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빈 강정’으로 끝난 박근혜 대통령의 4강 외교[분석] 사드 패착에서 ‘위안부’ 호도까지… 갈 곳 잃은 박근혜 정부의 외교정책
박근혜 대통령의 미일중러 등 이른바 ‘4강 외교’가 마무리되면서 러시아와 중국에는 사드 배치를 설득했고 미국과 일본과는 확고한 대북 억제를 재확인했다는 청와대발 자화자찬식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이번 4강 외교에 관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과는 고사하고 사드(THAAD) 도입이라는 ‘패착’ 탓에 한반도에 짙은 먹구름만 몰고 돌아왔다고 할 수 있다.
우선 한러 정상회담을 살펴보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정상회담에 앞서 박 대통령을 자신이 주도하는 동방경제포럼(EEF)에 초청한 이유는 딱 하나였다. 북한의 라선지구 개발은 한국의 경제 번영을 위해서도 필요한 사업이니,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라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대화를 강조하며 “이 사업으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지만, 박 대통령의 답은 “북한은 그사이에도 핵 능력의 고도화를 중단하지 않았다”며 압박과 제재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화’ 요구에 ‘압박이 우선’이라고 답하니 양 정상의 얼굴이 굳어졌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청와대는 굳이 푸틴이 정상회담에서 “평양의 자칭 핵보유 지위를 용인할 수 없다”는 말을 회담의 성과로 내세웠다. 하지만 러시아와 중국의 ‘한반도 비핵화’는 굳이 정상회담을 하지 않아도 늘 강조하는 기본 입장이다. 푸틴은 이날도 “한미 합동군사연습 등 북한의 도발을 부추기는 행동을 자제하고 교섭 가능한 상태로 되돌려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청와대와 한국 언론은 이를 도외시했다. 푸틴이 사드 도입에 강력한 반대를 표명한 것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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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일 오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극동연방대학에서 한-러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뉴시스 |
중러 정상의 발언조차 제대로 전하지 않는 청와대와 한국 언론
시진핑 주석이 박 대통령 면전에서 사드는 “지역의 전략적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분쟁을 격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직격탄을 날린 한중 정상회담은 굳이 거론할 필요도 없다. 박 대통령이 오히려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해 억지력을 갖는 것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중국을 설득했다고 청와대가 밝힐 정도이니, G20 정상회담 주최국인 중국이 판을 깨고 나가지 않은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지도 모른다.
청와대는 또 시 주석이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안보리 결의를 계속 완전하고 엄격히 이행해 나갈 것”이라고 재확인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언론플레이를 했다. 중국이 아무리 “한반도 비핵화 실현과 한반도의 안정 수호에 대한 입장은 확고하다”고 강조해도 이는 ‘북핵 불용’이나 ‘북한 비핵화’를 압박했다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에게 ‘대화’를 강조해도 안 되니, G20 정상회의 이후 중국이 본격적으로 사드 문제에 관해 한국을 압박할 것이라는 외신 분석이 나오는 이유이다.
마치 ‘당신(박 대통령)은 사드에 관해 실권이 없으니, 미국과 이야기하겠다’고 추궁이라도 한 듯 박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한·미·중 간 소통을 통해서도 건설적이고 포괄적인 논의를 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답했다. 사드 도입은 북한 위협에 대비하는 자위적이고 주권적인 조치라는 것을 강조해 온 박 대통령이 스스로 중국의 압력을 인정하며, 미국을 끌어들인 것이다. 쉽게 말해 사드는 미국의 뜻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악수(惡水) 중의 악수를 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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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5일 오전(현지시간) 항저우 서호 국빈관에서 한중 정상회담을 하기 전 악수를 하고 있다.ⓒ뉴시스 |
사드 문제로 갈수록 고립되고 있는 박 대통령이 그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회담이 한미 정상회담이었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성명(statement) 수준이 아니라, 단지 언급(remark) 수준에서 사드의 필요성에 관해 박 대통령을 위로해 주었다. 중러 정상의 강한 압박에 박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 양국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중국 측과도 계속 소통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드는 자위적 주권적 조치라는 말이 중러에 통하지 않자, 미국 대통령도 좀 나서 달라는 말과 다름없다.
이번 G20 정상회담에서 거의 무례에 가까운 대접을 받은 오바마 미 대통령의 임기는 몇 달 남지 않았다. 중러 정상들은 이점을 잘 알고 있고, 푸틴이 시리아 문제 등에 관해서도 오바마와 협상을 타결짓지 않은 이유이다. 미국은 곧 정권이 바뀐다는 것이다. 물론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이 승리한다면, 대부분의 정책은 계승되겠지만,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할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이미 트럼프는 지난 7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한반도에 배치된 미사일방어가 무용지물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트럼프는 당시 “북한 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해 그곳(한반도)에 미사일방어체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질문에 한 마디로 “우리는 그곳에 오랫동안 (미사일방어시스템을) 배치해왔다. (하지만) 지금 실제적으로 공평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쓸모없는 것(We’ve had them there for a long time, and now they’re practically obsolete, in all fairness.)”이라고 잘라 말했다. 박 대통령에게는 참으로 뜨끔한 일일 것이다. 오바마에게 위로는 받을 일이 아니라, 미국의 상황 변화에 외교적으로 대비해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일본은 “소녀상 철거” 폭탄 안겨
안보리의 ‘대화 촉구’도 무시하는 박근혜 정권
4강 외교에서 사드 패착의 백미는 공교롭게도 마지막 한일 정상회담에서 나왔다. 청와대는 북핵과 미사일에 관해서는 한국보다도 더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일본의 아베 총리가 최소한 한국의 사드 도입 필요성을 인정하며 일본도 곧 도입할 의지가 있다는 정도의 발언을 할 것으로 기대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아베에게서 나온 소리는 늘 하던 한일 대북 공조와 함께 ‘위안부’피해를 상징하는 소녀상의 철거 요청이었다.
일본 언론들은 “회담에서는, 위안부 문제에 관해 한국이 설립한 전 위안부 지원 재단에 대한 10억 엔(약 106억 원) 출연 완료 등 일본 측의 대응을 설명. 서울의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피해를 상징하는 소녀상에 대해, 일본 측의 철거 요구를 염두에 두고, 합의의 이행을 요청했다”고 보도했지만, 청와대는 이마저도 밝히지도 않았다. 주변 4강 연쇄 회담이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위안부 문제에 관해 박 대통령이 ‘꿀 먹은 벙어리’가 돼 종결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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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보리 언론성명 중 ‘대화 촉구’ 부분ⓒ유엔 안보리 언론성명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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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와 한국 언론은 유엔 안보리 대북 언론성명이 북한의 제재와 압박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호도하고 있지만, 북한과의 대화도 강조하고 있음을 이 기회에 밝혀 두고자 한다. 유엔 안보리는 언론성명에서 늘 “안보리 회원국은 한반도와 넓게는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또한,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고자 하는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노력을 준수하며 회원국이나 다른 국가들의 대화를 통한 평화적이고 광범위한 해결 움직임을 환영한다”고 밝히고 있다. 박 대통령이 더 이상의 외교적 실패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바로 안보리가 요구하는 대화(dialogue)에 귀를 기울이는 방법밖에는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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