩주물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코로나19 때문에 이탈리아와 미국 등으로 수출이 어려워져 생산량이 절반 가까이 줄고 경영이 많이 어려워졌다”며 “노동조합과 협의해 부득이 희망퇴직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심팩주물 노동자들을 대리하는 박선희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노무사는 “코로나19로 인해 구조조정이 필요할 정도로 경영난이 초래된 것인지, 장기적 관점에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는지 등도 명확지 않은 상황”이라며 “노동자들은 (회사 경영 사정을)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회사의 일방적 통보로 생계 터전을 잃게 됐다”고 주장했다.
실제 이 회사의 주주들은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돼 국내 누적 확진자 수가 1만명에 육박했던 지난 3월 이미 회사의 이익을 나눠가졌다. 심팩주물 감사보고서를 보면 지난 3월25일 이익잉여금 중 100억원을 주주에게 현금 배당했다. 회사는 임시주주총회를 통해 자본준비금 120억원가량을 이익잉여금으로 전입시킨 뒤 보통주당 8만3333원을 주주들에게 배당해 100억원을 처분했다.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5개월 전이었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이미 한참 전부터 코로나19 유행이 있었는데 (구조조정) 몇달 전에 엄청난 액수를 배당하고 적자가 일부 났다고 인원을 감축하는 것은 회사가 해고 회피 노력을 다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노무사는 “정작 이익에 기여한 노동자들은 어떠한 권한도 행사하지 못하고 쫓겨나는 와중에 주주와 경영진은 이익을 챙겼다”고 비판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영난이 노동자 실직으로 이어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직장갑질119가 지난 9월 발표한 ‘코로나19와 직장생활 변화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 1000명 중 15.1%가 코로나19로 인한 실직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실직 사유로는 권고사직이 21.2%로 가장 많았다. 해고는 근로기준법에 따라야 하고, 경영상 필요를 증명하는 등 갖춰야 할 요건이 많아 기업들은 희망퇴직이나 권고사직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 변호사는 “회사들이 법적인 해고 처분인 정리해고보다는 권고사직이나 희망퇴직을 통해 사실상 정리해고 효과를 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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