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식물…때맞춰 꽃피우고 기억하고 속이고
중추신경계 없지만 잎, 줄기, 뿌리가 네트워크로 연결돼 고등기능 수행
미모사는 30일 뒤까지 기억…공동체 이뤄 햇빛 못 받는 나무에 양분 나누기도
» 서울 여의도 윤중로에 일제히 피어난 벚꽃. 개화시기는 밤과 낮의 길이, 온도, 지난 겨울의 온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사진=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봄은 밀려드는 꽃 물결과 함께 온다. 기후변화로 개나리 물결이 지나기도 전에 벚꽃이 밀려오는 혼란도 없지 않았지만, 산수유와 매화에서 시작해 목련, 진달래, 개나리, 벚꽃으로 이어지는 순서에는 변함이 없다. 곧이어 조팝나무와 철쭉 꽃에서 우리는 봄이 익어감을 확인할 것이다.
그렇다면 식물은 어떻게 봄이 왔는지 알고 일제히 꽃을 피우는 걸까. 간단한 일처럼 보이지만 세계적 과학자들이 머리를 싸매는 복잡한 문제이기도 하다.
낮이 길어지고 온도가 높아지면 꽃이 핀다. 그런데 시계나 온도계도 없이 식물은 어떻게 그 변화를 ‘알’ 수 있을까. 또 변화를 감지하고 지시를 내릴 뇌가 없는데 어떻게 일제히 꽃을 피울 수 있을까.
» 개화 시기는 잎에서 만들어진 단백질 복합체가 온도계처럼 작용해 결정된다. 이른봄 야생화인 노루귀. 사진=이병학 기자
미국 식물생리학자 미카일 체일라칸은 1937년 꽃이 핀 식물의 일부를 떼어 피지 않은 식물에 접붙여 개화를 유도하는 실험에 성공한 뒤 꽃을 피우게 하는 가상의 호르몬인 ‘플로리겐’이 있을 것이란 가설을 제안했다. 잎에서 만든 플로리겐이 가지 끝으로 이동해 신호를 전달하면 꽃봉오리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7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식물학자들이 맹렬히 찾았음에도 그런 물질은 발견되지 않았다.
마침내 1999년 개화유전자가 밝혀지고, 이후 우여곡절 끝에 잎에서 만들어진 특정 단백질이 체관을 따라 가지 끝에 신호를 전달하면 꽃봉오리가 만들어진다는 데 이르렀다.
꽃을 피우려는 식물은 밤과 낮의 길이가 어떻게 바뀌고 온도가 자라기에 적절한지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꽃을 피웠는데 꽃가루받이를 해줄 곤충이 아직 깨어나지 않았거나 얼어버린다면 그해 번식은 헛일이 된다.
식물은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개화를 억제하는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 유전자가 어떻게 작동해 개화를 조절하는지는 미스터리였다. 2013년 안지훈 고려대 생명과학과 교수 연구팀은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서 그 비밀을 풀었다. 식물 안에 온도계처럼 작동하는 단백질의 복합체가 형성돼 그 양에 따라 개화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 꽃 색깔에도 이유가 있다. 흰색은 딱정벌레나 꿀벌이, 붉은색은 나비가 선호하는 색이다. 지리산 바래봉의 산철쭉 군락. 사진=지리산국립공원북부사무소
오랜 진화의 산물인 식물의 모습 하나하나엔 다 의미가 있을 것이다. 개나리·진달래·벚나무 등 잎보다 꽃을 먼저 내는 식물은 잎으로 가리기 전에 바람과 매개곤충이 쉽게 꽃가루받이를 하도록 ‘배려’했을 것이다. 흰색을 좋아하는 딱정벌레나 꿀벌이 활동할 때는 흰색 꽃이 많다가 빨강과 자주를 선호하는 나비 철이 되면 붉은 계열 꽃이 많아지는 것도 그렇다.
식물은 동물과 달리 돌아다니지 못한다. 팔·다리가 없는데 굳이 에너지가 많이 드는 두뇌가 있을 필요가 없다. 그 기능은 잎과 줄기, 뿌리 등 몸 전체에 분산돼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
개화 메커니즘을 겨우 분자 차원에서 이해했지만 식물에 대해 우리는 겨우 귀퉁이만 아는 셈이다. 최근의 연구결과에서 분명한 것은 식물이 우리가 짐작하던 것보다 훨씬 ‘똑똑하다’는 사실이다.
» 각다귀를 잡은 파리지옥. 나뭇잎 등이 우연히 감각모를 건드려도 잎이 닫히지는 않는다. 사진=KaiMartin, 위키미디어 코먼스
최근 주목받는 분야가 식물의 기억력이다. 파리지옥은 잎 안의 섬모를 곤충이 건드리면 잎을 닫아 곤충을 가둔 뒤 소화액을 분비해 잡아먹는 식충식물이다.
이 식물의 감각모를 한 번 건드리면 꼼짝 않는다. 30초 안에 다시 한 번 건드려야 잎을 닫는다. 에너지가 많이 드는 잎을 닫는 행동을 하기 전에 누군가 건드린 사실을 ‘기억’해 ‘판단’하는 것이다. 물론 두뇌가 이런 일을 아는 게 아니다. 감각모에 자극이 축적돼 전기 펄스가 형성되면 덫이 작동한다.
» 잎을 건드리면 잎을 오므리는 미모사. 자극의 종류를 장기간 기억한다. 사진=Emőke Dénes, 위키미디어 코먼스
손을 대면 잎을 접고 움츠러드는 미모사도 놀라운 기억력을 가진다. 2014년 이탈리아 플로렌스대 연구진은 미모사 화분을 15㎝ 높이에서 푹신한 바닥에 떨어뜨리는 실험을 했다.
처음엔 잎을 접는 반응을 보였지만 아무런 해가 없음이 분명해지자 그 다음부터는 떨어뜨려도 잎을 접지 않았다. 한 달 뒤 다시 실험을 했는데 미모사는 반응하지 않았다. 해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고밖에 무어라 할까.
사실, 미모사는 잎뿐 아니라 뿌리를 건드리면 방귀를 뀌듯 자극적 화학물질을 분출하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그것도 유리로 건드릴 때는 반응하지 않고 사람의 손으로 자극할 때만 뿜었다(■ 관련기사: 식물도 방귀 뀐다, 미모사 뿌리 건드리면 ‘뿡’ ).
식물은 도망치지 못하므로 제자리에서 수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한다. 해마다 이주하는 초식동물이 지나간 뒤 꽃을 피우는 식물의 기억은 유용하지만, 어쩌다 한 번 오는 가뭄을 해마다 기억해 값비싼 준비를 할 필요는 없다.
피터 크리스프 오스트레일리아대 생물학자 등은 과학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2월19일치에 실린 식물 기억에 관한 리뷰 논문에서 “다양한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식물은 기억 못지않게 잊어버리는 능력이 중요한 진화 전략”이라고 밝혔다.
» 이른봄 잎보다 자루 모양의 꽃이 먼저 나오는 앉은부채의 모습. 꽃덮개(A) 속에 지압공처럼 생긴 꽃(E)이 들어있다. 적외선 사진으로 보면 꽃 부위가 주변과 달리 20도 이상으로 가열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온다 외(2007) <식물생리학>
꼭 지능이라고 하기는 어려워도, 수동적으로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존재라는 이미지와 거리가 먼 식물의 능동적인 생존전략도 적지 않다. 이른봄 중부지방의 깊은 산에서 볼 수 있는 앉은부채라는 천남성과 식물이 있다. 이 식물은 영하로 떨어지는 밤 동안 스스로 열을 내 꽃 내부를 20도 안팎으로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시히코 온다 일본 이와테대 식물학자 등 연구자들은 앉은부채가 왜 열을 발생하는지 알아본 결과를 과학저널 <식물 생리학> 2008년 2월호에 보고했다. 정밀 측정 결과 이 식물은 주변 온도가 영하 1.1도에서 19.4도로 변화하는 동안 꽃의 온도를 5일 동안 23도로 유지했다.
그동안 앉은부채의 발열은 향기를 발산해 꽃가루받이 동물을 불러모으거나, 저온 피해를 막기 위한 것으로 추정했지만 연구자들은 꽃가루가 성숙하는 시기에 저온에 의한 손상을 막기 위한 적응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 식물과 꿀벌 사이는 꽃가루받이를 해 주고 꿀을 얻는 호혜적 관계로 알려졌지만 식물이 카페인을 이용해 일방적으로 착취하는 측면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식물이 카페인의 의존효과를 이용해 꿀벌을 속인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마거릿 쿠빌론 영국 서식스대 생물학자 등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 2015년 11월15일치에 실린 논문에서 식물의 55%는 꿀물에 낮은 농도의 카페인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를 먹은 꿀벌은 꽃의 당분 함량을 과대평가해 다른 꽃보다 자주 들르게 된다는 사실을 밝혔다(■ 관련기사: 식물 55% 꿀에 카페인 타 꿀벌 ‘착취’).
카페인은 애초 식물이 초식동물을 물리치기 위해 고안한 쓴맛을 내는 화학물질이다. 꽃과 꿀벌 사이의 관계가 호혜적이 아니라 착취적인 관계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난초는 속임수의 대가다. 가짜 꿀을 내는가 하면 고기 냄새를 풍기기도 하고 암컷 곤충의 모양과 냄새로 수컷을 유혹하기도 한다. 최근 미국에 분포하는 제비난의 일종은 속임수의 목록을 하나 더 늘렸다. 이 난은 사람의 체취를 풍긴다. 이를 맡은 흰줄숲모기가 난의 꽃가루받이를 해준다.
» 사람의 체취를 풍겨 사람인줄 알고 꼬인 흰줄숲모기의 힘으로 꽃가루받이를 하는 제비난의 일종. 사진=Kiley Riffell
눈에 보이는 나무는 나무의 일부분일 뿐이다. 나무는 땅속에서 뿌리와 곰팡이를 통해 소통하고 자원을 나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소나무와 참나무를 포함해 육상식물의 90%는 토양 균류(곰팡이)와 공생을 해 균근을 형성한다. 나무는 광합성으로 합성한 탄화수소를 균류에 제공하고 균류는 유기물을 분해해 뿌리가 흡수할 질소, 인 등 필수 미네랄과 수분을 흡수하도록 해 준다.
나아가 나무와 나무 사이를 잇는 균사를 통해 햇빛을 많이 받는 나무의 양분을 그늘에 있는 다른 종의 나무에 나눠주기도 한다. 숲은 종류가 다른 나무들끼리 공생하는 공동체이기도 한 것이다. 대표적 지적 생물인 인류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는 자질 아닌가.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Suzanne W. Simard et. al., Net transfer of carbon between ectomycorrhizal tree species in the field,Nature, Vol. 388, pp. 579-581, August 1997
Yoshihiko Onda et. al., Functional Coexpression of the Mitochondrial Alternative Oxidase and Uncoupling Protein Underlies Thermoregulation in the Thermogenic Florets of Skunk Cabbage, Plant Physiology, February 2008, Vol. 146, pp. 636.645,www.plantphysiol.org/cgi/doi/10.1104/pp.107.113563
Crisp et al. Reconsidering plant memory: Intersections between stress recovery, RNA turnover, and epigenetics, Sci. Adv. 2016; 2 : e1501340, 19 February 2016, doi: 10.1126/sciadv.1501340
Rabi A. Musah et. al., Mechanosensitivity Below Ground: Touch-Sensitive Smell-Producing Roots in the “Shy Plant,” Mimosa pudica L. First Published on December 9, 2015, doi:http://dx.doi.org/10.1104/pp.15.01705, Plant Physiology December 9, 2015 pp.01705.2015.
Couvillon et al., Caffeinated Forage Tricks Honeybees into Increasing Foraging and Recruitment Behaviors, Current Biology (2015), http://dx.doi.org/10.1016/j.cub.2015.08.052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미모사는 30일 뒤까지 기억…공동체 이뤄 햇빛 못 받는 나무에 양분 나누기도
» 서울 여의도 윤중로에 일제히 피어난 벚꽃. 개화시기는 밤과 낮의 길이, 온도, 지난 겨울의 온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사진=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봄은 밀려드는 꽃 물결과 함께 온다. 기후변화로 개나리 물결이 지나기도 전에 벚꽃이 밀려오는 혼란도 없지 않았지만, 산수유와 매화에서 시작해 목련, 진달래, 개나리, 벚꽃으로 이어지는 순서에는 변함이 없다. 곧이어 조팝나무와 철쭉 꽃에서 우리는 봄이 익어감을 확인할 것이다.
그렇다면 식물은 어떻게 봄이 왔는지 알고 일제히 꽃을 피우는 걸까. 간단한 일처럼 보이지만 세계적 과학자들이 머리를 싸매는 복잡한 문제이기도 하다.
낮이 길어지고 온도가 높아지면 꽃이 핀다. 그런데 시계나 온도계도 없이 식물은 어떻게 그 변화를 ‘알’ 수 있을까. 또 변화를 감지하고 지시를 내릴 뇌가 없는데 어떻게 일제히 꽃을 피울 수 있을까.
» 개화 시기는 잎에서 만들어진 단백질 복합체가 온도계처럼 작용해 결정된다. 이른봄 야생화인 노루귀. 사진=이병학 기자
미국 식물생리학자 미카일 체일라칸은 1937년 꽃이 핀 식물의 일부를 떼어 피지 않은 식물에 접붙여 개화를 유도하는 실험에 성공한 뒤 꽃을 피우게 하는 가상의 호르몬인 ‘플로리겐’이 있을 것이란 가설을 제안했다. 잎에서 만든 플로리겐이 가지 끝으로 이동해 신호를 전달하면 꽃봉오리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7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식물학자들이 맹렬히 찾았음에도 그런 물질은 발견되지 않았다.
마침내 1999년 개화유전자가 밝혀지고, 이후 우여곡절 끝에 잎에서 만들어진 특정 단백질이 체관을 따라 가지 끝에 신호를 전달하면 꽃봉오리가 만들어진다는 데 이르렀다.
꽃을 피우려는 식물은 밤과 낮의 길이가 어떻게 바뀌고 온도가 자라기에 적절한지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꽃을 피웠는데 꽃가루받이를 해줄 곤충이 아직 깨어나지 않았거나 얼어버린다면 그해 번식은 헛일이 된다.
식물은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개화를 억제하는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 유전자가 어떻게 작동해 개화를 조절하는지는 미스터리였다. 2013년 안지훈 고려대 생명과학과 교수 연구팀은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서 그 비밀을 풀었다. 식물 안에 온도계처럼 작동하는 단백질의 복합체가 형성돼 그 양에 따라 개화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 꽃 색깔에도 이유가 있다. 흰색은 딱정벌레나 꿀벌이, 붉은색은 나비가 선호하는 색이다. 지리산 바래봉의 산철쭉 군락. 사진=지리산국립공원북부사무소
오랜 진화의 산물인 식물의 모습 하나하나엔 다 의미가 있을 것이다. 개나리·진달래·벚나무 등 잎보다 꽃을 먼저 내는 식물은 잎으로 가리기 전에 바람과 매개곤충이 쉽게 꽃가루받이를 하도록 ‘배려’했을 것이다. 흰색을 좋아하는 딱정벌레나 꿀벌이 활동할 때는 흰색 꽃이 많다가 빨강과 자주를 선호하는 나비 철이 되면 붉은 계열 꽃이 많아지는 것도 그렇다.
식물은 동물과 달리 돌아다니지 못한다. 팔·다리가 없는데 굳이 에너지가 많이 드는 두뇌가 있을 필요가 없다. 그 기능은 잎과 줄기, 뿌리 등 몸 전체에 분산돼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
개화 메커니즘을 겨우 분자 차원에서 이해했지만 식물에 대해 우리는 겨우 귀퉁이만 아는 셈이다. 최근의 연구결과에서 분명한 것은 식물이 우리가 짐작하던 것보다 훨씬 ‘똑똑하다’는 사실이다.
» 각다귀를 잡은 파리지옥. 나뭇잎 등이 우연히 감각모를 건드려도 잎이 닫히지는 않는다. 사진=KaiMartin, 위키미디어 코먼스
최근 주목받는 분야가 식물의 기억력이다. 파리지옥은 잎 안의 섬모를 곤충이 건드리면 잎을 닫아 곤충을 가둔 뒤 소화액을 분비해 잡아먹는 식충식물이다.
이 식물의 감각모를 한 번 건드리면 꼼짝 않는다. 30초 안에 다시 한 번 건드려야 잎을 닫는다. 에너지가 많이 드는 잎을 닫는 행동을 하기 전에 누군가 건드린 사실을 ‘기억’해 ‘판단’하는 것이다. 물론 두뇌가 이런 일을 아는 게 아니다. 감각모에 자극이 축적돼 전기 펄스가 형성되면 덫이 작동한다.
» 잎을 건드리면 잎을 오므리는 미모사. 자극의 종류를 장기간 기억한다. 사진=Emőke Dénes, 위키미디어 코먼스
손을 대면 잎을 접고 움츠러드는 미모사도 놀라운 기억력을 가진다. 2014년 이탈리아 플로렌스대 연구진은 미모사 화분을 15㎝ 높이에서 푹신한 바닥에 떨어뜨리는 실험을 했다.
처음엔 잎을 접는 반응을 보였지만 아무런 해가 없음이 분명해지자 그 다음부터는 떨어뜨려도 잎을 접지 않았다. 한 달 뒤 다시 실험을 했는데 미모사는 반응하지 않았다. 해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고밖에 무어라 할까.
사실, 미모사는 잎뿐 아니라 뿌리를 건드리면 방귀를 뀌듯 자극적 화학물질을 분출하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그것도 유리로 건드릴 때는 반응하지 않고 사람의 손으로 자극할 때만 뿜었다(■ 관련기사: 식물도 방귀 뀐다, 미모사 뿌리 건드리면 ‘뿡’ ).
식물은 도망치지 못하므로 제자리에서 수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한다. 해마다 이주하는 초식동물이 지나간 뒤 꽃을 피우는 식물의 기억은 유용하지만, 어쩌다 한 번 오는 가뭄을 해마다 기억해 값비싼 준비를 할 필요는 없다.
피터 크리스프 오스트레일리아대 생물학자 등은 과학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2월19일치에 실린 식물 기억에 관한 리뷰 논문에서 “다양한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식물은 기억 못지않게 잊어버리는 능력이 중요한 진화 전략”이라고 밝혔다.
» 이른봄 잎보다 자루 모양의 꽃이 먼저 나오는 앉은부채의 모습. 꽃덮개(A) 속에 지압공처럼 생긴 꽃(E)이 들어있다. 적외선 사진으로 보면 꽃 부위가 주변과 달리 20도 이상으로 가열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온다 외(2007) <식물생리학>
꼭 지능이라고 하기는 어려워도, 수동적으로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존재라는 이미지와 거리가 먼 식물의 능동적인 생존전략도 적지 않다. 이른봄 중부지방의 깊은 산에서 볼 수 있는 앉은부채라는 천남성과 식물이 있다. 이 식물은 영하로 떨어지는 밤 동안 스스로 열을 내 꽃 내부를 20도 안팎으로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시히코 온다 일본 이와테대 식물학자 등 연구자들은 앉은부채가 왜 열을 발생하는지 알아본 결과를 과학저널 <식물 생리학> 2008년 2월호에 보고했다. 정밀 측정 결과 이 식물은 주변 온도가 영하 1.1도에서 19.4도로 변화하는 동안 꽃의 온도를 5일 동안 23도로 유지했다.
그동안 앉은부채의 발열은 향기를 발산해 꽃가루받이 동물을 불러모으거나, 저온 피해를 막기 위한 것으로 추정했지만 연구자들은 꽃가루가 성숙하는 시기에 저온에 의한 손상을 막기 위한 적응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 식물과 꿀벌 사이는 꽃가루받이를 해 주고 꿀을 얻는 호혜적 관계로 알려졌지만 식물이 카페인을 이용해 일방적으로 착취하는 측면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식물이 카페인의 의존효과를 이용해 꿀벌을 속인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마거릿 쿠빌론 영국 서식스대 생물학자 등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 2015년 11월15일치에 실린 논문에서 식물의 55%는 꿀물에 낮은 농도의 카페인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를 먹은 꿀벌은 꽃의 당분 함량을 과대평가해 다른 꽃보다 자주 들르게 된다는 사실을 밝혔다(■ 관련기사: 식물 55% 꿀에 카페인 타 꿀벌 ‘착취’).
카페인은 애초 식물이 초식동물을 물리치기 위해 고안한 쓴맛을 내는 화학물질이다. 꽃과 꿀벌 사이의 관계가 호혜적이 아니라 착취적인 관계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난초는 속임수의 대가다. 가짜 꿀을 내는가 하면 고기 냄새를 풍기기도 하고 암컷 곤충의 모양과 냄새로 수컷을 유혹하기도 한다. 최근 미국에 분포하는 제비난의 일종은 속임수의 목록을 하나 더 늘렸다. 이 난은 사람의 체취를 풍긴다. 이를 맡은 흰줄숲모기가 난의 꽃가루받이를 해준다.
» 사람의 체취를 풍겨 사람인줄 알고 꼬인 흰줄숲모기의 힘으로 꽃가루받이를 하는 제비난의 일종. 사진=Kiley Riffell
눈에 보이는 나무는 나무의 일부분일 뿐이다. 나무는 땅속에서 뿌리와 곰팡이를 통해 소통하고 자원을 나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소나무와 참나무를 포함해 육상식물의 90%는 토양 균류(곰팡이)와 공생을 해 균근을 형성한다. 나무는 광합성으로 합성한 탄화수소를 균류에 제공하고 균류는 유기물을 분해해 뿌리가 흡수할 질소, 인 등 필수 미네랄과 수분을 흡수하도록 해 준다.
나아가 나무와 나무 사이를 잇는 균사를 통해 햇빛을 많이 받는 나무의 양분을 그늘에 있는 다른 종의 나무에 나눠주기도 한다. 숲은 종류가 다른 나무들끼리 공생하는 공동체이기도 한 것이다. 대표적 지적 생물인 인류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는 자질 아닌가.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Suzanne W. Simard et. al., Net transfer of carbon between ectomycorrhizal tree species in the field,Nature, Vol. 388, pp. 579-581, August 1997
Yoshihiko Onda et. al., Functional Coexpression of the Mitochondrial Alternative Oxidase and Uncoupling Protein Underlies Thermoregulation in the Thermogenic Florets of Skunk Cabbage, Plant Physiology, February 2008, Vol. 146, pp. 636.645,www.plantphysiol.org/cgi/doi/10.1104/pp.107.113563
Crisp et al. Reconsidering plant memory: Intersections between stress recovery, RNA turnover, and epigenetics, Sci. Adv. 2016; 2 : e1501340, 19 February 2016, doi: 10.1126/sciadv.1501340
Rabi A. Musah et. al., Mechanosensitivity Below Ground: Touch-Sensitive Smell-Producing Roots in the “Shy Plant,” Mimosa pudica L. First Published on December 9, 2015, doi:http://dx.doi.org/10.1104/pp.15.01705, Plant Physiology December 9, 2015 pp.01705.2015.
Couvillon et al., Caffeinated Forage Tricks Honeybees into Increasing Foraging and Recruitment Behaviors, Current Biology (2015), http://dx.doi.org/10.1016/j.cub.2015.08.052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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