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8.08 05:00 수정 : 2020.08.08 10:24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인터뷰 도중 “지금 같은 세상에 평온 말고 나를 지킬 수 있는 게 뭐가 있나 싶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평온을 아포리즘에서 찾는 듯도 했다. 지난 3월 <수렁 속에서도 별은 보인다>(인물과사상사)를 냈다.
‘지식인 사회의 독한 전사(戰士)’로서의 면모, ‘지금 같은 세상’에 관한 직설의 화법(話法)을 내던진 것도 아니었다. 지난 4월엔 문재인 대통령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정치인 팬덤을 비판한 내용을 담은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를 출간했다. 이 책이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킨 뒤 언론 인터뷰를 고사해왔다. 최근 출간한 <한류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만 하자며 인터뷰에 응한 그는 평온을 강조하면서도 “할 말은 해야겠다”며 한국 현실 정치·사회의 여러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문헌 인용’ 위주의 책보다 강도가 높았다. 부동산 구조 문제를 ‘약탈’로 규정한 그는 이 주제로 쓴 책을 인터뷰 며칠 전에 넘겼다고 전했다. 강 교수도 출간한 저서의 총수를 모른다. ‘부동산 약탈’ 책은 어림 ‘260여권’ 중 한 권이 될 듯하다.
내년 2월 정년을 앞둔 그에게 ‘논객 30년’에 관한 소회도 들었다. 전북대 연구실 벽엔 부임 첫해인 1989년 촬영한 강 교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인터뷰는 지난달 30일 진행했다. 지난 6일 추가로 인터뷰 이메일을 진행했다. ‘한류’, ‘청와대 의전’, ‘부동산 약탈’, ‘중앙권력과 지방’, ‘박원순 사건’, ‘어용 지식인’, ‘공영방송’ 등 주제 별로 재구성했다.
■한국은 성공한 대중문화 공화국…돈벌이 기획이라 가능했다
-<한류의 역사>를 낸 계기는요.
“<대중문화의 겉과 속>을 여러 권 내곤, 늘 찜찜했어요. 한류를 생각하지 못했던 거죠. 문화제국주의 관점에서 다루기도 했고요. 과거 내 잘못을 시인하는 차원에서라도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죠.”
- 오래전 이 주제로 칼럼을 한 편 쓴 게 기억납니다.
“사실 찔리는 건 있죠. 한류를 예견할 자신도, 능력도 안 된 거죠. 지금 공부하면서 왜 못 내다봤나 하고 생각하죠. 이번 책은 일어난 결과에 관해 나온 해석을 정리하면서 내 생각을 보탰을 뿐이에요. 개인적으로 강한 주장은 안 했어요. 일단 다양한 의견들 소개하고, 정리만 해놓자고 했어요. 한류를 내다봤다면 권위가 있을 텐데….”
- 핵심 메시지는요.
“딱 이거예요. 한국이란 나라가 대중문화 공화국이라는 거죠. 다른 나라는 대중문화 공화국 아닌가, 어느 나라건 대중문화 힘쓰고 있지 않나, 그렇게 볼 만한 게 있죠. 그런데 한국 대중문화 역사나 한국인의 열광 대상을 보면 다른 나라와 분명하게 구별됩니다. 예를 들어, 독특한 팬덤 문화, 떼창 문화가 그렇죠. 관광버스 춤도 생각해보세요. 노래방도 한번 보시고요. 팬덤 문화도 세계로 수출되고 있잖아요. 영화도 ‘천만 신드롬’이 있죠.”
- 구별의 근거는요.
“압축성장 과정에서 벌어진 살벌한 생존 경쟁이죠. 도시로 올라온 노동자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할 뭔가가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대중문화 공급이 필요했던 거예요. 살벌한 경쟁에서 대중문화가 그나마 노동자들 삶을 지속할 수 있게 해준 거죠. 1960~70년대 남진, 나훈아 노래는 그 시대상을 반영해요. 대중예술 평론가인 이영미씨가 책에다 기가 막히게 잘 짚었더라고요. ‘섬마을 선생님’이나 ‘흑산도 아가씨’ 같은 노래가, 도시의 언더독, 아웃사이더들, 소외된 사람들의 정서를 표현해준 거 아닙니까.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광주 사람들, 전라도 사람들이 해태 야구로 풀지 않았으면, 정말 못 살았을 거 같아요. 해태 야구로 (한과 분노, 억압을) 발산하면서 삶을 유지했던 거죠. 한국의 압축성장 과정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의 스트레스와 고통 등을 해소, 완화하는 데 대중문화가 엄청난 기여를 해온 거죠. 비판적 시각에서 대중 마취나 3S(스크린, 스포츠, 섹스)의 관점으로 보는 것만으론 부족해요. 그러니까 한국은 대중문화로 생존경쟁 문제를 해소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성공한 대중문화공화국이라는 거죠.”
- 한류 성공의 핵심 원동력은 뭘까요.
“송승환 감독 말이 제일 와닿았어요. 난타 성공 비결을 두고 인터뷰할 때 ‘상업적 기획이라서 성공했다’고 했어요. 솔직하게 핵심을 찔렀죠. 다른 이야기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시크하게 상업적 기획 이야기를 한 거죠. 가끔 국가기관에서 돈을 받아 문화교류 차원으로 가는 공연도 있어요. 문화부에서 돈 받아서 어떤 나라로 가 공연한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냥 공연한 걸로 끝이에요. 상업적 마인드를 갖고 성공시켜야겠다고 가면 공연 말고도 할 일이 많아요. 공연 파급력이 어떨지 고민하죠. 그 나라 사람들이 우리를 또 초청할지 시장조사하죠. 해외 나가서 돈을 벌어야 식구들 먹여 살리며 계속할 수 있지 않나요. 해외에서 인맥을 맺고, 공연을 지속 가능하게 하려는 고민과 노력에서 창의적 역량이 나와요. 국가가 돈 주며 어디 가서 공연해라, 이런 사회주의적 시스템으론 안 돼요. 국가에서 돈 받으면 창의적 마인드가 생기겠어요. 시장논리가 어쩌고, 자본주의가 어쩌고 하지만 좋은 점도 있잖아요. 한류의 성공엔 기획자, CEO들의 기가 막힌 상업적 기획 마인드가 있는 거죠. 하나 더 말하면, 인터넷 초창기 한국이 강국이라 했는데, 다 오락 코드 중심이에요. 그게 한류와 맞아떨어졌죠.”
-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 전후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의 역할을 두고 논란이 일어났는데요.
“이미경 부회장? 잘한 게 있을 거예요. 저만 해도 CJ 하면 독과점 이런 게 먼저 떠오르는데, 평가를 하려면, 깊이 들어가려면 뭘 알아야 하잖아요. 저는 역량이 안 돼서…. 그런데 우리나라 저널리즘 그렇게 가면 좋겠어요. 똑같은 이야기를 붕어빵처럼 찍어내지 말고요. 한류 주요 인물에 관해서 알고 싶어요. 이수만은 어떻고, 이미경은 어떻고…. 공과가 있을 거 아녜요. 한쪽 편을 들어도 좋으니, 사실은 사실대로 전해주라는 거죠. 판단은 독자들이 하라 하고요. 제가 얼마나 많은 기사를 보겠어요. 인물 평가로 들어가면 저널리즘이 피해버리고, 깊이 안 들어가더라고요. 의외로 논의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어요. 문화 부문의 변형된 진영논리예요. 진영이나 이념, 도덕적 접근법이 강해요. 이런 접근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너무 기울지 않았나 하는 말이에요.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이 비전도 있고, 잘한 일도 있죠. 그런데 이수만 하면 동방신기의 장기계약 같은 게 먼저 떠오른단 말이죠. 도덕으로 가버리는 거예요. 도덕 논쟁에 휘말리면 무조건 지지하거나, 반대하거나 둘 중 하나죠. 중간에 뭐 그런 게 없어요. 한류에 관한 논문을 보면, 교수님들은 한류가 산업 중심으로 흐른다고 평하는데, 개별 평가가 없어요. 위축되죠. 괜한 논란에 휘말리기 싫어하고요. ‘음악은 듣는 게 아니라 보는 시대로 간다’ 같은 이수만 말은 이후 다 맞아떨어졌죠. 기자들이 이수만 좋게 본 결정적인 계기가 뭐냐면, 이수만이 ‘세계를 어떻게 하겠다’는 말을 듣고 처음 ‘정신 나간 놈이구나’ 했다는 거예요. 나중 다 맞아서, 좋아하는 사람도 생겼고요. 비즈니스가 도덕만은 아니라는 거죠. 상도덕이 문제 된 사안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고요. 분석이 없어요. 그게 아쉽더라고요. 안윤태·공희준씨의 <이수만 평전>의 가치는 잘 정리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하는데, 더 들어가진 않아요. 이수만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책이죠.”
- 대중문화 노동자들 착취 문제가 계속 나옵니다.
“이 대중문화 공화국이 그저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죠. 아름답지 않은 게 많죠. 맺는말 제목이 ‘연꽃은 수렁에서 핀다’예요. 지상파가 죽어가니까 예전 같지 않지만, 지상파의 독립프로덕션에 대한 갑질은 치사하죠. 과거 기획사와 연예인 관계도 그렇고요. 민주 진영이나 진보쪽에서 비난했던 게 SBS나 종편입니다. 저도 SBS 개국할 때 엄청 비판한 사람이에요. 그런 정서까지 감안해도 한류가 성공할 수 있었던 모든 요인을 고려하면 SBS도, 종편도 기여했어요. 갑질을 일삼았던 지상파 전성시대 때 방송국의 수직적 통합 구조도 기여한 거잖아요.”
- 아이돌 장기계약을 두고 노예계약 비판도 나왔는데요.
“이수만 회장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어떻게 볼 거냐는 문제와 이어져요. 제가 이수만을 평가할 정도로 아는 건 아니지만, 이수만 하면 노예계약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장기계약 없이는 아이돌을 만들 수가 없어요. 말하려는 건 이거죠. 장기계약을 싸잡아 비난만 하지 말고, 장기계약이 한국 아이돌의 경쟁력 만든 점도 인정해야 한다는 거죠. BTS도 그거에요. 그걸 인정하되 수익 배분과 관리를 할 때 상업주의와 상도덕을 구분하자는 거예요. 애초 한류는 상업주의 산물이에요. 돈벌이하려고 나온 기획이죠. 아이돌 지망생이 부모 집 사주고 차 사주겠다는 열망 없이 어떻게 6~7년에 이르는 스파르타 식 훈련을 견뎌요. 이게 바깥에 팔려나가서 뜨니까 자랑스러워하는데, ‘어 몰랐네’ 하고 뒤늦게 정부도 숟가락 들이밀려고 하는 거죠. 한류 문화라는 게 돈벌이용 문화인데요. 거기서 약간 혼란이 있어요. 우리는 보면 말이에요. 정당한 돈벌이도 상업주의라고 해서 싸잡아 비난하는 경향이 있어요. 반자본주의 정서인데, 그 정서 연장선에서 보면 이윤 추구에 매몰되는 행위는 비판 대상이에요. 제가 상업주의와 상도덕을 구분해 보자는 거는, 저쪽(한류 종사자들)은 돈벌이를 한다는 걸 알아요. 다만, 그 돈벌이가 우리가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인가, 방식인가를 봐야죠. 상업주의와 상도덕을 구분해 따져주면 비판이 정교해져요. 상업주의 비판과 상도덕 비판이 섞이다 보니까, 정교하게 가르마를 타주는 비판이 약한 거 아닌가 하는 거죠.”
■높은 서열에 굴종, 낮은 서열 짓밟는 풍토 학교에서 가르쳐
- 2013년 <갑과 을의 나라>를 냈을 때 인터뷰하러 연구실에 찾아온 게 기억납니다. 갑질 하고도 이어지는 문제 같은데요.
“거시적 관점에 안 좋은 점이 있다는 것도 여기서 나타나는 거 같아요. 갑질은 증상이죠. 한국사회의 구조가 갑질 구조죠. 모든 게 갑질 구조에요. 자 보세요. 지방에서 서울로 가야 해요. 개천에서 용 나는 거죠. 용이 뭡니까. 갑질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는 거예요. 우리나라 전국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상 주는 걸 보세요. 이기심까지는 버릴 필요 없이, 이기심과 이타주의 공존을 통해, 남들을 위해, 공익을 위해 기여했는가를 따져야 하는데, 우리는 고교든 대학이든 얼마나 출세했는가를 따져요. 언제인가 미국 대학 총장이 연세대에서 만나 각 학교 자랑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미국 대학 총장은 사회를 위해 봉사한 사람이 많은 걸 자랑으로 여기는데 연세대는 출세한 사람을 열거하는 거예요. 우리가 서울 가서 살아야 하고, 서울에서도 강남에서 살아야 해요. 대학입시가 뭐예요. 고등학교 때 뭐 배워요. 좋은 대학 갈 이유가 뭐예요. 대학을 서열화해놓고 10대 아이들이 자기보다 높은 서열에 굴종하고, 낮은 서열을 짓밟는 풍토를 학교에서 가르친다는 거죠. 대학 입시 시즌 어느 고교든 홈페이지에 들어가 봐요. ‘서울대 몇 명 합격’부터 시작해요. 이 지역에서도 전북대는 안 넣어줘요. 전북대 의대만 넣죠. 그게 한국의 교육이에요. 안 고쳐지죠. 깊게 보자면, 개발독재 하면 박정희와 연계해 독재에 방점을 찍는데, 한국이 허리띠 졸라고 미친 듯이 일하게 만든 원동력은, 갑질할 수 있는 위치에 가는 거예요. 갑질은 문제 안 삼았잖아요. 성공한 사람의 특권이었고요. ‘네가 못났으니까, 억울하면 출세해’, 그게 노래뿐이겠어요. 진보적인 사람들도 술 취하면 ‘내가 누군지 알아’ 이러잖아요. ‘내가 갑질 할 위치에 있는데 네가 감히 어디’ 이건 진보와 보수를 초월하는 생활문법으로 태어나 지금까지 각인되어 온 겁니다. 한국의 놀라운 압축성장의 역사는 이런 생활문법을 이용한 거죠. 그러니 미친 듯이 일하고, 미친 듯이 공부한 거예요. 어디 가서건 떵떵거리며 큰소리칠 수 있는….”
-책에선 ‘국뽕’을 긍정적으로 보신 듯한데요. 한류의 민족주의나 국수주의를 비판하는 흐름도 있는데요.
“그런 비판이 필요하다고 봐요. 조심하고, 경계하는 선에선 동의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가만히 보니까, 경계하자는 게 지나친 거 같아요. 그걸 오리엔탈리즘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비슷한 느낌을 받아요. 어느 선진 자본주의 국가이건 간에 자기 네 자랑 할 일 있으면 하고, 다 열광한단 말이에요. 우리가 좀 열광의 정도가 세겠죠. 소위 선진국 중 어떤 국가와 한국이 사정이 같은가 이 말이에요. 국뽕을 요구하는 우리의 역사가 있다는 거죠. 그 필요나 요구는 현재 진행형이에요. 우리가 미국하고 중국하고 붙기만 하면 걱정하잖아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까봐요. 현재 당면한 거 아닙니까.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같은 촌스런 질문하죠. 남의 나라 인정(認定)에 굶주린 듯도 하고요. 서양인들 쓴 책 보면, 꼭 그런 이야기가 들어가요. ‘왜 그렇게 남의 시선과 이목을 중요하게 여기는가.’ 하지만 한국의 파란만장한 근현대사만 놓고 봐도 그게 이해가 간다는 거죠. 제 입장은, 좋은 뜻으로 한류를 두고 민족주의, 국수주의를 경계하자는 목소리는 수용하되, ‘조금 신난다’는 그거까지 국뽕이라 비난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는 거죠. 조심스럽고, 온건한 문제 제기죠. 전체 맥락을 총체적으로 보자는 시각에서 쓴 거죠.”
- 예전 문화제국주의 관점에 치중했다고 했는데요.
“한류 연구하시는 분들 꽤 돼요. 다양한 색깔 있어요. 한류의 상업성을 맹공하는 진보파가 있고요.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 경우는 한류의 이상이 김민기씨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에요. 그분이 강조하는 건 쌍방향성, 진정한 문화 교류죠. 그런데 한류는 그냥 돈벌이에요. 과거에 맹위를 떨쳤는데, 할리우드 제국주의라고 비판했는데, 그냥 재밌고, 상품성도 있는 거예요. 한류도 그렇게 가는 거죠. 예를 들어, 내가 미국 대학 신방과 교수인데 ‘할리우드가 문화교류도 하고 쌍방소통도 해야지, 영화만 팔아먹어서야 쓰나’, 물론 그런 말은 할 수도 있죠. 그런데 우리는 그런 관점의 비중이 높아요. 굳이 반박하고 싶지 않은데, 애초 한류는 돈벌이로 시작했기 때문에 성공한 거거든요. 그걸 우리가 누리는 겁니다. 거기다 대고, ‘작은 문화제국주의’ 라고 하는 건 안 맞는 거 같아요. 저는 문화제국주의 부르짖던 입장에서 이탈한 거죠. 백원담 교수 같은 경우, 창비에 실린 이욱연 교수의 글이 지적했듯이, 지금 한류에 비판적이면서도 기대를 걸어요. 한류가 문화교류 중심의 바람직한 모델로 가고, 한국이 중심이 돼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요. 그건 좋은 문화제국주의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죠. 어찌 됐건, 전 한류를 두고 일단 상업주의와 상도덕을 구별하자는 입장인 거죠. 정당한 평가 못할 게 뭐가 있나요. 이수만 나오면 도덕으로 가버리니까, 이야기하기 위축되고 꺼려지는 것이고요.”
- 대중문화 중 즐기는 게 있다면요.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 야구 중계 틀어 놓고, 책 읽는 거예요. 책 읽다가 아나운서나 캐스터 목소리가 높아지면 그때 보면 돼요. 서너 시간을 어떻게 줄곧 다 봐요.(웃음) 중요한 장면만 보죠. 대중문화는 마니아급은 못 미치지만, 좋아하는 편이죠, 드라마도 다 보는 건 아니지만, 요즘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열심히 봐요.”
■의전은 현실과 반대로… 현실감각 못 갖게 만들어
- 조선일보가 지난 4월 8일자 종합 1, 2면 <강준만, : 문 대통령, 최소한 상도덕도 안 지켰다”>는 제목을 달아,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 서평을 [단독]을 붙여 내보냈습니다. 화제와 논란을 함께 불러일으켰는데요. <인물과 사상사>. 편집장이 조선일보가 정치적 목적으로 편협하게 침소봉대했다고 반론도 내놨고요.
“편집장이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웃음). 이건 이야기해야겠다고 했죠. 문 대통령 자기가 한 취임사를 한번 읽어보면 좋겠다는 거죠. ‘취임사는 원래 그렇게 쓰는 것’이라고요? 듣기 좋은 말만 하고, 하나도 안 맞으면 어떻게 하란 말이에요. 언어 문제가 있어요. 그 이야기를 어떻게 안 하고 살아요. 아무리 의전이고 의례라고 해도, 그냥 듣기 좋아지라고 하는 게 취임사라지만, 취임사에서 화해와 소통을 이야기해놓고 어떻게 그래요? 문 대통령이 지난달 17일 21개 국회 개원 연설에서 ‘대결과 적대의 정치를 청산하고 반드시 새로운 협치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했죠, 그래 놓고 29일 여당이 ‘임대차 3법’ 단독 처리하는데, 협치가 되나요.”
- 취임사와 의전 문제를 더 설명하신다면요.
“문 대통령 발언을 의전 연장에서 봐요. 우석훈씨가 지난 4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내가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아 상도덕이 없다고 비판한 부분을 두고 ‘취임사야 그냥 좋은 얘기를 한 것 뿐’이라고 했어요. 그렇게 봐 버리기 시작하면 대통령의 모든 발언이 의전이에요. 최근 문 대통령의 부동산 관련 발언 좀 보세요. 현실과 동떨어졌어요.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고 장담하고 싶다’(2019년 11월19일),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이다’(2020년 1월7일), “집값이 급등한 일부 지역은 집값이 원상 복귀돼야 한다”(2020년 1월14일) 등 결연한 의지를 공언했음에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났으면 그 이유를 설명하면서 국민을 납득시켜야 할텐데, 오직 의지의 표현만 있을 뿐이에요. 알맹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현실과 반대로 가버렸어요. 의전이 현실감각을 못 갖게 만들어요. 의전은 이미지 메이킹이 목적이죠. 국가에 필요한 겁니다. 그 자체를 부정할 수 없죠. 다만, 어느 정도로 의전을 중시하느냐는 별개 문제라는 것이죠. 대통령이 연설에서 현실 감각 없는 발언을 했는데도, ‘다 의전이다, 의례다’ 그러면 이게 뭐예요. 알맹이가 없어지죠. 의전만 잘하잖아요. 세월호나 가습기 문제도 그래요. 피해자들 불러서 사진만 찍고…. 그거 빼고 뭐가 있어요. 가습기와 세월호 차이는 이런 거예요. 세월호는 적이 있어요. 박근혜 정권이에요. 가습기는 애매한 거예요. 정부라는 거, 각 부처에 다 있는 거 아네요. 정치적 적이 있고 없고의 차이인가 싶어요. 가습기 희생자 수가 엄청나잖아요. (몇번을) 뒤집히고 해야 했는데…. 피해자들은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죠.”
-청와대의 탁현민씨 재기용을 두고도 의전 강화라는 해석이 나왔는데요.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문제죠. 어느 나라, 어느 정권이든 이미지 메이킹은 필요하죠. 그런데 필요한 정도로 하느냐, 목숨 거느냐는 차이가 있을 뿐인데, 지금 청와대는 너무 심하죠. 제가 <박근혜의 권력중독: ‘의전대통령’의 재앙>(2016)이란 책도 쓰고 해서 이 문제에 관심이 많은데, 국민을 감동시키겠다는 선의가 뒷감당이 안 될 땐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것 같아요.”
- 의전 문제는 여러 부문에, 또 일상에 퍼져 있는 듯한데요.
“의전은 갑질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드러냅니다. 한국의 의전문화, 이게 대단해요. LG전자 프랑스 법인장을 지낸 에리크 쉬르데주가 쓴 책(<한국인은 미쳤다!>, 2015)이 있어요. ‘의전에 미친 한국인’에 대한 고발서예요. 책엔 서울에서 사장급이 파리로 오는데 교통통제 해줄 수 없냐는 요청이 들어왔다 같은 사례가 들어 있어요. 한국은 의전으로 시작해, 의전으로 끝나요. 재밌는 건, 보수와 진보 차이가 없어요.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김규항 씨가 ‘보수적인 부모는 자녀가 단지 일류대생이 되길 원하고, 진보적인 부모는 자녀가 의식 있는 일류대생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죠. 진보와 보수 간 의전 차이는 이 정도일 뿐이지 똑같아요.”
-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가 시끌시끌했는데, 책이 좀 팔렸나요.
“많이 나갈 책은 아니잖아요. 조금 더 나가긴 했을 거예요(웃음). 재밌어요. 저는 권당 수천부급 작가예요. 책이 잘 안 나가요. 지식인들조차 책을 안 읽어요. 유튜브 중심으로 달라지는 거죠. 서평이 조선일보에 1면에 나가고 나서, 어디 박사급 연구원인 듯한 분이 제게 항의 메일을 보냈어요. ‘보수 독자들 노려서 책 팔아먹으려고 이러느냐’고요. ‘‘나한테 어떤 게 이익인지 계산도 못 하냐, 당신 같은 사람들한테 어필하는 게 더 잘 팔리지’라고 답할까 말까 했어요. 이분은 이해관계로 보는 거잖아요. 좋아요. 그렇다면 공정하게 다 같이 이해관계로 보자는 거지요. 순수를 강조하는 그런 사람들은 안 그러냐 이거죠. 사실 이해관계가 본(本)이라는 걸 깨달으면 이해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풀려요.”
- 이해관계가 본이라는 뜻은요.
“열화 같은 지지, 신앙 같은 지지는 한 방에 훅 날아가요. 별거 없어요. (신앙보다) 더 무서운 건 이해관계예요. 그게 100은 아니지만 본(本)입니다. 현재 문재인 정권하에서 얻을 게 참 많아요. 연예인에서 지식인들까지요. 이명박, 박근혜 때도 그랬죠. 더 거칠고 덜 거칠고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하다못해 무슨 방송언론 세미나 하나 열려도 인적 구성이 달라져요. 프로젝트 거리도, 이사나 위원 자리도 있는데, 철저하게 편 가르기 한단 말이에요. 이명박, 박근혜 때 편 가르는 기준 중엔 과거에 무슨 민주 시국 선언 한 적이 있느냐까지 있었어요. 현재 문재인 정부 하에선 그런 구분이 없나요? 네 편 내편 안 가리냐 이거죠. 그러니까 이해관계가 본이라는 거예요. 절대적 잣대로 잴 순 없지만, 누군가가 어떤 발언을 하면, 그걸로 이득을 보는지, 손해를 보는지 따져야 해요.”
■대선 주자 책, 이제 안 낸다…무한책임 뒤따라
-<김대중 죽이기>와 <노무현과 국민사기극>을 출간하고 킹메이커로 불렸습니다. <안철수의 힘>도 냈고요. 대선 주자에 관한 책을 다시 낼 계획이 있나요.
“이제 안 하죠. 칭찬은 후과가 있어요. 누굴 칭찬하면 무한책임을 져야 해요. <안철수의 힘>은 말도 못 하죠. 내가 그 사람을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할 뜻도 없고요. 그때 그 작업을 한 건 2012년 대선 때 문재인으론 안 된다고 봤거든요. 지금 국정농단 응징이 오래가듯이 노무현 정권 응징 분위기가 여전히 살아있다고 본 거죠. 내 말이 맞은 건데 사람들이 인정을 안 해요(웃음). 국정농단이 아니었으면 2017년에 됐을까요? 난 그것도 조금…. (안철수는) 어찌 됐건 이후 실망스러운 행태가 나왔는데, 나랑 연계돼 버리니까…. 김대중도, 노무현도 그래요. 김대중 말년에 비판 많이 했거든요. 노무현 때도요. 이제 그 짓은 안 하려고요(웃음). 대신 우회적으로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 같은 정치적 소비자운동 같은 걸로 말하죠. 그 말도 안 하고 어떻게 살아요. (대선 앞두고 특정 주자에 관한) 글이나 책은 안 쓸 겁니다.”
- 호감 가거나 인정하는 정치인이 있나요.
“더 이상 사람 문제가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 요만큼 모자라고, 저만큼 낫고 한 사람들은 있겠죠.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들, 배울 만큼 배우고, 사회적 책임과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생각을 안 하고, 못할까요? 이건 정치 문제예요.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길 바라는 많은 사람이 있을 거란 말이죠.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사람들도요. 이런 식으로 정말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사람들도 많다면, 그건 지도자 개인 문제가 아니잖아요. 역사적 업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속 편하게 집단적으로 저럴 수도 있구나 하고요. 그런데 사적으로, 개인적으로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전체 사회를 놓고 그렇게 볼 순 없잖아요. 시대가 흐르며 묵은, 해결해야 할 업보는 세월이 해결해주는 거라고 봐요. 답이 없는 거 같아요. ‘일부 권력자나 권력의 특정한 부분이 문제고, 나머지 사람들은 문제가 아니어야 하는데, 저 사람들 믿었는데, 너마저 그러네’, 이렇게 매번 펑펑펑 깨져 나가니…. 개인적으로 많이 보셨을 거 아녜요. 다른 사람도, 주체가 없어져 버리는 거죠. 집단의 문제고, 시대의 문제고, 피치 못할 역사의 한계가 있겠구나 하고 봐요. 거시적으로, 미시적으로 골고루 보는 시각을 가지는 게 좋겠다 싶어요. 그러면 맘이 평온해지죠.”
■한국의 정권 교체는 자해를 안 하느냐의 경쟁
- 거시적, 미시적으로 볼 때 정치쪽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까요.
“50년 집권 이야기마저 나오는데 87 항쟁 이후로 놓고 보더라도, 정권 교체 주기가 길어야 10년이에요. 2004년 탄핵 때 열린우리당이 대박 쳤죠. 그런데 어떻게 몰락했나요. 2008년 총선땐 진보 대 보수의 비율이 이전의 ‘162 대 125’에서 ‘92 대 200’으로 바뀌었어요. 지난 4·15 총선 결과와 비슷했어요. 2008년 이후 한동안 ‘진보의 죽음’이 거론됐잖았아요. 그런데 지금 진보가 살아난 게 진보가 잘해서인가요? 보수가 자해(自害)를 한 덕분이잖아요. 지금 진보는 자해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요? 한국의 정권교체는 누가 더 잘하냐의 경쟁이 아니고, 누가 더 자해를 안 하느냐의 경쟁이 되고 말았어요. 문 정권의 고충은 이해하죠. 권력 잡았지만, 국정이 얼마나 어렵겠어요. 박정희나 전두환 비판하기 쉽죠. 그런데 경제 기본 골격과 경로는 박정희, 전두환한테 물려받은 거잖아요. 바꾸기 정말 어렵죠. 그러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뻥치지 말고, ‘진짜 어렵다.’ 그런 맛도 있어야죠. 개발독재 30년을 극복해야 하지만, 그 문법이 이어 내려왔잖아요. 국민들이 거기 체질화되었으니 얼마나 바꾸기 힘들어요. 지도자가 확 바꿀 수 없죠. 그러면 부작용도 터져 나오고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죠. 인내해야죠. ‘50년 넘게 형성된 하나의 시스템을 바꾸겠다. 기다려 달라, 올바른 방향으로 가겠다. 내 임기 시절에 뭐가 나타나진 않을 것이다’라고 국민들한테 솔직하게 말하는 게 민주주의 시스템이죠. 그런데 어떤 대통령이 임기중에 또 그렇게 이야기하겠어요. 그런 말 못 하죠. 그런 어려움은 알 거 같다 이거예요. 천천히 가더라도 이런 게 낫죠. 그런데 검찰개혁 그 난리를 피워놓고, 엊그제 법무부 법무 검찰 개혁위가 검찰총장 수사지휘권 지휘권을 폐지하고, 법무부장관이 고검장들 수사지휘하는 걸 방안이라고 내놨던데, 정권의 청사진이 겨우 그거에요. 세상에 이게 개혁이냐고요. 이거 윤석열 우상화에요. 이 정권이 우상화에 사로잡힌 거예요. 윤석열 하나 찍어 내려고, 국민적 신뢰 받고, 장기적으로 가야 할 형사 사법 제도를 그따위로 바꾸는 게 말이 되는 짓이냐고요. 생각은 그런 거겠죠. ‘우리가 50년, 100년 집권한다. 우리는 선한 권력이잖아. 우리가 임명하는 법무부 장관 맘대로 하는 게 그게 개혁인 거야.’ 말이 웬만큼은 통해야죠.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느냐는 거예요. 저러면 다 웃어야 하는데, 또 (여러 사람이) 텔레비전 나와서 옹호하더구만요. 어느 정도 수준이 되고 해야 이야기가 나오지. 누가 악역을 맡아줄까 했는데 떡 하니 나온 게 추미애죠. 지금이 2020년인데, 보수가 휩쓴 게 앞서 말씀드린 2008년이에요. 그때 신문 기사 보면 지금과 똑같아요. 그때 ‘진보는 끝났다’는 거였죠. 지금은 ‘보수는 죽었다’고 봐야죠. 그런데 한국처럼 역동적 나라가 어딨어요. 12년 만에 뒤집어진 거 아니에요. 이대로 안 간다니까요. 우리나라 정치가 누가 누가 잘하나 시합하기보단, 누가 더 나쁜가를 경쟁하죠. 그러면 저쪽을 나쁘게 보이게 해야 하죠. 머리 싸맬 필요 없어요. 공부를 뭐 하러 해요. 동기 부여가 모든 역량을 저쪽을 공격하는 데서 나와요. 유권자한테 선택 사항이 없어요. 선택지가 2개뿐이에요. 제3의 선택지 나와서 기울기도 하지만, 이쪽에서 잘해야 할 필요가 뭐냐 있냐는 거죠. 상대를 나쁜 쪽으로 몰아가면 되는데요. 원래 머리들이 좋았을 거 아니에요. 시민 정치 참여도 그런 에너지에 바쳐지고, 그런 흐름에 휩쓸리고 빠져들게 돼요. 그렇게 하는 걸 진보라고 생각하나요. 거리 두고 보면, ‘이 나라 어디 가는 거야’, ‘왜 이분법으로 계산해’., 늘 드는 의문이 이거예요. ‘문제 있다’ ‘잘못했다’ 하면 ‘누구 좋은 일 시키려 하느냐’ 그래요.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그런 말(‘무공천으로 서울시장, 부산시장을 적폐세력에게 넘겨줄 수 없다’)을 꺼내요. 상도덕이 있고, 상도리가 있는 건데요. 빠져나갈 구멍을 만든 거 아닙니까. ‘적폐세력에게 이익이 돌아간다’, 이거 전형적인 논리거든요. 모든 판단 준거가 반대편에 유리하게 가면 안 된다는 거죠. 그냥 이분법에 함몰 돼서 반대쪽 득 될 일 해선 안 된다는 게 민주당 주류파 논리예요. 왜 그 둘을 놓고 이야기하느냐, 이 말이에요. 언제까지 저쪽 때려잡는 데 힘을 다 가져다받칠 것인가요. 그러니 ‘저 자식들 반대하면 안 되니까’ 하고 정책도 졸속으로, 속전속결로 달려가는 게 아닙니까. 막 밀어붙이고, 그리고 박수치고…. ‘제로섬 게임이야, 저쪽에 득이 되면 안 돼’. 어떻게 정치를 그렇게 볼 수 있냐는 거죠. 보수 야당을 과대평가하는 거예요.”
- 세대교체 이야기를 했는데. 젊은 정치인으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인가요.
“그 의미가 아니고요. 저 자신을 보면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크게, 넓게 보게 되더라고요. 반드시 어떤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전력 질주하는 그런 행태 자체와 거리를 두게 되더라는 거죠. 그럴 필요도 있다는 걸 인정한다는 거죠. 그런 점에서 내가 확실히 나이 먹어간다고 느낀다는 거죠.”
- 그런 성찰에 이른 동력은요.
“동전의 양면을 실제 생활에선 적용 안 해요. 우리가 아름답게 생각하는 이면을 보면 그런 게 있는 거예요. ‘우리가 왜 운동권 했나’ 이것도 보면요, 지금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까, 지금 생업에 종사하면 되잖아요. 이타적으로 했던 거 아닙니까. 그런데 ‘내가 이렇게 나섰으면, 지도자로서 이 나라를 어떻게 해 보겠다’, 지금 그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대학도 좋아야 하고, 운동권에서 간부급을 해야지 정치하는 거죠. 이걸 비판하는 분들은 극소수예요. 대체로 당연하게들 여기죠. 그래서 한국 사회나 그 바탕이 갑질의 구조라는 거죠. 제 생각이 옳다 같은, 믿어 의심하지 않았던 확신의 강도는 확 줄어들어요. 다르게 생각할 수 있잖아요. 무슨 일 해야 하겠다는 확신을 갖고 반독재 투쟁할 때 ‘내가 잘못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독립 운동하던 선배 운동가에서, 반독재 투쟁하던 586 운동권까지, 그 시절엔 그런 이분법이 필요했죠. 지금 세상이 달라졌잖아요. 그런데 한번 몸에 밴 건 안 없어진다니까요. 지금도 독재 대 반독재 구도로 가는 거 아니예요. 그 구도가 이기기 유리하게끔 돼 있어요. 보수가 지리멸렬하니까요. 잘 도와주잖아요. 한쪽에선 쾌재 부르며 반길 일이지만, 나라 전체로 보면 보수와 진보 수준은 연동해요. 보수 수준이 낮아지면 진보도 낮아지고, 진보가 낮아지면, 보수 수준도 낮아져요. 잘 해야 할 필요가 없어져요. ‘저 새끼들, 형편없다’고 폭로만 하면 되고요. 또 실제로 형편없게끔 놀아주면 되고요.”
■이기주의 때문에 박원순 보호하려는 심정 생겨…지도자 추종은 권력 감정
-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 등 광역단체장들 성폭력 문제가 이어졌는데요.
“정말 난 놀랐어요. 박원순 그분이 의전에 집착할 줄은요. 사건이 일어난 배경이 의전이에요. 의전이 세면 어떤 일이 생기는 줄 알잖아요. 군대에서 ‘누가 뜬다’ 하면, 그게 의전이에요. 왜 이렇게 비서진이 비대해요? 의전은 지도자급 인사들을 범접할 수 없는 위치로 올리는 거거든요. 무뎌져요. 권력 중독이 되어버린다고요. 의전이 그렇게 만들어요. 애초 그분이 왜 그랬을까요.”
-박원순 시장 추모를 두고 논란이 일었는데요.
“사람이 두 가지 종류일 것 같아요. 어떻게 해서든 이 사람을 옹호해야 자신도 정당화되는 느낌 이 드는 사람들 있죠. 박원순을 보호해야 한다는 심정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이기주의 때문에 그런다고 봐요. 다 자기들하고 관련된 거 아녜요. 인간관계에 의해 알게 모르게 작동하는 개인 이기주의죠. 전 인간의 한계나 취약성 때문에 존경이라는 표현을 잘 안 쓰지만, 박원순은 글을 보고, 말을 들으면 존경할만하다고 생각했죠. 어떤 사람이 갖고 있던 사상을 높게 평가했는데, 내 기준으로 무너진 걸 볼 때 ‘어 이래?’, 세상에 믿을 사람 얼마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고, 착잡해져요. 정부와 정권에만 비판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전반적 시민사회 문제죠. 시민사회가 허약해요. 숱한 명망가들이 다 무너졌어요. 조국 사태에서 박원순 사건에 이르기까지요. ‘아니, 너마저, 그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심정이죠. 그분들은 자기들은 진실을 이야기했다고 하겠지만…. 힘이 좀 빠지더라고요. 스스로 내 마음의 평온을 위해, ‘아 이건, 시대사적으로 한 세대가, 한 시대가 저물고, 다른 세대로, 다음 시대로 건너가는 과도기’라고 여기죠.”
- 대부분이 대선 주자들이었는데요.
“‘박원순을 어떻게 볼 것인가.’ 나는 박원순도, 김대중도, 노무현도, 문재인도 그냥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좋은 일 하면 지지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선을 그어요. 저 같은 사람들은 예외죠. 다수는 안 그래요. 한국인들은 지도자 추종주의가 강해요. 슬기롭고, 현명하며 비전 있는 지도자를 추종하고, 그 중심으로 모이는 게 큰 힘이 될 수도 있죠. 나쁘기만 한 건 아닙니다. 내 주변 사람들을 보면 모든 생각이 나랑 같은데 어디서 다르지 보면, 지도자를 보는 시각이 다른 거 같아요, 난 정치인들, 힘쓰는 사람들 보면 국민 입장에서 이용할 사람이라고 봐요. 떠받들어야 할 사람이라 안 보죠. 거기서 다른 사람들과 생각이 갈려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부문 대부분에 저랑 생각이 같은데, 그 점에서 달라요.”
- 정치인과 권력자에 대한 추종과 팬덤을 비교할 수 있을까요.
“너무 비슷하죠. 과거 H.O.T 팬들 일각에 ‘우리 오빠가 그랬는데, 뭐 어때’라는 문화가 있었죠. 팬덤 문화를 정치에 적용할 때 ‘빠’들은 절대 인정 안 해요. 막스 베버의 권력 감정을 대입할 수 있어요. 전 순수라는 걸 안 믿어요. 극렬 지지자들은 순수하게 지도자를 지지한다고 해요.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당신은 순수하지 않다. 행동경제학을 봐라, 매몰 비용 있지 않나. 지금까지 감정과 에너지 그 사람 지지하는 데 받치지 않았나. 당신이 감정을 투자한 것이다. 그 투자한 감정이 일관성을 잃고 달라지는 걸 원치 않는다. 매몰되는 걸 원치 않지 않느냐. 거기서부터 이기주의다. 뭐가 순수하냐’고요. 권력의 한 줄이라도 자신이 동참하고 있다는 역사의식을 갖는 거예요. ‘나는 평범하고, 무력한 소시민이지만, 내가 지지하는 지도자가 큰일을 하고, 좋은 일 한다.’ 내가 권력의 가닥에 참여하는 거죠. 즉 내가 문재인이 되고, 지도자가 되는 거예요.”
- 국정농단 때 광장에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외치던 이들이 왜 권력자나 정치인을 추종하게 되는 걸까요.
“저는 SNS 탓이 크다고 봐요. 완전히 만개한 세상이에요. 필터 버블이 괜한 말이 아니예요. 끼리끼리 이야기만 들어요. 놀라울 정도예요. 저 사람이 명색이 대학교수인데도 자기 페이스북 추천 오른 거 말고는 다른 걸 안 봐요. (정보니 의견이니 기사니) 하나만 보면 그걸 중심으로 판단하죠. 다른 의견을 읽으면 이렇게만 볼 건 아니네 하고 약간 의심이 생긴다 말이에요, 반대쪽을 믿는다는 게 아니라요. 예전 안티조선운동할 때도 학생들한테 (양쪽 정보, 의견을) 다 보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한 학생이 ‘주관이 없어진다’고 진지하게 항의하는 거예요. 그걸 넘어 서서 당신만의 주관을 가져야지 했는데…. 지금 정보 이용 방식이 그래요. 한쪽만 보면 넘어가게 돼요. 여기서 호남이니까 극렬 지지자들을 만나기 쉽잖아요. 물어보면 다른 의견에 접촉을 안 해요. 도전받아본 적이 없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저는 지인들과 이야기할 때 정치 이야기 나오면 화제를 돌려버려요. 극우라고 100% 거짓말하는 건 아니죠. 극좌도 마찬가지고요. 뻥튀기와 왜곡이 덧붙여지더라도, ‘재들은 왜 저래? 한번 보자’ 그러면 분별력이 없는 것은 아니니 ‘저걸 문제 삼네. 나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하면서도 한번 더 보고, 생각하게 되잖아요. SNS 뿐만 아니라 TV 뉴스도 딱 하나만 시청해요. 그러면 안 돌아와요. 신문은 팩트 자체는 실어주는데, 신문을 잘 보지들 않으니까. 요즘 한겨레는 내키지 않으면, ‘뉴스 가치가 없네’ 하고 실을 만한 것도 아예 안 쓰더라고요. 한겨레 옴부즈만 보니까 좀 알겠더라고요. 한겨레에 항의 전화하는 사람들이 (박원순을 기리는) 한겨레 보도 정도도 마음에 안 든다는 거예요. 항의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게 최종 사법적 판결이 있기 전까지 무죄 추정해야 한다는 건데, 국정농단 때 대규모 촛불 집회하고, 탄핵하자고 한 게 대법원 유죄 판결이 나서 그런 건가요? 독자들이 떨어져 나가니 위축 효과 정도가 아니라 공포를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기막힌 연구 주제예요. ‘버블 속에 갇힌 바깥 세계’란 잘 만든 말 같아요.”
- 페이스북 같은 SNS를 하나요.
“한 번도 한 적 없어요. 평온의 적이죠. 애초 안 했어요. 뭐 하려 해요. 전화도 없이 한동안 살았는데요. 소위 다 죽어간다는 레거시(전통) 미디어 정보만 섭취하는 데도 시간이 모자라요. SNS 저걸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이 뭔 이야기를 해요. 농담이고요(웃음). SNS를 안하면 거리두기에 좋아요. 일장일단이 있다고 봐요. SNS 영향은 크죠. 강남순 교수(미국 텍사스 크리스천대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글 한번 보세요. 박원순 시장이 죽고 자기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랑 그 뒤에 쓴 중앙일보 칼럼(박원순 이후, 5가지 책임적 과제)이 달라요. 신문 칼럼 쓸 때는 피해자를 배려하는 글을 썼어요. 칼럼은 아주 좋아요. 이분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 전문이 고발뉴스에 올랐더라고요. 꼼꼼히 읽었더니, 자기 우울을 호소해요. 몰입한 거예요. ‘박원순을 좋아했는데, 이 사람이 도대체 뭘 잘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나’라고 몰입하죠. SNS가 몰입하기 좋아요. 한 단면만 보고 쓴 거예요. 단어도 과격해져요. 강 교수가 페이스북에서 말한 ‘순결주의 테러리즘’은 어떤 인물에 몰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특정 사안과 분리하면 할 수 있는 이야기예요. 순결의 테러가 있고, 순결주의는 위험하거든요. 강 교수 페이스북 글은 이 맥락하고는 안 맞아요. 신문 칼럼은 여러 정보를 비교하며 숙고의 과정을 거쳐요. 몇번 다시 들여다보고, 고치고…. SNS는 그런 게 없어요. 그 차이가 큰 거 같아요. 경어체로 쓰면 또 이런 점이 있어요. 읽은 사람들이 받아들일 것인가를 떠나서 쓸 때부터 내용이 걸러져요. 경어체가 워딩을 바꿔줘요. 경어체 힘인 거 같아요. 그래도 좀 갑갑하죠. 독한 말 해야겠다고 하면 독해질 수 있는데, 경어체로 쓰면 순화되죠.”
”
-지난해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을 내셨죠. 페미니즘은 최근 2~3년간 계속 이슈인데요.
“이런 생각 가진 분들 대개 많아요. ‘너희들, 페미니즘이 뭐냐. 계급 문제 신경 써야 의미 있지. 잘 살고, 많이 배운 것들이 권리 주장하는 거 아냐’라고 비하하고 폄훼하는 거죠. 진보적 남성의 다수가 이래요. 그거 말 안 된다고 봐요. 거기 계급이 왜 들어가요. 계급 문제까지 다뤄주면 더 좋죠. (페미니스트들이) 계급보다 더 본질적인 성별 문제로 이의 제기하겠다는 건데, 뭐가 문젠가요.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다문화주의랑 겹쳐져요. 다문화주의 비판하는 사람들도 ‘계급 중심으로 대동단결해 싸워야 하는데, 다문화주의가 중심을 흩트리다’고 하는 거죠. 전 넌센스라고 봐요. 미국과 유럽 다문화주의는 득세했지만, 한국은 다문화주의 시동도 못 걸린 상태거든요. 계급 중심주의라는 게 노동 일변도 아니냐는 거죠. 페미니즘도 그렇게 보는 거죠. 계급을 편협하게 해석한 겁니다. 페미니즘 들여다보면, 복잡하잖아요. 재벌들 자식들 사이에서 왕따 있을 거예요. 재벌 랭킹에 따라서요. 그 물에서 ‘너가 나한테 갑질하냐’ 하고 싸울 수 있잖아요. 있는 놈끼리 싸워도, 갑질 갖고 싸우면 좋은 거예요. 페미니즘 두고도 ‘저 많이 가진 것들이…’ 이러는 건 진보적 시각의 편협함이죠. 다 득이 되고, 힘이 되는 것인데요.”
- 20대 문제는 어떻게 보시나요.
“20대들 안 좋은 점 많죠. 그런데 20대가 다른 세대와 차이가 뭐냐? 개인주의 같아요. 진보적인 사람들은 개인주의를 안 좋은 의미로 받아들이는데, 한국 사회는 개인주의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예요. 평소 여러 주제를 두고 시시비비를 냉정하게 가리던 사람들이 자기 패거리나 진영에서 무너져버린다 말예요. 정파주의에 휩쓸리고요. 개인이 없는 거예요. 개인주의 의미가 복잡한데, 이기주의 비슷한 의미로도 쓰죠. 좋은 의미의 개인주의, 개인이 없어요. 20대에게서 부정적인 모습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좋은 의미의) 개인주의 의식도 강해요. 박원익씨하고 조윤호씨가 쓴 <공정하지 않다 : 90년대생들이 정말 원하는 것>이란 책에 나온 내용이 와닿더라고요. ‘내가 살지 않았던 시대에 대한 책임을 나한테 묻지 말라’, 이거에요. 우리 세대만 해도 페미니즘 하면 무조건 지지해야 한다 이런 게 있었는데, 요즘 20대 친구들은 그런 게 없죠. 이걸 보통 안 좋게들 봤죠. 그런데 20대들이 가부장제나 가사분담 문제에 관한 생각이 남녀 차이가 없어요. 20대 남성들은 20대 여성들이랑 경쟁해온 거예요. 우리 세대는 공정을 따져도 자꾸 역사와 과거를 떠올리고, 구조 문제를 따진단 말이에요. 20대 친구들은 ‘내가 책임지지 못할 역사와 구조를 묻지 마라, 당장 이 상황에서 벌어지는 것만 보자’는 거죠. 20대의 이런 의식이 부정적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어떤 사안을 두고 정파·부족·진영 논리로 접근하는 건 막아주는 거죠.”
■진보, 보수 공통의 약탈 핵심이 부동산
- 한겨레 칼럼 ‘합법적 약탈’이란 제목으로 정부의 부동산 정책 문제를 비판했는데요.
“다 좋다 이거예요. 세상일이라는 게 반드시 이리저리 엮이는 게 있어요. 다 살펴봐야 하잖아요. 부작용 리스트도 만들며 주도면밀하게 진행하는 게 통치고, 행정이고 정치인데, 지금은 일단 내지르고 보잖아요. 내지르는 게 진보인가요. 진보의 정의가 그런 거라면 세상에 진보만큼 쉬운 게 어디 있어요. 역기능도 최소화하는 고민도 해야 하니까 진보가 어려운 거예요. 진보하려면 머리가 더 좋아야 해요. 능력이 없는 건 아니라고 봐요. 위에서 오더가 떨어지면, 오더대로 가버리는 거예요. 당도 그렇고요. 아닌 건 따져봐야 하는데, (문제 제기하면) 집중공격 대상이 되잖아요. 문재인 지지파 중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독재 대 반독재 프레임을 끌고 가는 겁니다. 놀랍게도 보수파가 그 프레임에 호응해주면서 (진보파는) 거저먹고 가는 거죠. 조국이 말마따나 이념진보, 생활우파로 나눴는데, 생활로 가면 같단 말이에요. 현 상황에서 이념이 중요해요? 부동산이 중요해요? 진보니 보수니 공통의 수탈, 착취의 핵심이 부동산 아닙니까. 다른 문제가 없잖아요.”
- 부동산 문제를 쓸 때 톤이 강해진 듯한데요. ‘전사 강준만’으로 돌아온 것 같기도 하고요.
“약하게 쓴 건데요(웃음). 저는 전주에 딱 집 한채 있어요. 10년 전 샀는데, 가격이 떨어졌을 거예요. 생각해보자고요. 서울에서 전세 사는데 갑자기 주인이 올려달라고 한다거나, 친구들이 은행 빚 내 산 아파트가 20억이 됐는데, 자신은 여전히 무주택자이거나…. 누굴 때려서 강제로 무엇을 취하면, 처벌받죠. 사람들이 피해자 억울한 것도 알아요. 그런데 부동산 약탈은 피해자가 오히려 무능하다고 욕먹는 약탈이에요. 사람들이 부동산 문제 분노한다고 하지만, 약탈당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이렇게는 안 돼요. 부동산 약탈이라는 데 분노해야 해요. 자기 삶이랑 아무 관계없는 검찰개혁 촛불집회에 엄청나게 몰리는데, 부동산 촛불집회는 왜 안 열리나 싶어요.”
- 최근 임차인 집회가 열리긴 했습니다.
“그 집회는 제가 말하는 집 없는 이들, 약탈당한 이들의 집회와 성격이 다르고요. 집주인들 분노는 진보쪽 언론들이 안 좋게 쓰던데, 또 꼭 그렇게 이야기할 건 아니라고 봐요. 정책이 합리적이어야 하는데, 평소 아무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던져놓으니 집주인들이 나온 거죠. 이게 ‘홍수정치’예요. 준비 안 하다가 홍수가 나면 밑도 끝도 없이 크게 빵 터뜨려요. 최근 여권에서 서울대 이전 방안을 냈죠. 서울대를 옮겨요? 되지도 않을 이야기를 왜 하냐는 거예요. 서울대 문제는 이전이 아니에요. 국가 재정을 서울대에 몰아주는 게 문제예요. 그런데 ‘지방 대학들에 재정 지원해 잘 키우자’는 문제 제기가 없어요. 대학평가라는 것도 가진 놈이 더 가지게 하는 지표로 계산하니 몰아주게 되는 거 아닙니까. 인서울 가치는 더 올라가고 비인서울은 더 내려가고…. 이걸 수십년 방치했다가 부동산 방안으로 내니 그냥 짜증이 나요.”
- 한겨레 칼럼에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소속 언론사 단비뉴스가 보도한 통계를 인용하셨던데요.
“지난 12년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전국 대학에 지원한 재정지원사업비 총 49조6749억원 가운데 서울대에 지원된 금액은 4조6175억원으로 전체 9.3%예요. 연세대 2조4479억원, 4.9%, 고려대는 1조8258억원 3.7%입니다. 이 세학교 17.9%에요. 서울대는 전국 대학 평균의 20배, 연세대·고려대는 7~10배를 지원받았어요. 나머지 대학은 각자 알아서 생존하라는 거잖아요. 이명박·박근혜 정권도 그랬지만, 문재인 정권도 국가균형발전 비전이 전무해요. 갑자기 뭐 터지면 행정수도 이전 어어 하고…. 화가 치밀죠. 평소 개판 치다가 시험 다가오니…. 그런 식으로 시험 잘 볼 수 없어요.”
- 부동산 약탈의 주체는요.
“이 시스템인데, 그 관리자가 누구예요? 정부죠. 작년 통계를 보면 유주택자가 56.2%, 무주택자가 43.8%에요. 자가 소유자들도 불만 있고, 평수 늘려 가려 했던 분들도 화가 치밀겠지만, 자기 집 가진 사람이 여론 주도하며 반향 불러일으킬 수 있죠. 정권차원에서 표 계산하죠. 어떤 게 타격 있을까. 무주택자는 소수인데다…. 그린벨트 정책도 역대 정권 중 가장 기가 막히죠. 역대 정권이 정권안보 차원에서 잘한 게 판자촌 따 뜯어버리면서 분산시켜버렸잖아요. 성남 대단지 이후 집결할 수가 없어요. 지금 집결할 수 있게끔 돼 있다면, 큰 사고가 터졌죠. 게다가 이 사람들(무주택자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들 많아요. 신경 쓸 겨를이 없어요. 아이고, 서울의 집 없는 사람들은 호구지책 때문에 지방으로 딴 데로 갈 수도 없으니 계속 당하는 거 아닙니까. 세상은 평화로운 듯하니, 약탈의 심각성이 안 드러나죠. 우리처럼 학교에서 편안하게, 공부로 밥 먹고 학생들 가르치는데, 이게(문제 제기나 비판) 최소한의 의무 아닌가 싶어요. 완전히 약탈이고 날강도 짓인데, 실수 정도로 넘어가요. 이 정권은 그간 왜 약탈을 방치했느냐는 거죠. 부동산에 대한 문제의식이 집권 초부터 있었다면 이렇게 됐을까요.”
■검찰개혁은 적을 만드는 데 가장 유리한 이슈
- 집권 이후 검찰개혁 같은 열성지지자들이 원하는 이슈 중심으로 간 듯 한데요.
“사람들 피를 가장 끓게 하는 이슈고, 적을 만드는 데 가장 유리한 이슈죠. 부동산 같은 삶의 문제는 피를 끓게 하는 데, 약하다고 생각한 거죠. 약탈이라는 문제 의식을 가져줘야 해요. 분노하고 문제제 기해야죠. 강남에 살지 않는 서울 시민들은 강남에 계속 특혜 가는데도 왜 내버려 두나요? 강남이 한국 부동산 폭동의 진원지인데요. 거기서 모든 역사가 비롯되잖아요. 강남. 서초에 그린벨트 많다면서요. 거기 집 지으면 되죠. 문 대통령이 뭐라고 했어요? 후세 위해 (강남, 서초 그린벨트를) 지켜야 한다고 해놓고 태릉을 지목했어요. 태릉은 그린벨트 아닌가요. 다음주 월요일자(8월3일자) 한겨레칼럼에 이 문제를 실었어요. ‘절대 다수가 그린벨트 수호에 동의하는데, 그린벨트에도 위계가 있다. 강남은 절대 지켜야 하고, 강북은 조금 훼손해도 되고, 수도권은 그냥 훼손해도 되고, 지방은 훼손 논란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썼어요. 전철역 개수도 보세요. 도봉·서대문·양천·관악·금천·강북구의 지하철 역을 다 합하면 28개인데, 강남구 혼자 27개에요. 인구수가 거의 엇비슷한 강남구는 노원구에 비해 지하철역이 2배 이상 많아요. 하다못해 지하철역의 에스컬레이터마저 노인 인구가 많은 강북은 강남의 절반 수준에 지나지 않구요. 수서고속철(SRT)은 강남의 잘 갖춰진 교통 인프라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죠. 서울 아파트 값을 잡을 카드라며 착공에 들어간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의 중심도 강남구 삼성동이에요. 물론 수요가 많으니까 그런다고 하겠죠. 말도 안 되는 변명이에요. 전철역 많아지고 편해지면 인구가 느는 거죠. 쌍방향이잖아요. 그래도 서울 시민들 가만있어요. 강남 그린벨트 지켜야 하는 거죠. 언젠가 거기 들어가서 살날을 고대해서 그런 건가요? ”
- <약탈 정치: 이명박, 박근혜 정권 10년의 기록>에서도 약탈을 다뤘는데요.
“이명박, 박근혜 때도 약탈 정치를 했는데, 부동산 약탈은 진보보수에 아무 차이가 없다는 거죠. 이명박이가 집 가진 사람 중심의 못된 정책을 많이 하긴 했죠. 김헌동씨가 이명박의 반값 아파트 발상을 한 건, 건설회사 사장 출신이라 돌아가는 걸 너무 잘 알고, 시장 맥을 짚어서 파고 들어간 건 낫다는 취지로 이야기했어요. 진보는 당위로만 접근하죠. 어떤 정책을 내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신경 안 써요. 신경 쓸 수 있는 능력은 있긴 하죠. 그런데 그냥 오다가 급하게 떨어져 ‘야 큰일 났다’ 하고 속도전으로 가니, 부작용이 나오는 거죠. ‘나중에 고쳐가며 하면 되지’, 이런 멘탈이잖아요. 이런 식으로 가서 해결되겠어요. 오피니언 리더 역할을 하는 지식인과 언론인들 다 집 한 채씩 있잖아요. 조금 거칠게 말하자면, 부동산 약탈 체제의 수혜자 아닙니까. 다만 ‘이건 아니다’ 하는 사회의식은 작동하겠죠. 수혜자와 피해자의 큰 차이는 분노의 강도 아닙니까. 피해자들이 분노를 느껴야 하는데, 약하죠. 다음 책 원고를 막 넘겼는데, ‘부동산 약탈’을 주제로 썼습니다. 부동산 약탈이란 걸 확실하게 하고, 약탈하는 게 누구인지를 분명히 하고 그런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 주변 지인 중 세입자들은 꽤 분노하는데, 결집은 왜 안 될까요.
“분노 표출하는 사람 많은 건 알아요. 그런데 그러면서도 내 탓을 해요. 내가 못 난 탓이라고요. 왜냐면 나와 같은 조건의, 권력도 뭐도 없는 다른 사람이 (빚은 내 아파트를 사는 등) 어떤 선택을 해서 (부동산 약탈의) 수혜자가 되잖아요. (피해자가 된) 사람들이 분노하면서도 자기 탓하면서 살길을 찾으려고 해요. 집단 항의하면 어느 세월에 나한테 돌아오는 게 있나 하고요. 그러니 안 움직이는 거죠. 부동산 문제는 심리학자들도 같이 봐야겠더라고요. 상당 부분 심리도 작동하는 거 아네요.”
- 정당 정치 문제도 이어지는 듯한데요.
“<부동산 계급사회> 손낙구씨가 조심스럽긴 했지만, 내내 한 말이 진보정당이 부동산에 관심이 없다는 거죠. 경실련도 알아요.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들도 부동산 관심 없어요. 전 손낙구 같은 사람이 진보쪽 가서 대표가 되면 좋겠어요. 한국의 진보정당 대표급들은 밑에서 빡빡 기어 올라온 사람이라기보단, 다들 고생들은 하셨지만, 학벌 엘리트들이에요. 이게 한국만의 문제는 아닌데, 그렇게 (토지 공동 소유를 강조한 ) 헨리 조지 이야기 오래 해놓고, 왜 진보적인 사람들이 부동산 외면했는가가 의문이에요. 가장 많이 약탈당하는 게 부동산 아닙니까. 그게 지금 빠져버린 거죠. 부동산이 바로 계급 문제예요. 계급 문제를 노동 중심으로 편협하게 봐온 거죠. 노동쪽에서 회원이 오고, 조직화되죠. 거저 먹는 겁니다. 부동산 약탈의 피해자들은 조직화 안 돼 있어요. 관심도 없어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죠. (부동산 피해자를 배제하고 노동 중심으로 계속 가는 건) 운동 편의주의죠. 그러니 부동산 약탈당하는 사람들이 안 들어오는 거예요.”
■‘중앙권력에 줄 대야 산다’는 의식 깨야 지방 문제 해결
- 예전 서울 학사 지원을 예로 들며 지자체를 비판하신 게 떠오릅니다.
“(지자체 학사 지원) 해봐야 욕만 바가지로 먹고…. 서울 책임 아니고 지방 책임이에요. 피해자가 말 안 하는데, 어떻게 가해자한테 이야기해요. 호남의 문 정부 지지도 보세요. (지지도에) 지방 문제는 아주 적게 들어갔어요. ‘호남 출신이 권력 여기저기 있다더라’ 그러면 ‘어이 좋아’, 그걸로 끝이에요. 지방 사람들도 보면 서울 대학 재정지원 집중에 화 안내요. 왜? ‘내 새끼 저 대학 보내면 되잖아’예요. 그게 확률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런데 내 새끼 아이돌 만들고, 프로야구 선수 시키려는 부모들은 사만, 수십만 분의 1 같은 확률 그냥 안 따져요.”
- 영남패권주의 주장도 나오는데요.
“일부를 거들었는데, 생각이 달라요. 김욱 교수 주장은 어떤 점에 동의하고, 어떤 점에 동의하지 않죠. 지금은 영남 패권 문제가 바닥에 얼마나 남아 있는지 모르겠는데, 관심이 떠났어요. 영남패권주의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한 부분은, 이제 호남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거예요. 지금 이 시점에선, 호남이 영원한 피해자인 것 같지는 않다고 봐요. 거슬러 올라가면 호남이 피해자이죠. 그런데 지금은 호남을 이야기해야죠.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을 말하는 거예요. 서울과 지방의 구도 문제예요. ‘중앙권력에 줄을 대야 우리가 산다’ 원초적인 의식을 깨면 해결되는 문제예요.”
- 중앙권력 의존은 영남 등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인데요.
“그렇죠. 그런데 호남이 왜 문재인 정권에 어떤 일이 벌어져도 악착같이 지지하는가를 보면, 우리 정권이라 생각하는 거예요. 대통령은 호남 출신이 아니지만, ‘우리가 빌려온 거고, 우리 정권이니까 지켜야 한다’는 거예요. 지역이 지역민의 삶이나 발전을 두고 중앙권력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은 못해요. 중앙권력 맘대로 휘두르고, 여기저기 떡(예산)을 줄 수도, 안 줄 수도 있는 한 절대 안 사라져요. 그걸 깨면 저절로 해결됩니다. 그게 개혁이에요. 지역은 각자 살려고 노력해야죠. 중앙권력이 한 지역을 키울 수도 있고, 다른 지역을 죽일 수도 있는 시스템 자체에 대해 문제제기, 이의제기를 안 해요. 여기 대고 영남패권주의 하는 건 번지수가 안 맞다는 거예요. (자의적 중앙권력이 작동하는) 그 시스템을 더 공격해야 하는 거죠.”
- 지방자치 실시한 게 30년 정도 되었는데요.
“김대중은 1990년 13일간 단식하면서 지방자치를 출범시켰어요. 제가 비판한 것 중 하나가 그게 정권 잡는 데 유리해서 한 건가요. 결과적으론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잖아요. 지방 자치를 했을 때 생기는 문제를 얼마나 고민했는지, 임기 내 제대로 못 하면 이렇게 가야 한다, 이런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지방자치 문제를 비판하기가 갑갑해요. 시스템이 그리됐어요. 지난 총선 끝나고 전북일보가 당선된 44명 국회의원 사진을 1면에 실었어요. 어? 전북은 의원이 10명인데, 뭐지? 봤더니, 이 사람은 처가가 전북이고, 저 사람은 시댁이 전북이고…. 이게 단지 전북일보 1면의 문제, 지역 신문의 문제가 아니예요. 지역 사람들 마인드가 그래요. 엊그제인가 ‘전북 의원들 힘 빌어 잘 되어야 한다’, 이런 게 사설로 나와요. 모든 마인드가 이거에요. 이게 지역에선 먹혀요. 모든 지역이 그렇지만 호남이 심해요. 서울에서 지역을 비판하는 내용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게 있어요. 호남이 반세기 넘게 고통스럽게 살아왔죠. 그런데 언제까지 그걸 다 이해하고, 받아들여 줘야 하나요. 나이 먹고 이상한 일 하는 사람을 두고 어렸을 때 순탄치 못한 삶과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언제까지 이해해줘야 하나요. 물론 지방정부 사정은 이해할 수 있어요. (지역 문제는) 정권 책임이고, 시스템 문제인 거죠. 하지만 언제까지 그래야 하나요. 그러니까 영남패권주의 번지수가 안 맞는 거예요.”
- 지자체 강연도 다니는 걸로 아는데요.
“책임은 서울에 더 있다고 보지만, 지방이 길들여졌어요. 지방 사람 마인드가 ‘서울 권력을 통해 더 받아야 한다’예요. 스스로 해볼 수 있는 걸 전혀 하지 않는 건 아닌데, 신경을 덜 써요. 그러니 뭐가 나오겠어요. 강연은 코로나로 인해 거의 중단됐죠. 강연으로 먹고사는 사람은 코로나19 때문에 타격이 크겠어요. 진중권씨 생각이 나더라고요. 어떻게 먹고 사나.”
- 진 교수완 예전 여러 차례 논쟁을 벌였는데요.
“사안 별로 동의할 건 동의하고, 다툴 건 다투고. 요즘은 동의하는 게 많죠. (페이스북 글을 전한 뉴스를 보니) 잘 싸우더라고요. 그런데 진씨도 참 재밌어. 예전엔 현 여권 돌격대 노릇을 치열하게 했는데…. 긍정적으로 해석하죠.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한 듯해요. 본인도 그렇게 이야기하고요.”
■지금 지식인은 치어리더…해 봐서 안다
- 지식인 문제가 전공인데, 요즘 지식인 정의나 지위가 달라진 듯합니다.
“과거 지식인은 매체에 대해 접근의 특권을 누리던 사람이란 말이죠. 방송이든, 신문이든 발언하고, 글 쓸 수 있는 우월적 지위를 누렸어요. 그 지위가 지금 완전히는 아니지만 거의 사라졌죠. 전통적 의미의 지식인이 끝난 거죠. 어떻게 변했는지도 봐야죠. 치어리더로 바뀌었어요. 전사가 된 거죠. 제가 해봐서 알잖아요(웃음). 제가 치어리더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걸 여러 번 썼어요. 노무현과 노사모를 지지할 때 제가 말하면 박수들 쳤죠. 말하는 사람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건가? 그게 아니었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죠. 어떤 사안을 두고 저 사람이 저런 말을 했을 때 다시 생각해봐야지 하는 그게 아니었던 거죠. ‘치어리더가 선동이나 하면 되는 거지, 감히 어디 선수기용 같은 데 개입하려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던 그때 논객과 저술 활동 등) 제 역할이 치어리더였다는 거죠. 이게 자기를 돌아보는 데 큰 도움이 된 거예요.”
- 최근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가 문 정부 부동산 문제를 비판했다가 지지자들에게 공격을 당했는데요.
“내가 볼 땐 조 교수가 ‘큰일 나겠다’ 싶어서 문재인 정권을 위해서 한 말이거든요. 그런데 조 교수를 공격하는 거 봐요. 진중권씨도 지금까지 민주당을 비호하고 투쟁한 게 많아요. 그런데 (문 정권을 비판하니까) 안 되잖아요. 치어리더와 관중의 관계가 주종인지, 갑을인지 따져봐야겠지만, 관중이 치어리더를 고용한 건 맞아요. ‘네가 내 심정을 잘 대변해주네, 언어 구사력이 뛰어나네, 독설도 잘 내뱉네’, 이래서 택한 것뿐이에요. 그런데, 나도 착각했고, 지금 치어리더들도 착각해요. 그게 뭐냐면 ‘사람들이 날 믿어주기 때문에 내가 결을 달리하는 말을 하면, 환영은 안 해도, 한번 내 말을 생각해보겠지’ 하는 거죠. 그냥, 그 순간 끝나는 거예요. 조 교수 건은 너무 웃기지 않나요. 아마, 비난 글 쓴 이들이 조 교수의 과거 공로를 모를 수도 있어요. 알고도 능히 그럴 수 있지만…. 한겨레 성한용 기자를 안빠라고 씹는 이들도 있어요. 말도 안 되는 말이죠. 예전에 비해, 확실히 학습능력이 떨어진 것 같아요.”
- 치어리더를 거부한 이후로 변화가 있다면요.
“청중이 없어요(웃음). 찾지도 못하겠어요. 가끔 책을 쓰는데, 그냥 몇 천명 단위 사람들 대상으로…. (웃음) 그거 없는 거죠. 굳이 내 야심을 야기하자면, 그래도 혹시 내 책을 사보는 몇천 명 중에 누군가가 (내 글의) 영향을 조금 더 넓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 정도죠. 정치권 팬덤 문화도 오락코드가 강해요. 야구장 가서 치어리더 즐기고, 저쪽에서 야유하고 그런 거죠. 이런 생각도 들어요. 진짜 좋아했던 사람들이 당해요. 언제 느꼈나 하면, 노무현이 처음 대선 후보 하겠다고 나섰을 때를 또렷하게 기억해요.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노무현 좋게 안 봤거든요. 다 좋은데, 대통령감은 아니라는 거였죠. <노무현과 국민사기극>(2001)을 쓰기 전인데, 제가 노무현을 지지해야 한다고 말하면, 노무현을 폄하해요. 2003년까지도 <노무현 정권의 딜레마>, <노무현 죽이기>, <노무현은 배신자인가>를 썼어요. 그 뒤로 어떤 일이 벌어진지 아세요. 저는 노무현을 앞장 서서 지지하고, ‘이 사람 괜찮다, 뭐가 있다’, 했는데 과거에 했던 약속들을 번복하길래 돌아섰단 말이에요. 그런데 ‘노무현이 깜냥이 되냐’고 했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열성 신도가 되어 있더라고요. 제가 과거 (노무현이 인기 없을 때) 지지했고, 이런 건 상관없어요. ”
■공영방송 경영진 뇌리를 지배하는 최우선 관심사는 정권안보
-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에서 어용 저널리즘과 어용 시민 문제도 지적했는데요.
“전부는 아닐망정, 정권에 우호적인 언론들이 대체로 같이 (정권, 정부의 방향으로) 가버리잖아요. 그런데 정권만의 문제는 아니죠. 우리가 책상 앞에 앉아서 소탐대실을 말하긴 쉬운데, 경로의존이 된 상황에서 경로를 바꾸려면 엄청난 고통이 일어나잖아요. 한겨레 같은 경우도 주요 열성 독자 대부분이 어용을 해주길 바라잖아요. 그런 열성 독자들 화나게 하면 당장 타격이 오는 거예요. 발목이 잡히는 거죠. 신문도 그렇고, 방송도 그렇고 멀리 내다보고 달라져야겠다고 못하는 거예요. 악순환이죠. 당장 살고 보자고 하는 거죠. 경영진이니 지도자가 주요 역할이 비전을 갖고, 간부들 대화하면서 그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데, 그게 되겠나 이겁니다. 수신료를 올리건, 수신료를 범공용방송에 나눠주건, 무슨 (시민들) 신뢰를 받아야 할 거 아닙니까. 정파적으로 어용하면, 반대쪽 사람들이 오케이하고 되겠어요. 안 되잖아요. 저를 포함해서 언론학자들이 비겁한 거예요. 아니 제가 비겁하지요. 한두 마디 하고 끝내는 걸로 면책하려는 보신주의죠.”
- 최근 공영방송 문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저널리즘 J 팀이 인터뷰 왔는데, 제가 이야기했거든요. ‘어떤 정권이 오더라도 (이 프로그램이) 계속 가면 좋겠다. 그런데 이 방식은 아니다. 시청률은 떨어지겠지만, 반대편 패널도 넣어라’고 했죠. 확답은 안 했는데, 당시 받은 느낌으로는 달라진다고 생각했어요. 아니더라고요. 보수쪽에서 아무리 공영방송 어용됐다고 해봐야, 이들이 말하면 안 들어요. 공영방송사 사장 선임방식에 관계없이 방송언론인들 스스로 알아서 할 순 없나요?”
- 사장을 어떻게 뽑자고 하신 거죠.
“정권만 바뀌면 난리잖아요. 노무현 정부 때 정연주 사장 일이 있고, 이명박 때도 수단과 방법 안 가리고 야비하게 (사장 선임을) 했잖아요. 정치권이 사장 선임에 끼지 말라는 거죠. 한국 시민사회 믿어보자고 한 거고요. 사장을 선임하는 용도만 가진 방송의회를 만들자고 했어요. 돈 드는 거 아니니까. 추천 방식으로 하면, 정파적으로 나눠 먹고, 오염되니까요. 후보들이 포섭 못하게 각계 수천명으로 의회를 만드는 거죠. 후보들이 정견 발표회도 하고, 투표도 하자고요. 공공기관장 복수후보 놓고 하는데, 부분적으로 약식으로 도입되기도 했죠. 돌아가신, MBC 이용마 기자도 그런 아이디어였어요. 구체적인 방식은 나랑 좀 다르지만….”
- 방송의회도 정권이 원하는 사람이 뽑을 수 있지 않나요.
“한국 사람들이 이런 게 있죠. ‘방송의회가 나를 사장 뽑아줬다’, 방송의회는 정권에 대한 보은 의식을 차단할 수 있어요. 이것만 해도 대단한 거죠. 수천명이 사장 뽑아서 ‘역량껏 해봐라’며 임기 지켜주면 되잖아요. 보수니 진보니 할 게 뭐가 있어요. 그 안에서 타협이 어렵기도 하겠지만…, 그런 역량이나 마인드, 비전이 있는가 싶어요. 권력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공영방송 내부자들이 온몸으로 온갖 문제를 구현하잖아요. 권력의 압박 받아서 저러는 게 아니죠.”
-JTBC 시청률은 떨어지고 MBC는 올랐는데요.
“MBC는 재미 봤죠. JTBC는 타격이 크고요. 지금 MBC니 공영방송 주요기능이 쉽게 말해 정권안보 밖에 더 되냐 이거예요. 앞으로 어떻게 갈 것인가 이야기해야 하는데, 욕먹고 싶지 않아 말들을 안 해요. 사람들이 다 피해요. 공영방송 구조조정 이야기 나오고 하는데, 빠뜨린 게 있어요. 임금 책정 문제에요. 지금 임금이 전성기 때 기준이잖아요. 죽어가는데, 그대로 끌고 가요? 구조조정에 들어가 있냐 이거에요. 인건비 비중이 가장 높을 텐데, 누가 그 가장 민감한 돈 문제를 이야기하려 하겠어요. 지금은 지역방송 줄여서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 거 아네요. KBS, MBC가 그 줄이는 작업을 20년 간 해왔죠. 그러면, 이런 문제를 걱정해야 할 사람이 누구겠어요. ‘기술 혁명의 한복판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이 문제를 두고요. 경영진 아니겠어요. 지금 경영진 뇌리를 지배하는 최우선 관심사가 뭘까요? 정권안보죠. 아까 한 지방 이야기와 비슷해요.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보단 어떻게 중앙권력에 줄을 대 이익을 볼 것인가에만 가 있어요. 공영방송도 지방처럼 중앙권력 그쪽으로만 가 있는 거예요. 어떻게 권력 힘 기대서 뭘 더 노려볼까, 그것만 있는 거예요. 이런 문제가 화두에 오르지도 않아요.”
■세상 살다보니 거시적, 미시적으로 보는 게 다 필요
- 학생들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쳤다는 악명도 나왔다고 얼핏 들었는데요.
“악명을 얻어야 진짜 교수인데, 나름 성실하게 한다는 말이 그렇게 나온 게 아닐까(웃음).”
- 저 사진은 언제 찍은 건가요.
“오래된 거죠. 아주. 30년 된 거 같은데요. 액자도 30년 됐고요. 사회대 건물 밖에서 찍은 건데, 지인이 뽑아줬어요. 꽃다운 시절이 있었는데….”
- 여러 사진 중에 저 사진을 벽에 걸어 두신 이유는요.
“어따 둬요(웃음), 버려요?
- 여러 책으로, 유명 논객으로 활동해 주변에서 서울로 곧 갈 것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았는데요.
“전북대 있다가 몇년 만에 결심을 굳혔죠. 처음엔 서울로 가아지 했는데…. 아시잖아요. 지방에 있다가 서울 가는 분들이 참 부지런해요. 객관적 인정해요. 서울에 자주 가야 해. 그건 못하겠더라고요(웃음)”
- 정치쪽 권유 많이 받으셨죠..
“맞고, 안 맞고가 있잖아요. 전 정치와 전혀 안 맞거든요. 정치 하려면 사람들 많이 만나고, 즐겨야 하는데, 그걸 별로 안 좋아하니까. 치명적인 거죠. 의도적으로 하려고 하면 행복하겠어요.
”
- 30년 소회는요. 파란만장하게 사셨는데요. 교수도 거의 같은 세월 해오셨고요.
“이렇게 세월이 빨리 갔나 싶죠. 선배들한테 물어보면 답들이 거의 다 똑같아요. ‘이렇게 갔나’(웃음). 내년 2월이 정년이에요. 1989년 전북대에 왔으니 32년째네요. 이미 정년 퇴직한 분들하고 이야기하곤 해요. 변화를 심각하게 느끼시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 학교 바깥에 따로 사무실 두고 있으니, 거기서 책 읽고, 글 쓰고…. 달라질 게 없지 않을까 싶어요. 담담해요.”
- 이 세월 동안 달라진 게 있다면요.
“제 책 달라지는 것 못 느끼세요. 젊었을 때는 그런가보다 무심히 넘어갔는데, 나이 든 사람들이 세월 관련해 쓴 글들을 보다 보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게 똑같아요. 이런 게 아닌가 싶어요. 사람들이 왜 나이가 들수록 보수화된다고들 생각할까. 인간이니까. 이념과 지향성을 내세웠다고 하더라도 그 이념과 지향을 초월해 살아가는 게 비슷해요. 세월 가면서 비슷한 게 많구나 생각해요. 그런데 이런 생각은 세상을 바꾸는 동력이 안 되니까.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느끼죠. 또 세상 살아가면서 보니까 거시적으보는 거, 미시적으로 보는 게 다 필요하더라고요. 미시적으로 보면 현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가 쌓이죠. 거시적으로 보면 한국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같아요. 그렇지 않겠어요? 민주화 시작된 게 1987년 이후라고 보면 가야할 길이 먼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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