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검찰의 ‘부실 수사’로 고 장자연 씨 사건의 진상을 밝힐 수 있는 길이 가로막힌 현실이 확인됐다.
장 씨 사건에 대한 과거 검찰의 은폐 의혹 등을 조사한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심의한 대검찰청 진상조사단 보고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시절 검찰은 장 씨의 문건 속 ‘조선일보 방 사장’을 확인할 수 있었으나, 부실수사로 인해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다.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이하 위원회)는 20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장자연 리스트 사건’ 조사 및 심의 결과를 최종 발표했다.
위원회의 재조사 권고를 받은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은 ▲장자연 문건 속 ‘조선일보 방사장’에 대한 성 접대 의혹 및 ‘조선일보 사장 아들’에 대한 술 접대 강요 의혹 ▲조선일보 관계자들의 수사 외압 여부 ▲수사기관의 부실 수사 의혹 ▲‘장자연 리스트’의 존재 여부 ▲장 씨의 성폭행 피해 등 의혹 등을 조사했다.
이 밖에도 ▲기획사 대표 김종승에 의한 술 접대, 성 접대 강요 의혹 ▲김종승의 장자연에 대한 강제추행 및 추가 협박행위에 대한 수사미진 의혹 ▲김종승이 이 사건 관련 명예훼손 사건에서 위증했다는 의혹 등을 조사했다.
“부실 수사로 ‘방 사장’ 특정 어려워”
조사단은 끝내 ‘조선일보 방사장’을 특정하지 못했다. 과거 검찰이 부실 수사로 ‘방사장’을 특정할 기회를 놓친 이유가 결정적이었다. 위원회는 “당시 부실한 수사 등으로 장 씨가 ‘조선일보 방사장’에게 술 접대를 하고 잠자리를 강요받은 사실이 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또한 애초 강제 수사권이 없었던 진상조사단 활동은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과거사위원회 문준영 주심위원은 “장자연의 행적 및 이 사건 주요 의혹 관계자들과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자료들을 확인할 수 없었고, 주요 의혹 관련자들이 면담을 거부해 조사에 한계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다만 위원회는 ▲2007년 10월경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과 장 씨가 만난 사실이 확인되는 점 ▲당시 방 사장이 술자리 등에서 ‘조선일보 방사장’으로 불리기도 한 점 등을 종합하면, “장 씨가 방용훈을 ‘조선일보 방사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은 있다”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당시 경찰은 ‘2007년 10월경 방 사장이 장 씨와 식사를 했다’라는 김 전 대표의 진술을 확보하고도 방 사장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아울러 검찰은 ‘조선일보 방사장’ 접대에 관한 사실관계 자체보다 이 사건이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과 무관하다고 판단하는 데 치중한 채 수사를 종결한 것으로 드러났다.
위원회는 “수사 검사는 방상훈 사장이 ‘조선일보 방사장’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더라도 ‘조선일보 방사장’이 누구인지, 장 씨가 피해를 호소한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으나, 수사 당시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혐의를 두는 것이 합리적이었다고 판단되는 방용훈 사장을 상대로 전혀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검찰의 부실수사로 ‘조선일보 방사장’의 실체를 규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방사장의 아들’에 대해 위원회는 과거 수사 미진으로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현재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장 씨에 대한 방 전 대표의 술 접대 강요 등 범죄 사실이 있었다고 판단할 만한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방 전 대표가 2008년 10월경 한 유흥주점에서 김 전 대표에게 술 접대를 받으며 장 씨와 동석한 사실이 인정되지만, 검찰은 방 전 대표의 모임 당일과 다음 날 이틀간 통화 내용만 좁게 확인하는 데 그쳤다.
조선일보 수사 외압 확인돼
“우린 정권도 창출할 수 있다”
“우린 정권도 창출할 수 있다”
방 씨 일가에 대한 수사에서 조선일보가 사건 무마를 위해 외압을 행사한 사실도 드러났다. 위원회는 “조선일보 관계자의 진술에 의하면 2009년 당시 조선일보사가 대책반을 만들어 장 씨 사건에 대처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당시 조선일보 사회부장 이모 씨가 조현오 경기청장에게 “조선일보는 정권을 창출할 수도 있고 퇴출시킬 수도 있다. 이명박 정부가 우리 조선일보하고 한 번 붙자는 겁니까?”라며 방상훈 사장을 조사하지 말라고 협박한 사실도 인정됐다.
다만 ‘조선일보가 수사기록을 제공받고 통화 내용 삭제를 시도했다’라는 의혹에 대해 위원회는 관련자의 진술을 확보했으나 이를 뒷받침할 추가 진술이나 구체적인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장 씨 사건에 대한 과거 수사가 부실했음을 분명히 했다. 위원회는 ▲장 씨 등 주요 인물에 대한 통화 내용을 보존하지 않은 점 ▲경찰이 장 씨의 주거지 등 압수수색에서 주요 증거가 될 수 있는 ‘조선일보 방사장’ 등이 적힌 다이어리 등을 압수하지 않은 점 ▲디지털 압수물 자료 편철이 빠진 점 등을 지적했다.
수사 부실로 증거인멸에 공소시효 만료까지
재수사 불가능하게 만들어놓은 MB 검찰
재수사 불가능하게 만들어놓은 MB 검찰
‘조선일보 방 사장’ 외에도 성 접대 요구자의 명단이 적혀있다는 ‘장자연 리스트’의 존재 여부와 관련해, 위원회는 진상조사단이 관련자들의 엇갈린 진술로 인해 확정할 수 없었지만 ‘리스트’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장 씨가 술 접대 자리에서 약을 탄 술을 마시고 성폭행당했다’라는 의혹에 대해, 위원회는 동료 배우인 윤지오 씨 외에도 관련자들의 진술이 나왔으나 “이들의 진술만으로는 구체적인 가해자 등을 알 수 없으므로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객관적 혐의가 확인됐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라고 봤다.
이외에도 위원회는 기획사 대표 김종승 씨에 대해 “장 씨에게 술 접대를 강요한 사실은 인정된다”라면서도 “성 접대 강요나 성매매알선이 있었다는 증거를 발견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또 김 씨가 장 씨를 강제 추행했을 가능성이 크고 협박한 사실이 분명함에도 이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사건과 관련한 재판에서 김 씨가 거짓 증언한 정황도 확인했다.
위원회는 여러 의혹을 확인했으나, 과거 검찰의 부실 수사로 주요 증거가 사라지거나 공소시효가 만료돼 기획사 대표 김 씨의 위증 혐의에 대한 수사 권고만 내렸다. 아울러 위원회는 ▲성폭행 피해 증거의 사후적 발견에 대비한 기록 보존 ▲디지털 증거의 원본성 확보를 위한 제도 마련 ▲압수수색 등 증거확보 및 보존 과정에서 공정성 확보 방안 마련 등을 권고했다.
정한중 과거사위원장은 “한 젊은 여성의 꿈을 짓밟은 고위 공직자들과 언론 및 연예계의 힘 있는 자들을 처벌할 수 없어도 양심에 의한 심판은 피할 수 없다”라며 “우리 사회 권력자들에게 성찰의 계기가 된다면 과거 사건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사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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