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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22일 일요일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개벽예감 420]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2020/11/23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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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전쟁관념 바꿔놓은 포격전

2. 서서남방 4.8km 해상은 어느 쪽이 관할하는가?

3. 전파교란으로 시작된 선제타격

4. 경고사격 120발, 응징사격 240발

5. 155mm 자주포와 85mm 고사포가 충돌한 격전

6. 국지충돌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위험

 

 

1. 전쟁관념 바꿔놓은 포격전

 

오늘 2020년 11월 23일은 연평도 포격전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연평도 포격전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사상 처음으로 조선인민군이 한국군 전투부대에 선제화력타격을 가한 사건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일어났던 연평도 포격전을 다시 고찰하는 까닭은, 그 포격전 경험에서 한국군의 전투준비태세와 조선인민군의 전투준비태세가 각각 어떠한지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연평도 포격전에서 나타난 작전적 우월성과 결함을 분석한 조선인민군은 지난 10년 동안 작전적 우월성을 발전시키고, 작전적 결함을 극복하면서 전투준비태세를 강화해왔다. 그리하여 2020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야간열병식에서 과시한 것처럼, 오늘 조선인민군의 전투준비태세는 사상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그에 비해, 연평도 포격전에서 교훈을 찾지 못한 한국군은 지난 10년 동안 전투준비태세를 그닥 강화하지 못했다. 예를 들면, 연평도 포격전에서 한국군이 사용했던 K-9 자주포가 지난 10년 동안 각종 크고 적은 사고를 일으켰고, 결국 인명손실참사까지 불러왔다. 2015년 8월 13일 한국국방과학연구소가 안흥시험장에서 K-9 자주포 시험발사를 진행하는 중에 K-9 자주포 폐쇄기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불기둥이 10m 상공으로 치솟는 화재가 발생했다. 그러나 한국국방과학연구소는 사고원인을 부실하게 조사하고, 사고 자체를 은폐하고 넘어갔다. 부실조사는 2년 뒤 참사를 불러왔다. 2017년 8월 18일 강원도 철원군 사격장에서 실탄사격훈련을 하던 K-9 자주포 포탑에서 폭발이 일어나 자주포에 탑승한 포병 3명이 사망하고, 4명이 중상을 입었다. 폭발사고로 K-9 자주포 실탄사격훈련이 전면 중지되었는데, 폭발사고 이후 다섯 달이 지난 2018년 1월 18일 실탄사격훈련을 재개하기에 앞서 시험사격을 해보았으나 약실에서 화약이 타고 남은 찌꺼기가 발견되는 바람에 시험사격을 중지했다.

 

연평도 포격전이 가르쳐주는 또 다른 교훈은, 평소에 전투준비태세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군대는 실전에서 패배하는 반면, 전투준비태세를 잘 갖춘 군대는 실전에서 승리한다는 것이다. 연평도 포격전에서 나타난 남측과 북측의 대비적인 결과가 그런 사실을 입증해주었다. 연평도 포격전에서 남측은 매우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북측은 경미한 피해를 입었다. 

 

연평도 포격전에서 남측이 입은 인명피해는 군인 사망자 2명, 군인 중경상자 16명, 민간인 사망자 2명, 민간인 중경상자 44명이었다. 또한 남측 민간부문이 입은 물적 피해를 보면, 주택 159동과 시설 31동이 파손되었고, 주민거주지역 하수도시설 1,150m가 파손되었고, 연평도 전체 임야의 4.5%에 이르는 25ha가 불탔다. 연평부대도 엄청난 물적 피해를 입었지만, 국방부는 군사장비 및 군사시설 피해상황을 공개하지 않았다. 

 

북측도 피해상황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상업위성사진을 분석하면 인명피해는 없었고, 경미한 물적 피해만 입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관해서는 아래에서 자세히 논한다. 

 

조선외무성은 연평도 포격전 다음 날인 2010년 11월 24일 대변인 담화를 발표했다. 담화에 따르면, 연평도 포격전 며칠 전부터 북측은 남측에 “우리측 령해에 한 발의 포탄이라도 떨어지는 경우 즉시 대응타격을 가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경고하였”으며, 연평도 포격전 당일 오전 8시에는 “예민한 지점인 연평도 일대에서 포사격계획을 중지할 것을 다시 한번 강력히 촉구하는 전화통지문을 보내였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군 수뇌부는 상황을 오판했다. 2010년 12월 29일 <프레시안>에 실린 대담기사에 따르면, 한민구 당시 한국군 합참의장은 연평도 포격전 당일 오전 9시에 연평부대 부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있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라”고 명령하고, 실탄사격훈련을 예정대로 강행했다고 한다. 무력충돌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한국군 합참의장은 연평부대에 대비명령을 내린 것인데, 그의 대비명령은 연평부대가 보유한 K-9 자주포 6문 가운데서 4문만 실탄사격훈련에 동원하고, 나머지 2문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사격준비태세를 유지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사격준비태세를 취하고 있던 K-9 자주포 2문은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의 선제타격을 받고 무용지물로 되었다. <사진 1> 

 

▲ <사진 1> 2010년 11월 23일에 일어난 연평도 포격전은 한국군 연평부대가 실탄사격훈련을 강행하고 그에 대응한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가 선제타격을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위의 사진은 집중포격을 당해 불타는 연평도의 모습이다.  



2. 서서남방 4.8km 해상은 어느 쪽이 관할하는가?

 

오전 10시 연평부대는 합참의장의 명령에 따라 실탄사격훈련을 시작했다. K-9 155mm 자주포가 등장했다. 이 포는 사거리가 약 45km에 이르는 곡사포다. 2010년 11월 26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K-9 자주포의 탄착구역은 연평도 서서남방 4.8km 해상이었다고 한다. 서서남방은 정서쪽에서 약간 남쪽으로 휘어진 방위를 뜻하므로, 연평도 서쪽 4.8km 해상에 탄착구역이 정해진 셈이다. 탄착구역으로 정해진 해상은 남측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이남해역으로 주장하는 곳이지만, 북측은 1953년 정전 직후 미국군사령관이 북측과 합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그어놓은 북방한계선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정전협정 제2조 13항에 따르면, 북측 관할구역은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경계선 북쪽과 서쪽에서 정전 당시 미국군이 점령하고 있었던 백령도와 연평도를 비롯한 5개 섬을 제외한 나머지 섬들과 주변 해역이다. 그러므로 이 조항에 따르면, 연평도 주변해역은 전부 북측 관할구역에 속한다. 북측은 정전협정에 따라 자기의 관할구역을 표시하는 해상군사분계선을 그어놓았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한국군이 탄착구역으로 정한 연평도 서쪽 4.8km 해상은 북측 해상군사분계선 안쪽에 위치하는 것이며, 연평부대는 북측이 그어놓은 해상군사분계선 안쪽으로 K-9 자주포를 사격했던 것이다.  

 

정전협정이 뭔지 모르고, 북측 해상군사분계선도 뭔지 모르는 연평부대 부대장은 상부의 명령에 따라 사격명령을 내렸다. 2010년 12월 29일 <프레시안>에 실린 대담기사에 따르면, 연평부대 포병들이 쏜 155mm 포탄들이 탄착구역에 떨어져 바닷물이 튀는 것이 (북측에서도) 보일 정도로 근접사격을 했다고 한다. 북은 격노했다.  

 

포격전이 끝난 직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우리 군대는 빈말을 하지 않는다’는 제목의 긴급보도문을 발표했다. 보도문에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우리측 령해에 쏘아댄 괴뢰들의 포탄은 무려 수십발에 달한다”고 지적하면서 “조선서해에는 오직 우리가 설정한 해상군사분계선만이 존재할 것”이라고 언명했다. 

 

만일 한국군 수뇌부가 북측에서 관측할 수 없는 연평도 남쪽 해상에 탄착구역을 정하고, 그곳으로 K-9 자주포를 쏘라고 명령했더라면, 연평도 포격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을 오판한 한국군 수뇌부는 북측에서 육안으로 뻔히 보이는 연평도 서쪽 해상으로 사격해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안이하게 판단했다. 한국군 수뇌부의 오판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2012년 12월 14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 정보참모부는 연평도 포격전이 시작되기 3시간 전인 당일 오전 11시 30분 “접적해역 일대에 화력도발가능성”이 있다고 하면서 “북의 탄약차량 움직임을 포착했고, 레이더와 필수통신망이 활동하고 있으며 지휘관이 현장에서 지휘하고 있다”는 정황을 보고했지만, 한국군 수뇌부는 그것을 통상적인 활동으로 여기고 무시해버렸다고 한다. 한국군 수뇌부는 선제타격징후에 관한 긴급보고를 받고서도, 그 징후를 통상적인 군사활동으로 오판했던 것이다. 이처럼 한국군 수뇌부가 저지른 두 가지 상황오판은 한국군의 전투준비태세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준 사건이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군 수뇌부가 연평도 포격전 이후 10년이 지난 오늘에도 상황오판을 계속하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 대규모 한미연합군사훈련을 하지 못해 안달하던 한국군 수뇌부는 2021년 1월 20일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을 좋은 기회로 여기고 엄청나게 큰 규모의 한미연합군사훈련을 2021년 3월 초에 강행할 것이 분명하다. 남북대화와 조미대화가 모두 끊어지고, 정치군사대결이 고조되고 있는 시기에 상황을 오판한 한국군 수뇌부가 북을 극도로 자극하는 대규모 북침전쟁연습을 강행하면 연평도 포격전보다 더 큰 무력충돌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런 무력충돌이 전면전으로 확대되면, 조선인민군은 주저 없이 조국통일대전에 돌입할 것으로 예견된다.  

 

연평도 포격전이 일어나기 이전 남측에는 한국군이 보유한 미국산 무기가 질적으로 매우 우수하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면 한국군이 이길 것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었다. 하지만 연평도 포격전은 그런 전쟁관념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깨우쳐주었다. <사진 2> 

 

▲ <사진 2> 연평도 포격전 당일 연평부대 포병들은 K-9 155mm 자주포 4문을 동원한실탄사격훈련을 하고 있었다. 북측에서 자기들의 관할수역으로 낙탄할 것을 우려한나머지 여러 차례 실탄사격훈련을 중지할 것을 요구했고, 포격전 당일 오전에도 경고했지만, 한국군 수뇌부는 북의 경고를 무시하고 실탄사격훈련을 강행했다. 위의사진은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가 사격한 122mm 방사포탄에 맞은 연평부대 군사시설이 불타고 있는 장면이다. K-9 자주포로 실탄사격훈련을 하던 포병들은 선제타격을 받고 당황망조하여 방호시설 안으로 긴급대피했다. 그러는 사이에 포탄을 계속날아왔고, 불은 더 크게 번졌다. 이 사진은 연평부대 소속 정훈장교가 실탄사격훈련모습을 기록에 남기려고 사진촬영을 하는 중에 갑자기 포탄이 날아온 순간을 촬영한것이다.  



3. 전파교란으로 시작된 선제타격 

 

2010년 11월 23일 연평부대 실탄사격훈련은 당일 오후 2시 45분에 끝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연평부대 포사격훈련이 끝나는 시각을 21분 앞둔 오후 2시 24분 전혀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연평도 전역에 설치된 방범용 폐쇄회로화면(CCTV)이 갑자기 꺼진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2010년 11월 24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연평도 전역에 있는 무선통신기지국들이 갑자기 마비되었다고 한다. 방범용 폐쇄회로화면이 꺼지고, 무선통신기지국이 마비된 것은, 조선인민군이 연평도에 강력한 교란전파를 발사한 것으로 하여 일어난 전파교란전 현상이었다. 

 

조선인민군이 불시에 발사한 강력한 교란전파는 연평부대의 ‘시신경’도 마비시켰다. 2010년 11월 26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연평부대는 포격전 당일 오전 9시부터 대포병레이더 AN/TPQ-37을 가동했는데, 정작 포격전이 일어났을 때 북에서 날아오는 포탄을 전혀 탐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2010년 12월 3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연평도 포격전 직전 황해남도 해안에 배치된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가 교란전파를 발사하여 연평부대의 대포병레이더가 ‘먹통’으로 되었다고 한다. 물론 대포병레이더만이 아니라 연평부대의 무선통신장비들도 ‘먹통’으로 되었다. 전시에 전투부대의 눈(레이더)과 귀(무선통신)가 마비되면, 전쟁은 그것으로 끝난다. 

 

이런 놀라운 경험은, 조선인민군이 조국통일대전을 개시하는 경우 전파교란전부터 시작할 것임을 예고한다. 연평도 포격전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는 크고 무거운 전자교란장비를 차량에 탑재하고 황해남도 해안으로 이동하여 교란전파를 발사했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20년 10월 10일 평양에서 진행된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야간열병식에 참가한 전파교란부대의 모습을 보면, 앞으로는 전혀 다른 양상의 전파교란작전이 전개될 것임을 직감할 수 있다. 그날 야간열병식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 전문병들은 자동보총을 들고, 위장무늬전투복과 방탄조끼를 입었으며, 방탄모를 썼는데, 전문병 전원이 검은색 접시처럼 생긴 안테나가 부착된 특수야전배낭을 메고 있었다. 특수야전배낭에 휴대형 전파교란장비가 들어있는 것이 분명하다. 전시에 그들은 달빛 없는 무월광 심야시간에 한미연합군의 반항공레이더에 포착되지 않는 저고도습격기를 타고 남측 후방 곳곳에 침투하여 교전대상에 바짝 접근할 것이고, 침투지점에서 특수야전배낭에 들어있는 전파교란장비를 켜는 순간 한미연합군의 레이더, 무선통신장비, 위성항법체계는 마비될 것이다. <신동아> 2020년 1월호 분석기사에 실린, 한국군이 청와대에 보고한 2014년도 대외비문서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은 휴대형 전파교란장비를 무려 12종이나 실전배치하여 한반도 전역에서 동시다발로 전파교란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고 한다.  

 

한국중앙전파관리소 보고서를 인용한 2017년 9월 24일 <뉴스1> 보도에 따르면, 연평도 포격전이 일어난 2010년부터 2016년까지 7년 동안 조선인민군은 전파교란작전연습을 네 차례 진행했는데, 남측의 무선통신기지국 2,229개소, 항공기 2,143대, 선박 980척이 전파교란을 당했다고 한다. 

 

최전방 9곳에 설치된 한국군 전파교란감시소들은 항상 북쪽만 감시하고 있다. 하지만 저고도습격기를 타고 남하한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 전문병들이 남측 후방 곳곳에 침투하여 휴대형 전파교란장비를 사용하면, 최전방에 배치된 한국군 전파교란감시소들은 자기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후방에서 전파교란작전이 진행되는지 알지 못하고 북쪽만 감시하고 있을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최근 한국군 수뇌부는 삼성전자가 시판하는 지능전화 ‘갤럭시 S20’을 개조한 군사작전용 지능전화 180대를 2021년 상반기에 한국군 전투원들에 보급하여 작전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전투지휘체계를 구축하려고 한다. 한국군 수뇌부의 상황오판은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 <사진 3>

 

▲ <사진 3> 연평도 포격전 당시 연평부대는 조선인민군 포병들이 쏜 포탄을 추적할 수있는 대포병레이더 AN/TPQ-37을 보유하고 있었다. 연평도 포격전이 시작되기 직전연평부대는 자기들의 실탄사격훈련 중에 대포병레이더를 가동하고 있었다. 위의 사진은 미국군이 운용하는 대포병레이더 AN/TPQ-37을 촬영한 것이다. 그런데 포격전이 일어났을 때, 연평부대 대포병레이더는 북에서 날아오는 포탄을 전혀 탐지하지못했다. 왜냐하면,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가 강력한 교란전파를 발사하여 연평부대의 모든 전자장비들을 '먹통'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4. 경고사격 120발, 응징사격 240발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는 연평도 포격전 당일 오후 2시 34분부터 2시 55분까지 21분 동안 1차 사격을 계속했다. 그들은 황해남도 강령군 개머리해안에 있는 진지에서 방사포를 쐈다. 개머리해안에서 연평도까지 거리는 약 12km다. 연평도 포격전이 일어나기 약 1개월 전인 2010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65주년 열병행진에 1990년식 122mm 40관 방사포가 등장했는데, 바로 그 방사포가 연평도 포격전에 동원되었다. 4축8륜 차량에 탑재된 이 방사포의 사거리는 20.4km다. 122mm 방사포탄 1발의 탄체중량은 66.3kg이고, 장약중량은 27kg다. 122mm 일반포탄의 장약중량은 3.6kg인데, 122mm 방사포탄의 장약중량은 그보다 8배나 더 무겁다. 이것은 방사포탄의 파괴력이 일반포탄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2010년 11월 26일 <연합뉴스> 보도기사에는 연평도 포격전에 참가한 한국군 연평부대 장병들의 상황진술이 실렸는데, 그 내용을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K-9 자주포 4문을 사격위치로부터 서서남방 4.8km 해상으로 쏘는 실탄사격훈련을 했는데, 1문당 15발씩 모두 60발을 쏘았다.  

2) 4번포가 마지막 포탄을 쏘려고 장전했는데, 불발탄이 포신에 끼어 빠지지 않아 당황한 사이에 북에서 포탄들이 날아왔다. 처음에는 포신에 끼어있는 불발탄이 터진 줄로 알았는데, 나중에 그것이 북에서 날아온 포탄인 것을 알았다.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는 1차 사격에서 몇 발을 쏘았을까? 2010년 11월 24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북에서 포탄을 몇 발 쏘았는지 계산할 수 없었다고 하면서 “밤새 분석하고 평가해 현재까지 판단하고 있는 것은 170발 정도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2010년 11월 24일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소방방재청은 상황보고에서 “북이 200여 발을 쐈다”고 밝혔고, 연평도 주민들의 체험담에 따르면, 포탄 200여 발이 “비오듯 쏟아졌다”고 한다. 포탄이 비오듯 쏟아지는 위급한 순간에 낙탄수를 계산하는 사람은 없으므로, 200여 발이 쏟아졌다는 말은 대피소에 들어간 연평도 주민들이 밖에서 들리는 폭음을 듣고 대충 추산한 것이다.  

 

연평도 포격전 당시 조선인민군 방사포중대는 122mm 40관 방사포를 9문씩 보유하고 있었다. 조선인민군 기본전투단위는 중대이므로, 연평도 포격전에 1개 방사포중대가 참가한 것이 분명하다. 1개 방사포중대가 122mm 40관 방사포 9문을 모두 쏘았으므로, 대피소에 들어간 연평도 주민들은 300여 발의 폭음을 들었다고 말했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200여 발의 폭음을 들었다고 했으니, 약 100여 발의 폭음을 듣지 못한 것이다. 왜 폭음을 듣지 못한 것일까?

 

이 의문을 풀어줄 단서는 2010년 11월 24일 <연합뉴스> 보도기사에 들어있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연평도 앞바다에 포탄 90여 발이 떨어졌다고 한다. 포탄이 바다에 떨어지면 폭발하지 않기 때문에 폭음이 들리지 않는다.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가 쏜 122mm 방사포탄 90여 발이 연평도까지 오지 못하고 바다에 떨어진 것을 보고, 당시 남측 언론매체들은 122mm 방사포가 너무 낡아서 오발탄이 90여 발이나 되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러나 방사포가 아무리 낡았다고 해도 면적이 6.14㎢나 되는 연평도를 맞추지 못하고, 90여 발을 연속 오발하는 방사포는 있을 수 없다. 더욱이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가 연평도 포격전에서 사용한 방사포는 포격전이 일어나기 약 1개월 전 조선로동당 창건 65주년 열병행진에 등장한 1990년식 122mm 40관 방사포가 아닌가.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는 100여 발을 연평도로 쏘지 않고, 의도적으로 연평도 앞바다로 쏘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연평도를 타격하기 전에 앞바다에 120발을 낙탄하는 경고사격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연평부대에게 그런 경고사격이 통할 리 없었다. 연평부대는 실탄사격을 계속했다. 경고사격이 전혀 통하지 않자,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는 연평도를 향해 응징사격을 시작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들은 122mm 40관 방사포 3문을 동원하여 연평도 앞바다로 120발을 쏘는 경고사격을 한 다음에, 나머지 방사포 6문을 동원하여 연평도로 240발을 쏘는 응징사격을 했던 것이다. 

 

2010년 10월 23일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제1탄은 연평부대 병사생활관에 떨어졌고, 곧이어 연평부대 사무실, 창고, 훈련장, 탄약고 주변 등에 떨어졌다고 한다. 방사포탄 200여 발을 맞은 한국군 연평부대는 오후 2시 49분에 K-9 자주포로 1차 대응사격을 했다. 선제타격을 받고 15분이 지나서 대응사격을 시작한 것이다. 원래 한국군 군사교범에는 선제타격을 받으면 4분 안에 즉각 대응사격을 하도록 규정되었다. K-9 자주포는 사격명령이 떨어지면, 30초 만에 제1탄을 쏠 수 있다. 하지만 방사포탄 200여 발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선제타격을 받은 상황에서는 군사교범의 사격규정이나 자주포의 사격성능 같은 것은 무의미했다. 

 

2010년 11월 26일 <연합뉴스> 보도기사에는 연평포 포격전에 참가한 한국군 연평부대 장병들의 상황진술이 들어있는데 그 진술을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갑자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린 뒤 약 5초 만에 굉음과 함께 파편과 돌이 튀었다. 포(K-9 자주포를 뜻함-옮긴이)에 파편이 부딪히는 소리가 비오듯 들렸고, 포 안에까지 돌덩이가 튀었다. 슝 소리와 함께 굉음이 귀를 울리더니 주변에 포탄이 소나기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연기가 자욱하게 깔렸고, 땅을 뒤흔드는 진동이 느껴졌다.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고 모두가 경황이 없었다.”

2) 부대 안에 떨어진 포탄 중에서 1발은 1번포가 위치한 포대 안을 직격했고, 다른 1발은 3번포 포대외벽을 직격했다. 3번포에 붙은 불은 “간신히” 껐지만, 1번포는 화재가 너무 심해 사격하지 못했다.  

3) 피격으로 불이 나면서 K-9 자주포 사격통제장치가 고장이 나서, 하는 수 없이 수동식으로 사격해야 했다.  

4) K-9 자주포 뒤쪽에 놓아둔 잔여장약들에 불이 붙어 폭발하는 바람에 K-9 자주포 2문은 사용하지 못했다. <사진 4>

 

▲ <사진 4> 위쪽 사진은 한국군 연평부대가 보유한 K-9 155mm 자주포가 이동하는 모습이고, 아래쪽 사진은 평양에서 진행된 열병식에 참가한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의122mm 40관 방사포가 행진하는 모습이다. 연평도 포격전에서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는 122mm 40관 방사포 3문을 동원하여 연평도 앞바다로 120발을 쏘는 경고사격을 한 다음에, 나머지 방사포 6문을 동원하여 연평도로 240발을 쏘는 응징사격을 했다. 조선인민군 전파교란부대의 교란전파발사로 대포병레이더가 마비되는 바람에방사포 사격원점을 전혀 파악할 수 없었던 한국군 연평부대는 미리 입력된 타격좌표에 따라 무도를 향해 K-9 자주포 3문을 쏘았다.  

 

 

5. 155mm 자주포와 85mm 고사포가 충돌한 격전 

 

2010년 11월 25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오후 2시 49분부터 시작된 1차 대응사격에서 연평부대는 타격좌표가 미리 입력된 무도를 향해 K-9 자주포를 쏘았다고 한다. 조선인민군 방사포부대는 황해남도 강령군 개머리해안에서 방사포를 쏘았는데, 대포병레이더가 마비되는 바람에 방사포 사격원점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한국군 연평부대는 미리 입력된 타격좌표에 따라 무도를 향해 K-9 자주포를 쏜 것이다. 당시 연평부대가 무도를 향해 사격한 K-9 자주포는 3문이다. 연평부대는 K-9 자주포 6문 중에서 3문은 선제타격을 받고 무용지물로 된 것이다. 그들은 K-9 자주포 3문을 동원하여 무도를 향해 50여 발을 쏘았다. 2010년 12월 2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한 국가정보원 관계자는 연평부대 포병들이 쏜 K-9 자주포 15발이 무도방어대 안에 떨어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무도방어대 포병들은 미리 갱도진지에 들어가 대기하고 있었으므로 인명피해가 전혀 없었다. 2010년 11월 26일 <KBS> 텔레비전방송 보도에 따르면, 당일 연평도에서 망원렌즈 촬영기로 무도방어대를 촬영했더니, “북측 해안포는 포신을 연평도 쪽으로 계속 열어놓고 있었고, 포신상태도 멀쩡한 상태였다. 동굴(갱도진지를 뜻함-옮긴이) 곳곳에 배치된 북측 포신들도 똑같이 멀쩡했다. 특히 해안포 근처로 북한군이 한가롭게 돌아다니거나 떼를 지어 어디론가 천천히 향하는 등 긴박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2010년 11월 26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K-9 자주포는 최대발사속도로 1분당 6발을 쏠 수 있지만, 최대발사속도로 계속 쏘면 포신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라 포탄이 포신 안에서 터질 수 있고, 뜨겁게 달아오른 포신에서 포탄을 쏘면 오발되기 때문에, 처음 6발을 쏜 다음에는 포신의 열을 식히기 위해 일정한 시차를 두고 지속발사속도로 쏘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지속발사속도는 이론적으로 분당 2발이라고 하지만, 실전상황에서는 분당 1발밖에 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평부대 포병들은 K-9 자주포를 분당 1발씩 쏘았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연평부대 포병들이 K-9 자주포 50여 발을 사격하기까지 약 12분이 걸렸음을 알 수 있다. 

 

갱도진지에서 사격준비를 갖추고 대기 중이던 무도방어대 포병들은 한국군 연평부대로부터 불의의 기습타격을 받았으나, 동요하지 않고 연평부대의 사격이 뜸해질 때를 기다리며 반격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연평부대 포병들의 사격은 오후 3시 5분경에 끝났다. 무도방어대 포병들은 그로부터 5분이 지난 오후 3시 10분 반격에 나섰다. 이것을 2차 사격이라고 부른다. 

 

무도방어대에는 방사포가 없고 85mm 견인고사포만 있다. 사고도가 10.5km인 85mm 견인고사포는 공중으로 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지상목표를 향해 쏘는 곡사포로도 사용하는 2중용도의 포다. 곡사포로 사격할 때, 사거리는 15.65km다. 그러므로 무도방어대에 배치된 85mm 견인고사포는 황해남도 상공으로 내습하는 적기를 격추할 수도 하고, 연평도를 공격할 수도 있다. 85mm 견인고사포는 분당 12발씩 사격하는 매우 빠른 사격속도를 자랑한다.

 

무도방어대 포병들은 평소에 타격좌표를 외우고 조준사격연습을 해왔으므로, 즉시 85mm 고사포를 갱도진지에서 끌어내 조준사격을 시작했다.  

 

그런데 연평도 포격전 당일 현장에는 초속 4.4m의 바람이 불었다. 그런 환경에서는 포병들이 탄도를 정확하게 계산해 포를 쏘더라도, 포탄이 비행하는 중에 측풍을 맞으면 풍향에 따른 오차가 발생하므로, 명중사격을 하기 힘들다. 그러나 무도방어대 포병들의 조준사격실력은 놀라웠다. 그들이 쏜 85mm 포탄은 마치 두 눈이 달린 것처럼 연평도 타격대상들에 명중했다. 2010년 11월 24일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해안포부대(무도방어대)는 2차 사격에서 연평부대 레이더에 포를 쏘았다고 한다. 한국군 합참본부는 밝히지 않았으나, 연평부대 레이더는 무도방어대 포병들이 쏜 명중탄에 맞아 파괴되었다. 2010년 11월 26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해안포부대(무도방어대)가 쏜 포탄은 유류 20,000리터가 저장된 연평부대 유류저장시설과 연평부대 피복창고에 각각 명중했고, 이전에 헌병대가 쓰던 우체국, 이전에 군사시설로 사용되던 상점, 보건소 등에 각각 명중했다고 한다. 2010년 11월 24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연평부대 유류저장시설이 폭발하여 산불로 번졌다고 한다. 산불로 연평도 숲의 70%가 불탔다. 

 

무도방어대 포병들은 오후 3시 10분부터 4시 42분까지 계속된 2차 사격에서 85mm 곡사포 80발을 조준사격하여 연평도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2010년 11월 30일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무도방어대 포병들이 2차 사격에 사용한 포탄 1발의 장약중량은 700g인데, 장약에 알류미늄분말을 혼합하여 폭발력을 강화한 포탄이라고 한다. 또한 그들이 쏜 포탄은 표적에 충돌하여 폭발하는 직격탄이 아니라, 근접신관을 장착하고 타격대상 4~7m 앞에서 공중폭발하여 타격효과를 극대화하는 포탄이라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2년 8월 17일 무도방어대를 시찰하면서 연평도 포격전에서 명중탄을 날린 무도방어대에 영웅방어대 칭호를 수여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3년 9월 2일과 2017년 5월 4일에도 무도방어대를 시찰하면서 무도방어대 포병들의 전투준비태세에 만족을 표시했다. 

 

연평부대 포병들도 오후 3시 25분부터 K-9 자주포 사격을 재개했다. 이번에는 사격대상을 바꿔, 무도가 아니라 개머리해안을 향해 쏘았다. 연평부대 포병들은 개머리해안진지로 K-9 155mm 자주포를 쏘고, 무도방어대 포병들은 연평부대로 85mm 고사포를 쏘는 치렬한 교전이 오후 3시 25분부터 3시 41분까지 계속되었다. 

 

2010년 12월 1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연평부대 포병들은 개머리해안에 있는 포진지를 향해 K-9 자주포 30발을 쏘았다고 한다. 2010년 11월 24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한국군 합참본부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조선인민군 해안포는 갱도진지에 들어있기 때문에 K-9 자주포로는 타격하기 어려워, 해안포 중대 막사를 타격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2010년 12월 2일 <한겨레> 보도와 2013년 11월 21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연평도 포격전으로부터 사흘이 지난 11월 26일에 촬영된 상업위성사진에는 연평부대가 쏜 K-9 자주포 14발이 개머리해안 포진지를 맞추지 못하고 엉뚱하게 포진지 후방으로 90~100m 떨어진 논밭에 떨어진 낙탄흔적을 남겼다고 한다. 2010년 12월 2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상업위성사진을 자세히 판독하였더니, 개머리해안 포진지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K-9 자주포 6발의 낙탄흔적을 추가로 찾아냈다고 한다. 이처럼 어지럽게 흩어진 낙탄흔적은 연평부대 포병들이 개머리해안 포진지를 향해 K-9 자주포 20발을 쏘았으나, 1발도 타격대상을 맞추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무도방어대에서 그러한 것처럼, 개머리해안 포진지에서도 선제타격을 마치고 재빨리 갱도진지 안으로 대피했기 때문에 인명피해가 없었고, 경미한 물적 피해만 발생했다. 

 

누가 봐도, 무도방어대 85mm 고사포는 연평부대 155mm 자주포의 상대로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85mm 고사포의 포구경은 155mm 자주포에 비해 70mm나 짧을 뿐 아니라, 85mm 고사포는 수동사격장치로 쏘고, 155mm 자주포는 자동사격장치로 쏘기 때문이다. 또한 85mm 고사포의 사거리는 155mm 자주포에 비해 30km나 짧다. 그러나 실전상황에서는 뜻밖에도 85mm 고사포가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첫째, 85mm 고사포는 사격속도가 155mm 자주포에 비해 10배 이상 빨랐다. 연평도 포격전은 현대전의 승패가 공격속도에 의해 결정된다는 진리를 입증했다.

둘째, 무도방어대 포병들의 높은 사격명중률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되었다. 평소에 명중사격을 연습해온 무도방어대 포병들은 실전상황에서 사격능력을 남김없이 발휘했다. 연평도 포격전은 현대전의 승패가 정밀타격에 의해 결정된다는 진리를 입증했다. <사진 5> 

 

▲ <사진 5> 위쪽 사진은 2017년 5월 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연평도 포격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무도방어대를 시찰하는 장면이다. 무도방어대 포병들은 연평도 포격전에서 경미한 피해만 입었고, 연평부대에 명중탄을 퍼부어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무도방어대에 영웅방어대 칭호를 수여했다. 위쪽 사진에 보이는 견인포는 연평도 포격전에서 맹활약하여 영웅포 칭호를 수여받은 85mm 견인고사포다. 아래쪽 사진은 로씨야의 야외전시장에 전시된 85mm 견인고사포 실물이다.85mm 견인고사포의 두 가지 특징은 공중을 방어하는 고사포로도 쓸 수 있고, 적진을 타격하는 곡사포로도 쓸 수 있다는 것과 사격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이다.  



6. 국지충돌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위험

 

연평도 포격전이 계속되자 조선인민군 수뇌부는 황해남도에 배치된 전투부대들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총공격태세로 전환했다. <연합뉴스> 2020년 11월 23일 보도에 따르면, 당일 백령도가 마주보이는 북측 해안포 갱도진지들이 차폐문을 열고 사격준비를 갖추었다고 한다. 2010년 11월 24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서해 5도 분쟁수역 인근의 북측 해안과 섬들에 밀집배치된 해안포는 약 1,000문이라고 한다. 해안포 1,000문이 연평도와 백령도를 조준하여 사격준비태세를 갖춘 것이다. 

 

2010년 11월 27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연평도 포격전 중에 조선인민군 서해함대사령부는 황해남도 옹진군 사곶에 배치된 해군 8전대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했고, 그에 따라 8전대에 소속된 모든 전투함선들과 전투병력이 총공격태세에 돌입했다고 한다. 당시 해군 8전대가 보유한 고속정과 경비정은 70여 척 이상이었다. 

 

2010년 11월 24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미그-23기 5대가 황해남도 황주비행장에서 출격대기상태에 있고, 황해남도 과일비행장과 온천비행장에서도 미그-19기들과 미그-23기들이 출격대기상태에 있다고 한다. 또한 황해남도에 배치된 금성-1 지대함순항미사일들이 발사태세를 취했다고 한다. 금성-1 지대함순항미사일의 사거리는 160km다. 2010년 11월 28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황해남도에 번개-1 지대공미사일이 전진배치되었다고 한다. 번개-1 지대공미사일은 사거리가 45km이고, 요격고도가 25km다. 2014년 2월 24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연평도 포격전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김태영은 포격전 중에 조선인민군 반항공부대가 SA-5 장거리대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었다고 했는데, 그가 언급한 SA-5 장거리대공미사일은 사거리가 250km에 이르는 번개-5 반항공미사일이다. 

 

우발적인 국지충돌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위험이 극도로 높아졌다. 그런 사태를 우려한 한국군은 당일 오후 5시 55분 조선인민군에게 사격중지를 촉구하는 전화통지문을 발송했다. 만일 한국군이 사격중지를 촉구하지 않았더라면, 국지충돌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어 전면전이 일어났을 수 있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조선인민군 해안포 1,000문이 연평도와 백령도를 향해 불을 뿜었을 것이다. 연평도 포격전 당시 연평도에는 한국군 1,200명이 주둔하였고, 백령도에는 한국군 4,000명이 주둔하였는데, 그들은 조선인민군의 집중사격을 받을 급박한 위험에 빠졌던 것이다. 

 

남북대화와 조미대화가 완전히 중단되고 군사대결상태에 들어선 오늘, 한국군 수뇌부는 연평도 포격전에서 뼈아픈 교훈을 찾고, 현 상황을 오판하지 말아야 한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기 전에, 북침전쟁연습을 재개하려는 경거망동을 중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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