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단식 농성장 갈 때마다 죄짓는 것 같아, 빨리 처리해야”
노동 몫 지도부로서 첫 회의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박홍배 최고위원의 첫 일성은 "현장 속으로"였다. 여의도에만 갇혀 있지 말고 국민의 현실이 어떤지,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직접 다가가 확인해봐야 한다는 당부였다. 이 말은 민주당이 국민과 다소 동떨어져 있다는 의미로 읽혀졌다.
그로부터 100여일이 흐른 지난 28일, 국회 최고위원실에서 만난 박 최고위원에게 되물었다. '민주당, 현장 속으로 잘 들어가고 있느냐'고. 그는 숨을 고른 뒤 "현장 활동이 어려운 건 사실"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국회의 시간이 바쁘게 흘러가긴 했다. '이낙연 호'가 출범하자마자 국정감사와 정기국회 일정이 연이어 있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3차 대유행도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박 최고위원은 "추석 전후로는 대표도 현장 노동자들을 만나는 활동을 많이 했고, 당내 노동존중 태스크포스(TF)도 당 전국노동위원회와 함께 어려운 (환경에 놓인) 사업장이나 (노동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사업장 등을 방문하려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며 "하지만 이후에 국정감사 일정, 코로나19 때문에 마음대로 다니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 부분은 좀 안타깝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의 방향키가 '현장'으로 향해야 한다는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박 최고위원은 그 이유에 대해 "국민의 생각과 의회 정치를 하는 분들의 생각은 다른 경우가 많지 않을까 싶다"며 "이를테면 왜 그렇게 정쟁만 하느냐는 문제도 있을 것이고, 또 코로나19로 인해 민생이 굉장히 어려운데 너무 권력기관 개혁 문제만 수개월째 다룬다든지 하는 문제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로 인해) '내 삶은 정치와 무관하다'거나 나아가서 정치에 대한 혐오로 가지 않도록 국민의 눈높이와 입법권자 또는 당의 눈높이를 맞추는 활동을 해야 한다"며 "특히 제 경우에는 현재도 노조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 많이 주문하고, 저 역시 적극적으로 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최고위서 양향자와 공개 충돌
"살아온 배경이 다르기 때문"
'중대재해, 예방이 중요하다' 당 일각 주장엔
"계속된 예방 활동에도 중대재해 안 줄어" 반박
박 최고위원은 정당인이자 노조위원장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2월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으로 취임해, 지난 8월 31일 이낙연 대표의 지명으로 노동 몫 최고위원 자리에 올랐다.
당초 각오는 "당에서 끝까지 노동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하는 데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노동존중 사회 실현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던 문재인 정부였고, (정권)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이런저런 아쉬운 모습들도 나왔지만 노동계가 바라는 정치의 모습을 위해 당내에서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바깥에서 보던 정치와 직접 겪는 정치는 같지 않았다. 박 최고위원은 이 차이를 "배우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떤 점이 가장 다르냐'는 질문에 "국회의원 300명 한 분 한 분이 다 헌법기관이라는 말들을 하지 않나. 각자 옳다고 생각하는 법·제도 개선을 위해서 같은 사안을 놓고 각기 다른 생각을 하는 모습들이 (밖에서 볼 때와) 참 다른 것 같다"고 에둘러 답했다.
답변을 듣자마자 떠오르는 몇 장면들이 있었다. 공개 회의에서 박 최고위원과 양향자 최고위원이 같은 사안을 두고 결이 다른 발언을 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 10월 16일에는 공정경제 3법의 핵심 내용 중 하나였던 이른바 '3%룰'을 두고, 최근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을 두고 부딪혔다. 박 최고위원은 노동자 입장을, 양 최고위원은 기업 입장을 대변했다. 당 지도부 내에서 공개적으로 이견이 표출된 건 매우 드문 경우라 '공개 충돌'이라고 쓴 기사가 쏟아졌다.
박 최고위원은 "각자가 살아 온 배경이 다르다"며 "저는 노동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제가 낼 목소리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이야기를 해야 했다. 양 최고위원이 살아온 삶의 배경은 충분히 다 알고 있지 않나. (삶의 배경을 감안할 때) 그런 말씀을 하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실 이번 임시국회의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중대재해법만 놓고 보더라도 민주당 내에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특히 '법의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경제가 어려운데 중대재해법까지 처리하면 너무 지나친 게 아니며 노골적으로 재계 편을 드는 의원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과잉 입법'이라거나 '처벌이 능사는 아니니 예방에 집중해야 한다'는 반론도 빠지지 않는다.
박 최고위원은 자신이 법을 전공한 사람도 아닌 데다가 원외 최고위원으로서 한계도 있지만 이 말은 꼭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바로 "중대재해로 인한 사망사고를 반 이상 줄이겠다는 게 우리 정부의 핵심 공약 중 하나가 아니었느냐"는 것.
그는 "예방활동이나 기존 법안을 강화하는 법 개정은 그동안에도 계속해왔다. 그러면 중대재해가 줄어들어야 하는데 실질적으로는 줄어들지 않았다"며 "기업 활동보다는 사람 목숨이 중요하기 때문에 중대재해법은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 가급적 연내 입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인터뷰 이후 공개된 중대재해법 정부안은 당초 의원들이 제출한 법안보다 대폭 후퇴해 껍데기만 남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더욱이 정부안을 중심으로 한 상임위 논의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사실상 연내 입법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대해 박 최고위원은 30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안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언급한 뒤 "상임위는 정부안에 얽매이지 말고 기 제출된 법안을 중심으로 법 시행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종합적인 예측을 바탕으로 신속하고 정교하게 법안을 다듬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래서일까. 박 최고위원은 국회 앞에 설치된 중대재해법 촉구 단식농성장을 방문할 때마다 마치 죄인이 된 것 같은 심경이라고 밝혔다.
그는 "농성장에 갈 때마다 두 가지 마음이 든다. 하나는 이 법안을 빨리 처리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여당 지도부의 일원으로서의 마음과 다른 하나는 노조 활동하는 사람의 입장, 이 두 입장에서 방문을 드린다"며 "빨리 중대재해법을 처리하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제가 죄를 지은 것 같이 죄송하다"고 고개를 떨궜다.
노동계가 민주당에 바라는 점은…
"제발 노동자를 적으로 만들지 말아달라"
박 최고위원은 노동 몫 최고위원으로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당과 노동계의 소통, 접점을 더 많이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그가 노동계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얘기는 "촛불정신을 잊지 말아 달라"는 것이라고 한다. 박 최고위원은 "이 정부를 탄생시켰던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고, 제발 노동자를 적으로 만들지 말아 달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고 전했다.
앞으로 민주당이 어떤 과제에 집중해야 할지도 물었다. 민주당이 당력을 끌어모았던 검찰개혁의 첫 단계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며 일단락된 상황이니 이제는 다양한 개혁 과제들에 대한 집중도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박 최고위원은 당이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비롯한 다양한 노동 현안들을 꼽았다. 그는 "ILO 3법이라고 얘기되는 노동 관계법들을 개정했는데, 협약 비준안은 아직"이라며 "이 협약 비준을 빨리 진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플랫폼 노동자 보호 대책과 관련해서는 "정부가 21일 발표한 대책은 노동법으로 보호할 수 없는 노동자들에 대해 특별법을 제정해주겠다는 것인데, 사실은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노동 기본권을 보장해주지 않겠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라며 "섣불리 진행하기보다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사회적 대화 결과를 국회가 반영하는 식으로 내년 상반기에 중점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 최고위원이 남은 임기 동안 반드시 해결하고 싶은 과제 역시 플랫폼 노동자들의 사회안전망 강화였다. 그는 "노동 시장이 계속 변하고 있기에 플랫폼 노동자들의 권리 보장과 안전 보장에 대한 내용이 현안이 될 것"이라며 "그 부분들은 계속해서 관심을 두고 조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는 활동들을 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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