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최지현·강석영 기자
사회에 막 첫발을 내딛은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최소한의 법적 권리를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알더라도 주장할 수 있는 훈련이 전혀 돼 있지 않은 상태로 안전하지 않은 일터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산재사고까지 잇따르면서 학교에서부터 제대로 된 노동교육인권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요구가 커집니다. 이에 학교 노동인권교육의 현황과 내실화를 위한 대안을 3편의 기사로 소개합니다.
“내가 일을 하다가 다칠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일터로 내몰리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고 이선호(23세) 씨의 아버지 이재훈(62세) 씨가 아들의 추모문화제에서 울분을 터뜨리며 한 말이다. 선호 씨는 지난 4월 22일 아버지와 함께 일용직으로 경기도 평택항에서 일하다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지시받고 따르던 도중 300kg짜리 개방형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세상을 떠났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용돈을 좀 벌려다 참변을 당한 것이었다.
그에 앞서 아들 김용균(당시 24세) 씨를 떠나보낸 어머니 김미숙(53세) 씨는 선호 씨의 소식을 듣고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남의 일이 아니었다. 그의 아들 용균 씨는 3년 전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김 씨는 민중의소리와 만나 “용균이가 사회에 나가도 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건설업이 많이 위험하다고 뉴스에서 많이 나오니까 ‘너는 건설업에 가지 말라’, ‘화학약품 폭발사고가 있으니까 그런 데에는 가지 말라’고만 했지, 우리사회에 그런 위험이 만연하게 방치돼있다는 건 정말 생각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선호 씨와 용균 씨처럼 사회에 막 첫발을 내딛은 청소년들과 청년들은 최소한의 법적 권리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알더라도 주장할 수 있는 훈련도 전혀 돼 있지 않은 데다, 상대적으로 저경력·하급직이어서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 내몰리고 있다.
그래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청년들을 향해 안전하지 않은 일터는 벗어나야 한다고 거듭 당부하고 있다. 이 씨는 “시킨다고 다 해선 안 된다. 위험하고 힘든 일은 얼마든지 거부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김 씨도 “위험한 곳은 무조건 나와라. 위험한 것은 시켜도 절대로 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이들의 말처럼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잘 알고 있고 노동을 존중하는 사회가 된다면 처참한 죽음 만큼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학교에서부터 교육을 통해 이뤄진다면 앞으로 세상은 달라지지 않을까.
학교 노동인권교육 활성화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며,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올해 초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노동인권교육을 담자고 교육부에 공식 건의했다. 김 씨도 “아이들이 사회에 나오기 전에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촉구했다.
학교에서 노동을 배운다고?
학교에서 ‘노동’에 관한 내용을 가르치는 모습은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다른 나라에서는 익숙한 풍경이다. 특히 유럽에서는 초등학교 정규 수업 과정에서부터 철저하게 노동 문제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한국고용노동교육원 등에 따르면 독일의 경우 정규 교과과정에서 노사교섭을 배울 정도로 체계적 노동 교육을 한다. 1976년 사회적 합의로 만들어진 민주시민교육의 원칙인 보이텔스바흐 합의에 따라 교육 체계가 구성됐다. 프랑스의 경우 1985년 초·중학교에 노동 교육이 포함된 과목인 ‘시민교육’을 의무화하고 1999년부터 고등학교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 영국도 2002년부터 중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시민교육을 가르치고 있다. 시민을 정의할 때 '노동자'도 포함된다는 걸 분명히 하고, ‘노동조합이 학교 안으로’(Unions Into Schools)라는 홈페이지도 운영한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는 “유럽의 몇 개 국가만 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가 하고 있다. 전형적인 시장주의 국가인 미국과 일본도 하고 있다”며 “미국 교과서에는 ‘노동운동사’가 자세히 나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러한 외국 사례는 노동을 존중하는 사회적 인식이 높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학교에서의 노동인권교육 수준은 어떨까. 분명 이전보다 나아지고 있지만 50년 전인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앞에서 스물세 살의 봉제 노동자 전태일 열사가 몸에 불을 붙이며 준수하라고 외쳤던 ‘근로기준법’을 겨우 가르치고 있는 현실이다.
‘근로기준법’ 겨우 알려주는데 머무는 교육 현실
우리나라 학교에서 ‘노동’에 관한 교육이 이뤄진 역사는 매우 짧다. 한국고용노동교육원의 올해 초 펴낸 ‘노동인권교육 실태조사와 교육 활성화 방안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노동인권교육은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서 직업계고(특성화고·마이스터고)만을 대상으로 실시하도록 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이후에도 2011년 광주기아자동차 현장실습생이 과로로 쓰러지는 등 해마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에 대한 산재사고가 발생했다. 노동인권교육이 체계적으로 진행되지 못한 탓이었다.
학교 노동인권교육의 전환점은 ‘2015 개정 교육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현재까지 적용되고 있는 교육과정이다. 정부는 2015년 교육과정의 개정을 통해 초·중·고등학교의 정규교육과정에 ‘노동인권의 개념’을 반영하고자 했다.
이는 직업계고를 중심으로 하던 노동인권교육을 청소년 모두에게 해야 한다는 사회적 목소리가 반영된 결과였다. 아르바이트 등 일을 하는 청소년 비율이 증가하고 있었고(2019년 기준 전국 중·고등학생 중 8.5%), 일을 시작하는 연령도 낮아지는 추세였다. 특히 불안정한 노동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은 인권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도 커서 사회적 책임이 요구됐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2018년부터 중앙정부 차원에서의 여러 가지 정책과 사업이 나오기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중 학교와 가장 밀접한 부처인 교육부는 노동인권교육 내용을 일부 교과서에 포함시켰다.
현재 초등학교 5~6학년, 중학교 2~3학년, 고등학교 1~3학년에서 노동인권에 대한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경우 노동인권에 관한 기본개념과 노동, 시장경제 등을 다루고 있고, 고등학교는 노동자의 권리, 노동 관련 법령, 근로계약서 작성 등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성공적인 직업생활’ 교과서를 보면 ‘근로 관계와 산업안전’이라는 단원에서 근로관계법 등 근로자의 권리와 의무를 설명하고 있고, ‘통합 사회’ 교과서의 ‘인권 보장과 헌법’이라는 단원에서는 청소년 노동인권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교과과정이 개정된 2015년 이전에는 이마저도 접하기 힘들었던 것에 비하면 분명 큰 변화다.
여기에 더해 각 지역의 교육청은 노동인권교육의 활성화를 위해 별도의 조례를 제정하고 있다. 2015년 ‘대전시교육청 노동인권교육 조례’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17개 시·도교육청 중 13곳에서 노동인권교육 활성화를 위한 조례가 제정됐다.
특히 조례에 노동인권교육 대상을 명시하고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시간까지 정해둔 곳은 서울·경기·인천·광주·부산·충북 등 6개 시·도 교육청이다. 다만 구체적인 내용과 방식은 조례마다 각각 다르다.
예를 들어 서울시교육청은 직업계고, 일반고 중 직업위탁반 운영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기당 2시간 이상 노동인권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경기도교육청은 중·고등학교에서 연간 2시간 이상 노동인권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광주시교육청은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매년 실시해야 한다.
교육 방법은 명시적으로 규정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정규교과과정과 연계해 노동인권교육을 하거나 비교과인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해 노동인권교육을 하고 있다. 교과 담당교사가 자신의 수업 시간을 할애해 직접 노동인권교육을 하거나 외부강사(노동인권전문가)를 초빙해 수업하기도 한다. 광주의 경우 전국 최초로 노동인권교과서가 개발·인정되어 일부 특성화고에서 이를 선택교과로 채택해 운영하고 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교육 현장에선 노동인권교육을 제대로 하는 데에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단 교육부가 제시하고 있는 교육의 ‘성취기준’이 노동의 가치에 대한 충분한 이해보다 직업윤리, 청렴한 삶의 필요성 등 소극적인 수준에서의 노동에 대한 이해로 구성돼 있다 보니 교과서에 담긴 내용과 교육 내용도 극히 한정적이다. 지역 교육청 조례에 따른 의무 교육도 내실 있게 진행되기 어려운 구조다.
2001년부터 학교에서 노동인권교육을 담당하고 경기도교육연구원의 연구에도 참여해온 이천제일고등학교 장윤호 교사는 “노동인권교육을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근로기준법 정도밖에 못 한다”며 “노동인권교육을 많이 한다고 하지만 현재 이뤄지고 있는 것 대부분이 그렇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노동법 상식 넘어 노동에 대한 전반적인 태도 변화 견인
전문가들은 ‘학교 노동교육 의무화’ 등 제도적 보완을 통해 노동인권의 본질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근로기준법’을 잘 알아도 오토바이를 탄 배달 노동자에게 “공부를 못 하니 저런 일을 한다”는 노동 비하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는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호 씨의 죽음도, 용균 씨의 죽음도, 모두 그들의 노동인권을 존중하지 않아 생긴 문제들이었다.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동법은 본래 ‘일하는 사람의 인권’을 보장하고자 하는 데에 그 근본적인 바탕을 두고 형성, 발전되어 왔다”며 “결국 노동법이 지향하는 중요한 가치는 노동에 대한 존중, 노동인권의 존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노동인권을 배우는 것은 단지 법 조항 내용과 같은 지식만 배우는 것만이 아니라 노동인권이 형성, 발전되어온 역사 속에 깃들여 있는 인간에 대한 존중, 아름다운 연대의 의미 등 우리 삶에서 중요한 가치들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전명훈 서울시교육청 노동인권전문관은 “‘대부분 노동자가 되기 때문에 노동인권교육 해야 한다’고 많이 이야기하지만 저는 ‘절반’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며 “학생들이 노동자가 아닌 사용자가 되더라도 노동의 가치와 노동자를 존중하는 태도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나의 노동인권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노동인권도 존중할 수 있는 시민으로서, 일하는 시민으로서 갖춰야 할 노동에 대한 존중, 노동에 대한 태도를 갖추는 게 우선”이라며 “법이야 법전을 찾아보면 되지만, 이런 가치와 태도를 만드는 건 한순간에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장 교사도 “삶이 대부분 노동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현실적으로 제도적, 법적으로 3분의 2는 임금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고, 그 외에 임금노동자를 채용해서 살거나, 임금노동자와 비슷한 수준의 영세사업자가 된다”며 “그런데 이런 고용관계에 대해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일터에서 보내는 만큼 일상의 민주주의는 일터의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며 “노동교육이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이에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2월에 낸 ‘학교 노동인권교육 활성화 기본계획’에서 “기존 아르바이트, 현장실습 등 일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노동기본권 중심의 교육에서 노동의 가치와 노동존중 사회에 대한 교육으로 내용요소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경기도교육연구원도 지난해 5월 발간한 ‘민주시민교육으로서 노동인권교육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란 자료를 통해 “근로기준법의 중심으로 하는 교육은 노동인권교육은 노동자의 법률적 권리에 대한 지식 전달 교육으로 제한되어 노동인권교육을 확장하는 데 한계를 드러낸다”며 “법률 중심의 노동인권교육 내용은 교육대상에 따라 다양한 주제로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방향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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