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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14일 토요일

<조선일보>의 ‘마유미 얼굴’

[기고] KAL기 폭파 사건 32주기에 붙이는 글
강진욱  | 등록:2019-12-13 09:19:55 | 최종:2019-12-14 21:34:48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조선일보>의 ‘마유미 얼굴’ 
KAL기 폭파 사건 32주기에 붙이는 글
<1983 버마>(박종철출판사. 2017) 저자 강진욱
1. <동아일보>의 ‘마유미 얼굴’을 뭉개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1987년 11월 29일 일어난 KAL 858편 폭파 사건(일명 김현희 사건)이 32주기에 새로운 사실 하나를 정리하기로 한다. 그것은 KAL기를 자신이 폭파했다고 주장하는 김현희의 사진에 관한 것이다.
문제의 사진은 사건 발생 보름 여 뒤 치러진 대통령선거 당일(1987.12.16) <조선일보> 1면좌측 하단에 실렸고 밑에 ‘마유미의 얼굴’이라는 캡션이 달려 있다. 그런데 이 ‘마유미 얼굴’은 바레인에서 서울로 압송되면서(12월 15일) 대한항공기 트랩을 내려오는 김현희(마유미)의 얼굴과 다르다는 지적이 있었다. 
17년째 이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신성국 신부가 11월 27일 유튜브 채널 <새날>에 출연해 유튜브 진행자와 대화를 나누면서였다. 두 사람의 의견이 대체로 일치했다. 듣고 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김현희의 얼굴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압송된 김현희가 바레인에 억류돼 있던 마유미가 아니라는 ‘설’도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김현희의 사진을 찾아 비교해 봐도 <조선일보>에 실린 ‘마유미’와는 ‘김현희’와 달라 보인다.
(왼쪽 첫 번째는 ‘조선일보 사진’, 다른 셋은 사건 발생 직후 언론에 등장한 김현희 모습)
그런데 ‘마유미 얼굴’은 <동아일보>에도 있었다. <조선일보> 보도 하루 전이자 마유미 압송 당일인 12월 15일 자 1면.
자세히 보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실린 ‘마유미(의) 얼굴’ 사진은 똑같은 사진이다! 두 사진을 따로 떼어내 비교해 보자.
<동아일보>(1987.12.15) 사진                <조선일보>(1987.12.16) 사진
머리 모양과 옷의 칼라를 비교해 보면 틀림없이 같은 사진이다. ‘동아일보 마유미’는 김현희와 동일 인물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동아일보>가 먼저 보도한 사진이 하루 뒤 <조선일보>에 실리면서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보이도록 사진이 뭉개진 것이다. 명암을 과하게 처리하니 게슴츠레 한 눈빛은 가려지고 대신 냉혈의 테러리스트같은 인상을 풍긴다. 
왜 이처럼 사진이 뭉개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뭉개기는 성공적이었다. ‘1등 신문’이라는 애드벌룬 때문인지 모두가 <조선일보> 사진만 기억하고 있다. <동아일보>에 ‘마유미 얼굴’ 원본이 실려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있을까?
김현희가 마유미가 아니라는 둥 사건의 진상을 헷갈리게 만드는 말들이 나돈 것은 부수적 효과였다. 사건의 진상 규명에 장애가 되는 항설이 생겨나는 것은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려는 이들이 바라는 일 아닌가.
참고로, 위 ‘마유미 얼굴’은 김현희가 마유미라는 이름으로 - 독약 앰플을 먹은 시늉을 하며 - 바레인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찍은 것으로 보인다(아래 사진).
(신성국 <전두환과 헤로테> 56쪽에 실려 있다. “바레인 병원에 입원한 김현희 / 1987년 12월 1-4일”)
2. 김현희 다시 보기
김현희의 사진 한 장 더 보자. 김현희가 끔찍한 테러를 저지른 북한 공작원이 아니라 안기부의 끄나풀임을 반증하는 사진이다.
‘6공의 황태자’ 소리를 들었던 박철언 씨의 책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 ①> 291쪽에 실려 있다. 사진 밑에는 ‘특보실에서 KAL 858기[편] 폭파범 마유미(김현희)를 면담한 후(1988년 2월 5일, 왼쪽부터 강근택, 강재섭, 김현희, 필자(박철언), 김용환)’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김현희가 얼마나 예.뻤.길.래. ‘안기부 남정네’ 넷이 안기부장 특보실로 그녀를 불러 기념사진을 찍을까! 노태우 정권 출범의 1등 공신이니 그리 대접할 만도 하다.
안기부 남정네들이 김현희를 만나기 일주일 전인 1월 29일, 안기부는 노태우 당선자에게 안기부 현안을 보고했다. KAL기 폭파 사건은 보고 1순위였을 것이다. 보고를 들은 노태우는 “마유미 사건 수사 때 특수한 정보는 없었는가”라고 물었단다(위 박철언 책 290쪽). 이 말은 ‘사건의 내막이 드러나지 않도록 잘 마무리하라’는 말이 아닌가?
박철언은 또 이즈음(1988년 2월 초) 북측 남북협상대표 한시해를 만나 KAL기 사건으로 남북대화 채널이 막힐 뻔 했으나 “내가(박철언) 노 당선자를 비롯한 상부에 간곡히 말씀드려 이제 겨우 고비를 넘겼다”(위 박철언 책 291∼292쪽)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 가당찮은 말에 한시해는 뭐라 대답했을까? 박 씨는 한 씨의 대답을 책에 기록하지 않았다.
안기부가 김현희를 어떻게 대.접.했.는.지도 기억하자. 안기부는 이듬해인 1989년 평양에서 개최된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했다가 ‘밀입북’ 죄로 수감돼 있던 한양대생 임수경 양(훗날 국회의원을 지냄)에게 김현희를 보내 ‘회유’(?)하려 했단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김형태 변호사는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비망록② 임수경·문규현 사건과 방북(하) - KAL기 폭파범 김현희, 서울말 쓴다고 하자…」(2012.2.10)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안기부는 임수경을 설득하려고 김현희까지 동원했다. 그는 1987년 칼(KAL)기를 폭파해서 115명을 죽게 만들었다며 사형선고를 받고도 구치소 문턱에도 안 가보고 보름 만에 사면받았다. 대선을 불과 보름 남짓 남기고 사건이 터져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런 그가 버젓이 안기부 지하 밀실까지 찾아와 차 마시러 자기한테 놀러 오라고 이야기하는 걸 듣고 ... 임수경이 김현희에게 서울 말씨를 쓴다고 하자 다음날부터는 어색할 정도로 평양 사투리를 섞어 썼다.]
김 변호사의 설명은 매우 절제된 언어로 표현돼 있다. 과거 임수경 씨는 훨씬 더 생생한 언어로 김현희와의 면담에 대해 밝힌 적이 있다. 임수경 씨는 김현희가 억지로 북녘 말씨를 배워 북한 공작원 흉내를 내는 가짜임을 한 눈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소장 / 경향신문 기증 사진)
임수경을 만날 당시 김현희는 안기부가 제공한 ‘안가’에서, 남녀 수사관들과 농을 주고받으며 자유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언젠가 하루는 선글라스를 끼고 혼자 안가 밖 편의점에 갔다 자신을 알아보는 이를 만나 화들짝 놀라 돌아온 일까지! 김현희와 오랜 기간 함께 생활하며 ‘북괴 미녀 공작원 김현희’를 제.조.하.는. 임무를 수행했던 ‘안기부 최초 여자 수사관’ 최창아의 회고다(「국정원 최초 여수사관 최창아씨 수사비록 ‘김현희와 나’ - (30) 안가에서의 생활 : ‘그녀가 사라졌다’…수사관들 발칵」<일요신문> 1063호, 2012.9.23)
3. 김현희 사진으로 상기하는 다른 사진 한 장
이 글을 읽는 분들 가운데 또 다른 사진 한 장을 떠올리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다. 졸고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을 찾습니다’
(<진실의길> 2018.10.9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table=byple_news&uid=4660)에서 논한 강민철의 사진이다. 그것도 1983년 10월 아웅 산 묘소 테러 사건 발생 당시의 얼굴 사진이다(아래 문건 상단 왼쪽 사진).
아웅 산 묘소 테러 이후 27년 동안 꽁꽁 숨겨졌던 이 사진은 2010년 9월 <월간조선>(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1009100030)을 통해 비밀 문건 한 장(1998년 11월 작성)이 공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아웅 산 묘소 테러가 일어난 1983년 10월 당시 강민철의 사진이 어떻게 국정원 문건에 들어 있을까? 강민철이 이 사진을 갖고 있었을 리도 없고, 북한 당국이 제공했거나 탈북자들이 갖고 내려왔을 리도 없지 않은가! 이 사진은 강민철을 작전에 투입한 조직이 아니면 보유할 수 없는 사진이다.
강민철 사진이 아웅 산 묘소 테러가 일어난 지 27년 만에 ‘83.10 사건 당시 모습’이라는 캡션을 달고 안기부(국정원)이 작성한 문건에 나타났다는 사실은 사건 발생 당시 안기부가 강민철을 관리하고 있었다는 말이고, 이 말은 곧 아웅 산 묘소 테러가 안기부의 자작극임을 의미한다.
또한 한국 정부 측은 2005년 8월까지 계속 버마 교도소에 갇혀 있는 강민철과 접촉하면서 “(안기부) 파견관이 의약품과 소액의 영치금을 (버마)교도 당국을 통해 지원”했다. 우리 정부 또는 정보당국이 강민철 옥바라지를 했다는 말이다. 우리 정부가 강민철의 옥바라지를 했다는 이야기는 국정원 차장을 지낸 라종일 씨의 책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창비, 2013)에 더 자세히 나온다. 사식도 넣어 주고 용돈도 주고, 김현희가 쓴 책도 주고, 시시때때로 만나 형님 아우 하며 위로하고 ... 이런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는 강민철이 안기부 - 또는 기무사 또는 정보사 - 요원이라는 말 아닌가!
김현희와 강민철이 같은 조직에 속해 있었다는 말도 있다. 앞서 언급한 라종일 씨는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에서 버마(미얀마) 감옥에 있던 ‘북한 공작원 강민철’(라 씨는 아웅 산 테러를 북한의 소행으로 본다)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김현희의 이야기를 꺼냈다.
[(강민철은) ... 김현희의 이야기를 듣고는 매우 흥분했다고 한다. 강민철은 한때 해외특수임무요원을 훈련하는 조직인 해외조사부에 그녀와 함께 있었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김현희가 자서전을 출판했다는 말을 듣고는 그 책을 몹시 보고 싶어 했다. 남한 외교관을 통해 그 책을 손에 넣자 ... 그 책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자기도 아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주변의 동료 수인들에게 공작원으로서의 김현희의 활동 자체는 매우 초보적인 것이어서 별로 이야깃거리가 되지 못한다는 말도 했다.](209∼210쪽)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말이다!! 김현희와 강민철은 남한의 어떤 조직이 운영하는 해외공작조에 함께 있었다는 말 아닌가. 물론 라종일 씨는 이런 말을 누구에게서 들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분명 이 이야기를 누군가 믿을만한 사람으로부터 들었거나 기밀자료에서 봤을 것이다. 너무도 엄청난 사실이어서 차마 출처를 밝히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꽁꽁 싸매고 묻고 덮어도 진실은 반드시 살아 돌아온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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