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50, 장담 못 합니다. 저도 이런 일이 처음이라..."
탈핵 운동가로 8년 가까이 일해 온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에게 신고리 원전 5·6호기 중단 여부에 대해 물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예측하지 못하겠어요"라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탈원전 이슈는 한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라, 팽팽한 찬반의 공론장이었다. 앞으로 3개월 간 원전 찬반 측의 설득전이 펼쳐질 것이다.
정부는 지난 24일 공론화 위원회를 꾸렸고, 앞으로 3개월 간 시민 배심원단을 선정하고 토론의 과정을 거쳐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결정한다. 그는 시민 배심원단의 결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결론이 나와도 승복해야 합니다. 국민 대표가 논의해서 결론을 내면 정부가 100% 그대로 승복한다고 했어요. 민주주의가 더 중요합니다"
그의 말에서 '페어플레이' 정신이 보였다. 그의 말처럼, 민주주의가 없이 탈원전은 없다. 그는 기본원칙인 민주주의가 정착한 나라에서 탈원전이 이뤄졌다고 설명한다.
김 교수는 "신고리 5·6호기 건설된다 하더라도 로드맵이 살짝 바뀌는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탈원전 여부는 국민이 결정해야”
신고리 5·6호기 운명을 결정할 공은 왜 국민에게로 패스됐을까? 의대 교수인 그는 '원전 전문가와 국민'을 '의사와 환자'에 비유했다.
"병원에 가면 전문가인 의사가 결정을 합니까? 아니요. 환자가 결정합니다. 의사는 병에 대해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죠. 원자력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원자력 전문가는 여태까지 국민에게 원전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고 설명하는 일은 하지 않고, 비밀리에 자기들이 결정을 해왔어요."
그는 원자력에 대한 결정은 국민이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왜냐하면 원자력에 의해서 혜택을 받는 것도, 사고가 나서 피해를 보는 것도 국민입니다. 물론 병원에 가는 수많은 환자들이 자신의 병에 대한 의학적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자기 몸에 대한 결정이니까 본인이 해야 합니다. 원전에 관해서도 국민들이 공학적 이해가 높지 않더라도 판단과 결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나라 공대 나온 사람이 수백만명, 잘 모르겠지만 2백만명이 넘을 거예요. 원자력 안전성 보고서는 공대 나온 사람들은 다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문가가 아니라고 국민을 바보 취급하는 태도는 아주 기분 나쁘죠, 시대착오적인 거죠"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원자력 지지자들은 돈과 권력과 풍부한 인맥을 갖고 있는데 반해서 원자력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성과 상식, 윤리의식 이외에 가진게 없다는 사실 때문에 원자력에 관한 진실이 끊임없이 은폐되고, 거짓말이 횡행하는 사태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시민들의 인식의 깊이와 실천적 자세가 결정적인 힘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괴담교수가 됐어요"
어느날 그는 일부 보수 언론에 '괴담 교수'로 찍혔다. 발단은 된 사건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6년동안 천 번도 넘게 해온 탈핵 강의였다. 이 강의는 '한국 탈핵'이라는 책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그는 그동안 일반인뿐만 아니라 원전 전문가들에게도 똑같이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서 강연했다. 하지만 일부 보수언론들은 '원전 괴담 강의'라고 싸잡아 비난했다.
"그런데 더 웃긴 건 괴담이라는 기사를 보고 다른 기자들은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괴담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난 괴담교수가 됐어요. 다른 매체에서는 궤변이라고 살짝 틀었어요. 창조적이죠. 이젠 궤변교수가 됐네요 (웃음)"
"6년 전부터 꾸준히 똑같은 내용을 강의했는데 이 시점에서 갑자기 강의 내용을 잡아서 검증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도리에 맞는 짓인지 물어보고 싶어요. 제 강의가 부정확하고, 틀렸다라고 생각이 들면 저를 불러다가 검증 토론회를 해도 돼요. 그래서 제가 제안을 했어요. 그들이 지적한 내용 전부를 반박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원전 비전문가'라고 비난도 받고 있는 그는 의대 교수이다. 의대 교수가 탈핵 운동에 뛰어든 이유가 무엇일까? 경주에 있는 동국대 의대 교수인 그는 경주에서 30년 가까이 살았다. 그곳은 원전 6호기가 밀집한 곳이고, 십만년이 넘도록 핵폐기물을 보관해야 할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도 있다. 그는 자신이 사는 동네 얘기니까 관심을 갖게 됐고, 2009년 경주 방폐장 중지 운동에 뛰어들었다. 김 교수에겐 아쉽게도 경주 방폐장은 유치가 됐다.
"경주 방폐장은 방사능이 샐 겁니다. 암반이 나쁜 곳에 건설이 됐고, 지하수가 아주 많은 곳에 건설이 됐어요. 그래서 건설하는 동안에는 하루에 5천톤씩 지하수를 퍼내면서 공사를 했어요. 공사가 끝났는데 지금도 2천톤씩 퍼내요. 운영이 끝나고 난 다음에 폐쇄하면 못 퍼냅니다. 그때부터는 지하수를 통해서 방사능이 새기 시작할 겁니다. 한번 나가기 시작하면 보수공사도 안합니다. 시간 문제일 뿐이지 다 나갑니다. 그런데 안전하다고 결론을 내는 것은 의사로서 인정 못합니다"
원전은 일본에서는 '화장실 없는 맨션'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래서 그는 원전은 '무책임'하다고 말한다. 부모세대들은 원전으로부터 혜택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미래세대에 핵폐기물은 재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결정적으로 2011년 일본 후쿠시마에서 원전 사고가 나는 것을 보고 원자력이 안전 문제는 의학적인 문제라고 생각돼 본격적으로 탈핵 운동에 나섰다.
그는 핵사고가 나면 그 이후엔 인간이 통제하거나 다룰 수 없다고 경고한다. 원전의 안전성을 묻는 질문에 김 교수는 "고장 안 나는 기계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또 그는 핵사고는 교통사고처럼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예측하지 않았던 일이 오는 겁니다. 그렇게 큰 지진이, 큰 쓰나미가 올지 누가 예측했습니까? 또 후쿠시마의 노후원전인 1~4호기만 딱 골라 터질지 누가 예측했습니까? 다 안전한 줄 알았죠. 예측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건, 인간이 오만한 겁니다"
"만일 방사능이 눈에 보였다면 원자력은 가장 더러운 발전 방식이었을 거예요. 이게 눈에 안 보이고, 냄새도 안 나고, 맛도 없고, 우리 오감으로 느낄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클린에너지, 깨끗하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은 굉장히 위험하죠."
"원자력계가 그동안 원자력을 싸다고 해왔어요. 그런데 핵폐기물을 십만년간 보관할 기술도 없다는 걸 국민들이 알고 있어요. 그래서 비용을 얼마로 산정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싸대요... 결국 대부분 국민들이 원전이 위험하고 경제성도 의심되지만 대안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우리 입장에서는 대안이 있다는 것만 보여주면 됩니다"
"대안이 있다"
김 교수는 세계 통계 수치를 예로 들었다. "전 세계의 전기 생산량 중에서 원자력은 10%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는 25% 차지합니다. 지금 현재 이미 원전 전기 생산량의 2.5배를 전 세계에서 재생에너지로 만들고 있어요. 5년 후에는 5%가 더 증가해 30%가 될 거예요. 재생에너지는 1년에 1%씩 증가하는 반면 원자력은 30년 전부터 10% 근처에 머무릅니다"
그의 말대로 세계 통계만 봐도 원전 사업은 '사양산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죽어가는 사업이지만, 그곳에도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이에 그는 "원전은 폐쇄하는데 30년 걸립니다. 그래서 고리1호기에 근무하는 사람들 다 짤렸습니까? 이 분들은 30년 정도 더 일을 해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다.
또 그는 원전기술을 가진 우리가 사양산업인 원전 건설 시장보다 더 큰 시장인 폐로 시장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60년 후에 탈원전을 해요. 그동안 원자력 하는 사람들이 다 필요합니다. 또 10만년간 핵폐기물을 보관해야합니다."
탈원전은 하루 아침에 원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이뤄지는 정책이다. "실제로 원전은 30년 정도 후에 많이 줄어들어요. 그러니까 30~40년 후에 대한민국 에너지에 관해서 지금 논의하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당장 전기료가 오를 것처럼 얘기하고 전기가 부족할 것처럼 얘기하는 건, 턱도 없는 소리입니다"
정부가 탈원전을 선언을 했지만 오히려 5년 사이에 원전은 줄지 않고 늘어난다. 원전 5개를 짓고 있는 중인데 신고리 5·6호기 2개의 건설 중단 여부를 결정한다. 건설이 중단된다고 해도 3개는 완공되는 것이다. 탈원전 운동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만족스럽지 않은 게 사실이다. 5년 사이에 전 정부에서 건설을 시작한 원전들이 완공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게 무슨 탈원전이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탈원전과 에너지 전환은 세계적인 대세다. 이미 다른 나라들은 30년 전부터 재생에너지 사업을 시작을 했고 현재 꽃을 피우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늦게 탈원전 문제의 논의가 시작됐다.
"'후래자(後來者) 삼배'라는 말이 있습니다. 술자리에 늦게 온 사람은 세잔을 한꺼번에 마셔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가 늦게 시작하기는 했지만 빨리 따라 잡을 수 있습니다. 재생에너지 생산률 꼴찌로 출발했지만 10~20년 내로 세계 평균만 따라가면 탈원전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는 원전 개발의 장미빛 환상에서 벗어나 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재생에너지는 안전합니다. 아마 풍력발전기의 프로펠러가 떨어지는 게 최대 사고일 거예요. 이산화탄소·방사능·미세먼지 제로죠. 오염물질이 안 나옵니다. 햇빛과 바람은 아무리 가져다 써도 고갈되지 않는 무한대 에너지입니다. 햇빛과 바람은 연료비가 공짜라 세금도 못 붙여요. 우리나라 에너지 해외의존도 97%인데, 전부 수출에서 번 달러로 사와야 하는 것들 이잖아요. 햇빛과 바람은 국산 에너지입니다"
탈원전 정책은 5년 안에 단기에 가능하지 않다. 그도 탈원전은 국가의 '장기적인 에너지 계획'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탈원전 정책은 정권에 따라 왔다갔다 할 겁니다. 그러나 국민들의 의견이 한 곳으로 모아지면 그 다음에는 뒤바뀌지 않습니다. 결국 국민을 얼마나 설득해내냐가 승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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