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다시 평창’ 번지수 잘못 짚었나?
- 김치관 기자
- 입력 2020.11.16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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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다걸기(올인)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극적으로 작동시켰던 것처럼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빈손(노딜) 결렬 이후 멈춰선 이 프로세스를 2021 도쿄 하계올림픽을 계기로 재작동시키기 위해 발벗고 나선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14일 오후 8시부터 화상으로 진행된 제15차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 East Asia Summit) 의제발언에서 “2021년 도쿄, 2022년 북경으로 이어지는 동북아 릴레이 올림픽을 ‘방역-안전 올림픽’으로 치러내기 위해 긴밀히 협력할 것을 제안한다”면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성공적인 '평화올림픽이 되었던 것처럼 회원국들의 신뢰와 협력으로 동북아 릴레이 올림픽이 ‘방역-안전 올림픽’으로 성공적으로 개최된다면 인류는 코로나 극복과 평화에 대한 희망을 더욱 키울 수 있을 것”이라는 구상을 발신했다.
또한 “지난 9월 유엔총회에서 나는 남북한을 포함해 동북아 역내 국가들이 함께하는 '동북아시아 방역 보건협력체'를 제안했다”며 “연대와 협력으로 서로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동북아 평화의 토대를 다질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지와 참여를 바란다”고도 했다.
코로나19 대유행과 제32회 도쿄 하계올림픽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진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계기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15일 오후 기자들에게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방역․보건․의료 분야 다자 협력과 방역-안전 올림픽을 제안하는 등 한반도 평화 메시지를 발신해 역내 호응을 얻은 것을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자평했다.
코로나19와 후쿠시마
아직은 문 대통령이 ‘제안’을 발신한 것에 불과하지만 도쿄 올림픽을 성공시키고 싶은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로서는 쌍수를 들어 반길만하고, 동맹·다자외교를 지향하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 역시 환영할만한 제안이다. 평창의 극적 반전이 도쿄에서도 이루어지길 제안자인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 우리 국민들도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년 도쿄 올림픽이 ‘다시(어게인) 평창’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굳이 찬물을 끼얹을 생각은 없지만 깊이 들여다봐야 할 문제들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평창과 도쿄는 시간과 장소의 상징성에 큰 차이가 있다. 먼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2020 도쿄 하계올림픽이 1년 연기돼 내년 7월 23일부터 8월 8일까지 열릴 예정이지만 그때까지 코로나19가 잦아들거나 퇴치돼 있을 지 아직 알 수 없다. 더구나 일본 아베 정부는 코로나19 대처에 미온적이거나 실상을 가리는데 급급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또 하나의 우려는 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후폭풍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지난 7월 17일 제136차 총회를 갖고 도쿄하계올림픽 첫 경기를 일본 후쿠시마현에서 연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후쿠시마현이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지 의구심이 남아있다. 더구나 일본 정부는 최근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온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방출하겠다는 계획을 밝혀 국제적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
박지원 등판과 ‘외교부 패싱’
또 하나의 걸림돌은 한일관계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배상 문제 등 양국간 갈등은 지난해 일본의 무역보복조치인 ‘화이트 리스트’ 배제와 우리 정부의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보류 중) 등으로 극단적 대립이 발생했고, 아직까지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더구나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법원에 신청한 강제집행 중 미스비시중공업의 특허권과 상표권에 대한 ‘특별현금화 명령’ 4건이 지난 10일 0시에 도달돼 효력이 발생한 상태다. 압류명령 4건도 오는 12월 29일과 30일 도달돼 효력이 발생할 예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다시 평창’ 구상에는 새로 등장한 스가 정권과 한일문제까지 일거에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의 방일과 스가 총리 예방도 이같은 행보의 일환으로 보인다. 그러나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지난 13일 SBS와의 인터뷰에서 “이 사안 자체에 대해서는 외교부로서는 뭐 충분히 협의를 했다하는 상황은 아니다”고 공개적으로 ‘외교부 패싱’을 실토하기도 했다.
외교부를 통한 정상적인 문제 해결이 진척을 보지 못한 상황에서 국정원장이 나서서 한일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문희상 안(案)’처럼 엉뚱한 결과가 나올 경우 엄청난 후폭풍이 예상되고, 우리 국민이 납득할만한 기대치에 일본이 호응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은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자칫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진전이라는 큰 수레바퀴를 굴리기 위해 한일관계에서 원칙을 저버릴 가능성도 우려할만 한 상황이다.
달라진 김정은 위원장의 눈빛
‘다시 평창’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한쪽 당사자인 북한의 호응이 필수적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도쿄에 나타날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깝지만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나 고위급 인사의 방일도 현실성은 매우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과거사 문제들은 제쳐두더라도 아베 정권을 이은 스가 정권 역시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북일 간에도 물밑접촉은 꾸준히 이어져 왔고, 언젠가는 빅딜이 필요한 상황임에는 틀림없다.
북측 고위급 인사의 방일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남북관계 속에서 남측의 제안을 북측이 수용해 국제무대에 나설 수 있는 가능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난 9월 코로나19와 태풍피해를 두고 남북 정상이 친서를 교환했는가 하면,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10월 10일 당창건 75돌 기념 열병식 연설에서 “사랑하는 남녘의 동포들에게도 따뜻한 이 마음을 정히 보내며 하루빨리 이 보건위기가 극복되고 북과 남이 다시 두손을 마주잡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빈손 결렬 이후 남북관계 역시 사실상 단절된 상태에 놓여있다. 북측 입장에서는 특히 판문점과 평양 남북정상선언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남측 당국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북측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도 이같은 불만의 표시로 읽히고 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마저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 석상에서 ‘작은 교역’ 성과물 하나조차 내놓지 못 했다.
‘다시 평창’의 중요한 논거 중 하나는 북한이 강력한 국제적 제재 속에서 자력갱생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고, 내년 1월 제8차 당대회를 거쳐 미국의 새 정부가 진용을 갖추면 늦어도 내년 하반기에는 북미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 깔려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그 과정에서 남측이 놓아주는 다리를 건너서 북미협상의 자리에 앉게 하겠다는 우리측의 적극적인 구상도 담겨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해 12월 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정면돌파전’을 선포하고 핵무기보유국 지위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0월 10일 당창건 75돌 열병식 기념연설에서도 “자위적정당방위수단으로서의 전쟁억제력을 계속 강화해나갈것”이라면서 “이제 남은것은 우리 인민이 더는 고생을 모르고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을 마음껏 누리게 하는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경제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무대로 나올 것이라는 추정은 아직은 ‘가능성’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오히려 ‘자력갱생’에 강조점을 두고 있는 것이 아직까지는 더 현실에 가까워 보인다. ‘수입병’에 대한 비판이나 ‘비사회주의적 행위’를 ‘범죄행위’로 단죄하고 있는 것이 북한의 현 상황이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바라보는 눈길이 달라진 점도 중요한 대목이다. 판문점과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한창일 때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냈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남북관계를 사실상 이끌어왔던 서훈 전 국정원장이 국가안보실장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그에 대한 북측의 신뢰는 예전같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원 국정원장의 등판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선거가 끝나면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는 1년만 남게 된다. 문 대통령으로서도 ‘다시 평창’이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그러나 임기에 구애받지 않은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새로 들어선 바이든 정권과 스가 정권과의 긴 여정이 남아있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의 ‘다시 평창’의 성공 여부는 김정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이 마련한 ‘도쿄 무대’를 발판으로 삼을 것인지에 달려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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