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15 18:04최종업데이트19.12.15 18:04
▲영화 <위로공단> 포스터ⓒ (주)엣나인필름
생각지도 않은 사람에게 상처받을 때가 있다. 상처 준 사람은 전혀 의도치 않았기에 상처 준 사실을 모른다. 딱히 그의 잘못이라 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혼자 상처받고 아프곤 한다.
독서 모임을 같이 하던 A를 아주 오랜만에 만났다. 이런저런 화제로 옮아가던 중, 대화가 옛 직장으로 흘러갔다. A는 반도체 회사를 다녔다. 대학 졸업 후 입사해 결혼 전까지 다녔다. A의 아이들의 나이로 추정해보면 대략 20여 년 전 일일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는 어린 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입사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동생뻘인 노동자들과 친하게 지냈다.
A가 본 반도체 여성 노동자들은 딱했다. 독극물(그때는 명확히 몰랐겠지만)을 맨손으로 만지며 일하는 그들이 위태롭게 보였다. 이들을 그는 "불쌍하다"고 말했다. 나는 "불쌍하다"는 말에 상처받았다. 그들은 불쌍한 걸까? '불쌍한' 노동자로 명명되는 그들은, 스스로를 부끄러워해야 하나?
A가 만난 노동자들은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곧바로 공장에 취업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그들이 가여웠던 A는, 이렇게 살지 말고 대학에 진학하라고 권유했다. A는 그들이 꿈을 포기하고 사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들 중 몇은 그의 권유로 진학했고 그 이후 가끔 소식을 전했다. 대학 졸업 후 그들은 어떤 노동환경에서 일하게 되었을까? 대학 진학으로 그 공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걸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을까? 아직도 그곳에서 일했을 다수의 노동자 친구들을 종종 기억하곤 했을까? 공장을 벗어난 이들은 공장의 그들을 '불쌍하다'고 여기게 되었을까?
'공순이'로 불리던 그녀들
▲영화 <위로공단> 스틸 컷ⓒ (주)엣나인필름
화장실 들어올 때와 나갈 때가 다른 약삭 빠른 인심처럼, 부르는 자의 편의에 따라 여성 노동자들은 '산업 역군' 혹은 '공순이'로 불렸다. 이들의 기억을 재해석해 담은 다큐멘터리 <위로 공단>을 보았다. '위로' 공단? '구로' 공단이라면 모를까 '위로' 공단이라니 의아했다. 그 까닭을 영화 말미에 이해할 수 있었다.
<위로 공단>이 지난 201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룬 까닭도 영화를 보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영화는 아름답고 슬프다. 영화가 아름다운 건 슬픔이 짙기 때문이다.
"울고불고 해봐야 누가 봐주나, 한 푼이라도 버는 수밖에..."
체념으로 읊조리는 낮은 노래로 시작한 영화는 구로공단 50주년 '수출의 여인상'이 제막되는 현장을 비춘다. 한 손에 횃불을 치켜들고 한 손에 지구의를 든 젊은 여인상. 상의는 어쩌고 탈의되어 가슴을 드러내고 있는 이 모습이 수출의 여인상을 형상화하고 있다고? 기이하다. 헐벗고 굶주렸을 많아봐야 열대여섯이 태반이었을 소녀 노동자들이 어째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전장에 뛰어든 잔다르크의 형상을 하고 있을까?
약자 중 약자였을 소녀 노동자들이 얼마나 담대하게 노동 운동 집회장을 누볐는지 영화는 차분히 보고한다. <해방공간, 일상을 바꾼 여성들의 역사>를 쓴 이임하 교수는 노동자 정체성을 확인한 이 여성들의 역사를 "정말 대단하다"고 추앙했다. 1970년대 동일방직과 YH무역, 1980년대 구로공단의 효성물산 대우 어패럴 등 동맹 파업 현장에 있었던 노동자들은 그 시절로 돌아가자, 차마 그 설움을 잊지 못했다.
울음을 삼킨 채 증언을 이어나갔다. 태생이 용감해서가 아니었다. 하나둘씩 굶주림으로, 병으로, 성폭행으로 사라지는 동료들이 곧 도래할 내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니면 누가? "끝까지 임금 감하를 취소치 않으면 나는 근로 대중을 대표하여 죽음을 명예로 알뿐"이라며 을밀대에 홀로 오른 최초의 고공 농성자 강주룡의 '결기'를, 이들은 이렇게 투쟁의 역사로 잇고 있었다.
▲영화 <위로공단> 스틸 컷ⓒ (주)엣나인필름
전태일 열사는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김경숙 열사를 아는 이는 많지 않을 듯하다. 김경숙 열사는 YH무역 노동자였다. 일명 'YH사건'이라 불리는 노동 파업 현장에서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사망했다. YH무역 노동자들이 시위 현장에서 내건 구호를 들으면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지금도 노동집회 현장의 구호 역시 여전히 '타는 목마름'이지만, 당시 구호는 지금보다 서럽다.
"배고파서 못 살겠다 먹을 것을 달라."
구로 공단 노동자들의 삶이 얼마나 팍팍했는지를 신경숙은 소설 <외딴 방>에서 그려냈다. 마지막 수단으로 '누드 시위'를 벌이던 노동자들이 똥물까지 뒤집어쓰고, 마침내 진압대로부터 모진 구타를 받는 장면이 <외딴 방>에 아프게 남아있다. 영화 <위로 공단>은 당시 현장에 있었던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담히 담아내, 지금 여기의 노동자로 그들을 소환한다.
강주룡보다 더 높이 오른 용접공 김진숙. 한진중공업 노동자로 타워 크레인에 올라 투쟁을 감행했던 그가 증언하는 모습은 바짝 마른 잎사귀같이 버석해 보인다. 노동권을 외쳤을 뿐인데 대공분실까지 잡혀가 고초를 겪었다. 온통 붉은 칠이었던 그곳의 벽에 누군가 피눈물로 새겼을 여섯 글자, "살아서 나가자." 그는 이 여섯 글자를 "우주만큼 무겁게" 가슴에 새기고, 그 힘으로 귀환했다. 그리고 돌아간 곳은 고공의 타워 크레인.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하늘의 뜻과 멀어지는 역설을 대면하고도, 자신의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증언 한마디 한마디를 그는 새기듯 꾹꾹 눌러 박았다.
지인 A가 불쌍해했던 반도체 공장의 노동자들은 환자가 되어 증언을 이어간다. 모두 암 발병으로 투병 중이었다. 이들은 투병의 고통에 인지부조화까지 겪고 있었다. "나를 버렸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애인처럼", 이들은 삼성이라는 회사를 쉬이 잊지 못했다.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말에 얼마나 매료되었으면, 가슴에 얼음송곳이 되어 박힌 저주를 아직도 뽑아내지 못하는 걸까. 삼성과 같이 보낸 청춘이 허망하고 허망하다.
영화는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를 스쳐간다. 지난해 11년 만에 삼성으로부터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한 마디를 얻어내고자 풍찬노숙했을 아버지. 그는 딸과 한 약속, 억울한 죽음을 밝히겠다는 약속을 겨우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어지는 또다른 딸들의 죽음이 베트남 삼성 현지 공장에서 재현되고 있음을 목도했다.
삼성뿐 아니라 값싼 노동력을 찾아 캄보디아로 이전한 의류업체들의 여성 노동자들을 카메라는 쫓는다. 노동으로 번 임금 대부분을 가족에게 보내고 있는 소녀 가장들의 현실이 가난한 어느 나라라고 다를까. 그들이 한 달 빡세게 일해 받는 급여는 고작 110 달러. 이중 30 달러를 한 달 방세로 내고 거의 대부분을 가족에게 송금하는 여성들의 하루는 어떻게 유지되는 걸까. '고작 110 달러'를 받기 위해 이들은 2014년 목숨을 건 시위를 벌인다. 당시 한 달에 겨우 90 달러 받던 노동자들. 잘 살겠다는 게 아니라 최소한 인간답게는 살게 해달라며 임금 인상을 요구했던 노동자들의 평화 시위는 공수부대가 투입되어 무참히 진압됐다.
▲영화 <위로공단> 스틸 컷ⓒ (주)엣나인필름
과거 '공순이'가 있었다면 지금은 '콜순이'가 있다는 콜센터 노동자의 잠긴 목소리. 과거에도 지금도, 열심히 살면 살수록 가난해지는 '헬조선'의 현실은 한순간도 여성들의 삶에서 빗겨난 적이 없었다. 과거에는 '공순이', 지금은 '비정규직'이라는 굴레는 형태만 달리할 뿐, 최저임금 노동자 계급이라는 질곡에서 단 한 번도 해방된 적이 없다. 여성으로 채워진 노동 판은 어김없이 저임금 노동의 현장이다.
생계비를 벌러 나왔음에도 반찬값이나 벌러 나왔다는 조롱을 당하는 마트 여성 노동자들, 병원 요양원에서 거동이 어려운 환자들을 돌보느라 병을 얻는 여성 노동자들,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에 때론 갖은 욕을 먹으면서도 언제나 상냥하게 응대해야 하는 콜센터 노동자들, 하루 종일 자동차 배기가스를 흡입하고도 이제 곧 없어질 일자리라는 냉소를 받는 톨게이트 노동자들. 이 노동자들의 불편에 기대 우리의 하루는 편안하지만, 이들의 비가시화된 노동의 대가를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 영화를 봉제공장 노동자로 살아온 나의 어머니와 삶과 노동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살아오신 많은 여성 노동자들에게 바칩니다."
<위로 공단> 엔딩 크레디트 자막이다. 더없이 공감한다. 이들이 살고 싸웠던 역사 현장을 탐방로로 개발했다고 한다. 일명 '언니Ro'. 그곳에 언니들이 있었다.
역경 속에서도 노동 역사의 수레바퀴를 쉬지 않고 굴렸던 여성 노동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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