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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입력 : 2015-12-12 13:27:05ㅣ수정 : 2015-12-13 11:04:05
명예훼손죄에는 두 가지가 있다. 허위(False)인 사실(Fact)을 적시한 명예훼손과 진실(Truth)인 사실(Fact)을 적시한 명예훼손이다. 여기에서 사실은 의견(Opinion)이 아니라는 뜻이다. 법학 교과서에는 ‘과거 또는 현재의 사실관계에 관한 보고 내지 진술’이라고 적혀 있다. 따라서 진실인 사실이라도 명예훼손죄가 된다. 다만 공익성을 인정받으면 예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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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 6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가 서울 동부지방검찰청 민원실 앞에서 <제국의 위안부>를 들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박유하 세종대 일어일문학과 교수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검찰은 1년6개월 만인 지난 11월
박 교수를 기소했다. / 연합뉴스
지식인 192명의 검찰 기소 반대성명
실제 형법전에도 명예훼손은 두 가지다. ‘형법 307조(명예훼손) ①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박 교수는 특히 출판물에 의한 허위 적시 명예훼손에 해당돼 법정형이 더욱 높다.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중범죄다. 7년 이하의 징역은 사람을 매매했을 때 처벌하는 인신매매죄와 같은 형량이다. 이런 형법의 명예훼손이 기본인 유사 조항이 정보통신망법 등 여러 곳에 있다.
검찰의 기소 이후 우려를 나타내는 성명이 잇따라 나왔다. 12월 2일 지식인 192명이 검찰의 기소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장정일 소설가, 유시민 작가, 고종석 칼럼니스트,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과 교수, 금태섭 변호사 등이 포함됐다. 이들은 “국가가 원한다면 위안부 문제를 넘어 역사 문제 일반과 관련해서도 시민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반민주적 관례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11월 25일에는 일본의 양심적 지식 54명이 기소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식민지배에 반성하고 사죄한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 군 위안부에 일본군이 관여한 사실을 인정한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 등이 참여했다. 이들 역시 “역사를 어떻게 해석할지는 학문의 자유에 관한 문제다. 학문의 장에 공권력이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근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라고 했다
두 나라 지식들은 박 교수가 재판에서 무죄를 받든 유죄가 받든 검찰의 기소 자체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한 보수신문에서는 “박 교수는 억울하다 해도 다른 국민들처럼 14일 시작되는 재판에 성실하게 임해야 한다”고 했다. 박 교수의 심정을 헤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앞서 두 지식인 집단의 항의와는 완전히 반대의 주장이다. 박교수에게는 재판에 적극적으로 임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파장을 우려했는지 검찰도 보도자료의 끝에 이런 구절을 달아놨다. “양심의 자유, 언론ㆍ출판의 자유, 학문의 자유 등은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적인 권리이기는 하지만 아무런 제한이 없는 것은 아니며,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하여 국가의 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그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제한할 수 있는 것인 바, (중략) 학문의 자유를 일탈하였음.”
“사실 아닌 의견, 명예훼손 대상 아니다”
헌법 37조 2항은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도 제약이 가능하다는 일반적인 조항이다. 이 조항으로 사람의 본질인 생명권도 제약하고, 민주주의 자체인 투표권도 제약한다. 따라서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 신중하게 작동된다. 표현의 자유에서라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제국의 위안부>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인지가 문제가 된다.
표현의 자유에 정통한 박경신 고려대 로스쿨 교수의 설명이다. “저자는 피해자들의 심리상태를 넘겨짚는다. 직접 할머니들을 인터뷰한 적도 없으면서 기록만으로 그들이 동지애를 느꼈다고 주장한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그것을 사실적인 주장이라고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역사학적 상상력이라고 해야 하나, 해석적인 상상력이라고 해야 하나. 상상력에 기반한 글이고 무책임한 해석이다. 사실을 적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민사든 형사든 명예훼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박 교수의 책은 사실(Fact)이 아닌 의견(Opinion)이어서 명예훼손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박경신 교수는 박유하 교수가 법률문제도 편협하게 해석했다고 말했다. “<제국의 위안부> 결론 부분에 일본의 국가범죄로 볼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근거는 군에서 실행하지 않았고 요청만 했다는 것인데, 국가범죄를 그렇게 좁혀서 해석하면 안 된다. 가령 제주 4·3사건에서 양민학살이 상당 부분은 그 지역에 내려간 민간인에 의한 것이다. 이걸 두고 군은 요청만 했으니 군에는 책임이 없다는 식이다.” 박 교수는 책의 허점에 대해 토론할 일이지 이걸 두고 기소할 문제는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국내 지식들의 성명을 낸 것에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분들이 무슨 뜻으로 모여서 그랬는지는 알겠다. 기소가 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상한 기소가 한두 번도 아닌데 그렇게 성명까지 내면 사람들이 오해한다. 검찰은 기소하고 학자들이 반대하면서 책은 더 팔리고, 일본에서는 무슨 상을 받고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는 학문적 논쟁을 통해 훌륭하지 못한 저작임을 확인하는 방식이 가장 좋다며, 이신철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교수 등 지식인 380명이 공개토론회를 제안한 것을 예로 들었다.
2013년 출판된 <제국의 위안부> 표지. / 경향신문 자료사진
가토 지국장 기소도 세계 이목만 끌어
박경신 교수의 발언 가운데 주목할 부분은 “민사든 형사든 명예훼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법기관 관계자의 설명이다. “명예훼손을 형사처벌 없이 손해배상으로만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물론 국가의 형벌권이 무서운 것이고 의미가 다르지만, 최근에 와서는 손해배상도 다르지 않다. 단적인 예로 노동조합에 대한 사측과 국가의 대응이 그렇다. 위원장을 아무리 잡아 넣어도 후임자가 나온다. 하지만 손해배상은 조직을 와해시킨다.” 표현의 자유를 어느 선에서 어떤 방식으로 규제할지에 대해 장기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사법기관 관계자의 설명. “지금과 같은 강도 높은 처벌과 배상은 곤란하다. 당장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가 안 된다. 드라마도, 학문 연구도, 사회적 논쟁도 막혀 있다. 그런데 우리 위안부 할머니들이 측은하다고 검찰의 손을 빌려 기소를 한다. 이렇게 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를 안타깝게 생각해 비판자들에 대한 수사를 해도 반박할 길이 없다.”
물론 위안부 할머니들과 달리 박 전 대통령은 역사적 인물이라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박유하 교수 역시 위안부 할머니 개인이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라는 역사적 존재를 저술했다는 반박도 있다. 이렇게 많은 언론과 저술에는 역사적 평가와 사실의 적시가 뒤섞여 있다. 게다가 극악한 표현이 인터넷을 도배하는 현실에서 당장 법률이 손을 떼기도 어렵고 뗄 수도 없다는 데서 고민이 시작된다.
헌법에 정통한 사법기관 관계자는 “축구도 심판이 너무 까다로우면 경기가 역동적이지가 않다. 그렇다고 개입을 자제하고 호각을 아끼면 선수들이 심하게 부상할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 교육과 윤리의 문제인 것도 맞지만, 현재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면 한 번 바꿔보는 것도 좋다. 다만 너무 빨리 움직이면 예측 가능성도 무너지고 그 사이에 부당한 피해자도 있을 수 있다. 일단 조금 움직여 보면서 시스템을 손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는 12월 17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사고 당시 행적에 대한 의혹을 보도한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일본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에 대한 1심 선고가 있다. 무죄가 선고될 경우 박 대통령은 또다시 외국신문에 오르내리며 비난받을 우려가 크고, 반대로 유죄가 나오면 가토 지국장은 정치권력의 탄압을 받는 세계적인 언론인이 된다. 결과적으로 검찰의 기소는 박근혜 정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선택이었다.
2015년의 마지막 달에 박유하 교수의 위안부 할머니 명예훼손 재판이 시작되고, 가토 전 지국장의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재판이 마무리된다. 기자와 학자의 글이 옳고 그른지를 아무런 전문지식도 없는 판사가 가려준다. 사회는 토론과 논쟁을 뛰어넘어 사안마다 편을 갈라 잘잘못만을 가리려 한다. 21세기의 한국은 언론과 학문이 광장이 아닌 법정에서 검증되고 처벌되는 시대다.
진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움직임
우리나라의 명예훼손 처벌 가운데 (진실한) 사실 적시를 처벌하는 조항은 폐지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압력이 강하다. 토론과 비판에 의한 민주주의가 작동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 고용주의 언어폭력에 시달리다 해고된 여직원이 인근 식당 주인들에게 A4용지로 자신이 당했던 일을 써서 돌렸다가 유죄 판결을 받았고, 폭행 피해자가 폭행당한 사실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유죄로 인정된 사례가 있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UN Human Rights Committee)는 지난 11월 한국의 시민적·정치적 권리 전반을 심의한 뒤 발표한 최종 권고문에서 ‘사실 적시 명예훼손(형법 307조 1항)’에 대해 형사처벌을 자제하라고 권고했다. 이 위원회는 “현행 형법상 명예훼손의 비범죄화를 고려하고, 구금형은 명예훼손에 적절하지 않은 형벌이라는 점을 고려하며, 형법을 명예훼손이 심각한 사례에만 적용하고,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필수적인 ‘비판을’ 수용하는 문화를 고양하라”고 했다.
법무부 등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만큼 개인의 명예 및 사생활의 자유라는 가치도 중요하므로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의 비범죄화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반대하고 있다.
유엔의 권고에 맞춰 정치권 일부에서는 진실 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유승희 의원과 정의당 서기호 의원은 “표현의 자유의 핵심은 비판할 자유, 타인이 듣기 싫은 소리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므로 임기 안에 개정안이 통과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리뉴스]학문의 자유 침해인가, 정당한 법적 처벌인가···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논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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