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대한통운 등 택배사들, ‘과로사 대책’ 발표했지만…
진보당·택배연대노조, 대책 이행 점검단 활동 나서다
우체국 택배노동자, 쿠팡 노동자, 로젠택배 노동자, CJ대한통운 택배 노동자.
2020년, 이들은 배송 중에 쓰러졌거나 집에서 잠을 자던 중, 혹은 집 안에서 발걸음을 옮기던 중 갑자기 쓰러져 사망했다. 배송을 마치고 휴일을 보내다가 사망하기도 했다. 이렇게 추석 전에만 모두 7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사했다. 모두 30~40대 젊은 노동자들이었다.
‘코로나의 숨은 영웅’이라는 수식어가 담고 있듯, 코로나19로 인한 택배물량 증가로 과로 노동이 이어지고,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신분으로 인해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이들은 전국 곳곳에서 과로로 쓰러졌다.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 열악한 노동환경이 폭로되고 여론화된 지는 이미 오래다. 그런데, 과로사를 막겠다는 정부와 택배사의 대책은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
올해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과로 노동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9월, 차고 넘치는 추석물량 배송을 앞두고 새벽부터 정오를 넘어서까지 이어지는 공짜노동인 ‘분류작업 거부’를 선언할 수밖에 없던 이유도 ‘더 이상의 과로사는 막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분류작업 인력을 투입하겠다’던 정부와 택배사는 2000여 명 중 300명도 채 투입하지 않는 등 약속 이행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추석 이후에도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는 이어졌다. 10월 CJ대한통운, 한진택배, 쿠팡노동자 등이 쓰러져 나갔다. 올해만 과로사한 택배노동자는 벌써 15명이다.
CJ대한통운만이 아니었다
택배업계 1위를 달리는 CJ대한통운, 이미 잘 알려진 이곳 택배노동자의 과로 노동뿐만 아니라, 한진택배, 쿠팡 물류센터의 노동 현실도 만만치 않다.
지난달 8일 사망한 한진택배 노동자는 아침 7시에 출근해 새벽 2시, 새벽 4시 30분까지 배송했다. 이 노동자는 사망하기 하루 전인 7일 420개를 배송했고, 6일엔 301개, 추석 연휴 전주인 9월22일 323개, 23일 301개, 24일 318개, 25일 249개, 26일 220개 등을 배송한 것이 확인됐다. 심지어 남들이 다 쉬는 한글날에도 출근해 배송했다.
한진택배는 업계 1위 CJ대한통운보다 물량이 적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배송구역이 넓다. 그만큼 배송시간이 오래 걸린다. 한진택배에서 200개 배송하는 시간은 CJ대한통운의 300~400개 배송시간과 비슷하다고 택배연대노조는 설명한다. 고인이 지난달 7일 배송했던 420개는 CJ대한통운의 800~900개 수준의 배송과 맞먹는 양이라는 뜻이다.
지난달 12일, 쿠팡 노동자도 퇴근 후 쓰러져 숨을 거뒀다. 경북 칠곡 쿠팡물류센터에서 야간분류작업 일을 해온 20대 청년이었다. 1년 이상 일용직으로 일해 온 그는, 남들과 같이 하루 8시간, 주 5일을 꼬박 일했다. 물량이 많은 날은 30분에서 1시간 30분까지 연장근무를 하기도 했다.
쿠팡물류센터는 대부분 셔틀버스를 타고 다녀야 하는 외곽에 센터가 위치 해 있다. 연장근무를 마치는 시간까진 셔틀버스가 운행되지 않았고, 연장근무가 있는 날 특히 야간근무자는 꼼짝없이 회사에 갇혀 연장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연장근무를 안 해도 셔틀버스가 없는 시간이기 때문에 차가운 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쉬어야 하는 등, 야간에 일한 이 20대 청년 노동자에게 근무 선택의 자유는 사실상 없는 상태였다.
소나기만 피하자?… 분류작업 인력비용 택배노동자에 떠넘기고
연이은 노동자들은 과로사에 정부와 택배사들이 대책을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추석 전 택배노동자들의 ‘분류작업 거부’ 선언에 ‘분류작업 인력 투입’이라는 대책을 내놓았지만, 정부와 택배사들은 제대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분류작업 인력 비용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거나, 노동조합이 있는 곳만 분류작업 인력을 투입하는 등의 꼼수를 부렸다.
추석 이후 과로사가 계속되고, 노동자들의 투쟁과 국민들의 지지여론에 못 이겨 택배사들은 과로사에 책임을 통감하는 것처럼 연이어 대책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추석 전처럼 말 잔치만 하고 있을 뿐, 이행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CJ대한통운은 ▲분류작업에 4,000명 인력 투입 ▲집배점과 계약 시 산재보험 100%가입 권고 및 건강검진 주기 2년에서 1년으로 단축 ▲작업강도 완화위해 소형상품 전용분류장비(MP) 구축에 예산 투입 등의 대책을 발표했다.
업계 최초로 분류인력 투입을 발표한 CJ대한통운. 그러나 분류인력 투입비용을 ‘택배사는 50%만 부담할테니 나머지 50% 대리점과 기사들이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사를 통해 대리점과 기사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있는 사실이 밝혀졌다.
롯데택배와 한진택배도 ▲1000명의 분류인력 투입 ▲산재보험 대책 ▲자동화 설비 확충 등을 대책으로 내놨다. 한진택배는 분류인력 투입 비용을 회사가 부담한다고 명시했지만, 반면 롯데택배는 비용부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는 롯데의 발표문을 두고 “자신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열어놓고 일단 ‘소나기만 피하자’는 의도가 읽히는 최악의 발표문”이라고 칭했다. 롯데택배는 타 택배사에선 사측이 직접 부담하는 상하차비를 월 10~20만 원씩 택배노동자에게 부담시키고 있었다(상하차란 택배를 간선차에서 레일로 내리고 올리는 작업을 말한다). 상하차 인력비용을 노동자에게 부담하라고 하는 건 롯데택배가 유일하다.
‘상하차 지원금을 단계적으로 전 집배센터에 지원’하겠다는 대책은, ‘단계적’이란 표현을 써 이행의 기한을 정하지 않았다. 상하차 비용은 “롯데가 우월적 지위를 악용해 ‘갑질’을 한다”며 택배기사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핵심내용이었지만 ‘단계적 지원’으로 표현해 택배사의 마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여지를 둔 것이다.
한진택배의 대책에선 ‘당일배송 강요를 중지하고 다음날 배송을 허용’한 것은 그나마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심야배송 중단의 내용은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의 노동시간(주 90시간)은 유지한다’는 것으로, 택배기사들의 노동강도를 감안하거나 여타 노동자들의 주 52시간 노동시간과 비교했을 때 택배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을 해결하는 대책으론 매우 미흡할 수밖에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악의 발표문’을 내거나, 대책을 내놓은 후에도 지켜가기는커녕 분류작업 인력투입 비용을 대리점과 택배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등의 행태를 보인다. 인력투입 비용 50%를 사실상 대리점과 택배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전가시키고 있다.
택배연대노조는 각 택배사 별 분류작업 인력투입 발표 이후 분류인력 비용부담 및 물량제한 강요신고센터를 운영 중이다. 신고센터를 통해 들어온 내용을 살펴보면, CJ대한통운 경기도 A대리점의 경우 본사는 50%, 대리점 30%, 택배기사 20%로 통보하고, 인력투입 비용이 1인당 100만 원이 초과해도 50만 원만 지급하겠다고 했다. B대리점의 경우, 본사 50%를 제외하고 나머지 50%를 택배기사에게 전가시키겠다고 하는 등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부산과 경남 등에선 본사, 대리점, 택배기사 각각 5:3:2 비율로 부담시키겠다고 통보했다는 제보도 있다고 택배연대노조는 밝혔다.
또, 노동조합 조합원이 있는 대리점과 조합원이 없는 대리점의 비율을 달리하면서 조합원이 있는 곳은 5:3:2, 조합원이 없는 곳은 5:0:5로 부담시키려는 움직임까지 확인했다. 추석기간 분류작업 인력을 노동조합이 있는 곳만 선별 투입했던 꼼수에 이어 조합원 유무에 따라 비용부담도 달리한 것이다. CJ대한통운 본사가 대리점에 50%를 부담시키고 ‘알아서 하라’는 식의 방식이 낳은 결과다.
뿐만아니다. 어느 대리점의 경우는 심야 배송을 금지한다면서 미리 ‘배송 완료’를 입력하라거나 VIP고객 물건을 ‘선 배송’하라는 부당한 지시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노동조합이, 진보정당이 “직접 한다”
상황이 이러니, 노동조합과 진보정당은 택배 대책 ‘이행 점검단’까지 꾸렸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진보당과 택배연대노조는 지난 13일, “택배사들이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약속했지만, 실상은 기만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면서 “택배노동자 생명과 안전을 위해 택배터미널 이행점검단 활동을 벌이겠다”고 선포했다. 택배터미널을 직접 방문해 분류작업 인력투입여부, 분류인력 투입비용 전가, 산재보험 적용문제, 일방적인 물량제한 등 과로사 대책이 실질적으로 이행이 되고 있는지 현장을 점검하고 택배노동자들과 면담도 할 예정이다.
점검단 활동은 내년 2월 설까지 지속적으로 운영되며, 12월 25일을 전후해선 ‘과로사 대책 이행점검단 중간 점검 실태’를 발표할 예정이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택배사들이 발표문을 이행할 의지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주요한 척도로, “대책위와 택배사, 정부와 국회, 시민사회단체가 참가하는 ‘민관공동위원회 구성’”이라고 여러차례 강조해 왔다.
택배사들이 발표한 대책에 대한 이행계획,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 그리고 산적한 현안문제를 논의하는 대화기구를 구성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하루 앞선 12일,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주5일 근무(토요일 휴무제) 추진, 표준계약서 도입, 택배현장의 불공정 관행 개선, 적정 수수료 제공을 위한 택배가격 구조개선 등이 담겼고, 대책에 대한 지속적인 협의와 이를 법과 제도로 담보하기 위해 ‘택배기사 과로방지대책 협의회(가)’를 구성, 운영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산재 적용제외 신청서 폐지가 아닌 일부 사유를 허용하고, 택배노동자의 산재보험적용율이 낮은 근본적인 이유 중의 하나인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산재보험료 부담문제’에 대해 아무런 언급은 없었으며, 노동부 장관은 밤 10시까지 일하는 것에 대해 ‘적정 작업시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택배노동자들은 이것이 “정부차원의 대책인 만큼 택배회사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선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이라며 “대책이 현장에 적용되기까지 보다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회적 협의기구에 택배회사들이 반드시 참여해야 하며, 택배업(우체국택배)을 진행하는 우정사업본부도 참가할 것을 요구했다.
택배사는 책임에서 빠져나오려고 꼼수를 부리고, 정부는 끊임없이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마련하고 있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노동자들과 노동조합, 진보정당은 현장에서 직접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현장 점검하겠다고 ‘이행점검단’을 꾸렸다. 과로사를 막기 위해 지금 필요한 대책이 무엇인지, 현장의 요구는 무엇인지 상기하고, 대책이 ‘공염불’에 지나지 않고 철저히 이행되는지 점검하는 ‘이행점검단’의 활약이 궁금해진다.
아래는, 이행점검단의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 이행점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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