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새 대표가 25일 오후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전국대의원대회에서 추미애 전 대표에게 당기를 넘겨받아 흔들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 2년간 여의도에서 가장 많은 험담을 들은 이가 누구일까? 이론의 여지 없이 ‘추미애’(사진)일 것이다. 야당 정치인들은 공개 석상에서, 여당 정치인들은 사석에서 지난 2년 동안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쉼없이 비판했다.
당대표는 원래 만인의 샌드백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표 시절엔 당 안팎에서 숱한 공격에 직면했다. 추미애도 비판받을 일이 없지 않았다. ‘전두환 예방 계획’이나 ‘박근혜 퇴진’ 국면 때 ‘영수회담 제안’처럼 휘발성이 큰 사안을 조율 없이 툭 꺼낼 정도로 당내 소통에 약했다. 종종 당직자들이 회의에서 반대 의견을 내면 “내가 대푭니다” 같은 말들로 제압했다는 소리도 들려왔다.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인 때 날 선 말로 야당을 공격해 협상판을 깨는 ‘마이웨이’식 행보도 큰 반발을 사곤 했다. 기자인 나로선 불편한 질문에 공격적인 답변으로 응수하거나, 비판적인 기사에 과민한 반응을 보일 때 그의 자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치권의 박하디박한 ‘추미애 평가’에는 양형 기준을 넘어선 과잉 처벌처럼 보이는 구석이 있었다. 비판을 넘어 조롱과 멸시가 읽히는 평가들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로부터 “추미애는 언컨트롤러블(uncontrollable·통제 불가능)한 사람”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할 땐 아무리 선거 비수기의 여당 대표가 바지사장 같은 존재라지만 그렇다고 컨트롤돼야 하는 존재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추미애 리스크’ 같은 말이 공식 용어처럼 통용될 땐, 몇 개월 만에 쫓겨나곤 했던 숱한 당대표들에겐 왜 ‘○○○ 리스크’라는 말이 따라붙지 않았는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의원들로부터 “공천이 엉망”이라는 말이 나올 땐 언제 이 당의 공천이 그리 찬란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민주당의 실무 당직자들은 “역대급으로 조용한 선거였다”고 평가했다.)
추미애가 계파도, 든든한 지역 기반도 있는 남성 정치인이었다면 적어도 조롱은 면하지 않았을까. #대구출신 #여성 #세탁소집딸 #한양대졸. 그에게 달린 태그들은 민주당에선 ‘비주류’적이다. 법조계 출신이긴 하지만 판사 출신은 인권변호사나 검사 출신에 견줘 수가 적어 정계에선 상대적 소수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발탁했지만 동교동계에선 일찍부터 그를 ‘교동’(교만한 아이)이라 이르렀다니, 그쪽에서도 환영받는 막내는 아니었던 것 같다. 추미애가 주류 남성 정치인이었다면, 적어도 ‘정치권 입문 동기’(김민석)를 중용했다고 해서 둘의 관계를 의심하는 ‘지라시’(정보지) 같은 것이 도는 일까진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추미애는 8·25 전당대회를 끝으로 당대표 임기 2년을 무탈하게 마쳤다. 민주당 역사에서 2년 임기를 완수한 대표는 그가 처음이라고 한다. 그가 당을 이끄는 동안 경쟁 정당은 몰락했고, 9년 만에 정권이 교체됐고, 민주당은 지방선거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미투’ 국면에서는 발 빠르게 안희정 전 충남지사·정봉주 전 의원에게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확전을 막았다. 정당 지지율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래도 의원들 사이에선 “추미애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을 뿐”이라는 평가가 그나마 관대한 축이다. 그러니 하락 지지세 속에 새로 당선된 민주당의 대표는 그보다 훨씬 운이 좋은 이이기를 기대해야 할 것 같다.
엄지원 <한겨레> 정치부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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