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2015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의 지난해 연봉은 149억 5,400만 원이다. 시간당 745만 원을 번 셈이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월 소정근로시간인 월소정근로시간인 209시간 일을 했을 때 노동자들이 받는 최저임금은 126만 270원으로 시급으로 계산하면 6,030원이다. 연봉으로 계산하면 1,515,240원이다. 연봉이 149억 5,400만 원과 1,515,240원 받는 사람. 시간당 745만 원을 받는 사람과 6,030원을 받는 사람… 사람의 능력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런데 이 정도 차이가 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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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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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자본의 논리에 길들여져 있다
옛날 사람들은 양반과 노예는 피가 다르고 뼈가 다르게 태어난다고 믿었다. 요즈음 이런 소릴 하면 미친 사람 취급 받는다. 그런데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한다’는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 못 배우고 못났으니 천대받고 가난하게 사는 것은 당연하다고 믿고 있다.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위의 사례에서 본 삼성전자 부회장과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의 차이 어떻게 나타났을까? 이런 현상도 당연한 일일까?
삼성그룹 이건희회장 13조 2870억 원이다. 이건희회장의 나이가 74세다. 우리나라에 1조원 이상의 부자들만 35명이다.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큰돈을 모을 수 있었을까? 이건희회장은 태어나자마자 돈을 벌기 시작했다 치더라도 일 년에 무려 180,000,000,000원씩 번 셈이다. 물론 이재에 밝은 사람이니 돈 있는 사람들이 돈을 벌기 쉽도록 되어 있다 하더라도 1조 이상의 재산을 가진 사람이 35명이나 된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1조 원 이상 부자가 35명인 나라에 1000명 중 165명은 연 소득이 1,068만 원(월 89만 원)이 안 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세상에 가장 무서운 게 뭐냐’고 물어보면 ‘가난’이 제일 무섭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가난보다 더 무서운 게 있다. 가난을 극복하려면 자신이 왜 가난한지 극복할 대안을 찾아볼 수도 있지만, 자신의 가난이 못 배우고 못난 탓이라고 신앙처럼 믿고 있는 사람들은 대안이 없다. ‘못 배우고 못났으니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다’ 혹은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한다’는 운명론을 믿고 사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가난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가난이 자신의 팔자라느니 못 배우고 못났으니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다는 말은 자본이 만든 이데올로기다. 정말 못 배우고 못났으니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을까?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책임을 정부가 제대로 이행했었다고 해도 이런 양극화와 현상이 나타날까? 양극화니 빈부격차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형상이요, 구조적인 모순이다.
가난이 개인에게 책임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개인이 남의 빚보증을 섰다가 재산을 날린 사람도 있고 투자를 잘못하거나 도박이나 낭비벽이 심해 패가망신한 사람도 없지 않다. 그러나 악착같이 열심히 살아도 가난을 면치 못하고 허덕이는 사람은 왜일까? 농민들을 보자. 그들이 세상 사람 그 누구보다 더 열심히 부지런히 일한다. 그런데 그들이 가난한 이유는 무엇일까? 농민이 가난한 이유는 한마디로 말하면 정부의 농업정책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FTA로 수입농산물이 밀려와 농산물이 제값을 받지 못하는데 그들이 어떻게 가난을 면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 2016년 한 해 동안 나라 살림살이 할 돈이 386조 4천억 원이다. 이 돈으로 공무원 월급도 주고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의 임금이니 무기를 구입하고 교육을 위해 학교를 짓고 도로를 만들고, 나랏빚도 갚고 한다. 보건, 복지, 노동, 산업, 문화, 환경… 등에 얼마를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유리할 수도 있고 농민에게 유리할 수도 있다. 재벌이 유리한 정책을 펴면 월급을 받고 사는 노동자들이 불리하다는 것은 어린아이도 아는 상식이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똑같이 세금을 내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빈부격차가 늘어나고 돈이 많은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그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느냐고 할 사람들이 있지만, 상품에 매기는 세금이 그렇다, 간접세라는 세금은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 똑같이 세금을 낸다면 믿어질까?
실제로 소주 한 병에 1,000원이라고 가정하면 소주의 세금은 530원이다. 소주 한 병의 출고가격이 1,000원이면 제조원가는 470원으로 주세 338원(주세율 72%), 교육세 101원(주세의 30%), 부가세 91원 등 세금은 모두 530원인 셈이다. 연봉이 1억인 사람과 연봉이 1,000만 원인 사람이 똑같은 세금을 내면 어떻게 될까? 연간 주세는 약 2조 ,5000억 원. 여기에 교육세와 부가세를 합하면 4조 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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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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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소주가격뿐일까? 우리나라는 소주에 붙는 세금처럼 간접세가 직접세의 4배다. 아침에 마시는 차 한 잔, 점심때에 먹는 된장찌개, 아메리카노, 스파게티… 에는 모두 10%의 부가가치세가 붙는다. 4,500원짜리 담배 한 갑에 부가가치세와 담배소비세, 교육세, 폐기물 부담금, 국민건강진흥기금(준조세)을 합쳐 총 ,2772원이 붙는다. 영화를 봐도 버스비를 내도 따라 붙는 게 간접세다. 간접세의 비율이 직접세 대비 52.1%다.
교사들이 정치를 말하면 ‘정치는 정치인들에게 맡겨두고 아이들이나 열심히 가르치라’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정치는 정치인들만 하는 것일까? 자본주의에서는 사는 사람들… 정치란 밥을 먹는 것도 정치요. 길을 걷는 것도 정치다. 시장에 가서 반찬거리 하나를 사는 것도 정치요,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것도 정치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하는 공부도 것도 정치요. 젖먹이가 우유를 먹는 것도 정치다. 정치가 없이는 그 누구도 한순간도 꼼짝하지 못한다. 세금에서 법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는가? 가난을 운명이라고 신앙처럼 믿고 사는 사람들… 그들의 믿음이 바뀌지 않는 한 민주주의도 경제 민주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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