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세상에는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지지만 자기 권리를 찾아오는데도 구걸을 해야 하는 경우는 한미관계밖에 없을 것이다.
코로나19로 한미연합훈련이 축소연기되면서 문재인 정부 임기내 전작권 환수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고 상황이 그것이다. 원래 한국 정부와 국방부는 이번 훈련에서 전작권 반환 '검증' 작업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부인하였고, 실제로 대규모 검증단을 파견하지 않아 검증이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최근 악화된 남북관계 상황에서 한미연합훈련의 반대를 외치던 시민들은 전작권 반환 검증훈련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설명에 잠시 주춤하기도 하였으므로 당국의 잔꾀에 화가 난데다가 미국이 훈련은 훈련대로 하면서 검증단은 파견하지 않았다고 하니 양쪽에서 빰 맞은 더러운 기분이다.
전작권을 받으려면 한미연합훈련을 더 크게 해야 하고, 한미연합훈련을 축소하면 전작권 반환일정에 차질이 빚어진다니, 비가 오면 빙수장수가 걱정이요, 볕이 나면 우산장수가 걱정이라는 식으로 뭘 해도 국민들이 이렇게 불편해 가지고서야, 도대체 뭘 하자는 전작권 환수작업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사실 이 이익의 충돌속에서 득을 보는 자는 따로 있다. 바로 미국이다.
전시작전권은 원래 노태우 대통령 시절 한미가 합의한 것으로 별다른 조건없이 반환하기로 한 것이었다. 평시작전권은 김영삼 정부 시절 1993년에 환수하고,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서 1995년에 전시 작전권까지 완전히 환수한다는 일정까지 합의해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북 핵개발을 이유로 연기시켜 놓았다가 노무현 대통령 때 2012년 4월 17일에 전환하기로 합의한 사항이다. 그런데 이걸 이명박 대통령이 2015년 12월로 미루어 놓고, 박근혜 대통령에 이르러서는 이른 바 한국군의 능력과 주변 안보환경 등 <조건>을 달아 사실상 무기한 연기시켜 놓은 것이다.
초대 대통령이라는 자가 손에 쥔 작전권을 미군 사령관 맥아더에 넘겨받친 것도 한심한 일이지만, 돌려주겠다는 작전권을 반대하는 대통령들도 제정신이라고 볼 수 없다. 일을 이렇게 꼬아놓으니 주인이 제 물건을 돌려받는데도 협상을 해야 하고, 조건을 달아 그 무슨 검증이라는 것을 받아야 하는 굴욕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상황이 바뀌니 이제 미국이 까다롭게 나오는 그 전작권 반환 <조건>이라는 것이 크게 보면 3가지인데, 아주 철저하게 미국의 입맛에 맞게 구성되어 있다.
첫째, 북 핵·미사일에 대한 초기대응능력, 둘째, 전작권 전환 이후 연합방위주도능력, 셋째, 한반도 및 지역안보 관리능력이다.
첫째 조건인 북 핵·미사일에 대한 한국군의 초기 대응능력이란, 킬체인(Kill Chain: 북 탄도미사일 선제적 제거)과 한국형미사일방어(KAMD: 북 미사일 공중 요격), 대량응징보복(KMPR: 북한 도발 때 전쟁지도부 제거) 등 3축체제 구축을 말한다. 사실상 북과 전쟁하자는 것이고 선제타격, 참수작전 등 한미연합훈련에 적용하는 미국 작전계획에 대한 집행프로그램들이다. 전작권 반환과정에서 미국이 검증하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미국의 대북전쟁계획 수행능력이고, 이런 조건을 충족하면 전작권을 반환한다는 끔찍한 내용이다.
게다가 킬체인은 F-35A 전투기와 미사일 등으로 북한 이동식 탄도미사일을 타격해야 하므로 미국 전략자산 구입이 필수이다. 한국군은 정찰·탐지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2023년까지 5개의 정찰위성 발사계획을 가지고 있고, 고체연료 개발 승인에 따라 KAMD용 중고도 요격미사일 개발도 속도를 더할 추세이다. 이러한 활동은 9월 평양에서 합의한 남북군사합의서에 정면 위반하는 내용들이다. 미국은 한국이 가져가는 전시작전권이 전쟁을 막고 평화를 구축하는데 쓰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이익에 맞게 전쟁을 위해 쓰라고 검증을 통해 강요하고 있다.
둘째 조건은 한미연합사와 관련되어 있다. 현재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권은 주한미군 사령관인 한미연합사령관이 가지고 있다. 전시작전권이 한국에 넘어갈 경우 한미연합사 구성과 운영, 한미연합군의 합동전력관리상 변화가 불가피하다. 지난해 10월 한미연합사령관을 한국군 대장이, 부사령관은 미군 대장이 맡기로 합의하였지만 미국 부사령관이 다시 유엔사 사령관을 맡고 한미연합사는 유엔사의 지휘를 받는다는 식의 논란이 일면서 미국이 전시작전권을 형애화하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 바 있었다. 게다가 한미연합사 사무실을 한국 국방부가 아니라 평택 미군기지에 두어야 한다고 했으니 한국군 출신 한미연합사령과인 평택미군기지에서 유배를 살게될 판이다.
사실 이것은 논쟁거리도 되지 않는 사안이다. 한국군은 한국군대로 운용하고, 주한미군은 주한미군대로 운용하다가 필요하고 협력하고 필요 없으면 주한미군은 나가면 그만이다. 독일, 일본 ㅂ두 그렇게 한다. 그런데 한미연합사를 유지하는 하는 것을 무너뜨릴 수 없는 대전제로 놓고 문제를 풀려고 하니, 미군 부사령관 위에 한국군 대장이 있고 그 위에 미군 부사령관이 유엔사 사령관이 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사실 이 그림은 공식적인 유엔조직도 아닌 유령조직인 유엔사가 60만이 넘는 한국군과 막강전력을 가진 주한미군을 지휘하는 어처구니가 없는 희극이다. 그리고 70년이나 넘게 한미연합체제속에서 미군이 시키는대로 굴러먹는데 이골이 난 식민지 한국군대의 노예습성이라는 비극도 보여준다.
셋째 조건은 더욱 심각하다. 한국이 전작권을 가져갈 수 있는 조건이 한반도 및 지역안보환경 관리 능력이라는 것인데, 결국 미국의 대중국대북전략의 전초기지 역할을 잘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보겠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주축으로 주한미군을 운용하고자 하며, 여기에 맞게 한미일 군사동맹을 재편하고 그 하위에 한국군의 역할을 부여하고자 한다. 미국이 말하는 전작권 검증이란 이러한 방향에서 한국군이 움직이면 전작권을 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모든 것이 명백해진다. 원래 대한민국의 군사주권이 전시작전권을 받아오는데 그 무슨 <조건>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전작권을 돌려받는 <조건>, 돌려주는 <검증>이라는 희안한 발상자체가 뼈속 깊은 사대노예근성의 산물이다. 그리고 전작권 반환 <조건>이라는 것도 국민들로부터 탄핵받은 박근혜 정부 시절 합의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여기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내 전작권 반환을 원칙으로 삼고, 기존 합의에서 말하는 <조건>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임기내에 전작권을 돌려받아야 한다.
그리고 한미연합훈련속에서 검증이라는 것도 할 필요가 없다. 문재인 정부를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이 그 검증이라는 것을 거치면 전작권을 순순히 돌려줄 것 같은가. 그래서 하지 말아야 할 한미연합훈련도 계속 하자고 구걸할 것인가. 한미연합훈련은 그 자체로 당장 중지해야 할 일이다. 한미연합훈련은 중국봉쇄와 대북적대정책을 유지하고자 하는 미국에게만 필요한 일이다. 우리에게는 전쟁이 아니라 평화가 필요하다. 전쟁을 위한 전작권이 아니라 평화의 길을 개척하는 전작권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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