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같은 전설의 언니들] ① 동일방직 해고자 김용자 님을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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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같은 전설의 언니들>① 동일방직 해고자 김용자 님을 만나
<바람 같은 전설의 언니들>② 구로동맹파업투쟁의 김준희 님을 만나
<바람 같은 전설의 언니들>③ 기륭전자분회의 유흥희 님을 만나
*행사 참여 링크 http://bit.ly/21바람후원행사신청
김용자 동일방직 복직투쟁위원장을 처음 만난 건 톨게이트 수납노동자들의 싸움 때였다. 1978년에 있었던 철저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40년이 지난 2019년에도 반복되고 있기에, 이들을 응원하고 경험을 나누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한국도로공사는 법원도 인정한 직접고용의무를 저버린 채 자회사를 거부한 톨게이트수납노동자들을 집단해고 했는데 대부분이 여성들이었다. 톨게이트여성노동자들도 상의탈의 투쟁, 고공농성, 노숙농성, 단식농성 등 하지 않은 게 없었다. 왜 40년이나 흘렸는데 달라진 게 없을까?
어용노조를 만들려는 남성노동자들에 맞서
70년대 대표적인 여성사업장인 동일방직 투쟁은 어땠는지, 지금도 달라진 게 없는 성차별적인 여성노동자의 현실에 대한 얘기를 들으려 김용자 위원장을 만났다. 김위원장은 단호하고도 차분한 어조로, 43년째 복직투쟁 중이라고 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동일방직의 민주노조를 없애기 위해 한국노총만이 아니라 중앙정보부도 개입했다. 사찰의 흔적이 국정원과거사진상규명에서 드러났다. 78년 2월의 똥물투척사건도 당시 어용이던 한국노총과 회사의 합작으로 이뤄졌다. 주요 행위자는 남성노동자들이었다. 그 이전의 투쟁인 1976년의 상의탈의 시위도 남성노동자들이 사측관리자와 함께 여성집행부를 불신임하려고 하자 이에 대항하면서 벌어진 투쟁이다.
왜 남성노동자들은 사측의 입장에 서서 폭력을 행사했던 것일까.
회사는 당시 다수의 여성노동자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소수의 남성노동자들에게 특권을 주었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성차별적인 편견이 넘쳐났던 시대라 여성노동자에 대한 성희롱과 무시도 극에 달했다. 이른바 성별화된 노동통제다. 여성노동자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남녀 성별 권력관계의 차이를 이용해 여성들에 대한 차별과 착취를 극대화한 것이다. 70년대 말 여성노동자들은 남성노동자들의 임금 절반인 5~6만원을 받았다.
국무총리가 나오는 행사를 망치다
똥물투척 사건 이후 124명이 해고되었다. 해고된 후 갈 곳이 없었던 대다수 조합원은 인천 도시산업선교회(산선)에서 생활한다. 산선 앞은 항상 사복형사들이 즐비했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미행했다.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의 해고는 국가권력과의 공모로 이루어진 것이니 예상가능한 일이다.
그러다보니 해고싸움은 국가기관에 대항한 싸움과 국가와 공모한 어용인 한국노총에 대항한 싸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장충체육관에서 벌인 시위로 생방송을 중단시키기까지 했다. 1978년 3월 근로자의 날 행사가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다. 국무총리까지 참석하는 규모있는 행사였다.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은 행사장에 가서 "우린 똥물을 먹고 살수 없다"며 현수막을 펴고 구호를 외쳤다. 대부분 연행됐다. 나머지는 명동성당에 가서 단식농성을 했다. 나중에 종교 측의 중재로 일부는 현장에 복직했으나 나머지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새롭게 집행부를 꾸리고 싸움을 이어갔다. 한국노총도 점거하고 동일방직을 다룬 연극을 하면서 투쟁을 이어가기도 했다. 1978년 9월 동일방직 똥물투척사건을 다룬 연극을 하던 여성노동자들은 연극을 하던 중 현수막을 들고 종로거리로 나와 시위를 했다. "노동3권 보장하라","유신헌법 철회하라" 경찰은 바로 진압에 나섰다.
김위원장은 똥물 사건만이 아니라 해고 이후의 싸움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투쟁을 통해 얻은 존재감
가혹한 탄압을 받았으나 여성노동자의 정신, 사회에 대한 생각을 놓지 않고 살았다. 나중에 들어간 현장에서도 열심히 하다 보니 일곱 번이나 해고당했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동일방직투쟁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얻었다며,'동일방직대학교'라고 작명까지 했다.
그러면서 그것조차도 동지들과 함께 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43년째 하는 모임인데도, 만나면 서로 밤새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사회문제를 이야기 하느라, 고단했던 투쟁을 이야기하느라 시간이 모자란다고 했다.
최근 있었던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투쟁 이야기가 나왔다. 회사가 2천만 원으로 회유해서 몇 명이 투쟁을 접었고 나며지는 나중에 이겨서 현장으로 복귀한다고 했다.
길이 보여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니야
어떻게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싸울 수 있었냐고 묻자 길을 알아서 싸운 것은 아니라고 했다.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알바를 하더라도 마음은 포기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김위원장은 회사가 폐업했지만 복직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작년에 인천 만석동에 있는 사업장은 문을 닫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복직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왜 복직을 하고 싶냐고 재차 물었더니 "억울하니까"라고 답한다.
43년 만에 복직이라! 한 생애에 걸친 싸움을 하는 모습이 눈이 부시다. 자신이 세운 가치관을 지키며 동지들과 함께 가겠다는 의지가 맑고 그러나 무겁지만은 않다. 김위원장은 행복하게 살기 위해 싸운다고 했다. 얼마 전 갔던 개울물과 바위가 떠올랐다. 바위틈에 고인 물은 따뜻하지만 이끼가 피었고, 흐르는 저편 물은 깨끗하고 시원했다. 흐르는 물의 생명력이 느껴졌다. 투쟁하는 여성노동자들이 역사에서 절대 지워지면 안 되겠구나! 묘한 사명감을 느끼며 인터뷰를 마쳤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60213583399546#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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