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홍순탁 내만복 운영위원장 “부당합병 수습 과정서 발생한 사건…관점 따라 이미 재범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어”
홍 회계사는 “이 부회장이 기소된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회계분식은 형식으로 보나 규모로 보나 황당한 사건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위협”이라며 “이 부회장 사면·가석방은 적어도 현재 진행 중인 불법승계 사건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후에나 논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 뇌물 혐의와 관련한 국정농단 사건 재판 과정에서 출범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에 대해서는 “재판 당시 미흡한 점을 보완하겠다고 한 계획이 흐지부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 부회장에 대한 어떤 조치도 안 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전적·예방적으로 위법 위험성에 대응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삼바 회계분식, 규모로 보나 수법으로 보나 황당한 사건
간 큰 숫자놀음, 자본주의 하지 말자는 건가
홍 회계사는 지난 2016년 삼바 회계분식을 처음 발견해 세간에 알렸다. 삼바 회계분식을 다루는 불법승계 사건은 지난 4월부터 1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자신이 지분을 가진 제일모직 가치를 높이기 위해 회계분식을 비롯해 시세조종과 배임 등 위법 행위를 저지른 혐의를 받는다.
삼바 회계분식 규모는 약 4조 5천억원이다. 그는 “자본이 6천억원이던 삼바가 하루아침에 7배 이상의 돈을 한번에 벌었다고 한 것이니 어마어마한 규모”라며 “흔히들 비교하는 미국 엔론의 회계분식 규모는 1조 5천억원 수준이었다”고 사안의 중대성을 설명했다.
이어 “엔론은 여러 회사 설립하는 등 복잡한 과정을 통해 가공의 이익을 만든 반면, 삼성은 삼바 회계 한 줄로 대규모 분식을 처리했다”며 “규모로 보나 수법으로 보나 황당한 사건”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미국은 최근 회계분식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고 있다”며 “엔론 경우 분식 규모는 삼바의 3분의 1 수준이었으나, CEO는 징역형 24년을 선고받았다”고 전했다.
회계분식 위험성에 대해 홍 회계사는 “자본주의 체제 근본을 흔드는 위협”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기업 활동은 숫자로 기록되고, 그 숫자를 근거로 투자·거래·입사 등 모든 경제 활동이 이뤄진다”며 “의사결정 기초가 되는 숫자로 장난을 쳤다는 건 자본주의를 하지 말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바 회계분식은 2016년 공시된 재무제표에서 이뤄졌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2015년 9월) 직후다. 홍 회계사는 삼바 회계분식 배경에 대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이후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이상징후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며 “삼바가 대규모 적자를 내면 이 부회장에 유리한 합병을 위해 그간 삼바가 거짓 공시를 했다는 게 드러나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삼바 회계분식 관련 회사와 이 부회장 간 지배구조는 ‘이 부회장-제일모직-삼바-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로 이어진다. 이들 회사 가치가 올라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서 이 부회장이 이득을 보는 구조다.
에피스는 삼바가 미국 바이오젠과 세운 합작사다. 삼바의 에피스 지분은 90% 이상으로 표면적으로는 절대적인 지배력을 가졌으나, 바이오젠은 언제든 에피스 지분을 절반을 취득할 수 있는 콜옵션을 보유하고 있었다. 또한, 에피스는 주요 결정 사안에 대해 바이오젠의 동의를 받아야만 했다. 세부적인 계약 조건을 보면 삼바가 에피스를 지배한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삼바는 에피스에 대한 자사 지배력에 불리한 계약 조건을 공시하지 않았다. 삼바 가치를 부풀려 합병이 이 부회장에 유리하게 이뤄지도록 하기 위함이었다는 게 검찰 시각이다.
합병법인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회계법인은 바이오젠이 가진 콜옵션을 1조 8천억원으로 잡았다. 삼바가 그만큼 부채를 지고 있다는 의미다. 삼바 자본은 6천억원으로 콜옵션 부채를 반영하면 자본잠식에 빠지는 상황이었다.
삼바는 콜옵션 부채 반영에 따른 대규모 적자를 회피하기 위해 회계분식을 저질렀다. 그간 바이오젠과의 계약 조건을 은폐하며 에피스를 종속기업으로 처리하다가, 돌연 지배력을 상실했다며 관계사로 전환했다. 종속기업에서 관계사로 전환하면 당해 1회에 한해 장부가액이 아닌 공정가치로 평가하게 된다. 장부가액은 취득원가를 바탕으로 산출하는 반면, 공정가치는 회계법인 등 평가기관이 값을 낸다. 에피스 장부가액은 3천억원, 공정가치는 5조3천억원이었다.
애초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이 없었던 삼바가 에피스를 종속기업에서 관계사로 전환한 점과 에피스 공정가치를 과대평가한 점이 회계분식 골자다.
홍 회계사는 “에피스 공정가치를 평가한 회계법인 보고서를 보면 삼성이 제공한 사업 계획과 예상 매출 등 자료를 그대로 수용했다”며 “아무리 공정가치에 미래 사업 성장성을 반영한다고 해도, 장부가액과 유사한 수준으로 산정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 수익이 커질 것이라는 자료를 근거로 3천억짜리 회사를 5조원으로 불린 것”이라며 “웬만큼 간이 크지 않으면 시도도 못 할 규모의 회계분식”이라고 했다.
불법승계 재판 결론 전 사면·가석방 납득 안 돼
준감위 보완 계획 흐지부지…삼성은 법 위에 존재하는가
홍 회계사는 이 부회장 사면·가석방 주장에 대해 “현재 진행 중인 불법승계 재판 결론이 나기 전에 풀어주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며 “만약 사면이나 가석방을 해줬는데, 이후에 실형이 나와서 다시 수감되면 우스운 일이 된다”고 일축했다.
이 부회장의 재범 우려에 대해서는 “관점에 따라 이미 재범이 발생했고, 그에 대한 판결이 나오지 않은 상황으로 볼 수 있다”며 “적어도 불법승계 재판이 끝나야 사면이든 가석방이든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정농단 사건과 불법승계 사건은 별개 사건이지만,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라는 단일한 흐름으로 연결된다”며 “경영권 승계를 위해 뇌물을 주고, 부당 합병 이후 제기될 문제를 무마하기 위해 회계분식을 저질렀다”고 설명했다. 현 상황에서 이 부회장을 풀어주는 건 “사법체계를 무시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홍 회계사는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 재판 과정에도 일부 참여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이 부회장 측에 삼성의 준법감시 시스템 구축을 권고하며 양형 반영 의사를 내비치자 삼성은 준감위를 설치했고, 홍 회계사 등 3인으로 구성된 전문심리위원회가 준감위 실효성을 평가했다. 당시 홍 회계사는 준감위가 총수 위법행위를 예방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준감위 설치를 이 부회장 양형에 반영하지 않고 86억원 회사자금 횡령 등 혐의에 대해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준감위 평가 당시 홍 회계사는 두 가지 기준에 집중했다.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예상되는 위법 행위를 유형화했는지 여부와 준법감시 시스템이 일반 직원뿐 아니라 총수에게도 적용되는지 여부다. 홍 회계사는 “상당히 미흡했다”고 말했다.
홍 회계사는 현재의 준감위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그는 “지난 1월 변호인 측은 미흡한 점을 보완할 테니 양형에 반영해달라고 했으나, 재판부가 불가능하다고 배척했다”며 “이후 준감위 보완 계획은 흐지부지된 걸로 보인다”고 전했다.
준감위가 이 부회장 인사조치에 대한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데 대해 “준법감시 시스템은 사법적 판단에 앞서 사전적 예방적으로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가령 위법행위가 의심되면 일단 직무배제하고 자체조사를 해야 하는데, 현재 준감위는 이 부회장 인사조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법을 준수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놨다”고 지적했다.
이 부회장은 현행법상 삼성전자에서 직책을 유지할 수 없다. 특경가법에 따르면, 5억원 이상 횡령·배임을 저지른 범죄자가 유죄 판결을 받으면 범죄 행위와 관련된 기업에 취업할 수 없다. 이 부회장은 여전히 삼성전자 직책을 유지하고 있어 또 다른 위법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 부회장의 취업제한 위반에 대해 홍 회계사는 “법무부의 취업제한 통보를 무시하는 모습은 ‘삼성은 법 위에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을 품게 한다”며 “외국 바이어 입장에서 왜곡된 기업 문화를 가진 곳과는 거래하기 힘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각에서는 총수인 이 부회장이 수감 상태에 있으면 기업과 국가 이미지가 훼손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홍 회계사는 “총수는 법을 위반해도 책임지지 않고 풀려나는 모습은 국가와 기업이 제대로 운영되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질 것”이라며 “이 부회장 사면·가석방은 오히려 국가와 기업에 대한 대외적인 신뢰도를 하락시킨다”고 경고했다.
이 부회장 사면·가석방을 둘러싼 경제위기론과 총수역할론에 대해서는 “현대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몰이해”라고 꼬집었다. 그는 “경영자 한 사람이 기업 성패에 영향을 주는 건 소규모 기업일 때나 적용되는 얘기이지, 일정 단계를 넘어가면 시스템으로 돌아간다”며 “글로벌 기업 삼성은 한 사람의 부재로 의사결정을 못 하는 단계는 넘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투자 결정과 장기 전략은 총수의 혜안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라며 “임직원이 현업에서 다양한 사안을 치열하게 검토하고 이사회가 결정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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