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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13일 일요일

파리, 혁명은 실패하고 재앙만 남았다

파리, 혁명은 실패하고 재앙만 남았다
[여기는 파리 ④] 앙시앵레짐은 끝나지 않았다 
 
12월 12일, 파리 협정(Paris Agreement)이 탄생했다. 분명 역사적인 사건이다. 교토 의정서(2008~2012년) 이후의 공백 상태를 해결할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이로써 2020년 이후의 신(新)기후 체제의 윤곽이 잡혔다.

파리 협정은 2030년까지 적어도 15년 동안은 기후 변화하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말이 될 것이다. 교토 의정서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기적'과 '재앙'이라는 수사가 양 극단의 입장을 대변한다. 중간이 있다면 유엔 관료와 각국 대표일 것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만족할 만한 수준의 역사적인 합의라고 말한다.

하지만 파리 협정은 4년 전 코펜하겐에서 시도했던 것을 이제야 공식적으로 타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기적이라면 때늦은 기적이고, 재앙이라면 이미 시작된 재앙인 셈이다. 정작 문제는 파리 협정이 신기후 체제가 아니라 앙시앵레짐(구체제)이라는 점이다.

파리 협정의 전문에는 교토 의정서에서 찾아볼 수 없는 멋진 말이 많다. 식량 안보, 정의로운 전환, 괜찮은 일자리, 인권, 취약한 상황에 놓인 원주민·공동체·이주민·아동의 권리, 발전권, 젠더 평등, 세대 간 형평성, 어머니 지구, 기후 정의 등.

이 모든 표현에는 오랫동안 기후 취약국과 기후 정의 진영이 요구해왔던 소중한 가치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를 인정한다고 해서 파리 협정이 우리의 미래가 되긴 어려워 보인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와 같은 가혹한 운명일 테니까.

협정문 세부 조항에서 이런 상징이 비집고 들어갈 여지를 남기지 않고 모두 지워버렸다. 예컨대 2조에서 '인권'이, 3조에서 '기후 정의'가 사라졌다. 철저하게 비구속적인 부분으로 몰아넣어 버린 것이다.

엄청난 변화라고 기대가 높은 1.5도 목표도 과거와는 다른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기후 과학계와 기후 운동권은 지구 평균 기온 상승 목표를 (산업화 이전과 비교했을 때) 2도에서 1.5도로 나아가 1도로 재설정해야한다는 주장을 오랫동안 해왔다. 협정 목적(2조)에 "2도보다 훨씬 낮게 유지하고, 1.5도 아래로 억제하도록 노력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으니 대단한 성과로 보일 수 있다.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이미 자발적 기여(INDC) 방식으로 바뀐 상태에서 1.5도가 갖는 의미가 과거와 같을 수 없다. 1.5도 달성을 위한 탄소 예산을 국가별로 할당할 수 없기 때문에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비록 2023년부터 5년마다 공동으로 INDC를 검증(global stocktake)하고 상향된 목표 제출을 유도하더라도, 각국의 여건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마저도 4조에서 탄소 감축의 목표와 연도에 관한 내용(예컨대, 2050년까지 2010년 대비 70~95% 감축)이 삭제됐기 때문에, 또 하나의 상징으로 전락할 수 있다. '가능한 빨리' 배출 정점을 찍는다는 희망 속에서 21세기 후반에 '탄소 순배출량 0'을 추구할 뿐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100% 재생 가능 에너지 경로를 선택해 화석 연료의 종말을 의미한다는 식으로 이해돼서는 곤란하다. 협정문에 '탈탄소'가 빠진 이유에 주목하자. 또한 탄소 포집 저장과 국제 탄소 시장 등 탄소 배출 후의 사후 처리 기술에 의존하겠다는 의도도 놓쳐서는 안 된다.

▲ 12월 11일, Coalition Climate 21의 Climate Action Zone.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다른 쟁점에서도 해결된 것은 없다. 손실과 피해(8조)에 대해 선진국들이 법적 책임과 보상 개념을 철저히 거부하면서 나중에 계속해서 논의하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재정(9조) 역시 선진국이 부담하고 개발도상국은 자발적으로 기여하는 것으로 애매하게 정리했다.

구체적인 금액과 관련된 문구는 모조리 지우고, 협정문이 아닌 별도의 파리 총회 결정문(CO21 Decision)에 2025년까지 지금과 같은 방식을 유지한다고 못 박았다. 2020년까지 연간 1000억 달러 조성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는 데도 말이다.

파리 협정 자체는 각국의 절차에 따라 55개국 이상의 비준이 필요하며 비준 국가의 배출량이 전 세계 배출량의 55% 이상이 되어야 발효되는 국제법적 성격을 갖는다. 하지만 간단히 살펴본 것처럼, 파리 협정은 다른 무역 협정처럼 구체적이지도 않고 강력하지도 않다.

법적 강제력이 미치는 범위는 5년마다 INDC를 제출하고 이를 검토하여 2도(혹은 1.5도) 목표를 달성하도록 노력한다는 '합의'에 국한된다. 이 때문에 국제재판소 설립, 기술 이전에 대한 지적 재산권 해결, 항공과 해운 분야의 접근 등은 전부 삭제됐고, 협정문에는 각국의 주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없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국제기구에서 결정한 감축이나 재정 목표가 없는(더 정확히 말해서 숫자를 특정하지 않은) 협정인 것이다. 사실상 유엔 기후변화협약을 비준한 나라에게 파리 협정 비준은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미국 공화당 입장을 제외한다면).

기후 변화에 책임이 없는 국가들은 파리 협정을 반대할 힘이 없을뿐더러 미국이 주도하는 실용주의에 편승했다. 올해 은밀하게 결성된 느슨한 동맹(high ambition coalition)에는 유럽연합(EU)은 물론 기후 취약 국가들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유럽연합은 탈탄소 강경 노선을 고수했고, 미국과 아프리카와 섬나라들은 새로운 협정 체결과 1.5도 목표 설정 그리고 기후 재정 증액이라는 현실적 노선에 합의했다. 덕분에 오바마 행정부의 미국은 유럽연합을 제치고 파리 협상을 주도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행복하지는 않지만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파리 협정이 통과된 것이다.

이렇게 '자체적 차별화' 논리는 숱한 쟁점들을 봉합하는 데 성공했다. 비록 후속 협상이라는 결코 쉽지 않은 2라운드가 남아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새로운 세상은 결코 아니다. 앙시앵레짐의 지속 가능한 발전일 뿐이다. 그것도 2도 상승 제한에 가장 중요한 2016~2020년을 포기하고 3도 이상 상승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파리 협정은 기후 정의의 미래가 아니다. 새로운 기후 체제는 오지 않았고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총회장 밖의 기후 정의 진영은 파리 개선문과 에펠탑에 모여 파리 협정을 반대하는 행진과 집회를 했지만, 테러 비상사태를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기후 정의를 위한 파리는 없었고 기후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 12월 12일, 에펠탑 광장의 대중 집회.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대안은 다른 곳에 싹튼다. 공동체 에너지·에너지 협동조합과 지방 정부의 재지역화·재공영화 등 에너지 시스템의 다양한 모델을 모색하는 에너지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와 전망은 어느 때보다 활발했다. 이제 기후 정의와 정의로운 전환도 살아 숨 쉬는 언어가 되어야 한다. 고위급 회담에서 나경원 위원장의 연설처럼, "이제는 행동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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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노동자, 농민 등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나라를 보호하는 에너지 정의, 기후 정의의 원칙에 입각해 기후 변화와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추구하는 독립 싱크탱크입니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로, 한국 사회의 현재를 '녹색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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