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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30일 수요일

대선 출마 이재명 "난 위기 많았던 흙수저…고통 원인은 불공정·불평등"


"강력한 경제정책으로 대전환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 대선출마 선언

2021년 6월 29일 화요일

김정은 총비서, 국가비상방역전에 ‘중대사건 발생’ 언급

 

북, 정치국확대회의 개최...간부 문제 집중 토의

  • 기자명 김치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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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6.30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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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노동신문]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정치국 확대회의’가 김정은 총비서의 지도하에 29일 열렸다. 국가비상방역에서 발생한 중대사건을 다뤄 주목된다. [사진 - 노동신문 갈무리]

북한은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주재한 정치국 확대회의를 29일 개최하고 “일부 책임간부들의 직무태만행위”를 다뤘으며, 특히 국가비상방역에서 “국가와 인민의 안전에 커다란 위기를 조성하는 중대사건”을 발생시킨 문제를 지적해 주목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0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정치국 확대회의’가 김정은 총비서의 지도하에 29일 열렸고,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들과 정치국 위원, 후보위원들, 당중앙위원회 일군들, 성, 중앙기관 당, 행정책임일군들, 도당책임비서들과 도인민위원장들, 시, 군과 련합기업소 당책임비서들, 무력기관, 국가비상방역부문의 해당 일군들”이 참가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총비서동지께서는 국가중대사를 맡은 책임간부들이 세계적인 보건위기에 대비한 국가비상방역전의 장기화의 요구에 따라 조직기구적, 물질적 및 과학기술적대책을 세울데 대한 당의 중요결정집행을 태공함으로써 국가와 인민의 안전에 커다란 위기를 조성하는 중대사건을 발생시킨데 대하여서와 그로 하여 초래된 엄중한 후과에 대하여 지적하시였다”고 적시해 주목된다.

북한은 그간 국가비상방역을 대대적으로 벌여 코로나19 확진자가 한 명도 없다고 대내외에 천명해왔다. 따라서 김 총비서가 언급한 ‘엄중한 후과’를 낳은 ‘중대사건’은 코로나19 감염과 관련된 사건을 적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문은 구체적인 내용은 전하지 않았다. 신문에 보도된 사진을 보면, 회의 참가자들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회의를 진행했다 .

신문은 “책임간부들이 현시기 조국과 인민의 안전, 사활이 걸린 국가비상방역체계의 지속적강화와 나라 경제사업과 인민생활안정에 엄중한 저해를 준데 대하여 심각히 지적하였다”며 “당전원회의가 결정시달한 국가적인 정책을 외곡(왜곡)집행한 이들의 무능과 무책임한 일본새는 단순한 실무적과오가 아니라 당과 국가의 고충을 한몸 내대고 맡아 풀겠다는 자각이 결여된데로부터 산생된 극심한 태만, 태업행위라고 강하게 타매하였다”고만 전했다.

[사진출처 - 노동신문]
이번 회의에서는 당과 국가의 간부 문제에 대한 의정(의제)이 주로 다뤄졌다. 회의 참가자들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사진출처 - 노동신문]

이번 회의에서는 당과 국가의 간부 문제에 대한 의정(의제)이 주로 다뤄졌으며, “정치국 확대회의에서는 자료보고가 있었다”고 전했다. “당결정과 국가적인 최중대과업수행을 태공한 일부 책임간부들의 직무태만행위가 상세히 통보되였다”는 것.

또한 “보신주의와 소극성에 사로잡혀 당의 전략적구상실현에 저애를 주고 인민생활안정과 경제건설전반에 부정적영향을 끼친 과오의 엄중성이 신랄하게 분석되였”고,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들에서 토의결정한 중요과업관철에서 무지와 무능력, 무책임성을 발로시킨 간부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전개되였”다고 전했다.

신문은 “다음으로 당결정에 대한 태도와 관점이 불투명하고 패배주의에 빠져 맡은 사업을 혁명적으로 전개하지 않고있는 중앙과 지방의 일부 일군들에 대한 자료통보가 있었으며 이들을 철저히 당적으로, 법적으로 검토조사하고 해당한 대책을 세울데 대한 결정이 승인되였다”며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정치국 위원, 후보위원들을 소환 및 보선하고 당중앙위원회 비서를 소환 및 선거하였으며 국가기관 간부들을 조동 및 임명하였다”고 밝혔다.

올해 들어 8차 당대회와 두 차례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등을 거치며 인사문제가 일단락 됐지만 다시 한번 간부들 재배치가 이뤄진 셈이다. 신문은 구체적인 인사 내용은 보도하지 않았다.

이번 회의에서는 당과 국가의 간부 문제에 대한 의정(의제)이 주로 다뤄졌
이번 회의에서는 간부들의 재배치가 이뤄졌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보도되지 않았다. 노동신문이 사진으로 보도한 주요 발언자들이 참고가 될 수 있다. [사진 - 노동신문 갈무리]

김정은 총비서는 ‘강령적인 결론’을 통해 “현시기 간부들의 고질적인 무책임성과 무능력이야말로 당정책집행에 인위적인 난관을 조성하고 혁명사업발전에 막대한 저해를 주는 주되는 제동기”라며 “지금이야말로 첨예하게 제기되는 경제문제를 풀기 전에 간부혁명을 일으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또한 “간부들의 정치의식을 높이기 위하여서는 당생활을 통한 교양과 단련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각급 당조직들에서 간부대렬을 충실성에 있어서나 혁명성, 인민성, 실력에 있어서 알차게 준비된 대상들로 정간화, 정예화할데 대하여 중요하게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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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앞에 선 ‘정치인 윤석열’, 정권교체 목청 높였지만 정치 비전은 모호

 “부패·무능 세력의 집권 연장 막아야, 모든 걸 바칠 준비 됐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2021.06.29ⓒ김철수 기자 

 야권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링 위에 올랐다. 대변인 입을 빌린 '전언정치'로 비판받았던 윤 전 총장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고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첫 자리였다.

윤 전 총장은 이날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루겠다는 절실함으로 나섰다"며 정치 참여를 공식 선언했다.

윤 전 총장의 출사표 대부분은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현 정부의 실정으로 국민이 고통받고 있기 때문에 정권교체를 반드시 이뤄야 한다는 식의 논리다. 하지만 '정치인 윤석열'이 왜 대통령이 돼야 하는지, '정치인 윤석열'은 어떤 정치를 보여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알맹이가 빠진 셈이다.

윤 전 총장은 문재인 정권을 두고 "경제 상식을 무시한 '소주성(소득주도성장)', 시장과 싸우는 주택정책, 법을 무시하고 세계 일류 기술을 사장시킨 탈원전, 매표에 가까운 포퓰리즘 정책으로 수많은 청년·자영업자·중소기업인·저임금 근로자들이 고통받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국민을 내 편, 네 편으로 갈라 상식과 공정, 법치를 내팽개쳐 나라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국민을 좌절과 분노에 빠지게 했다"며 "이 정권이 저지른 무도한 행태는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렵다"고 맹비난했다.

윤 전 총장은 "이들의 집권이 연장된다면 대한민국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불 보듯 뻔하다"며 "이제 우리는 이런 부패하고 무능한 세력의 집권 연장과 국민 약탈을 막아야 한다. 여기에 동의하는 모든 국민과 세력은 힘을 합쳐야 한다"고 야권 통합을 발판으로 한 정권교체를 강조했다.

이어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하면 개악과 파괴를 개혁이라고 말하고, 독재와 전제를 민주주의라 말하는 선동가들과 부패한 이권 카르텔이 지금보다 더욱 판치는 나라가 되어 국민들이 오랫동안 고통을 받을 것"이라며 "그야말로 '부패완판' 대한민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헌신할 준비가 되었음을 감히 말씀드린다"며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모든 분들과 힘을 모아 확실하게 해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윤 전 총장은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국가상에 대해서는 키워드 식으로 짧게 언급하는 데 그쳤다.

그는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 산업화에 일생을 바친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 민주화에 헌신하고도 묵묵히 살아가는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 세금을 내는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또한 "청년들이 마음껏 뛰는 역동적인 나라, 자유와 창의가 넘치는 혁신의 나라, 약자가 기죽지 않는 따뜻한 나라, 국제사회와 가치를 공유하고 책임을 다하는 나라를 반드시 만들겠다"고 제시했다.

다양한 질문 쏟아졌지만
여전히 모호했던 윤석열의 정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열린 대선 출마 기자회견을 마치고 지지자들의 응원을 받으며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2021.6.29ⓒ김철수 기자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도 대권 주자로서 윤 전 총장의 구상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이날 윤 전 총장에게는 시대정신으로 꼽히는 공정과 경제 정책, 한일관계 해법 등 다양한 분야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윤 전 총장의 답변은 모호하기만 했다.

그는 여권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내세우는 공정과 윤 전 총장이 강조하는 공정의 차이점을 묻는 질문에는 "공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하나는 특정 분야에서 특정 시장에서 공정한 룰에 따라 경쟁하고 거기에 따라 어떤 보상이 주어지는 공정이 있고 국민 전체, 국민 한 분 한 분의 생애 전주기에 기회의 공정이 있다고 본다"고 답했다.

윤 전 총장은 "지금은 청년 세대가 취업이라든가 입시라든가 이런 데 있어서 불공정을 많이 느끼기 때문에 어떤 특정 분야에서 공정한 경쟁을, 공정을 최우선 가치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며 "그러나 국가나 정부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국민이 생애 전 주기에 자기들이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의 균등, 공정한 기회의 보장이 큰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복지와 성장 두 가지 가치 중 어느 부분에 더 방점을 찍느냐는 질문에도 복지와 성장 모두 중요하다는 식의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그는 "지속가능성이라는 데 방점을 두고 싶다"며 "복지도 지속가능한 재정이 있어야만 제대로 집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복지와 성장 중 어느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해법으로는 "이 정부 들어와서 망가진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문제 이런 것들과 한일 간 안보 협력이라든가, 경제 무역 문제 등 이런 현안들을 전부 다 같이 하나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그랜드 바겐을 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며 "한미관계처럼 한일관계도 국방 외무 또는 내무 경제 이렇게 2+2, 3+3의 정기적인 정부 당국자 간 소통이 향후 관계를 회복하고 풀어나가는 데 필요하지 않겠냐"고 제시했다.

반면, 윤 전 총장이 비판받는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적극 반박했다.

그는 우선 "2019년 가을부터 총장으로서 수사한 내용들은 법과 원칙에 따라 이뤄졌다"고 자신했다.

이후에도 비슷한 취지의 질문이 나오자 검찰총장이 선출직에 나서지 않았던 것은 "관행"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그는 "공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고 국민을 위한 검찰이 돼야 하기 때문에 검찰의 정치적 독립, 그리고 최고 지휘자인 검찰총장이 선출직에 나서지 않는 관행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절대적 원칙은 아니라 생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법, 검찰 공무원이 선출직에 나서는 게 맞나, 안 맞나라는 논란은 제가 볼 때 일반적으로는 관행상 하지 않았지만, 결국 국민이 판단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입당 여부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그는 "정치철학 면에서는 국민의힘과 생각을 같이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향후 제 정치 행보에 대해서는 이미 이 자리 서기 전에 말씀을 다 드렸기 때문에 그것으로 갈음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밝혔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 문제와 관련해서는 "두 전직 대통령의 장기 구금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국민도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저 역시도 그런 국민들 생각에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고 답했다.

한편, 이날 윤 전 총장의 정치참여 선언식이 진행된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는 윤 전 총장의 지지자들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다. 행사 시작 전부터 윤 전 총장을 응원하는 화환과 현수막들이 기념관 주위를 둘러싸기도 했다.

윤 전 총장이 선언식을 마친 뒤 행사장 밖으로 나오자 그를 기다렸던 지지자들은 일제히 "윤석열 대통령"을 연호했다. 지지자들에 둘러싸인 윤 전 총장은 마이크를 잡고 "여러분의 열망, 기대, 저 역시 실망시켜드리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며 "우리가 다 함께하면 할 수 있다"고 외쳤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2021.06.29ⓒ김철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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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개미가 아니다"

 [녹색평론 김종철 약전] ④ 유럽 에콜로지 사상과의 만남

한국에서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 등 절차적 민주화는 쟁취했으나 민주화운동 세력의 집권은 좌절됐다. 하지만 30년 가까운 군사독재가 종식됐고 87년 여름부터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이 요원의 불길처럼 퍼지면서 노동자들의 조직화(민주노총)가 이뤄졌으며, '3저 호황'으로 대표되는 제조업의 약진으로 산업화가 급진전됐고 환경 문제 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1980년대는 근대 국가의 양대 목표인 산업화와 민주화가 1차 완성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김종철에게 1980년대는 유럽에서 태동하고 있던 '에콜로지' 사상에 접하면서 문학에서 생태평화운동으로 관심을 돌리게 된 전환의 시기였다. <녹색평론>의 사상적 준비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1983년 가을 "한국에서 혼자 어설프게 읽고 있던 맑스주의 문학비평에 관해 좀 심화된 학습을 해볼 요량으로" 미국으로 떠났으나 정작 그곳에서 가장 흥미를 느끼고 몰입하게 된 것은 당시 세계 지식사회의 새로운 테마로 대두하고 있던 에콜로지 사상이었다.


김종철은 "버펄로의 (뉴욕주립) 대학 도서관에서 보낸 시간은 내게 새로운 세계로 시야를 열어준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면서 당시 "선구적 에콜로지 사상가들의 메시지는,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현대문명의 관행이 이대로 계속되기만 하는 것으로도 파국은 필연적이라는 것이었다"(<대지의 상상력> 8쪽)고 밝혔다.


 

▲ 루돌프 바로(Rudolf Bahro)의 책 <동유럽에서의 대안(The Alternative in Eastern Europe)>과 <적색에서 녹색으로(From Red to Green)> 표지(두 권 모두 국내 미번역).

당시 김종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으로 동독 출신의 반체제운동가 루돌프 바로의 <적색에서 녹색으로(From Red To Green)>(1984)가 꼽힌다.


 루돌프 바로(1935~1997)는 본래 동독 공산당원으로 언론인으로 활동했으나 1977년 동구 공산주의와 서구 자본주의를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동시에 비판하고 새로운 문화혁명의 필요성을 역설한 책 <동유럽에서의 대안(The Alternative in Eastern Europe)>(1978)이 서독에서 출판된 직후 동독 당국에 체포돼 8년 징역형에 처해졌고, 이후 서독을 비롯한 서유럽의 구명운동으로 1979년 10월 석방돼 같은 해 서독 녹색당의 창당 멤버가 되었다.


그는 2년의 투옥 기간 중 성서 공부를 통해 종교와 영성의 중요성에 눈을 떴으며, 새로운 인간적 사회 건설을 위해서는 자급자족에 의한 소규모 공동체, 개인 내면의 변화와 영성의 재발견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1980년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했고, 1982년에는 국제분업에 의거한 세계시장과 자본주의적 산업체제를 포기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당시 서유럽에서 일어난 반핵평화운동에 동참했다.


바로는 녹색당 내부에서도 가장 원칙적인 이념을 견지했고 녹색당이 점차 현실정치 속에서 산업체제와 타협적으로 되어가고 있다고(녹색당은 1983년 서독 연방의회 진출) 비판하던 중, 1985년 녹색당과 결별하고 생태공동체 건설을 위한 운동에 헌신하다가 1997년 베를린에서 혈액암으로 사망했다.


<녹색평론> 9호(1993년 3/4월호)에는 1982년 바로가 한 진보적 문화운동단체와 가진 대담이 '인간은 개미가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실렸는데, 이를 통해 그의 에콜로지 사상을 엿볼 수 있다.(<녹색평론선집 2> 146~154쪽에 수록)


바로는 "현재의 역사적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지금은 산업화로 인하여 세계가 파괴와 죽음으로 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 문명은 자기파멸적으로 되고 있다. 여기에 대한 답은 에콜로지와 평화운동"이라고 대답한다.


현재의 산업문명체제란 선진산업국가의 지구 자원의 독점적 약탈에 의해 유지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제3세계와 미래세대의 삶이 희생되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와 같은(서유럽, 미국, 일본 등 산업국가들의) 생활을 전체 인류가 할 수 있게 하려면-사회정의의 원칙에 따라서 누구든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누리게 할 수 있어야 한다-지금 우리가 가진 것의(자원 및 에너지) 20배 이상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은 총체적인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에는 생산은 인간의 필요에 맞춰져 있지 않고, 생산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있다. 그 결과로 오늘날 우리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 한 노동자가 저녁에 맥주 한 병을 들고 텔레비전 앞에 앉을 수 있기 위해서는 18세기 (독일 시인) 쉴러가 자기의 평생의 작품을 창조하는 데 필요했던 에너지의 열 배 이상을 필요로 한다. 노동자가 그렇게 많은 것을 가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총체적인 구조가 그렇게 엄청나게 변화하였다. 예컨대 오늘의 하부구조는 노동자가 출근하는 데 승용차를 필요로 하게 한다."


 

그는 기술발전을 통해 인류의 생활 수준 향상과 행복을 달성할 수 있다는 서구 좌파의 믿음에 대해 "기술 발전의 방향과 별도로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기술적 성과란 없다"면서 "나는 지난 2000년 동안의 어떠한 기술적 성과라도 그것이 그 자체로서 성과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특히 그는 2차 대전 후 서구의 노동자 세력의 투쟁이 자본으로부터 보다 나은 조건을 따먹는 데, 그리하여 (서구의) 산업 메트로폴리스의 중심적 지위를 확고히 하고 식민주의적 지배를 강화하는 데 이바지했을 뿐이라며, "부유한 나라들의 임금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이해관계는 결국 문명의 자기파멸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오로지 물질적 생활 수준 향상을 삶의 목표로 삼는 자본주의 산업문명이 인간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억압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인류는 물질문화라고 하는 제2의 본성을 스스로 창조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정의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인간의 에너지와 특히 인간적인 여러 능력들이 주로 물질적 확장에 투입되어 왔던 것이다. 이러한 확장·팽창 과정이 이제 독립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인간은 아직 자기인식에 도달하지 못했다. 자기통제, 자신의 힘을 통제한다는 의미에서의 자기인식 말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물질의 재생산 과정에서 집단적으로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통제되지 않고, 여전히 독립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는 자본주의 산업문명에 "대파국, 종말의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면서 이제까지 외부 지향의 노동, 즉 외부적 진화에 몰두해 있던 인간의 노력이 내면적 능력의 계발로 옮겨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인간은 "타고 나기를 개미집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는 개미들과는 다르게 자신이 세운 사회구조에 돌이킬 수 없이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며, 물질적 생산 확대에 몰두했던 이제까지의 움직임으로부터 우리의 에너지를 거둬들여야 한다. 다시 말해 "개인의 에너지가 의사소통-자기 자신 및 다른 사람들과의-영역으로 완전히 옮겨가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에 따르면 새로운 인간적 사회를 위해서는 비집중화, 분권화, 분산화가 이루어져야 하고, 일상생활의 필수품 대부분이 자급자족 되어야 한다. 일인당 물질과 에너지 소비가 열 배, 스무 배나 증가해 있는 오늘의 상황이 극복되려면 우리의 기본 욕구가 우리 자신이 살고 있는 땅에서 생산된 것으로 채워지고 교환도 대부분 근린지역 내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전제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식량과 주택을 비롯하여 학교와 대학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사회화되고 육체적으로 스스로를 재생산하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가능한 한 넓은 범위에 걸쳐 자기 자신의 노동으로 생산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땅이 있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농업은 정말 근원적인 조건이다.


 

간디와 노자에도 정통했던 그는 "노자의 경제개념에 의하면 공동체들은 서로 너무 가까이 접근해 있어서는 안 된다. 제일 좋은 것은 이웃나라를 방문하지도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와 핵무기는 그 본질에서 동일하다'


 

김종철은 바로가 녹색당과의 결별 이유를 밝힌 연설 '구원의 논리'를 <녹색평론> 17호(1994년 7/8월호)에 소개하면서, 근대 산업문명에 대한 바로의 근원적 비판을 '자동차와 핵무기는 그 본질에서 동일하다'는 한마디로 요약했다.


바로는 미국 중거리 핵미사일의 서유럽 배치를 두고 격렬한 반핵운동이 전개되고 있던 1983년 가을, 반핵운동 단체의 초청으로 뉴욕을 방문했다. 당시 서유럽 시민들은 '왜 유럽이 미소 핵군비경쟁의 볼모가 돼야 하느냐'고 거세게 반발했고, 미국의 평화운동 세력도 이에 호응하고 있었다. 때는 김종철이 버펄로에 도착했을 무렵이다.


그런데 바로는 반핵집회에서 지금 뉴욕의 거리를 질주하고 있는 자동차들도 그 본질에 있어서 핵무기와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해 좌파 운동가들의 거센 반발을 초래했다. 바로의 발언은 기술발전을 통해 빈곤계층의 생활 수준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가로막는 논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동차와 핵무기는 그 본질에서 동일하다'는 바로의 발언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기술에 대한 미신적 신앙, 자연을 정복의 대상, 또는 이용 가능한 자원으로만 간주하는 인간중심주의적이며 생산력중심주의적 사고, 그리고 기술발전의 무한한 추구는 결국 생태계를 파탄 낼 것이라는 점에서 자동차와 핵무기의 생산은 궁극적으로 동일한 결과를 낳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핵무기는 기술문명의 필연적 산물이며 자기파멸적 세력의 직접적인 표현이라는 것이다.


김종철은 이 글이 실린 <녹색평론> 17호의 머리말 '생산력이 아니라 공생의 윤리를'에서 "우리는 에콜로지 문제를 우선적으로 보면서, 이것을 중심으로 인간의 현실과 역사를 보는 관점이야말로 오늘에 있어서 세계의 가장 진보적이고 과학적이며 의미 있는 정치철학을 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예컨대 "노동운동이 자동차의 생산 자체를 반대하는 데까지 갈 수 있는가"라고 투박하게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생활 수준'이라고 하는 본질적으로 부르주아 개인주의적 개념이 늘 필수적인 평가 기준이 되어왔다는 데 20세기 사회변혁운동의 실패와 비극의 핵심적인 원인이 있는지도 모른다"면서 "물질적 재화의 소비 규모의 과다에 의해서 측정될 수밖에 없는 생활 수준이라고 하는 것이 사회발전의 핵심적인 기준이 될 때, 토착문화의 다양한 삶의 방식이 파괴되고, 전통적인 농업이 사라지고, 생태적 재앙이 따르고, 공동체가 해체되며 인간의 도구화가 심화되는 것은 필연적"이며 "생활 수준의 향상을 꾀하는 '개발'이 진행되면 될수록 부의 독점은 심화되고, 빈곤 문제는 갈수록 해결 불가능한 것으로 된다"고 강조했다.(<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 86~88쪽)


 

김종철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려면 서울 시내를 질주하는 자동차부터 반대하라"는 권정생 선생의 발언을 최고의 생태평화 메시지로 꼽았는데, 이는 '자동차와 핵무기는 그 본질에서 동일하다'는 그의 에콜로지 신념에서 말미암은 것일 것이다. 


▲ <녹색평론선집>은 격월간 <녹색평론>에 발표된 글 중 선별해 따로 엮은 책이다. <녹색평론>이 창간된 1991년부터 1999년까지 10년 동안 <녹색평론>에 수록된 글 중에서도 엄선된 글을 볼 수 있다. ⓒ녹색평론사

미국에서의 1년간의 독서 끝에 김종철은 마르크스주의는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인류와 지구가 당면한 핵심 문제는 지구생태계의 지속가능성 여부임을 확신했다. "서구식 근대문명이란 처음부터 생명파괴적 원리를 내포한 채 출발한 문명이 아닌가" 하는 자신의 오랜 의문이 틀린 게 아님을 확인했고 "한국의 군사독재는 조만간 종식될 것이며,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이후에 전개될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민주화 이후 한국의 수십 년에 걸친 경제성장이 빚어낸 산업사회의 모순과 난제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가 최대의 과제로 생각됐다.


 

군사독재 종식 이후 동구사회주의가 붕괴한 데 대해 한국의 진보파 지식인들이 침로를 잃은 채 극심한 사상적 혼돈 상태를 드러낸 데 대해, 김종철은 "한국 지식사회의 이런 모습은 나로서는 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나는 적지 않은 한국의 지식인들이 그동안 소련식 사회주의 혹은 정통적 맑스주의에 큰 희망과 기대를 걸고 있었다는 사실이 얼른 믿어지지 않았다"면서 "내가 이해하는 한, 소비에트사회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생산력의 증대와 고도의 산업화를 사회 반전의 불가결한 전제로 상정하는 정통 맑스주의도 서구식 근대문명이 직면한 최대의 난제, 즉 생태적 지속불가능성이라는 문제에 대한 어떤 합리적 해법도 갖지 않은 사상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그런데도 그러한 사상을 지침으로 삼아 좋은 사회를 꿈꾸어 왔다면, 한국의 지식사회에는 무엇인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고, "나는 누군가가 한국의 지식사회의 사상적 혼미에 대해서 강한 문제 제기를 하고, 우리들의 공동의 미래를 위해서 왜 생태주의적 세계관과 비전이 필요한지, 그 이유를 설명하면서 활발한 토론의 장을 열어주기를 기다렸으나" 군사정권이 끝나고 몇 해가 지나도록 그러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아, 결국 자신이 <녹색평론>의 창간을 구상하게 됐다고 밝혔다.(<대지의 상상력> 9~10쪽)


 

사실 루돌프 바로의 전향과 그의 저서 <동유럽에서의 대안>은 무엇보다 현실사회주의의 실패를 겨냥하는 것이었다. 대학생 때까지 레닌, 스탈린의 신봉자였던 그는 1956년 스탈린의 공포정치를 비판한 흐루쇼프 비밀연설을 알게 된 뒤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1956년 폴란드, 헝가리 노동자 봉기 때는 대자보 등을 통해 봉기를 응원하고 동독 당국의 정보 통제에 항의했다. 결정적으로 1968년 초 체코에서 일어난 '프라하의 봄' 운동이 그해 8월 소련군 탱크에 의해 짓밟히는 것을 보면서 동구 사회주의에 완전히 절망했다. 훗날 그는 소련군이 프라하에 진입하던 1968년 8월 21일은 자기 인생의 '가장 어두운 날'이라고 회고했다.

 


특히 그는 1957년부터 10년간 언론인 활동과 함께 고무공장과 플라스틱 공장의 조직전문가로 일하면서 동독의 경제 상황이 위기라는 것, 그 근본원인은 현장노동자의 발언권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1967년 말 동독 공산당 서기장 월터 울브레히트에게 공장 내 '풀뿌리 민주주의'의 도입을 건의했으나 묵살됐다. 그리고 몇 주 후 체코에서 일어난 '프라하의 봄' 운동이 무력진압 된 것이다.(위키피디아 참조)


 

인간해방을 추구한다면서 오직 생산력 증대만을 위해 노동자들을 희생시키고, 노동자가 주인이라면서 실제로는 그들을 종속적, 예속적 지위로 격하시키며, 각 나라의 자발적 개혁 노력이 무력으로 진압되는 현실사회주의에서 바로는 희망을 발견할 수 없었고 1968년 이후 10년 가까이 침묵을 지키면서 <대안>을 준비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유럽에서는 이미 1960년대 말부터 동구 사회주의의 미래를 비관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광주항쟁의 결과 1980년대 이후 대학가와 운동권에서 반미주의와 함께 마르크스 학습 열풍이 일었고, 1984년부터는 이른바 사회구성체 논쟁이 뜨겁게, 그러나 별 소득 없이 전개됐다. 세계 지식사회의 흐름에 어두웠던 한국 지식계의 모습이었다.


 

정지창 전 영남대 독문과 교수는 1984년 미국에서 돌아온 김종철이 "군부독재를 물리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정치투쟁도 중요하지만 탐욕스러운 서구문명으로부터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할 근본적 대안을 모색하는 일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고 말했다"면서 "'사구체(사회구성체)'가 콩팥 같은 장기의 일부인 줄 알았다고 너스레를 떨던 그의 악동 같은 모습이 떠오른다"고 회고했다.('존경하는 벗 김종철 형을 보내며', <창작과 비평> 189호, 2020년 가을호, 327~328쪽)


그런데 김종철이 미국에서 배워온 것은 에콜로지 사상만이 아니었다. 그는 1997년 초 김우창 고려대 교수와의 대담에서 '버펄로에서 무엇을 얻었는가'라는 질문에 '인디언에 대한 관심을 얻었다'고 답한 것이다.('시적 인간과 자연의 정치',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422쪽)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62818032307953#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아침햇살133] 성 김은 수모를 당하면서까지 왜 왔을까

 이형구 | 기사입력 2021/06/29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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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 김 대북특별대표의 방한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6월 19일부터 23일까지 방한했다. 성 김 특별대표가 방한한 목적은 북미대화 재개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서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6월 17일에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국가의 존엄과 자주적인 발전 이익을 수호하고 평화적 환경과 국가의 안전을 믿음직하게 담보하자면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 준비되어 있어야 하며 특히 대결에는 더욱 빈틈없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미국과 대결할 가능성이 크니 대결을 잘 준비하라는 의미에 가깝다.

 

미국은 이 발언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했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 발언에 대해 “흥미로운 신호로 본다”라며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지를 기다리고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성 김을 한국에 보내 북한과의 대화를 추진했다. 성 김은 6월 21일 “언제 어디서든 조건 없이 만나자는 우리의 제안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기를 희망한다”라며 북한에 대화를 제안했다.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6월 22일 미국의 행태를 “꿈보다 해몽”이라고 풍자하며 미국의 대화 제의를 단칼에 거절했다. 리선권 외무상은 “우리는 아까운 시간을 잃는 무의미한 미국과의 그 어떤 접촉과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라고 입장을 재확인했다. 성 김 특별대표는 결국 북한을 만나지 못하고 쓸쓸히 발걸음을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북한을 만나보겠다고 한국까지 날아왔는데 문전박대를 당했다. 속된 말로 ‘개무시’를 당했다. 미국이 이야기를 하자는데 만나보지도 않고 거절하는 나라가 북한 말고 또 있을까 싶다. 세계를 호령하는 미국으로선 엄청난 수모와 망신을 겪은 셈이다. 성 김은 출국하기 전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대한민국을 떠났다. 

 

사실 미국의 수모는 예견된 것이었다.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3월 17일 미국의 시간벌이에 응해 줄 이유가 없다며 “앞으로도 계속 이러한 미국 접촉 시도를 무시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지난 5월에도 미국이 새로 결정한 대북정책을 설명하겠다며 대화를 제안했지만 북한은 이를 거절했다. 그 후 북한이 태도를 바꿀 만큼 상황이 달라진 건 없었다. 그런데도 미국은 한국까지 와서 북한에 만나달라고 요청했고 예상대로 거절당했다. 미국은 대체 왜 이런 짓을 한 걸까?

 

바이든 정부는 4월 30일 발표한 대북정책에서 미국과 동맹국, 실전 배치된 주둔 병력의 안전을 강화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이를 고려하면 성 김 특별대표의 방한은 미국과 일본,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안전을 위한 차원의 행동으로 보인다. 

 

미국은 북한을 적대하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그에 따라서 지난 3월 한미연합훈련을 진행했고 다가오는 8월에도 한미연합훈련을 강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대북제재도 지속하고 있고 북한에 대한 인권공세도 펴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에 반발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1월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강 대 강, 선 대 선’의 원칙으로 미국을 대하겠다고 했다. 또한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겠다고 밝혔다. 5월 31일에는 “우리의 과녁은 남조선군이 아니라 대양 너머에 있는 미국이다”라고 말해 미 본토를 겨냥하고 있음을 천명했다. 

 

다급한 미국은 어떻게든 북한과의 대결이 격화되는 걸 막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미국은 군사충돌을 막기 위해 설사 북미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이 없다고 하더라도 북한에 대화 의지를 계속 피력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문전박대 당할 걸 알면서도 성 김 특별대표를 한국으로 보낸 것으로 보인다. 대화하는 시늉이라도 내서 시간벌이를 하려는 속셈이다. 

 

그런데 성 김 특별대표가 빈손으로 귀국하게 된 파장은 생각보다 멀리 퍼졌다. 그래서 지구 반대편에 일어난 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 6월 23일, 러시아 전투기 수호이에서 바라본 영국 구축함 HMS 디펜더의 모습. 러시아 발표에 따르면 영국 구축함이 러시아 영해를 침범했다가 러시아의 경고사격을 받고 물러갔다고 한다.



 

2. 크림반도를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대결 

 

 

미국은 6월 28일부터 7월 10일까지 유럽의 흑해에서 다국적 연합해상훈련 ‘시 브리즈21(Sea Breeze 21)’을 실시한다. 시 브리즈는 러시아 압박용 군사훈련이다. 올해 시 브리즈 훈련은 특별하게 준비됐다. 2017년엔 18개 나라가, 작년엔 9개 나라가 참가했는데 올해엔 32개국이 참가하게 되었다. 미국이 예년에 비해 훈련 규모를 두세 배 키운 것이다.

 

미국이 시 브리즈 훈련의 규모를 키운 건 크림반도를 둘러싼 갈등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 영토였는데 2014년 러시아가 자기네 영토로 편입했다. 

 

우크라이나에선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한 이후로도 분쟁이 지속됐다. 러시아에 우호적인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 국민들은 2014년 주민투표를 통해 독립을 선포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이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들을 제압하려 했다. 그래서 일어난 군사충돌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에도 우크라이나는 군을 동부지역에 보내 진압하려 했지만 지난 4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으로 대규모 군대를 보내 우크라이나 정부군을 견제했다. 러시아는 4월 8일 우크라이나군이 행동에 나서면 “종말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6월 23일에는 흑해에서 영국과 러시아가 충돌하는 일이 일어났다. 영국 해군 구축함이 크림반도 러시아 해역을 3km 침범한 것이다. 러시아는 전략폭격기 수호이를 출격시켜 폭탄 4발을 위협투하했고 그러자 영국 구축함이 러시아 영해 밖으로 도망쳤다. 미국과 서방세계가 러시아에 패배한 것이다.

 

영국 국방부는 이런 사실을 부인했다. “영국 해군 함정은 국제법을 준수하며 우크라이나 영해를 무해통항* 중”이었고 “경고사격은 없었다”라고 밝혔다. 그러자 러시아는 러시아 영해로 넘어온 영국 구축함 영상을 공개했다. 영국 구축함에 타고 있던 BBC 기자도 “항로를 바꾸지 않으면 사격하겠다는 경고가 들렸고 이후 멀리서 사격하는 소리가 들렸다”라고 증언했다. 이를 보면 러시아의 발표가 사실인 것 같다.

*무해통항: 아무 문제의 소지 없이 항해하는 것

 

크림반도를 둘러싼 대결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한 이후 세계는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로 재편됐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에 큰 파열구를 내는 중대 사건이 일어났다. 그 중 하나가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한 것이다. 다음은 중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해 미국을 위협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2017년 북한이 국가핵무력을 완성한 것이다. 이 사건들이 파열구를 내면서 미국과 서방세계는 자본주의 체제,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패퇴하고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까지 느끼는 지경이 됐다. 

 

사실 미국이 러시아와 대결에서 밀려난 건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니다. 

 

2008년에는 러시아와 조지아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원래 조지아는 소련 소속 국가였는데 소련 붕괴 후 친미 국가로 변했다. 나라 이름도 소련 시절엔 러시아어식으로 그루지야였지만, 친미 국가로 돌아서면서 영어식으로 조지아로 바꾸었다. 

 

조지아에서도 우크라이나처럼 영토분쟁이 있다. 1990년대 초 남오세티야 공화국-알라니야국은 조지아로부터의 분리독립을 선언했다. 그때로부터 지금껏 조지아와 남오세티야는 갈등을 빚고 있다.

 

조지아는 2008년 미국의 지원 약속을 믿고 남오세티야를 공격했다. 그런데 러시아가 전쟁에 개입해 조지아군을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이때 지원을 약속했던 미국과 서방국가들은 조지아가 패배하는 모습을 그저 지켜볼 뿐 개입하지 못했다.

 

미국과 러시아는 시리아에서도 대결한 적 있다. 미국은 시리아 반정부군을 지원했고 러시아는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해 대리전을 폈다. 미국과 러시아는 이슬람국가(ISIS)를 격퇴하겠다며 직접 시리아 땅에 군대를 들이밀기도 했다. 이 대결은 미국이 2019년 시리아에서의 철군을 결정하며 사실상 미국의 패배로 마무리됐다. 

 

터키가 미국의 미사일을 사느냐 아니면 러시아의 무기를 사느냐를 두고도 미국과 러시아의 대결이 펼쳐졌다. 미국은 터기를 경제제재까지 하면서 미국 무기를 살 것을 강요했지만 터키는 끝내 러시아의 무기를 구매했다. 터키는 친미 국가에 속했지만 이제는 반미 국가에 가까워졌다. 

 

독일은 러시아와 천연가스관을 연결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미국은 대러제재 위반이라며 중단시키려 했지만 독일은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고 러시아와의 가스관 연결을 강행했다.

  

이렇게 미국은 러시아와의 대결에서 밀렸던 적이 여러 번 있다. 하지만 크림반도 사건은 이들 사건과는 다른 결정적인 의의를 갖는다.

 

우크라이나도 과거 소련에 소속돼 있는 나라였다. 우크라이나엔 소련이 배치한 핵무기가 있었기 때문에, 소련이 해체되자 우크라이나는 별안간 핵보유국이 됐다. 우크라이나는 핵무기를 러시아에 넘기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고 그 대신 미국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해주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자기네 영토로 병합시키는데도 미국과 서방사회는 우크라이나를 러시아로부터 지켜주지 못했다. 영토 병합은 국제사회에서 일어나는 대결 중에 가장 강력한 승리다. 권투 시합으로 말하면 러시아가 미국을 다운시킨 것과 다름없다. 1991년 소련 해체를 겪으며 패배했던 러시아가 2014년 미국에 역전타를 날렸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이대로 방치하면 제국으로서의 위신을 세울 수 없다. 군사력으로 세계를 재패했다는 미국이 러시아가 영토를 빼앗는 데도 아무런 조치도 하지 못하고 손 놓고 있는다면 누가 미국을 따르겠는가.

 

미국은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다. 경제적으로는 중국에게서 맹추격을 당하고 있다. 일본의 일본경제연구센터와 미국의 브루킹스연구소, 영국의 경제경영연구소 등은 2028년이면 중국의 GDP가 미국의 GDP를 추월할 거라고 내다보았다. 대체로 길어도 10년 정도면 중국이 미국 경제 규모를 따라잡는다고 예상한다. 미국이 세계패권을 쥘 수 있었던 힘 중 하나인 경제력에서 세계 2등 국가로 전락할 거라는 건 기정사실이 됐다. 

 

미국은 군사적으로도 북한과의 대결에서 하염없이 당하고 있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에 ‘화염과 분노’ 운운하면서 대결정책을 폈다. 그러다 북한이 2017년 11월 국가핵무력을 완성하자 미국은 태도를 180도 바꾸었다. 북한을 군사적으로 압박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북한으로부터 군사적 압박을 당했다. 매티스 당시 미 국방장관은 “(미 본토가 공격당하는 일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전전긍긍해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랴부랴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했다. 그리고 틈만 나면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관계가 좋다며 자랑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북미정상회담을 열어 전쟁을 막았다며 “수백만 명의 목숨을 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세계패권을 쥘 수 있었던 또 다른 힘인 군사력에서 북한에 밀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미국은 내부적으로도 무너지고 있다. 올해 1월 6일에는 바이든 정부 출범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미 의사당을 점거당하는 등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이다. 또한 미국은 경제적으로도 심각한 상황이라 ‘절망의 나라’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201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절망사’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절망사란 빈부격차가 커져 좌절을 느낀 빈곤층이 자살, 알코올 중독, 마약으로 죽게 되는 걸 말한다. 미국에서의 절망사는 1995년 6만 5천 명이던 게 2018년 15만 8천 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절망사 때문에 2014년부터 2017년까지의 미국인의 평균수명은 늘어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단축되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오기에 이르렀다. 6월 24일에는 미국 플로리다주의 12층 아파트가 순식간에 붕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이 마치 오늘날 미국의 처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미국은 패권이 몰락하는 상황을 뒤집어 보려 발버둥 치고 있다. 트럼프는 대선에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바이든도 대선 슬로건으로 “재건”을 내세웠다. 미국이 크림반도를 되찾기 위해 분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소련을 붕괴시킴으로써 세계를 제패했듯 러시아에 맞서 크림반도를 되찾음으로써 재역전을 이루려는 것이다. 그렇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상황은 미국의 생각대로 순탄하게 흘러가지만은 않고 있다. 영국을 내세워 구축함을 들이밀어 보았지만 보기 좋게 패퇴하고 말았다. 사실 미국 자신도 2014년 크림반도 사건 초기에 흑해에 구축함 도널드 쿡함을 진입시킨 적 있다. 그러다 러시아가 출격시킨 수호이가 고도 150m까지 내려와 위협비행을 하는 바람에 후퇴했다.

 

그래서 미국은 상황을 만회해보고자 이를 갈고 시 브리즈 훈련을 규모를 크게 늘리며 대대적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 미국이 발표한 시 브리즈21 참가국. 한국이 포함되어 있지만, 한국 정부는 이 훈련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3. 시 브리즈 훈련에 한국이 불참한 사연 

 

 

시 브리즈 훈련 준비 과정에서 또 하나 특이한 일이 있었다.

 

미국은 시 브리즈 훈련 공식 발표 자료에 한국을 훈련 참가국으로 명시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미국이 초청한 바는 있지만 참가하지 않고 참관할 계획도 없다며 부인했다. 한국과 미국의 관계를 고려했을 때 한국군이 공개적으로 참가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 건 미국이 참가하지 않아도 좋다고 허락해주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미국은 왜 한국군의 불참을 허용했을까? 그건 바로 북미대결이 우려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이 시 브리즈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군함을 파견하면 그만큼 대북 군사 태세에 빈틈이 생기기 때문이다. 

 

앞서서 미국 패권에 결정적인 파열구를 낸 3가지 사건으로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과 중국의 경제적 부상, 북한의 국가핵무력 완성을 꼽았다.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는 상당히 강경대응 하고 있다. 미국이 크림반도를 수복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건 앞서서 살펴봤다.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도 대만을 지원하며 갈등을 고조시키고 있다. 미국은 1979년 중국과 수교를 맺으며 대만과는 단교했다. 그런데 2019년 미 국방부가 대만을 ‘국가’로 표기하고 2020년엔 대만에 무기를 수출했으며 올해엔 특사단을 파견해 대만과의 교류를 가졌다. 이에 중국은 크게 반발하고 있어 중국과 미국-대만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중국 싱크탱크 ‘중국해협아카데미’는 중국과 대만의 전쟁위험성을 지수로 나타냈는데 그 수치는 7.21로 평가됐다. 과거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이 내전을 치렀던 1950년대의 위험 지수가 6.7 정도였다고 하니, 지금은 무척 위험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레이 연구원은 “미국과 대만의 긴밀한 관계가 중국과의 무력충돌 위험을 높이는 가장 큰 요소”라며 “현 상황이 지속되면 중국이 무력으로 대만을 통일하려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을 상대로 강경대응을 하고 있는데 유독 북한에게만은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아무리 모욕을 당하고 멸시를 당해도 초지일관 대화를 제안한다. 그 이유는 미국이 본토를 공격당할까 봐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이나 러시아를 상대로는 군사충돌이 일어나더라도 그 지역에 국한한 충돌로 조절통제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북한과 군사충돌이 일어날 경우 한반도에 국한된 충돌로 그치는 게 아니라 미 본토를 공격당할 수 있다. 그래서 북한과는 직접적인 대결을 피하려고 한다. 

 

북한은 미국의 대화 제의를 일관되게 거부하고 있다. 이는 물론 미국의 시간벌이 놀음에 놀아나지 않겠다는 뜻이며 미국이 대북적대정책을 포기하지 않으면 미국에 상응하는 강경대응을 하겠다는 뜻이다. 

 

여기에 더해 북한이 미국의 대화 제의에 응하지 않은 데에는 북중러 연대의 의미도 있다. 북한이 미국과 대화를 시작하면 미국은 본토가 공격당할 위험에서 벗어난다. 그러면 미국은 북미대결에 투입했던 역량을 중국이나 러시아와 대결하는 데로 돌릴 수 있게 된다. 

 

만약 북한이 성 김의 대화 제의를 받아들였다면, 미국은 러시아를 상대할 역량을 더 늘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영국 구축함이 러시아 영해에 들어갔다가 충돌이 일어났을 때 후퇴하지 않고 더 많은 역량을 투입하며 더 큰 공세를 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북한이 미국과 대화를 하면 미국과 유럽에 크림반도에서 진격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미국의 대화를 거절함으로써 미국과의 대결국면을 지속시켰다. 그 결과 미국은 한반도에서 한눈을 팔 수 없게 됐다. 그래서 미국은 한국 해군을 흑해로 불러오는 걸 포기하고 한국이 훈련에 불참하는 걸 용인해주게 된 것이다. 

 

 

4. 결론 

 

 

세상이 넓다 하지만, 때론 한반도에서 일어난 일이 지구 반대편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도 영향을 주기도 한다. 성 김이 북한에 수모를 당하고 돌아간 것과 한국군이 시 브리즈 훈련에 참가하지 않아도 되도록 허락받은 것, 그리고 영국의 구축함이 흑해로 들어갔다가 후퇴하게 된 것도 모두 연관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와 크림반도, 이 두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보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세계 진영과 북중러 사회주의 반제진영의 세계적 대결이 대단히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세계적 대결에서 미국과 서방세계 진영은 자기 스스로 심각한 위기 의식을 느낄 정도로 수세에 빠져 있다. 반면 북중러는 미국과 서방세계를 향해 상당히 강한 공세를 펴고 있다. 과거에는 미국이 북한을 제재하려 하면 중국과 러시아가 동참하는 식으로 서로 분열이 되는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매우 공고한 전략적 유대·협력을 하고 있다. 6월 28일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화상정상회담을 가졌다. 시진핑 주석은 “아무리 험난한 어려움이 있어도 계속 협력해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6월 22일 중국과 군사동맹을 맺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지도자가 중국과 군사동맹을 언급한 건 1950년 이후 처음이다. 북중관계는 2018년에 수차례 정상회담을 열며 최상의 경지로 올라섰다. 북한과 러시아는 2019년 정상회담을 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서로 칼을 선물로 주고 받았는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절대적인 힘을 상징한다”라며 칼 선물의 의미를 설명했다. 북한과 러시아가 주고 받은 바로 그 칼이 2년이 지난 지금, 미국의 패권을 베어버리려는 듯하다. 

 

미국과 서방세계의 위기와 북중러의 공고한 연대는 오늘날 세계적 대결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타임' 문 대통령 인터뷰에 얼굴이 화끈거린다고?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과장과 왜곡, 그리고 외신물신주의

 21.06.30 07:24최종 업데이트 21.06.30 07:24
 

▲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주간지 타임 인터넷판 인터뷰 표지. ⓒ 타임 홈페이지

 
미국의 시사 격주간지 <타임>(Time)이 최근 호(인터넷판 기준 6월 23일)에 문재인 대통령 인터뷰 기사를 보도했다. 퇴임을 1년 조금 못 남긴 문재인의 대북정책을 되짚으며 성과와 한계를 함께 조명했다. 청와대는 대통령 관련 보도와 인터뷰를 누리집(홈페이지)에 게재하는 관행대로 이 기사도 공개했다.

이후 이 기사에 대한 국내 반응은 어떤 의미로든 폭발적이었으며 관련 논쟁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인터뷰 내용 어땠기에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 자신의 조국을 치유하기 위한 마지막 시도에 나선다"(South Korean President Moon Jae-in Makes One Last Attempt to Heal His Homeland)라는 제목의 최근 기사에서 <타임>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9월 19일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북한 주민을 상대로 연설을 한 사실을 언급하며 그 때가 굴곡 많았던 남북 화해 프로세스의 정점이었다고 말했다.


<타임>은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북한의 잇단 미사일 발사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발언 등 불리한 상황에서 시작됐다면서 그럼에도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북한을 동계 올림픽에 초대하는 데 성공했고, 이후 18개월 동안 엄청난 속도로 외교의 시간이 전개됐다는 것이다.

이 시사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을 겪은 문재인 대통령이 이제는 바이든 대통령의 '느리지만 실질적인' 진전을 바라고 있다면서 문 대통령은 한반도라는 난제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 알고 있다고 전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이전부터, 사실 그의 탄생과 삶 자체가 그의 정치적 발자취를 이끌어 왔다면서 한국이 겪은 격동의 상처가 그를 학생운동으로, 인권변호사로, 그리고 결국 청와대로 인도했다고 평가한다.

<타임>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전임자의 외교정책 대부분을 뒤집었지만 대북 관련 트럼프 행정부의 모호한 합의는 향후 협상을 위한 토대로 삼기 위해 받아들였다면서 이것이 문 대통령에게는 희망적인 일이 된다고 평가했다.

그 외 <타임>이 꼽은 두 가지 문재인 대통령에게 희망적인 상황 가운데 하나는 팬데믹. 코로나19 때문에 북한에 대한 제재가 더 이상 미국의 중요한 압박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북한은 바이러스 전파를 막기 위해 식량 원조까지 거부하며 외부세계와 격리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봉쇄와 제재로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타임>은 국내 한 전문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제재만으로 북한을 무릎 꿇게 하긴 힘들다"는 지적을 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현재 북한의 교역은 전년 대비 80% 급감했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브로맨스' 이후 미국 공화당의 반대가 심각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공화당의 온건파는 물론이고 친 트럼프 진영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자신들의 대북 정책을 정반대로 뒤집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민주당으로부터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지지의 목소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상황이다. 빈센트 브루크 전 주한 미군 사령관은 이 문제와 관련해 "한미 양국 모두 진보 정부가 집권한 상황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고 <타임>에 말했다. 한국, 북한, 미국 모두 "기회의 창"을 엿보고 있는 상황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이 언론은 말한다. 북한이 시간을 끌며 결국 파키스탄처럼 국제사회에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를 원할 것이라는 이유다. 바이든 대통령은 따라서 북한과의 조건 없는 대화를 서두르지 않을 것이고, 이런 바이든 대북 정책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지연 전술'일 것이라고 이 글은 전망했다.

이처럼 매우 적극적이지도, 그렇다고 매우 적대적이지도 않을 바이든식 대북 외교의 '복합성'은 워싱턴에서 이미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이 보도는 말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당장 응답할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협상 노력을 바이든 대통령이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대신 한국 정부를 지지하는 대가로 미국이 얻는 이익이 있다는 것이 바이든 정부의 계산이다. 그것은 바로 대 중국 전략적 동반 파트너 확보다. 중국에 맞서야 하는 미국은 한국 정부의 한반도 화해와 평화 정책에 협력함으로써 대중국 지원군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손해 볼 일이 없는 거래다. 실제 미국은 지난 한미 정상회담 당시 한국의 정보통신 혁신 기술과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인공지능 등 다양한 분야의 지지와 투자를 약속 받았다고 이 언론은 전한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청와대에서 타임(TIME)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타임>은 이러한 문재인 대통령의 집요한 대북 화해 정책은 구체적 성과가 없는 답보 상황에서 국내 문제에 집중하고 싶은 유권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 사이 국내에서는 주택 공급 계획의 난항, 성희롱에 이은 자살 사건 등으로 집권당의 지지가 하락했으며 그것은 일부분 문재인 대통령의 문제일 수도 있다고 <타임>은 지적한다.

결국 남북문제에 참신한 아이디어는 없으며 30년 동안 관여-협상-도발-소원-화해라는 순환을 그리고 있는 것이 남북문제고, 또 다음 시도가 있더라도 권태 섞인 한숨이 함께 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기자의 주관이 드러난다고 볼 수 있는 인터뷰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만약 문재인 대통령이 뭔가 해결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암울한 깨달음이 그의 진정한 유산이 될지 모른다."

과장된 해석과 왜곡... 외신물신주의

글 내용 가운데는 한반도 문제, 남북문제, 그리고 국내 일부 이슈와 관련해 심각한 오류와 몰이해도 발견되지만 본래의 취지에 집중하기 위해 그 문제는 생략하기로 하자. 문제는 이 기사에 대한 국내의 반응이었다. 외신 보도에 대해 유독 민감한 것이 한국 여론이지만 과장된 해석과 왜곡에 근거한 편중은 금물이다. 그럼에도 외신을 둘러싼 광적으로 민감한 반응은 지속돼 왔다. 이번 기사도 예외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국민의 힘 소속 윤희숙 의원의 반응. 그는 페이스북에 '우리 대통령이 망상에 빠졌다는데도 청와대는 자랑만, 정상적인 나라 어렵나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윤 의원은 "청와대가 자랑하길래 내용을 들여다보니 얼굴이 화끈"거린다면서 홍보전략으로 이 인터뷰를 추진한 청와대가 현실감 없다고 주장했다.

윤 의원을 불편하게 만든 것은 '대통령이 망상에 빠졌다는 보도를 청와대가 자랑을 했다'는 것. 그리고 윤 의원에 따르면 그 망상이라는 것이 알고 보면 '대통령에 대해 숨기고 싶어 했던 점을 (해당 보도가) 정확히 집어'냈다는 것이다. 이어 '문 정부는 2017년에도 아무 근거 없이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며 국제사회에 보증을 섰'다면서 우리나라가 우습게 됐다고 주장한다.

하나씩 따져보자. '우리 대통령이 망상에 빠졌다'는 이야기는 기자의 말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본문에는 '다수의 북한 관측통의 시각으로' 그렇다고 쓰여 있다. 이 말을 윤 의원은 마치 해당 언론이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 망상이라고 보도한 듯 옮겨놓고 있다.

국제사회에 북한 보증을 서 우리나라가 우습게 됐다는 말도 근거가 이상하다. 윤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의 내면에 대해 보증을" 섰다면서 그 근거로 "말살·고문·강간 등 반인륜 범죄를 주도한 김을 문대통령은 '정직하다'고 평가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솔직하다고 표현한 것은 그의 성격을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의 성격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문재인 대통령은 "아주 솔직하고, 아주 의욕적이며 강한 결단력을 보여줬다면서 국제적 감각도 있다"도 대답했다. "하지만 혹시 잊을까 해서 밝혀 두자면 김 위원장은 자신의 고모부와 이복형을 냉혹하게 살해했으며 …… 몰살, 고문, 강간, 기근 장기화 야기 등 반인륜 범죄를 주도한 인물"이라고 말한 건 <타임> 기자다. 윤 의원은 기자의 이상한 논리를 따라 대통령이 반인권적 보증을 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한국에서 국내 정치, 특히 대통령 관련 외신의 보도는 유독 민감하다. 유사한 국제적 영향력을 가진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도 한국의 경우는 좀 유별난 듯하다. 여기에는 한국인들의 정치적 감수성이 큰 이유도 있지만 국내 언론의 부정적 책임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외신 보도를 접하기 어려웠던 시절 국내 주요 언론들은 정보 접근에 유리한 특권을 이용해 심심치 않게 국내 독자들에게 외신 보도를 왜곡 전달해 왔다. 물론 지금은 인터넷을 비롯해 정보 접속을 용이하게 해주는 수단들이 늘어가면서 과거와 같은 노골적 왜곡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미 국내 언론 보도의 신뢰성을 의심하는 많은 독자들은 외신보도에 눈을 돌렸고, 한국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도 외신의 보도를 찾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방송 매체에서도 외신보도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졌다.

물론 외국에도 외신보도를 전문으로 소개하는 언론들이 있다. 외부의 다른 시각을 통해 국내 이슈를 객관적으로 읽기 위해서다. 프랑스의 <쿠리에 앵테르나시오날>(Courrier international)이 대표적 사례로, 언론의 사회적 기여와 상업적 성공이라는 두 토끼를 다 잡은 성공 케이스다. 이 언론이 성공했던 이유는 시각의 다양성, 관점의 풍요로움을 극대화하려는 본래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청와대에서 타임(TIME)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하지만 국내 언론 환경에서 보는 외신에 대한 태도는 그것과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듯하다. 다양성과 풍요로움, 객관적 시각을 위해서라기보다 획일화와 확증 편향, 사실 왜곡을 위한 수단으로 외신이 도용되고 있다. 언론과 독자들은 자신의 생각과 주관적 판단에 근거가 될 만한 외신보도들을 찾아 나서고 급기야 과정과 왜곡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서 결국 외신에 대한 과잉 신뢰에까지 이르게 된다. 국내 상황에 대한 외신의 보도는 그 어떤 국내 언론보다 진실을 담보하는 듯 여긴다. 하지만 상당수의 외신들은 한국 관련 보도를 통신사를 포함한 한국 언론을 근거로 생산한다. 특파원의 직접 취재가 아닌 이상 말이다. 결국 국내 언론이 보도한 것을 외신이 받아 적으면 국내 언론은 다시 그것으로 진실성을 검증 받는 해괴한 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번 <타임>의 기사에서도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보도한 부분들이 있다. 한 가지 예로 '한국이 초기에는 코로나19 방역에 성공을 했지만 현재 백신 접종에서 저조한 실적을 보이고 있다'면서 백신 접종률이 낮은 것을 국내 정치 실패 사례로 들고 있다.

하지만 백신 접종률은 확진자 발생 규모와 결정적 비례관계에 있으며 백신 접종률이 높은 나라들은 대부분 확진자 규모가 커 국가 보건 체계가 흔들리는 나라들이었다. 영국, 이스라엘 등이 대표적이었으며 백신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이들 국가의 확진자 규모는 다시 상승하고 있다. 철저한 방역 체계가 따라주지 않은 결과다.

반면 체계적 방역 수준을 유지하는 한국은 급격한 백신 도입 없이도 최고의 항바이러스 방어 능력을 보여줬으며 그것이 결국 인명 보호 차원은 물론 국내 총생산과 수출의 다른 선진국 대비 비교 우위로 이어졌다.

국내 언론과 정치권, 각종 단체가 외신을 인용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그 보도 내용을 맹신하고 모든 사실관계의 근거로 삼는 이상 지금까지 한국 언론계에 팽배한 '외신 물신주의'는 쉽게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특정 외신 보도 또는 '외신' 자체를 우상화하고 성역화 하는 행위, 특히 과장, 왜곡까지 해가며 성역화 하는 행위는 결코 언론과 민주주의의 건강한 공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