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뒤로 하고 산안법 개정으로 ‘꼼수’ 시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민주당 장철민 의원은 이날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고 밝혔다. 장 의원의 산안법 개정안 발의는 예고된 것이었다. 장 의원은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당정협의를 따로 한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법안 처리의 편의를 위해 "고용노동부와는 조율했다"고 말했다.
이번에 공개된 개정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니 산업재해를 막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노동계의 공통된 평가다.
개정안은 우선 '기업의 대표이사'에 한해 중대재해 발생 및 재발방지 대책에 관한 사항, 근로감독관의 감독 지적 사항의 확인 의무를 부여하고, 의무이행 담보를 위해 위반 시 1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규정을 뒀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한국노총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노동계)는 성명을 내고 "경영 책임자에 대한 처벌 의지는 아예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경영 책임자에 대한 형사 처벌이 재발방지에 도움이 된다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음에도 이를 외면하고 과태료만으로 면죄부를 준 셈이기 때문이다.
본질을 빗겨나간 대신 사업장에 대한 형사 처벌, 즉 벌금 수위를 높이겠다는 것이 개정안의 골자인데 이마저도 솜방망이 처벌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개정안은 안전·보건조치 위반으로 노동자 사망 시 사업주에게 500만 원 이상(법인 3천만 원 이상)의 하한선을 도입하도록 했다. 현행법에는 1억 원 이하(법인 10억 원)의 벌금에 처해진다고 돼 있지만 실제 부과되는 벌금의 평균은 220만 원(법인 447만 원)에 불과하다는 자체 분석 결과에 따른 것이다. 나아가 개정안은 안전·보건조치 위반으로 동시에 3명 이상 사망 시 형의 2배까지 가중해 처벌하기로 했다.
이를 두고 노동계는 '노동자가 사망했는데 고작 벌금 500만 원으로 면죄부를 주는 것이냐'라고 비판했다. 게다가 현행 벌금과도 실질적으론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례로 2008년 이천 냉동창고 40명 사망 사고에 법인 벌금이 2천만 원에 불과했다는 점에 비춰보면, 개정안의 벌금 하한선 역시 턱없이 낮다고 볼 수밖에 없다.
노동계는 장 의원의 자체 분석과 달리 평균 벌금이 450만 원인데 개정안의 개인 벌금 하한기준이 고작 50만 원 늘어난 500만 원이라면서 "노동자 죽음에 쥐꼬리만큼 올린 벌금을 내놓고, 돈으로 해결하라고 하는 것인가. 이게 그렇게 강조했던 예방중심의 대책인가"라고 꼬집었다.
안전·보건조치 위반으로 동시 3명 이상 또는 1년에 3명 이상 사망 시 법인에 100억원 이하 과징금을 부과한다는 개정안의 내용도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계는 "과징금은 이미 현행의 산안법에도 낮추고 또 낮출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는데, 별도로 과징금 심의위원회까지 두어 재고에 재고를 거듭하겠다고 한다"며 "징벌적 손해배상은커녕 이미 화학물질 관리법에 들어와 있는 매출액 대비 과징금조차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라고 꼬집었다.
노동계는 결국 경영 책임자에 대한 형사 처벌 조항을 담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답'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산안법 개정안을 두고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이낙연 대표가 지난 9월 7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공약했지만 이후 산안법 개정안을 포함해 논의하겠다고 하는 등 계속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를 두고 겉으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동의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산안법 개정안으로 꼼수를 부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러한 '개혁입법 후퇴' 논란 속에, 최근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기존 산안법을 개정하는 것만으로는 산업재해를 막기 어렵다면서 당 노동존중실천의원단의 뜻을 모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에는 사업주 또는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해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면 2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하는 등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정의당이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큰 틀에선 비슷하다.
한국노총 출신인 민주당 박홍배 최고위원도 16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공개 발언을 통해 "2017년에 발생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 중 공판이 청구된 사건은 5%에 불과했다. 기소된 710건의 사건 중에서 1심 법원이 실형을 선고한 사건은 단 4건이었다. 금고, 징역형은 평균 10개월, 벌금형은 평균 400만 원대였다. 대구 지하철 화재사건, 경주 마우나오션 리조트 붕괴 사건, 세월호 사건 등 시민 재해 사건들도 더 큰 책임이 있는 원청의 경영 책임자와 공직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당론을 모을 것을 촉구했다.
이런 당 안팎의 논란을 의식했는지, 이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직접 언급하면서 "이번에 처리한다는 우리의 원칙을 지키며 소관 상임위 논의에 적극 임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당론인 것이냐'는 취지의 기자들의 질문에는 '소관 상임위에서 논의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반복해 보이면서 즉답을 피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산안법 개정안은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각각 논의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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