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박근혜 정부 때 사용하던 민정수석실 캐비닛에서 발견했다며 14일 공개한 문건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재판과 수사에 직결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삼성 경영권 승계 지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 등 주요 사건에 대한 핵심 증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민정수석실 공간을 재배치하던 중 7월 3일 한 캐비닛에서 이전 정부 민정비서관실에서 생산한 문건을 발견했다"며 300종에 달하는 문건 가운데 일부 내용을 공개했다.
박 대변인에 따르면, 이번에 발견된 문건에는 ▲수석비서관 회의 자료 ▲2014년 6월11일부터 2015년 6월24일까지 장관 후보자 등 인사 자료 ▲국민연금 의결권 등 각종 현안 검토 자료 ▲지방선거 판세 전망 등 기타 자료가 포함돼 있다.
이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청와대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하려고 했지만, 청와대 경내 진입조차 못하고 확보에 실패했던 자료들이다. 그 일부 자료가 고스란히 민정비서관실 한쪽 캐비닛에 남아 차기 정권에 의해 발각된 꼴이다.
최순실과 공모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박근혜·이재용 뇌물죄 입증할까
이번에 발견된 문건 중 '국민연금 의결권 관련 조사'라는 제목의 문건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죄를 입증할 만한 정황을 담고 있다.
이 문건에는 ▲관련 조항 ▲찬반 입장 ▲언론 보도 ▲국민연금 기금 의결권 행사 지침 ▲직접 펜으로 쓴 메모의 원본 ▲또 다른 메모의 복사 ▲청와대 업무용 메일을 출력한 문건 등이 들어 있다고 박 대변인이 전했다.
박 대변인은 "특히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지원 방안을 검토한 내역도 포함돼 있다"며 대통령 기록물로 볼 수 없는 자필 메모의 일부 내용을 구두로 공개했다.
이는 ▲삼성 경영권 승계 국면 → 기회로 활용 ▲경영권 승계 국면에서 삼성이 뭘 필요로 하는지 파악 ▲도와줄 것은 도와주면서 삼성이 국가 경제에 더 기여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모색 ▲삼성의 당면과제 해결에는 정부도 상당한 영향력 행사 가능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 대응 ▲금산분리 원칙 규제완화 지원 등의 내용으로, 지난 2015년 7월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을 독대할 당시 청와대에서 준비한 '말씀자료'에 나온 것과 거의 일치한다.
박 대변인은 "관련 자료들이 이번에 발견됨에 따라 그 사본을 검찰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측은 이 메모를 작성한 사람이 누구이고, 누구의 발언을 적은 것인지 등 구체적인 상황은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향후 검찰 수사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지시 사항을 적은 메모라는 사실이 밝혀질 경우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뇌물죄 재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해당 메모의 내용은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의 삼성 경영권 승계를 도와주는 대가로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의 승마훈련 지원 등을 요구했다는 특검과 검찰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한편, 청와대의 압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지원했다는 이 부회장 측의 주장을 뒤엎는다는 점에서 두 사람에게 모두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다.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에 대한 재판은 8월 초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국정농단의 또 하나의 핵심 사건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된 정황도 이번에 발견된 문건에서 드러났다.
박 대변인은 "문화예술계 건전화로 문화융성 기반 정비, 건전보수권을 국정 우군으로 적극 활용, 문체부 주요 간부 검토, 국·실장 전원 검증 대상, 문화부 4대기금 집행부서 인사 분석 등도 들어있다"고 밝혔다. 현재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작성, 관리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있다. 이들은 모두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몰랐다고 부인하고 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14일 오후 춘추관에서 박근혜 정부 민정수석실에서 발견된 회의 문건과 검토자료 관련 브리핑을 했다. 사진은 박 대변인이 고 김영한 민정수석의 자필 메모로 보이는 문건.ⓒ뉴시스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 자필 메모도 추가 발견
이번에 발견된 문건 중에는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자필 메모로 추정되는 자료도 포함돼 있었다. 박 대변인은 이전에 공개된 필적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사본을 직접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다. 김 전 수석의 자필 메모가 맞다면, 이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 사항 또는 청와대 내부 회의 내용일 가능성이 높다.
해당 메모에는 청와대가 각종 현안과 정부 정책을 입맛에 맞게 밀어붙이기 위해 여론전을 펼치거나 수사 및 재판에 개입한 정황 등이 담겨 있다.
메모에는 '일부 언론 간첩사건 무죄판결 - 조선 간첩에 관대한 판사, 차제 정보 수사 협업으로 신속 특별행사법 입법토록 → 안보 공고히', '전교조 국사교과서 조직적 추진 - 교육부 외에 애국단체 우익단체 연합적으로 - 전사들을 조직, 반대 선언 공표'라고 적혀 있었다.
또한 '대리기사 남부 고발 - 철저 수사 지휘 다그치도록'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이에 대해 박 대변인은 "아마도 당시 세월호유가족대책위원회 대리기사 폭행 사건 관련 내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공개된 것 외에도 더 많은 내용이 담겨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300종 가운데) 자료로서 가치 없는 것들도 있어서 그런 건 빼고 일부만 복사해서 검찰에 넘기는 것"이라며 "이 문제는 여러 가지 수사와 현재 진행 중인 재판 내용일 수 있어서 더 자세히 말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이날 공개된 일부 문건의 작성 시기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민정비서관(2014년 5월부터 2015년 1월까지)과 민정수석(2015년 1월부터 2016년 10월까지)으로 근무한 시기와 겹친다는 점에서, 해당 문건이 모두 우 전 수석이 직접 생산했거나 그의 산하 민정비서관실에서 생산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우 전 수석에 대한 추가 혐의 수사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14일 오후 청와대 민원실에서 지난 7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발견된 전임 정부의 기록물들을 국정기록비서관실 관계자가 대통령기록관 관계자에게 이관하고 있다. 청와대는 원본은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하고 사본은 검찰에 제출했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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