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대한민국 리콜 시스템을 망가뜨렸나
입력 : 2018.08.25 14:48:01
자동차 결함 조사에 제작사들 비협조… 심평위 위원은 자동차 회사와 ‘긴밀한 관계’
“(자동차) 제작 결함을 연구하는 연구원은 13명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가 후진적이고 많이 모자란다.”
8월 21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한 말이다. BMW 화재로 국내 자동차 안전관리체계를 들여다본 김 장관은 ‘시스템이 없다’고 토로했다. 이제 막 취임 1년이 지난 장관도 한눈에 파악한 시스템의 문제점을 여태껏 아무도 몰랐을까. 아니면 문제를 알고도 그동안 방치하거나 감춰온 것일까.
대한민국은 2017년 기준 연간 411만대를 생산하는 세계 6위의 자동차 생산국이자 세계적인 고급차 시장이다. 국내 자동차 등록대수는 올해 2300만대를 넘어설 전망이다. 외형은 자동차 대국으로 성장했지만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가의 안전관리체계는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리고 이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안전관리체계의 이면에는 로비와 회유로 잘못을 입막음하려는 기업과 이에 호응해온 소수의 전문가집단이 자리잡고 있다.
연구원 13명이, 하루 20~30건 처리
문제를 살펴보려면 국내 자동차 결함 신고 과정부터 차근차근 따져봐야 한다. 자동차 결함이 발생하면 국토부 산하 자동차리콜센터에 신고하게끔 돼 있다. 지난해에만 5400건이 넘는 차량 결함 신고가 자동차리콜센터에 들어왔다. 대부분 차량 이상 증상으로 사고가 나거나 사고위험을 느낀 운전자들이 넣은 신고다.
접수된 신고는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으로 전달된다. 자동차안전연구원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공인된 결함조사기관이다. 한국소비자원에서도 결함 신고를 받아 조사할 권한이 있기는 하지만 안전운행과 관련된 사안은 자동차안전연구원 결함조사실 결함조사처에서 전담한다. 김 장관이 언급한 ‘연구원 13명’이 이곳 소속이다.
원칙대로라면 연구원은 신고내용을 토대로 결함조사를 진행해야 한다. 자동차 결함 문제에 있어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작업이다. 하지만 연구원들은 결함조사에 착수하기 전부터 온갖 난관에 부딪힌다. 13명의 연구원이 하루 20~30건이 넘게 접수되는 결함 신고를 받아 현장조사에 나서는 것 자체가 일단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연구원에서 조사에 착수할지 여부를 정할 권한도 없다. 어떤 상황에서 조사에 나서야 하는지의 기준도 없다. 조사를 하려면 일단 국토부로부터 결함조사에 착수하라는 지시부터 받아야 한다. 문제는 국토부 지시를 받고 나가보면 너무 늦은 터라 제대로 조사를 못한다는 것이다. 조사가 지연된 사이 자동차업체들이 결함에 대해 미리 손을 써두기 때문이다. 말끔히 고친 차를 갖고 결함조사를 해봐야 나오는 게 있을 리 없다. 익명을 요구한 연구원 관계자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바로 가야 결함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며 “며칠 지나서 가면 제작사가 고장코드를 삭제하고 블랙박스까지 지우기 때문에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조사에 착수해도 제대로 된 조사는 잘 이뤄지지 않는다. 결함을 조사하려면 자동차업체의 협조가 필수지만 업체들이 조사를 돕지 않는 탓이다. 연구원에서 자료를 요청해도 주지 않거나 필요한 내용을 다 뺀 ‘껍데기’ 자료만 제출한다. 자동차관리법을 보면 업체들은 조사기관에서 요청받은 자료를 15일 이내에 제출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이를 어겨도 과태료는 한 회차당 고작 100만원에 불과하다. 그나마 최근 10년간 국토부가 수입·국내 완성차 업체에게 자료 미제출 및 지연, 조사 방해 등의 이유로 과태료 처분이나 벌칙을 부과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담당자 바뀌자 말 달라지는 제작사
권병윤 한국교통안전공단 이사장이 지난 21일 “(BMW에) 수차례 기술자료를 요청했지만 BMW는 자료를 회신하지 않거나 누락한 채 제출했다”고 볼멘소리를 한 배경이다. 소비자들은 정부가 안전문제를 파악하고 이를 해결해 줄 것으로 믿고 신고를 하지만 실제 대부분의 결함 신고가 신고접수 그 자체로만 그치는 셈이다.
연구원들이 조사에 착수해 증거와 소신을 가지고 결론을 내도 ‘윗선’에서 무마되는 경우도 있다. 자동차안전연구원 스스로 자동차업체들의 눈치를 보는 탓이다. 2015년까지 연구원 제작결함조사실에 재직했던 박진혁 서정대 자동차과 교수는 2013년에 벌어진 현대차의 ‘제네시스’ 리콜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한다.
박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2013년 1월 자동차리콜센터로 한 건의 결함 신고가 접수된다. 제네시스의 ABS 제동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연구원에서 제작결함 조사업무를 담당했던 박 교수는 현대차 전주서비스센터에 내려가 결함 조사를 벌였다. 제동페달에서 이른바 ‘스펀지 현상’과 제동시 차량쏠림 현상이 확인됐다. 운전자의 주장대로 ABS 제어장치에서 결함이 발생했다는 증거였다. 이를 방치할 경우 브레이크 오일이 부식을 일으켜 브레이크 성능이 떨어지고 결국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박 교수는 리콜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리콜을 할 경우 2009년 12월부터 2012년 3월까지 제작된 10만3214대의 제네시스가 리콜 대상이었다.
현대차는 이미 결함 내용을 인지하고 있었다. 2012년 1월부터 해당 차량을 대상으로 비공개 무상수리를 진행해오고 있었다. 무상수리는 불만을 제기한 차주에 한해서 이뤄지는 조치로, 제조사는 결함과 관련해 차주에게 알릴 필요가 없는 조치다. 현대차는 이를 들어 “일단 무상수리를 진행하고 이후 차량에서 문제가 발생되면 공식적인 리콜 절차를 밟겠다”고 연구원에 알려왔다.
연구원과 현대차 간 한창 리콜 얘기가 오가던 시기에 연구원에 대규모 인사가 났다. 제네시스를 조사했던 담당 실장과 팀장이 바뀌었고, 조사인력도 교체됐다. 박 교수는 계속 결함조사실에 남아있었지만 인사가 난 뒤 갑자기 현대차는 말을 바꿨고 리콜도 진행하지 않았다. 박 교수는 “현대자동차 이모 이사와 정모 부장이 문제 부품을 교체하겠다고 해서 리콜을 합의한 상태였다”며 “하지만 연구원 인사이동으로 조사 책임자가 바뀐 뒤에 갑자기 입장을 바꿨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현장조사 결과를 근거로 재차 현대차에 리콜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연구원과 국토부에서도 제네시스 리콜 시행 관련 지침은 내려오지 않았다. 결국 박 교수는 2013년 2월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에 제네시스의 문제점을 제보했다. 정부 산하 소속 연구원이 미국 정부에 손을 내밀어 문제 해결에 나선 것이다.
미 교통안전국은 박 전 연구원의 신고를 받기 전부터 23건의 미국 소비자 신고를 근거로 내부 조사를 벌이고 있었다. 2013년 10월이 되자 미 교통안전국이 “공식적으로 제네시스 결함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현대차는 즉각 2009년부터 2012년 생산해 미국에 판매한 제네시스 4만3500대와 한국에 판매한 10만3214대에 대해 ‘자발적 리콜’을 실시했다.
현대차의 리콜 조치에도 미국 정부는 현대차에 1735만 달러(약 179억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현대차가 제네시스 제동장치 이상 사실을 2012년에 발견하고도 미국 정부 조사가 들어가고 난 뒤에야 리콜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연방법에는 제작자들이 안전 관련 결함을 5일 이내에 정부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
미국과 달리 당시 박근혜 정부는 늑장 리콜과 관련해 아무런 제재나 처벌을 하지 않았다. 자동차안전연구원이 정부에 제출한 ‘제네시스 제동장치 작동불량현상 조사결과 보고서’를 통해 “현대차의 시정방법이 적정했다”고 밝힌 덕분이었다. 국토부는 이를 근거로 현대차가 늑장 리콜을 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심평위 관계자 자녀 수입차 업체 재직
제네시스 리콜 사태로 자동차안전연구원은 발칵 뒤집혔다. 연구원에서는 누가 미 교통국에 제보를 했는지를 놓고 색출작업이 시작됐다. 연구원에는 현대차에서 제보자가 누군지 궁금해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압박이 심해지자 박 교수는 결국 자신이 신고한 사실을 시인했다. 당시 연구원 제작결함실 책임자는 박 교수에게 “이 사안이 얼마나 큰일인 줄 아느냐”며 “현대차가 널 고소하면 파면될 뿐 아니라 우리 연구원이 없어질 수 있다”고 질책했다.
박 교수는 “결함을 조사하는 자동차안전연구원이 자동차업체 손 안에 있는 셈”이라며 “심지어 결함 조사결과가 담긴 보고서를 미리 업체에 보내주라는 지시를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연구원 측과 갈등을 빚던 박 교수는 결국 연구원을 떠나야 했다. 최영석 선문대 스마트자동차학부 교수는 “실무를 담당하는 연구원이 문제를 지적해도 위에서 압력을 가한다는 사실은 업계에서 공공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라며 “아예 결함 조사를 하지 말라고는 못하지만 우회적으로 결함 조사를 제대로 하기 어렵게 한다”고 말했다.
자동차 리콜 여부를 심사하는 제작결함심사평가위원회(이하 심평위)의 경우 연루 차원을 넘어 자동차업체들과의 유착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심평위는 25명으로 구성된 국토부 자문기구다. 당초 국토부 자동차정책과장과 자동차운영보험과장, 첨단자동차기술과장과 한국소비자원 위해정보국장 등 당연직 4명과 전문가 16명을 더해 모두 20명이 심평위원직을 맡았는데, 올해 4월 규정이 바뀌면서 25명으로 늘어났다.
‘자문’을 하는 집단이지만 실제 리콜 여부는 이들의 심사에 따라 결정된다.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아무리 리콜 결정을 내려도 심평위에서 거부하면 리콜은 무산된다. 국토부 역시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심평위의 결정을 수용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심평위의 결정을 정부가 뒤집은 사례는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실제로도 심평위 결정을 거스르기 힘든 구조”라고 밝혔다. 심평위가 리콜 결정을 내릴 경우 자동차업체들은 막대한 리콜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이 때문에 자동차업체들 입장에서 심평위는 ‘절대갑’이자 특별관리 대상이다.
심평위의 전문가 16명 대부분은 자동차 관련학과의 교수들이다. 심평위원 중 일부 교수들은 각 대학에서 산학협력단을 이끌고 있다. 교수들이 연구하거나 산학협동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들의 주제도 물론 자동차 분야다. 문제는 이런 프로젝트 진행에 필요한 비용을 정부나 기업에서 따와야 하는데 교수들에게 지원을 해주는 기업들이 현대차와 한국GM, 쌍용자동차 등 자동차업체들이라는 점이다.
자동차업체들은 이들 교수와 아예 업무협약(MOU)을 맺고 정기 지원을 하거나 연구에 필요한 비싼 장비를 기증하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자동차회사 내부 관계자는 “회사에서 심평위 소속 교수들에게 산학협동 과제를 빌미로 재정지원과 졸업생 취업을 시켜주면서 관리를 한다”며 “당연히 리콜 여부를 심사할 때 제작사 입장을 봐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정지원뿐 아니다. 업계에서는 업체들이 심평위원들을 대상으로 해외연수를 보내거나 골프 모임을 갖는 등 각종 편의를 제공하며 관계를 이어간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돈다. ‘김장철이 되면 각 회사 담당자들이 심평위원들 집에 김장을 해다가 바친다’는 소문도 돈다. 심평위원 자녀들을 자신들의 회사에 특채로 ‘모셔’오기도 한다. 심평위 한 관계자의 자녀도 모 수입차업체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평위 관계자는 “국내 자동차산업 생태계 구조상 학계와 기업, 정부가 연결될 수밖에 없다”며 “자동차업체의 지원을 받았다고 해서 심평위에서 교수들을 제외시키면 심평위의 전문성이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기업의 연구용역을 수행하고 있는 교수들은 사안에 따라 스스로 심평위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심평위의 해명과 달리 심평위의 심사가 공정치 못하다는 의혹은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다. 지난해 2월 알려진 현대차 핸들 잠김 불량부품(MDPS) 리콜 축소 의혹이 대표적이다. 현대차에서 판매한 ‘아반떼’ 차종에서 이른바 ‘파워핸들’ 기능에 문제가 생긴 게 발단이었다. 파워핸들이 안 되면서 아반떼의 조타력이 무거워지는 현상이 발견됐다. 이 증상이 해당되는 차량은 아반떼와 ‘i30’ 2종, 45만8662대로 집계됐다.
하지만 현대차는 대상 차량 중 9%에 불과한 4만705대만 자발적으로 리콜하겠다고 정부에 신고했다. 반면 미국에서 판매된 동일한 아반떼와 i30의 경우 리콜 대상을 더 넓여서 미국 정부에 신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현대차가 국내 차량의 리콜 대상 기간을 축소해 리콜 받아야 할 차량 수를 줄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연구원의 권고 결정 뒤집는 심평위
이에 대한 자동차안전연구원의 판단은 어땠을까. 당초 연구원은 미국과 같은 기준을 적용해 45만8662대에 대한 리콜을 진행할 것을 국토부에 권고했다. 보고를 받은 국토부는 심평위에 안건을 올렸다. 그러자 심평위는 연구원의 권고를 뒤집고 현대차가 당초 신고한 차량 4만705대만 자발적으로 리콜하면 된다고 결정했다. 심평위는 “자동차 핸들에 대한 부품 기준을 충족해 강제리콜이 어렵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심평위의 논리대로라면 사실상 리콜할 이유가 없는 현대차가 자발적으로 ‘착한 리콜’을 한 셈이 된다. 심평위의 ‘부품 기준을 충족했기 때문에 강제리콜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자동차관리법에 어긋난다. 자동차관리법 제31조 1항에는 ‘안전운행에 지장을 주는 결함이 있는 경우 제작 결함을 시정(리콜)해야 하며 무상수리(사전점검)는 불가하다’고 명시돼 있다.
현대차 엔진 결함 문제를 폭로해 공익제보자로 인정받은 김광호 전 현대차 부장은 지난 6월 공익제보자 신분으로 심평위 회의에 참석한 바 있다. 김 전 부장은 “심평위가 아니라 제조사 임원회의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며 “자동차회사 입장에서 회사를 대변해주는 발언을 서로 쏟아내고 있었다”고 전반적인 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심평위가 그간 리콜조치에 대해 소극적이었다는 사실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리콜 심사가 시작된 이래 국토부가 내린 강제리콜 명령은 지난해 현대차를 대상으로 한 5건이 전부다. 2003년부터 2016년까지 국내 평균 리콜 대상 차량은 54만5000대로, 리콜 은폐 의혹과 관련한 내부 고발이 시작된 지난 한 해의 221만대와 비교하면 4배 이상 차이가 난다.
심평위와 자동차업체 간 유착의혹은 국회 차원에서 관심을 갖고 조사에 나설 예정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재호 의원은 “제작결함심사평가위원회가 개인의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얽혀 국민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판단을 해왔는지 여부를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며 “심사과정의 투명성도 들여다보고 문제점이 발견되면 법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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