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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13일 화요일

귀성길, 두 개의 참 다른 추석잡지


문체부 '고향 가는 길' vs. 시민사회단체 '다른 내일'
추석 연휴를 맞은 귀성길 허브인 서울역에선 두 개의 잡지가 눈에 띈다. 열차 안 객석마다 배치된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고향 가는 길>과 서울역 입구와 광장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및 4.16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공동으로 발행해 배포 중인 <다른 내일>이 그것이다. 이 두 잡지는 과연 한 나라에서 한 시기에 나온 잡지가 맞나 의문이 들 정도로 극명한 대비를 보인다.
12일 <한겨레>가 온라인 기사에서 '용비어천가'라고 풍자한 <고향 가는 길>의 표지에선 ‘그래픽으로 만나는 자랑스러운 대한국인’, ‘원칙과 소신으로 일궈낸 살맛나는 대한민국’ 등의 기사 제목들을 훑을 수 있다. 4쪽 ‘자랑스러운 대한국인’을 살펴보면 “박근혜 정부가 공공노동금융교육 개혁 등 4대 개혁을 국가 발전과제로 제시”했음을 강조한다. “창업 환경·경영 인프라 개선부문에서 6년 만에 세계 19위에서 4위로 상승해 기업환경평가 4위가 됐음”을 자랑한다.
반면 <다른 내일> 4~5쪽은 ‘가계부채 1200조, 재벌곳간에도 1200조’를 다루며 “자영업자 10명 중 8명은 문 닫는 세상”을 한탄하고 “재벌기업 노동자 40%가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을 꼬집는다. 13일 오전 서울역 입구에서 ‘공공기관 돈벌이 경쟁은 미친 짓이다’ ‘이윤보다 안전’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든 노동자들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힘든 현실을 대변했다.
<고향 가는 길> ‘살맛나는 대한민국 이유 있었네’는 3대가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의 명절 대화(허구 상황)로 꾸며진다. 글 속의 가족은 “일자리 창출하는 노동개혁에 국민 모두가 웃는다”라고 말한다. 한국사회의 주요 갈등이 현 정부의 묘책으로 '해피엔딩'을 맞이한 동화 같은 대화다. 여기에 노조파괴와 비정규직 확산을 막기 위해 명절에도 장기투쟁을 이어가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없다. 한편 이날 서울역에선 공장점거 농성을 벌이며 가족과 추석을 보내지 못하는 갑을오토텍 노동자와 가족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담은 전단지를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또한 <고향 가는 길>은 지난 12.28한일합의에 대해 지난 24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조속히 합의·협상”한 박근혜 정부의 성과로 표현한다. 그러나 12.28한일합의에는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과 사죄 및 배상이 빠졌다. 게다가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이전 문제까지 불거져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죄 없는 10억 엔에 ‘최종적, 불가역적 합의’라니 피해당사자 할머니들의 상처만 키운 '굴욕적 졸속 합의'라는 비판 역시 거센 현실이다.
<고향 가는 길>에는 900일 가까이 선체인양도, 진상규명도 하지 못해 썩어 문드러져 가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픈 마음이나 9월30일이면 정부의 강제폐쇄 위기에 처한 세월호 특조위에 대한 이야기는 한 줄도 없다. 그래서 유가족들이 직접 나와 소매를 걷어붙이고 알려야 하는 상황이다.
“즐거운 추석되세요.” “세월호 리본 받아가세요.” 세월호 리본이나 <다른 내일> 잡지를 받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스마트폰 화면을 쳐다보거나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더 많다. “어제 안산에서 시작했을 때는 많이들 받아 가셨는데 오늘은 잘 안 받아 가시네요.” 세월호 유가족 ‘영석 엄마’ 권미화 씨의 마음은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한편 이날 오전 서울역 광장에서는 민주노총, 4.16연대, 백남기대책위, 공공성강화-성과퇴출제저지 시민사회공동행동, 민중총궐기 투쟁본부가 추석을 맞아 고향으로 가는 시민들과 소통하고자 ‘추석맞이 시민사회단체 합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선 12일 저녁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난 지진 대응에 미흡했던 정부의 "여전한 안전불감증"에 대한 규탄이 쏟아졌다. 

이명주 기자  ana.myungju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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