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사망사고 화물노동자의 21살 둘째 딸 “세상이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나요”
“아빠와 전날 밤 저녁 먹고 같이 얘기를 나눴어요. 최근에 이런 (산재사망)사고 많았잖아요. 그러니까 아빠도 조심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 쌍용 씨앤비 공장 산재사망사고 화물노동자 故 장창우 씨의 둘째 딸 장 모(21) 씨
지난 5월 26일 쌍용 씨앤비(C&B) 공장에서 컨테이너 문을 열다가 쏟아지는 압축 파지더미에 깔려 숨진 화물노동자 故장창우 씨 둘째 딸의 말이다.
21살 둘째 딸 장 씨는 2일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평소 우리 가족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 있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사고 전날 아버지와 저녁을 먹고 함께 나눴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장 씨는 아버지가 딸의 걱정 어린 말에 “조심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아버지 창우 씨는 다음날 일터에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창우 씨는 자기 업무도 아닌 위험 작업을 수행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파지 부스러기 날린다고 위험작업 지시
산재사망사고 28분 만에 사고현장 청소
사망노동자 둘째 딸의 절망
“세상이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나”
화물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2일 서울 동작구 쌍용 씨앤비 본사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회견에는 사망노동자의 두 딸과 처음 사고를 목격했던 동료 노동자가 참여했다.
기자회견에서 둘째 딸은 “어떻게 사람이 죽었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뻔뻔하게 사고현장을 훼손하고 작업을 이어갈 수 있나”라며 “그런 행동은 사람 목숨을 공장에 날리는 먼지만도 못한 취급 하며 생명을 멸시하는 행동”이라고 분노했다. 그러면서 “크고 대단한 걸 바라는 게 아니다. 당연히 지켜달라는 것만 지켜달라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건가”라고 한탄했다.
지난달 26일 오전 9시15분쯤 화물노동자 창우 씨는 쌍용 씨앤비 작업장에서 컨테이너 문을 열다가, 경사로 때문에 입구 쪽으로 쏠린 300~500kg의 압축 파지더미가 쏟아지면서 산재사고를 당했다. 창우 씨는 동료에 의해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져 긴급하게 수술을 받았으나, 다음날 12시15분경 상태 악화로 숨졌다.
쌍용 씨앤비 측은 산재사고 위험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유족과 동료들에 따르면, 1년여 전까지만 해도 “경사로로 내려가기 전에 컨테이너 문을 연 후 컨테이너 내부 짐을 내려놓는 곳까지 후진하여 상·하차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작업장에 파지 부스러기가 날린다고 미리 열지 말고 경사면을 모두 내려온 뒤 컨테이너 문을 열라고 작업 지시를 했다고 동료와 유족은 전했다.
또 회사는 119가 출발하기 무섭게 사고현장을 훼손하고 작업을 재개했다. CCTV를 보면, 사고 당일 오전 9시40분경 119구급대가 창우 씨를 구급차량에 태운 뒤 이송을 위해 문을 닫았다. 그리고 2~3분 뒤인 9시43분경 지게차로 파지더미를 다시 나르기 시작했다. CCTV에는 사고 현장이 사고 발생 28분 만에 훼손되는 장면도 담겼다. 이날 오전 10시15분경 회사는 지게차로 창우 씨를 덮친 파지더미를 치웠다. 이어 오전 11시쯤 창우 씨가 몰았던 화물차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누구든지 중대재해 발생 현장을 훼손하면 안 된다고 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았다.
둘째 딸이 “사람의 목숨을 공장에 날리는 먼지만도 못하게 취급했다”고 분노한 이유다.
딸 장 씨는 사고 직후 28분 만에 사고현장이 훼손된 사실을 듣고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나” 생각했다고 한다.
박해철 공공운수노조 수석부위원장은 “무엇보다 사고 이후 회사가 보여준 작태에 분노한다”라며 “화물노동자가 공장 정규직이 아닌 특수고용직이라고 할지라도, 사람이고 인간이다. 인간의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서 회사는 오로지 비용만 (따지고) 있었다. 사람은 없었다. 화물노동자는 없었다”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위험작업 강제하는 업계의 관행
“자본의 탐욕이 부른 타살” 분통
이봉주 화물연대본부 위원장은 “인명 경시인지, 안전 불감증인지, 화물노동자들을 한낱 그림자 취급하는 것인지…”라며 똑같은 형태로 잇따르는 화물노동자들의 산재사망사고에 한탄했다.
앞서 지난해 9월 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짐을 싣던 화물노동자가 스크루(Screw)에 깔려 숨졌고, 같은 해 11월 남동발전 영흥화력발전소에서도 혼자 석탄재를 차에 싣던 화물노동자가 추락해 5분가량 방치돼 있다가 숨졌다. 올해 3월 한국보랄석고보드에서도 석고보드를 하차하던 화물노동자가 적재물에 갈려 숨졌다.
이 사고 모두 화물노동자의 업무가 아닌 상·하차 작업을 업계가 관행처럼 강요하는 상황에서 발생한 사고였다.
이 위원장은 “화물노동자 업무는 운송”이라며 “관련법에 따른 안전운영 고시를 보면, 업무 범위가 명확히 명시돼 있다. 안전사고가 날 수 있는 경우면 해당 업무를 화물노동자에게 시켜서는 안 된다고 돼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런데도 회사는 이익을 위해 사고 위험이 큰 경사진 도크 안에서 위험한 노동을 강제했다”라며 “누가 보더라도 자본의 탐욕이 부른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관련해서, 국토교통부도 화물자동차 안전운임 고시 유권해석을 통해 “컨테이너 문을 개방하여 내부를 검사하거나 청소하는 작업이 안전사고 발생 위험이 있으면 화물노동자에게 해당 작업을 수행하게 하면 안 된다”고 보고 있다.
한편, 이날 오후 5시40분경 유가족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화물연대본부와 사 측은 합의안을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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