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페이지뷰

2020년 8월 24일 월요일

트럼프가 북한 지도자를 세계 정상급 전략가로 꼽은 이유

 

[아침햇살91] 트럼프가 북한 지도자를 세계 정상급 전략가로 꼽은 이유

문경환 | 기사입력 2020/08/25 [08:30]

1. 세계 정상급 전략가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함께 세계 정상급 전략가로 꼽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과 20일 두 차례에 걸쳐 위 4명의 지도자를 “그들은 매우 예리하다. 게임의 최정상에 올라와 있다”, “세계 정상급 체스 선수”, “체스의 달인” 등으로 묘사했다. 그러면서 연말 대선에서 바이든이 당선되면 이들을 제대로 상대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체스 선수’는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략가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즉, 트럼프 대통령은 4명의 국가 지도자들이 세계 정상급 전략가라고 판단한 것이다. 

 

미국의 외교를 체스에 비유한 유명한 외교안보전략가는 바로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다. 그는 헨리 키신저, 브렌트 스코우크로프트와 함께 미국 내 최고의 원로 외교안보전략가로 꼽힌다. 카터 정부 시기 국가안보보좌관을 했던 브레진스키는 1998년 『거대한 체스판』이라는 책을 써서 자신의 대외전략을 공개했다. 그는 이 책에서 세계지도를 체스판처럼 들여다보며 미국이 어떻게 세계를 지배할 것인지, 어떻게 세계 패권을 유지할 것인지 구상을 늘어놓았다. 

 

 

그에 따르면 체스 시합의 정점에 있는 미국에 도전하는 경쟁자는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인도다. 그러나 여기서 프랑스, 독일은 미국의 동맹국이므로 사실상 한 편이라고 볼 수 있고 인도는 아직 미국, 러시아,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의 국제적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않으므로 아직 결승전까지 올라온 도전자라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미국과 맞붙는 경쟁자는 러시아와 중국이라고 일단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꼽은 4개국에 러시아와 중국이 포함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브레진스키는 이 체스 시합의 중요한 길목, 즉 지정학적 추축으로 우크라이나, 아제르바이잔, 한국, 터키, 이란을 꼽았다. 이 지역을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결정 난다는 것인데 잘 보면 모두 러시아, 중국을 포위하는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지정학적 추축들 가운데 최근 몇 년 동안 미국을 가장 곤혹스럽게 만든 나라는 터키다. 트럼프 대통령이 터키를 꼽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브레진스키가 이 책을 쓰던 1998년 무렵 미처 주목하지 못한 나라가 북한이다. 1998년이면 북한이 ‘고난의 행군’이라는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을 무렵이다. 아마 브레진스키는 20년 뒤 북한이 미국의 최대 위협국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브레진스키는 북한이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기 몇 달 전인 2017년 5월 26일 8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브레진스키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북한은 미국 본토를 직접 위협하며 미국 대통령이 최대 외교현안으로 대처해야 하는 나라가 되었다. 체스 시합에 뛰어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상대하기 위해 중국과의 무역분쟁을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해야 할 정도였다. 2017년 12월 28일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중국이 북한 문제에 있어 우리를 돕지 않는다면 내가 항상 하고 싶다고 말해왔던 일들을 정말로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항상 하고 싶다고 말해왔던 일’이란 중국과의 무역전쟁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외교 자문을 해준 헨리 키신저는 ‘미치광이 전략’을 제안했다.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을 미쳤다고 생각하게 만들라는 것이었다. 이 내용은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미국 대사가 지난해 펴낸 책 『외람된 말씀이지만』에서 공개하였다. 미국 최고의 외교안보전략가로 꼽히는 인물이 자국 대통령에게 미친 척 하라는 조언을 해야 하는 지경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정상급 전략가 가운데 한 명으로 김정은 위원장을 꼽은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2. 미국의 공략을 무력화하며 공세를 펼치는 나라들

 

체스 시합을 할 때 상대하기 까다로운 선수는 내가 구상한 수를 원천봉쇄하면서 내가 막기 어려운 수로 공격하는 선수다. 내가 준비한 수가 하나하나 막혀서 통하지 않으면 정신력이 약한 선수는 절망에 빠지고 시합을 계속할 의욕을 잃고 만다. 그러는 사이에 쉴 새 없이 공격이 들어와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는 상황(checkmate)이 될 때 결국 시합 포기(resign)를 외치게 된다. 

 

미국 입장에서 체스를 두듯 다른 나라를 공략할 때 주로 사용하는 수단은 세 가지다. 첫째는 군사력이다. 전 세계 국방비의 절반 가까이를 소비하는 미군의 압도적 군사력으로 상대 국가를 위협하거나 필요하면 직접 쳐들어가 점령해버린다. 둘째는 경제력이다. 경제봉쇄로 위협하거나 경제지원으로 회유하면서 상대 국가를 경제식민지로 만들어버린다. 셋째는 사상문화수단이다. 미국식 민주주의, 자유주의와 헐리웃 영화들, 햄버거와 콜라 등으로 상대 국가 국민을 친미성향으로 돌려놓는다. 

 

그런데 북한, 러시아, 중국, 터키의 지도자들은 미국의 세 가지 공략을 효과적으로 막아냈다. 나아가 미국을 위협하며 공세를 펼치기도 한다. 

 

(1) 북한

 

미국은 막강한 군사력을 동원해 북한을 위협했다. 만약 승산이 있다고 여겼거나 빈틈을 발견했다면 위협에서 침공으로 넘어갔을 것이다. 웬만한 나라의 군사력과 맞먹는다는 항공모함을 3척이나 동원해 위협하거나 전략폭격기를 수시로 투입해 압박하는 일은 다반사였다. 엄청난 병력을 동원해 북한을 점령한다는 작전계획을 의도적으로 공개하고 매년 이 작전계획에 따라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미국은 북한 체제 교체가 국가 목표임을 공개적으로 선포하기도 하였고, 북한이 선제 핵공격 대상국임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일반적인 나라가 수십 년 동안 이런 군사적 위협을 당했다면 몇 년 못 버티고 미국에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국가 핵무력 완성으로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근본적으로 파탄 냈다. 국가 핵무력 완성이란 궁극의 핵무기인 수소폭탄, 미국 본토까지 날아가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말한다. 미국 본토에 수소폭탄을 실은 미사일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미국은 미치지 않고서야 핵전쟁을 결심할 수 없다. 여기에 더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까지 개발했다. 조만간 전략핵잠수함(SSBN)을 공개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이 이성적 판단을 포기하지 않을 정도의 수준에서 완급조절을 하면서 미국을 압박한다. 예를 들어 지난 7월 10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때 없이 심심하면 여기저기서 심보고약한 소리들을 내뱉고 우리에 대한 경제적 압박이나 군사적 위협 같은 쓸데없는 일에만 집념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도 한편으론 “지금과 같이 미국이 극도로 두려워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을 보면 아마도 우리 위원장동지와 미국대통령 간의 특별한 친분관계가 톡톡히 작용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라며 달래주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자력부강, 자력번영 노선으로 미국의 대북제재와 경제 유혹에 맞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 편으로 대북제재를 강화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 북미정상회담을 할 때마다 ‘핵을 포기하면 엄청난 경제지원을 해줄 수 있다’는 식으로 북한을 회유했다. 리비아, 이라크를 비롯한 많은 나라의 정부가 여기에 넘어가 최후를 마쳤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정면돌파전’을 선택했다. 제재를 하든 말든 여기에 연연하지 않고, 미국의 경제지원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고 오직 자기 힘으로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세계화 시대에 자력경제 노선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창궐하면서 북한의 자력경제 노선이 오히려 현명한 노선이었음이 드러났다. 

 

김정은 위원장은 세계가 경제위기로 침체에 빠져있는 동안 려명거리, 삼지연시, 어랑천발전소, 양덕온천문화휴양지, 중평남새온실농장, 순천인비료공장 등 눈에 띄는 성과를 냈다. 또한 이에 만족하지 않고 대규모 종합병원인 평양종합병원 건설에 다시 매진하고 있다. 이에 미국의 여러 전문가들도 대북제재가 무용지물임을 개탄하였다. 

 

미국은 북한에 미국식 자유주의를 불어넣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한다. 음란물을 넣은 대북전단 살포에 막대한 돈을 지원하고, 대북 라디오 방송을 하고, 공작원들이 관광객을 가장해 들어가 성경책을 놓고 오기도 하고, 평양과기대를 비롯한 각종 민간 교류사업을 활용해 미국 문화를 전파하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효과를 내고 있다는 아무런 징후도 나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북한 국민의 반발과 증오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백두산 항일전적지 답사를 통해 혁명정신으로 무장하자며 ‘백두산 대학’을 선언했다. 이후 북한의 각계각층 간부와 대중들이 한겨울에도, 한여름에도 백두산을 답사하며 ‘정신무장’을 하고 있다. 이처럼 북한은 미국의 사상문화 공략이 전혀 통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나라다.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의 군사적 공략, 경제적 공략, 사상문화적 공략을 모두 효과적으로 차단하면서 자체 힘으로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 가장 위협이 되는 세계 정상급 전략가라고 할 만하다. 

 

(2)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막강한 군사력을 통한 강한 러시아를 만들고 있다. 그는 미국과 국방비 경쟁에서 어차피 이길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며 첨단 전략무기 개발에 국력을 집중해 미국을 압도하는 노선을 펴왔다. 그 결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전략핵잠수함(SSBN),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잇따라 개발하였고 특히 2018년 3월 1일에는 푸틴 대통령이 연례 국정연설에서 6가지 초강력 무기를 공개하면서 첨단 전략무기 영역에서 미국을 압도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반면 2018년 2월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미국이 지난 8년 동안 F-35 전투기 단 한 종류를 개발하는 동안 러시아, 중국, 북한 등 경쟁국 및 적국은 34종의 새로운 핵 운반 시스템을 개발했다”라고 밝히면서 미국이 첨단무기 개발 경쟁에서 패배했음을 인정했다. 

 

2019년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를 겨냥해 중거리핵전력(INF) 조약 파기를 선언했다. 새로운 핵 군비경쟁으로 러시아를 괴롭혀보겠다는 심사였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역시 똑같이 금지 미사일 개발에 본격 착수할 것”이라며 군비경쟁을 피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단거리미사일인 이스칸데르를 중거리미사일로 얼마든지 개량할 수 있기 때문에(미국은 이스칸데르가 중거리미사일이지만 INF 조약에 저촉되지 않으려고 일부러 사거리를 줄여 단거리미사일로 위장했다고 본다) 중거리미사일 경쟁에서도 러시아가 앞설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 주도의 경제제재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2019년 6월 20일 푸틴 대통령은 연례 ‘국민과의 대화’ 생방송에 출연해 2014년 이후 경제제재로 러시아가 입은 경제 손실은 500억 달러지만 유럽연합 국가들이 더 심한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면서 서방의 경제제재 유예를 얻기 위해 국가의 핵심적 이익에서 타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또한 제재로 인해 선박 엔진 등 핵심 산업 제품의 자체 생산을 추진하도록 했고 농업 부문도 발전시켜 2018년 농업 수출이 250억 달러를 넘었으며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제재를 오히려 자력경제 강화의 계기로 삼은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는 제재 속에서도 마이너스 성장을 플러스 성장으로 되돌려놓았다. 

 

푸틴 대통령은 ‘강한 러시아 부활’이라는 러시아 민족주의를 전면에 내걸어 국민의 단결을 촉구하고 있다. 러시아 국민은 구 소련 시절 미국과 더불어 세계를 양분할 정도로 강력한 나라에서 살았지만 고르바초프와 옐친이 국민을 배신하고 소련을 해체해 적국인 미국에 팔아넘겼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푸틴 대통령을 망해가는 나라를 부활시킨 지도자로 여기고 강력한 지지를 보낸다. 이처럼 러시아 민족주의가 발달한 상황에서 미국의 사상문화적 공략은 러시아 국민에게 잘 먹히지 않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이 상대하기 벅찬 세계 정상급 전략가라고 할 만하다. 

 

(3) 중국

 

지난 7월 23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닉슨 도서관 앞에서 ‘공산주의자 중국과 자유 세계의 미래’라는 제목의 연설을 통해 사실상 중국과 전면대결을 선포했다. 그는 지난 50년 동안의 중국 포용정책이 실패했다고 평가하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전체주의 독재자라고 비난하며 중국 체제 교체를 공식 목표로 선언했다. 그는 “우리가 중국을 바꾸지 않으면, 중국이 우리를 바꿀 것”이라면서 중국 반체제 인사와 손을 잡고 공산당 교체를 추진하겠다고 하였다. 

 

폼페이오 장관은 연설에서 “우리가 이미 승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길 것”이라고 자신했지만 현실은 반대로 보인다. 미국 외교 수장답지 않게 직설적인 표현을 쓰면서 조급함을 드러낸 것에서 이미 미국이 밀리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어쨌든 미국은 중국과 과거 냉전 시절로 되돌아가겠다는 적개심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중국에 대한 분열 전략을 써왔다. 소수민족을 지원해 소요사태를 일으키는 방식이다. 가장 최근에는 홍콩에서 소요사태가 발발했다. 홍콩 사태에 대해서는 여러 관점이 있지만 미국이 홍콩 문제에서 중국 정부를 반대하며 적극 개입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미국의 노력과 달리 홍콩 사태는 중국 정부의 의도대로 정리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홍콩 사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신속하게 처리해 미국이 더 이상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버렸다. 

 

미국의 군사적 위협도 시진핑 주석을 흔들지 못하고 있다. 2018년 3월 15일 미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해리 해리스 당시 미 태평양사령관은 “(중국은) 군사의 모든 분야에서 미국과 정면으로 대결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중국의 이러한 군사력 확장은 미사일·유지 시스템의 현저한 증강, 제 5세대 전투기 능력, 해군의 규모와 능력의 증대 등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라고 증언했다. 

 

이미 미중 무역전쟁에서 기가 꺾인 미국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두드리고 흔들어도 꿈쩍 않는 시진핑 주석은 세계 정상급 전략가라고 하겠다. 

 

(4) 터키

 

원래 터키는 전통적인 친미국가였다. 1952년 나토에 가입한 터키는 미국의 충실한 동맹이자 중동 전진기지 역할에 충실해왔다. 터키의 인시를릭(Incirlik) 공군기지는 미 공군과 공동으로 사용하는데 여기에는 B61 핵폭탄 50여기가 배치되어 있어 유사시 미 대통령이 승인하면 터키 공군 전투기에 장착할 수 있다. 미군은 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ISIL) 격퇴전과 시리아 내전에 참전할 때 터키 공군기지를 이용하였다. 

 

그러나 2016년 쿠데타 미수 사건 이후 에르도안 대통령은 쿠데타 배후로 미국을 지목하며 급격히 탈미-친러 성향으로 전환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중요한 친미동맹국 하나를 잃을 위험에 처한 것이다. 

 

2017년 미국과 터키는 무기도입 문제로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애초 터키는 미국의 패트리엇 지대공미사일을 구입하려고 했으나 미국이 기술 이전 요구를 거부하면서 판매를 거부했다. 그러자 터키는 러시아의 S-400 지대공미사일을 구입하였다. 이에 미국은 터키가 S-400을 운영하면 나토 군사정보가 러시아에 유출될 수 있다면서 계약 철회를 요구했다. 심지어 이미 약속했던 F-35 전투기 100대 판매도 금지해버렸다. 그러나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국의 F-35 대신 러시아의 수호이-35 구입을 검토하겠다고 협박했다. 

 

2018년에는 미국이 터키 장관 2명을 제재하고 터키가 미국을 제재하면서 도저히 동맹 관계라고 볼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트럼프 대통령이 “터키 경제를 파괴할 것”이라고 협박하자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국 전자제품을 보이콧하겠다”, “미국에 달러가 있다면 우리에겐 신이 있다”라고 맞섰다. 2019년 들어 미국이 S-400 도입을 빌미로 터키를 경제제재하려고 움직이자 터키 외무장관이 공군기지 사용을 금지할 수 있다고 반발했다. 

 

미국은 터키가 러시아와 역사적으로 앙숙이었기에 언젠가는 다시 친미국가로 돌아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6월 에르도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문제의 발단은 전임 정부인 오바마 행정부가 일으켰다며 책임을 떠넘겼다. 어떻게든 터키를 달래보려는 시도였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왕팬이라며 아부도 했다. 

 

반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터키가 유럽과 중동을 잇는 지정학적 요충지이므로 미국이 감히 제재를 하지 못할 것이라며 큰 소리를 쳤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터키 국민의 압도적인 반미 여론을 등에 업고 배짱을 부렸다. 아슬리 아이딘타스바스 유럽외교관계위원회(ECFR) 선임연구원은 “에르도안 대통령은 엄청난 도박을 했으며, 일단은 그 결실을 본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국의 약점을 활용해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국익을 챙기는, 미국이 눈치를 보게 만드는 정상급 전략가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자주시보와 주권연구소에 동시 게재됩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