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사업가 김호 씨 사건 증거 조작 의혹 증폭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대북사업가의 구속 영장에 경찰이 허위 사실을 적시, 파장이 일 전망이다.
서울지역대학총학생회연합(서총련) 투쟁국장을 지낸 김호 씨는 지난 9일 서울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에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자진지원 혐의로 체포돼, 지난 11일 구속됐다. 수사 당국은 김 씨가 북 측 공작원인 중국 업체 사장으로부터 이른바 '간첩 지령'을 받았다고 보고 있다.
문제는 경찰이 낸 구속 영장에 김 씨가 보내지도 않은 영어로 된 문자 메시지를 '증거 인멸 시도'의 증거로 제시한 점이다. 경찰의 요청을 받은 검찰 역시 이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영장을 청구한 것으로 보인다. 김 씨의 변호인 측은 경찰이 국보법 위반 사건을 꾸미려다가 실패한 사례라고 주장하며 관련 수사관을 고소하는 등 진상규명에 나섰다.
국가보안법위반 혐의조작 및 증거날조 허위영장청구 사건 변호인단은 16일 오후 서울지방경찰청 보안수사3대 2팀 수사관들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무고·날조, 허위공문서작성 및 동행사,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경찰이 구속 사유로 제시한 것은 김 씨가 경찰관의 휴대전화를 빌려서 사용한 후에 해당 휴대전화에서 발견됐다는 영어로 된 문자 메시지다. 해당 문자 메시지를 번역하면 '죄송합니다. 205호실. 7월 22일 오후 3시에 에어컨 수리를 위해 4시경에 집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어제 에어컨 전문가가 방문하지 못해 정말 유감입니다'라는 내용이다.
경찰은 김 씨가 경찰관의 휴대전화를 빌려 이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누군가에게 자신의 체포를 알리고 증거를 인멸하라는 듯한 '암호'를 사용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구속 사유로 적시했다.
사실 확인 결과, 김 씨는 이같은 메시지를 보낸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씨가 부인에게 연락을 한다며 경찰관에게 휴대전화를 빌려 전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경찰관 개인 휴대전화가 아닌 공용 휴대전화를 사용했다. 첫째, 따라서 영장에 적시된 '개인 휴대전화'는 거짓이다. 둘째, 영장에는 해당 문자 메시지가 지난 9일(체포 당일) 경찰관 개인 휴대전화에 수신된 것으로 돼 있었다. 실상은 김 씨가 체포되기 한참 전인 지난 8월 22일 공용 휴대전화에 수신된 것이었다.
김 씨가 보내지도 않은 문자 메시지를, 마치 보낸 것처럼 영장에 적시한 것이다. 그것도 수신된지 보름 가까이 지난 문자 메시지를, 마치 체포됐을 때 김 씨가 보낸 것처럼 꾸몄다.
경찰 측도 이같은 사실을 일부 인정했다. 경찰 측은 "단순 착오로 (김 씨가 보낸 게 아닌) 해당 문자를 영장청구서에 적었다"고 해명했다. "김 씨에게 휴대전화를 빌려주고 다시 받았을 때 화면에 이상한 영문이 떠서 고소인이 보낸 문자인 줄 알았다"고 착각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수사팀을 교체하고 경찰청 차원의 진상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변호인단은 "이 문자는 고소인이 체포되기 약 20일 전 수신된 것인데 수신 후 20일이나 지나서 잠금 화면에 나타났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또 △부인에게 연락한 것이 영장에는 변호인에게 연락하겠다고 한 것으로 기재한 점, △김씨가 공용휴대전화를 빌렸음에도 개인휴대전화를 빌린 것처럼 영장에 기재한 점, △경찰이 공용휴대전화에 수신된 두개의 메시지를 하나로 합쳐 개인휴대전화로 전송한 뒤 해당 메시지 캡처 화면을 영장에 증거로 제출한 점 등을 이유로 경찰이 김 씨를 구속하기 위해 무리하게 증거를 조작하려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인 측은 이러한 경찰들의 행위는 국가보안법 상 무고 및 날조 등에 해당한다며 "고소인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형사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구속사유에 대한 증거인 동시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한 증거를 날조한 것"이라며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지난 11일 영장이 발부됐는데 검찰은 12일 밤늦게 경찰에 수사기록을 요구했고, 담당수사관이 먼저 얘기하고 나서야 영장신청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사건이 단순 착오인지 고의인지 밝혀내야할 필요가 있다"며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을 차례로 면담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구속 수감 중인 김 씨는 변호인에게 A4용지 5장 분량의 글을 전달해 억울함을 토로했다. 김 씨는 "이번 영장을 조작한 관련자들이 어떠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이러한 일을 자행했는지 관련된 모든 수사관에 대해 철저한 수사와 엄중한 처벌을 요구한다"며 "이들이 바로 국가보안법을 악용해 없는 간첩도 조작하는 세력"이라고 했다.
이어 "이들이 이렇게 암약할 수 있는 근거는 국가보안법에 기인한다. 국보법이 근본적으로 철폐되지 않는다면 이런 조작은 언제고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에 호소한다. 영장을 조작해서까지 저를 간첩으로 몰아가는 세력을 엄단하고 청와대 민정실 등 사법기관이 앞장서서 영장을 조작한 세력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통해 발본색원해달라"고 했다.
변호인단은 김 씨가 북한 기술자들과 교류를 한 것은 맞지만 비군사목적에 한정된 내용이었고, 지령을 받은 사실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 10일 이 사건에 대해 조사에 나섰다.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한 김 씨의 아내 고 씨의 진정 대리인은 "경찰 측은 10일에 갑자기 김씨에 대한 가족의 접견을 금지했다"며 "가족과 만나면 증거인멸 등의 우려가 있어 규정에 따라 접견을 막았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었는데, 그런 규정이 있다면 바뀌어야 한다는 게 진정 취지"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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