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위원회 회의록 ‘깜깜’, 국민은 알 권리 있다
대부분 정부위원회 논의 과정 '깜깜', 서울시 수돗물위원회 녹취록 공개와 대조
540여 위원회 전문성 높였지만 투명성 못 따라가, 회의록 공개가 첫걸음
» 전기요금 누진제를 개편한다고 모든 문제가 풀리는 건 아니다. 에너지원 간 가격 불균형과 생산지역과 소비지역 사이 불평등도 고쳐야 한다. 그런 개혁의 전제는 행정의 투명성이다. 원시림 지대를 통과하는 고압 송전탑 모습. 서재철
이번 여름은 뜨거웠다. 날씨도 뜨겁고 전기요금 논란도 뜨거웠다. 경제는 어려운데 받아 든 전기요금 고지서는 더 덥고, 내가 물어야 하는 이 비용이 산업용의 짐을 대신 져야 한다는 사실이 날씨보다 더 짜증스러웠다.
국가 경제를 위해 국민이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가 더는 먹히지 않게 되었다. 파이를 키워도 서민 몫은 커지지 않았고 국가 경제를 위한다는 명분에 밀려 기업 대신 국민이 희생하고 기다려도 고용도 살림도 늘지 않았다는 걸 이젠 모두가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여름의 기록적인 더위로 우리나라 전력가격, 더 나아가서 에너지 가격의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커진 것은 짜증 나는 가운데서도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정부가 누진제 전력가격 정상화에 나선다니 국민은 대폭적인 전력가격 인하를 기대하지만 그렇게 될 수 있을지, 그렇게 되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조금 더 따져볼 일이다. 산업용, 가정용 등 용도별 전력가격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 못지않게 전력, 가스, 석유 제품 등 에너지원 간 가격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발전시설, 송배전시설 등 에너지 시설 인근 지역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과 같은 사회적 정의도 고려되어야 한다(■ 관련 기사: 원가 이하 산업전기, 사회가 덤터기 쓴다). 어렵게 시작된 에너지 가격 정상화를 위해서는 지나친 가계의 부담을 덜어내는 노력뿐 아니라 환경과 형평성을 고려해 우리 사회가 지불해야 할 몫을 공정하게 나누는 것이 당연하다. 이번 여름, 사람들이 그토록 화가 났던 것이 그동안 속고 참아야 했다는 배신감과 국민만 참아야 한다는 억울함 때문이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소비자 간의 형평성뿐 아니라 에너지 생산지역과 소비지역 간의 형평성도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문제가 된 정책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그동안의 정책이 어떤 근거와 바탕 위에서 수립되고 시행되었는지를 먼저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전기요금이 어떤 근거에서 책정되는지, 그토록 말 많던 누진제는 무엇을 기대해서 만들어졌는지를 알아야 개선을 시작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의 누진제 체계를 정한 것으로 알려진 2004년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전기위원회의 회의록에서는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 회의록이 인터넷에 공개돼 있지만 회의록에는 “원안대로 의결되었다”는 내용밖에 없어 실제 내용이나 논의과정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이유는 몰라도 돼"…결과만 통보하는 정부 위원회).1)
» ‘용산미군기지 온전히 되찾기 주민모임’과 ‘불평등한 한-미 소파 개정 국민연대’ 등이 지난달 17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인근 집수정 앞에서 ‘용산 미군기지 3차 내부오염조사에 즈음한 시민사회 기자회견’을 열어 환경부에 용산기지의 환경오염 정보 공개와 주한미군의 정화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우리나라 정부는 540여개의 각종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1997년 금융위기 때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우리나라는 정부의 규모를 줄여나가야 했다.2) 이러한 작은 정부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정부기관 산하에 위원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정부정책에 민간전문가나 관련 단체를 참여시켜 정부 조직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투명성을 높여왔다.
최근 들어 정책과정의 전문성이 점점 더 강화되는 추세다. 그러나 정책의 전문성이 높아질수록 따라서 강화되어야 하는 것이 정책과정의 투명성이다. 정책과정의 전문성이 강화되면서 점점 더 정책 결정이 소수의 정책결정자나 관련 전문가에게 독점되기 때문에 그 절차와 과정은 공개를 원칙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소수 엘리트에게 독점되는 행정은 대우조선 사태처럼 요즘 우리가 매일 목도하게 되는 부패의 온상이 된다. 그러나 누진제 사태에서 나타난 것과 같이,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의 정책은 그리 투명하게 관리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세월호 사고 때는 “해피아”를 구의역사고 때는 “메피아”를 사고 원인의 뿌리에서 마주치게 된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사회 도처에 숨어있는 무슨 무슨 마피아가 드러나는 사회는 민주적일 수도 공정할 수도 없다.
»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과 당원들이 지난 3월23일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하 운영위원장이 청와대를 상대로 낸 세월호 사고 관련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 소송 판결 결과에 항의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법원은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 보고·지시 사항에 대한 청와대의 공개 거부가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연합뉴스
정책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정책과정을 국민에게 공개하고 의견을 수렴해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일은 그다지 매력 있는 일은 아니다. 품은 많이 들고 성과는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장은 정보를 공개해서 들을 칭찬은 적고 불만은 많으며 효율적이고 신속한 집행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책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부패를 방지하고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은 국민에게 정책의 수용성을 높임으로써 장기적으로는 정부정책의 효율성을 높여주게 된다.
정책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의 많은 결정이 이뤄지는 정책위원회의 회의록이 반드시 제대로 작성되어야 하고 회의록에 쉽게 접근 가능 해야 한다. 서울시 수돗물평가위원회가 민간참여위원들의 요청으로 초기부터 회의록을 녹취록으로 작성하고 이를 공개해온 것과 같이 일부 정책위원회에서는 이미 회의록을 녹취록으로 작성하고 있다.녹취록이 작성되고 있고 회의록이 공개된다는 것만으로도 정책위원회에서 부당한 압력이나 청탁으로 인한 정책 결정의 여지가 줄어든다. 회의록조차 없다는 서별관 회의(■ 관련 기사: ‘서별관 3인방’ 빠지고 핵심자료 제출 안 해 ‘맹탕 청문회’)가 국가 경제와 국민에게 떠넘긴 빚을 생각해본다면, 아무도 들여다볼 것 같지 않더라도 기록을 남기는 일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 상수도 관으로 만든 아리수 조형물. 아리수는 병에 넣은 서울의 수돗물이다. 수돗물에 대한 불신을 허물기 위해 서울시는 시민단체의 참여와 정보공개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또 정책위원회나 정책 연구에 참여하는 전문가나 시민단체의 대표는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각계의 대표로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참가자에게 제공된 정책자료나 연구자료가 공개되고 공유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각계의 대표를 통해 관련 이해당사자나 국민의 의견을 정책 결정 과정에 수렴할 수 있어 정책의 수용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정책위원회를 만들어 민간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면서도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도 의례적으로 보안을 강조하는 일이 빈번하다. 오죽하면 4대강 사업 당시 정부가 보안 의무가 딸린 무차별 연구용역을 남발해 말할 자유가 있는 전문가를 구하기 힘들다는 말까지 떠돌았다. 정책위원회든 정부 발주의 연구결과든 정보의 공개를 제한하는 것은 엄격한 요건을 두고 예외적인 일로 관리되어야 한다. 국민의 일을 대신 집행한다는 정부가 국민에게 정책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다.
» 정부의 연구 용역을 할 때 연구자가 작성해야 하는 보안각서.
상시적인 정책위원회 외에도 정부는 국민적 관심사나 갈등이 많은 사안에 대한 민관위원회를 운영하거나 민관 공동조사를 시행하는 경우가 많다. 민간을 정책 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시켜 신뢰를 회복하고 정책의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민간의 참여가 개인적으로 머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위원회나 조사과정을 적극적으로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
홈페이지를 만들어 관련 정보와 회의를 공개하고 국민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의견 수렴에 노력해야 한다. 이해당사자를 적극 참여시키는 일은 정책 결정 과정을 더디고 혼잡스럽게 만드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결국 결정된 정책이 제대로 수행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정부의 정보공개는 적극적이어야 한다. 아는 사람만 찾아낼 수 있는 정보, 도대체 알 수 없는 정보는 공개되어도 공개된 것이 아니다. 매일 부정한 권력의 민낯을 마주해야 하는 이 민망함, 사건이 터질 때마다 부패한 권력의 유착에 분노하는 이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부정부패를 단죄하는 것 못지않게 음습한 부패의 싹을 국민의 눈앞에 드러내야 한다.
공직자와 공직에 참여하는 사람에게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 내 행동이 기록되고 남겨진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정보공개의 역할이다.
이수경/ 환경과 공해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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