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연료 세계'의 종말은 시작됐나
올해 세계 경제 3.3% 성장 온실가스 0.6% 감소, 탈 동조화 조짐
지난해 신규발전 60%가 재생에너지, 세계는 저탄소로 한국은 모르쇠
»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 폐막을 이틀 앞둔 9일 총회 의장국인 프랑스가 내놓은 합의문 초안 모습. 196개 참가국 대표들은 이 초안을 토대로 지구온도 상승 장기 목표, 선진국의 재정 부담 방식 등을 놓고 막바지 협상을 벌였다. 사진=파리 / AFP 연합뉴스
파리 기후회의 막바지 협상이 한창이던 9일(현지 시각)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회의장에서 연설을 했다. 그는 “지구촌이 고탄소 경제로부터 전환을 이루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터와 기초시설, 식량생산, 물 공급, 그리고 생명 그 자체가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이라며 “(협상을 타결시키지 못하는 건) 역사에 길이 남을 도덕적 실패”라고 강조해 갈채를 받았다.
기후변화 협상을 아는 이라면, 파리 회의에 주요 경제국을 망라한 140개 나라의 정상이 자리를 함께했다는 것보다 미국의 변신에 더 놀랐을 것이다. 미국이 어떤 나란가.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4분의 1을 차지하면서 1992년 출범한 기후변화협약 체제를 20년 넘게 무력화시키는데 앞장선 나라였다.
» 9일 파리 기후회의에서 합의문 채택을 촉구하는 연설을 하는 존 케리 미국무장관. 사진=파리 / AP 연합뉴스
부 시 전 대통령은 2001년 “미국 경제를 심각하게 해친다”라며 클린턴 정부가 가입한 교토의정서에서 탈퇴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미국은 저탄소 경제로 전환하는 것이 살길이라며 중국 등 세계를 다니며 설득하는 기후변화 전도사가 됐다.
미 국이 왜 이렇게 변했을까. 그 한가지 답은 케리의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상당한 진전이 이뤄졌다.”라고 한 말에 들어있다. 기후변화의 위협이 현실화하고 그 과학적 타당성이 입증된 뒤 세계가 갈 길은 저탄소 경제밖에 없다는 것을 경제계가 먼저 깨닫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지난 10년 동안 연평균 4%씩 늘다가 2012년 0.8%, 2013년 1.5%로 떨어지더니 지난해 0.5%로 거의 정체 상태를 보였다. 급기야 로버트 잭슨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올해 배출량이 최초로 0.6% 감소했다는 추정을 과학저널 <네이처 기후변화> 최근호에 발표했다.
중요한 건 이 기간 동안 세계 경제는 3% 성장을 계속했다는 사실이다. 온실가스 배출을 늘리지 않고도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탈 동조화’가 유럽을 넘어 세계적으로도 현실화하고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0.2% 늘었지만 경제는 3.3% 성장했다.
» 중국의 한 도시에서 옥상에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은 재생에너지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890억 달러를 투자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이런 변화를 추동하는 것이 풍력, 태양 등 재생에너지 산업의 급성장이다. 지난해 새로 설치한 발전시설 가운데 60%가량이 재생에너지였다.
2004년만 해도 풍력과 태양은 세계 전기의 0.5%를 공급하는데 그쳤지만 그 비중은 4년마다 곱절로 늘어 지난해 그 비중은 4%가 됐다.
재 생전기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도 많다. 덴마크는 풍력으로 전기의 39.1%를, 이탈리아는 태양으로 7.9%를 생산한다. 햇빛 자원이 좋지 않은 독일도 전기의 7%를 태양광으로 만든다.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는 통계 수치를 대기도 민망할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다. 지난해 태양광 발전량은 일본의 12분의 1, 풍력은 독일의 48분의 1이었다.
» 9일 파리근교 르부르제의 회의장 주변에서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대형 북극곰 모형을 배경으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파리 / 연합뉴스
그 린피스 등 환경단체로부터 재생에너지를 과소평가한다는 비판을 듣곤 하는 국제에너지기구(IEA)조차 ‘2015 세계 에너지 전망’ 보고서에서 “2030년대 초반이면 청정에너지가 석탄을 제칠 것”이라며 에너지 전환이 급물살을 타고 있음을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파리 회의 기조연설에서 에너지 신산업을 육성해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화석연료에 의존한 경제를 저탄소로 바꾸기 위한 비전은 전혀 밝히지 않았다.
세 계는 저탄소 경제로 에너지 전환에 나섰는데 한국만 특이한 나라로 남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지난해 12.3t으로 제조업 비중이 높은 일본 10.1톤이나 독일 9.3톤과 차이가 크고, 오히려 화석연료 생산대국인 러시아(12.4톤), 캐나다(15.9톤), 오스트레일리아(17.3톤)에 가깝다.
이회성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의장은 파리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나라 산업계는 저탄소 경제가 비용이 많이 먹힌다고 믿는다’라고 질문하자 이렇게 대답했다. “신석기 시대에 철기를 보면 얼마나 비싼 시대이겠나. 기후변화 대응은 결코 비용으로 끝나지 않는다. 새로운 기회다.”
그는 새로운 기후체제에서 석탄은 가장 비싼 발전방식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석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이다.
» 파리 기후회의와 함께 열린 한 부대행사에 참가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사진=유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김용 세계은행 총재, 이회성 의장은 국제기구의 수장이 된 대표적인 한국인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기후변화와 저탄소 경제에 대응할 것을 조언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목소리엔 귀를 막고 있는 것 같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지난해 신규발전 60%가 재생에너지, 세계는 저탄소로 한국은 모르쇠
»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 폐막을 이틀 앞둔 9일 총회 의장국인 프랑스가 내놓은 합의문 초안 모습. 196개 참가국 대표들은 이 초안을 토대로 지구온도 상승 장기 목표, 선진국의 재정 부담 방식 등을 놓고 막바지 협상을 벌였다. 사진=파리 / AFP 연합뉴스
파리 기후회의 막바지 협상이 한창이던 9일(현지 시각)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회의장에서 연설을 했다. 그는 “지구촌이 고탄소 경제로부터 전환을 이루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터와 기초시설, 식량생산, 물 공급, 그리고 생명 그 자체가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이라며 “(협상을 타결시키지 못하는 건) 역사에 길이 남을 도덕적 실패”라고 강조해 갈채를 받았다.
기후변화 협상을 아는 이라면, 파리 회의에 주요 경제국을 망라한 140개 나라의 정상이 자리를 함께했다는 것보다 미국의 변신에 더 놀랐을 것이다. 미국이 어떤 나란가.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4분의 1을 차지하면서 1992년 출범한 기후변화협약 체제를 20년 넘게 무력화시키는데 앞장선 나라였다.
» 9일 파리 기후회의에서 합의문 채택을 촉구하는 연설을 하는 존 케리 미국무장관. 사진=파리 / AP 연합뉴스
부 시 전 대통령은 2001년 “미국 경제를 심각하게 해친다”라며 클린턴 정부가 가입한 교토의정서에서 탈퇴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미국은 저탄소 경제로 전환하는 것이 살길이라며 중국 등 세계를 다니며 설득하는 기후변화 전도사가 됐다.
미 국이 왜 이렇게 변했을까. 그 한가지 답은 케리의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상당한 진전이 이뤄졌다.”라고 한 말에 들어있다. 기후변화의 위협이 현실화하고 그 과학적 타당성이 입증된 뒤 세계가 갈 길은 저탄소 경제밖에 없다는 것을 경제계가 먼저 깨닫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지난 10년 동안 연평균 4%씩 늘다가 2012년 0.8%, 2013년 1.5%로 떨어지더니 지난해 0.5%로 거의 정체 상태를 보였다. 급기야 로버트 잭슨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올해 배출량이 최초로 0.6% 감소했다는 추정을 과학저널 <네이처 기후변화> 최근호에 발표했다.
중요한 건 이 기간 동안 세계 경제는 3% 성장을 계속했다는 사실이다. 온실가스 배출을 늘리지 않고도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탈 동조화’가 유럽을 넘어 세계적으로도 현실화하고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0.2% 늘었지만 경제는 3.3% 성장했다.
» 중국의 한 도시에서 옥상에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은 재생에너지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890억 달러를 투자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이런 변화를 추동하는 것이 풍력, 태양 등 재생에너지 산업의 급성장이다. 지난해 새로 설치한 발전시설 가운데 60%가량이 재생에너지였다.
2004년만 해도 풍력과 태양은 세계 전기의 0.5%를 공급하는데 그쳤지만 그 비중은 4년마다 곱절로 늘어 지난해 그 비중은 4%가 됐다.
재 생전기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도 많다. 덴마크는 풍력으로 전기의 39.1%를, 이탈리아는 태양으로 7.9%를 생산한다. 햇빛 자원이 좋지 않은 독일도 전기의 7%를 태양광으로 만든다.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는 통계 수치를 대기도 민망할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다. 지난해 태양광 발전량은 일본의 12분의 1, 풍력은 독일의 48분의 1이었다.
» 9일 파리근교 르부르제의 회의장 주변에서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대형 북극곰 모형을 배경으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파리 / 연합뉴스
그 린피스 등 환경단체로부터 재생에너지를 과소평가한다는 비판을 듣곤 하는 국제에너지기구(IEA)조차 ‘2015 세계 에너지 전망’ 보고서에서 “2030년대 초반이면 청정에너지가 석탄을 제칠 것”이라며 에너지 전환이 급물살을 타고 있음을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파리 회의 기조연설에서 에너지 신산업을 육성해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화석연료에 의존한 경제를 저탄소로 바꾸기 위한 비전은 전혀 밝히지 않았다.
세 계는 저탄소 경제로 에너지 전환에 나섰는데 한국만 특이한 나라로 남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지난해 12.3t으로 제조업 비중이 높은 일본 10.1톤이나 독일 9.3톤과 차이가 크고, 오히려 화석연료 생산대국인 러시아(12.4톤), 캐나다(15.9톤), 오스트레일리아(17.3톤)에 가깝다.
이회성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의장은 파리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나라 산업계는 저탄소 경제가 비용이 많이 먹힌다고 믿는다’라고 질문하자 이렇게 대답했다. “신석기 시대에 철기를 보면 얼마나 비싼 시대이겠나. 기후변화 대응은 결코 비용으로 끝나지 않는다. 새로운 기회다.”
그는 새로운 기후체제에서 석탄은 가장 비싼 발전방식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석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이다.
» 파리 기후회의와 함께 열린 한 부대행사에 참가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사진=유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김용 세계은행 총재, 이회성 의장은 국제기구의 수장이 된 대표적인 한국인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기후변화와 저탄소 경제에 대응할 것을 조언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목소리엔 귀를 막고 있는 것 같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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