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총선에는 유난히도 많은 정당이 출마했습니다. 비례대표 후보가 출마한 정당만 무려 21개. 비례대표 국회의원 투표지가 길쭉합니다. 정의당을 비롯한 녹색당, 노동당, 민중연합당 등 진보정당이라 불리는 정당만 4곳입니다. 야권단일화가 이루어져야 겨우 승리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들은 왜 나왔을까?
민중연합당 비례대표 1번 후보인 정수연 후보는 제대로 된 진보정당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정수연 / 민중연합당 비례대표 1번 국정교과서, 한일 합의, 테러방지법, 세월호 특별법… 야당이 ‘우리 의석수가 부족해 못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많이 했어요. 그러면 도대체 국민들이, 박근혜 정권 아래서… 이렇게 무능하고 이렇게 독재적인 현실을 넘어서야 한다는 용기를 품어야 하는데 그런 용기를 주는 정치가 하나도 없다는 거죠. 제대로 된 진보정당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기존에 있는 정의당이 들으면 섭섭할 내용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 정의당을 진보라고 부를 수 있느냐 묻는다면 글쎄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해외 진보정당과 비교하면 오히려 중도에 가깝다고 봐야 합니다. 정의당마저도 이러니 당연히 더불어민주당은 거의 보수 쪽으로 갔다고 봐도 무방할 지경입니다.
‘진보정당의 필요성은 알지만, 3% 득표는??’
정치나 사회에 관심이 있다면 진보정당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진보정당이 국회에 입성해 정치와 사회를 바꿀 수 있냐고 묻는다면 ‘불가능’이라는 말이 먼저 떠오릅니다.
▲녹색당 하승수 후보가 정당 투표를 독려하고 있는 모습 ⓒ하승수
소수정당이 국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단 1석의 의석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지역구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면 됩니다. 하지만 지역 토호 세력이 있고, 양당 체제가 굳건한 지역구 선거에서 소수정당의 승리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남아있는 것은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입니다. 정당 득표율 3%만 넘으면 국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수정당은 정당 득표율 3%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심지어 녹색당은 지역구 후보를 낸 이유가 이 정당 득표율을 높이려는 방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소수정당의 3% 득표는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용혜인 / 노동당 비례대표 1번 저는 솔직히 이야기하면 진보정당이 3%가… 합치면 3%가 되겠지만 지금 시점에서 3%가 가능한 당은 없지 않을까… 그래도 분위기가 좀 모이고 있는 것 같아서… 남은 기간 열심히 하고 바람 잘 만들면 비례 한 석은 가능하지 않을까…
정의당을 제외한 다른 소수정당은 3% 득표가 어려워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수정당에 투표하는 일이 사표라고 합니다. 그러나 절대 사표는 아닙니다.
‘연동형 비례대표만 됐어도 정의당 10석,노동당 3석,녹색당 2석 가능’
선거에서 소수정당에 했던 투표가 사표가 되지 않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입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권역별과 전국 단위가 있습니다. 전국 단위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먼저 정당 득표율에 따라 각 정당의 총 의석수를 정합니다. 여기서 지역구 당선자 수를 뺀 나머지가 비례대표가 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A라는 정당이 정당 득표율에 따라 20석을 배정받았고, 지역구 후보 5명이 당선됐다면 15명은 모두 비례대표로 채울 수가 있습니다. 지역구 당선자가 적어도 국회의원이 많이 나올 수 있습니다.
▲정당 득표율에 따른 현행 비례대표 의석수와 연동형 비례대표로 계산한 각 정당 의석수.
기존 선거에 나온 정당 득표율을 연동형 비례대표제 방식에 도입해봤습니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통합민주당)은 의석수가 10석이나 감소합니다. 그러나 정의당은 9석, 노동당은 3석, 녹색당은 2석을 확보합니다.
굳이 3%의 득표율을 올리지 않아도 녹색당과 노동당은 자연스럽게 국회에 진출할 수 있게 됩니다. 너무 소수정당에 유리하지 않느냐고요? 아닙니다. 정당 득표율에 따른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헌법불합치에 따른 선거구획정으로 선관위가 제시한 방안입니다. 즉 합법적이며, 헌법 정신을 따르는 최선의 제도인 셈입니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당연히 좋아하지 않습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하면 10석이 줄어드는데, 왜 굳이 자기들의 밥그릇을 뺏어 주겠습니까?
소수정당이 살아남을 방법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관철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번 선거에 소수정당의 득표율이 높다면 이것을 가지고 다시 한 번 국회와 양당을 압박할 수 있습니다. 사표가 아닌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진보정당, 색깔론을 뛰어넘지 않으면 한순간에 무너진다’
진보정당 비례대표 후보는 청년이 많습니다.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이 청년 비례대표 후보를 찬밥 대우하는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민중연합당 비례대표 1번 정수연 후보는 ‘청년들이 투표할 수 있는 동기부여만 되면 투표에 참여한다’면서 진보정당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습니다.
정수연 / 민중연합당 비례대표 1번 평범하게 대학 생활하는 친구들 보면 실제 투표에 참여할만한 동기부여가 없어서 참여 안 하는 거지, 그게 어떻게 보면 정치 무관심으로 볼 수도 있지만, 동기부여만 주어지면 굉장히 많이 투표에 참여할 것으로 보여요. 그게 저는 선거제도를 바꿔나가는 것과 연결된다고 보여요. 지금의 실제 보수 양당의 고착화 상태에서는 진짜 이삼십 대가 투표할 맛이 안 나죠. 다른 대안이나 상상력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투표해도 당선이 안 될 것 같고. 실제 그런 사람들이 언론 노출도 적고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잘 모르게 되고…이런 다른 대안과 상상력이 존재하고, 그들이 알려질 수 있는 시스템과 체계가 있다면 그들에게 내가 표를 줘도 당선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면, 우리의 현실에서 더 많은 정치적 이야기를 해볼 수 있다고 봐요.
▲새누리당 김을동 후보는 선거 운동 기간 내내 태극기와 애국심을 앞세워 야당 후보를 향해 운동권이라 말하며 비판했다.
청년들이 참여하는 투표와 정당 활동,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진보정당은 ‘색깔론’ 하나면 모든 것이 끝이 납니다. 정치권의 공세가 시작되면 언론은 이를 과장 보도할 것이고, 청와대에서 한마디라도 하면 검찰이 나섭니다. 재판을 받기도 전에 진보정당은 종북이라는 색깔론으로 무너지게 됩니다.
시사평론가 김용민 PD는 대안언론 팟캐스트 ‘시대의 징표’ 녹화에서 통일이 되기 전에는 진보정당이 이 색깔론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4.13총선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새누리당 후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운동권’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종북좌파’라는 말을 함부로 쓸 수 없으니 만든 말이지만, 참 기가 막힐 정도로 잘 먹혀 들어갑니다. 여기에 슬쩍 북한 핵미사일 이야기를 던져주면 보수우익의 결집은 끝이 납니다. 진보정당의 좋은 정책과 청년의 참여는 ‘운동권에 물든 철없는 아이들의 헛소리’로 치부됩니다.
진보정당, 소수정당이 색깔론을 뛰어넘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다른 정당과의 연합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단순히 선거 기간에만 논의되는 야권단일화가 아닙니다. 선거가 끝난 후라도 지속해서 각 정당과 연계해야 합니다.
용혜인 / 노동당 비례대표 1번 선거 끝나고 같이 할 수 있는 걸 찾아보면서 진보통합 논의가 돼야 하는 거 아닐까…선거를 앞두고 통합 논의가 되면, 진보정당들이 그렇게 통합했을 때 항상 결과가 안 좋았잖아요. 선거보다 가치와 정책에 중점 둔 연대와 통합이 필요한데 그런 것들을 급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좀 더 과정을 밟아나가고 합의할 수 있는 수준을 만들어 가야 하는데… 과정들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선거가 끝나고…
선거가 임박하면 진보정당, 소수정당은 늘 아쉬워합니다. 조금만 더 알려졌으면,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시스템이 갖춰졌으면…그런데 이런 안타까움은 선거가 끝난 동시에 사라집니다. 4.13총선은 끝이 아닙니다. 이 결과를 통해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합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만 있으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색깔론을 뛰어넘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만드는 것이 정치입니다. 정치하려고 만든 정당이라면 정치를 해야지, 선거운동과 홍보만 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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